주님과 함께 - 6월 11일
요한복음 6장 22-27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오늘의 구절들은 주님이 물 위를 걸으시고 난 다음 날을 배경으로 합니다. 군중은 여전히 호수 북동쪽에 있었습니다.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섰는 무리가 배 한 척 밖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그 후 무리는 디베랴에서 그곳까지 작은 배들을 타고 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주님이 안 계시자 그들은 그분을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건너갔습니다. 극도의 호기심을 지녔던 그들은 드디어 주님을 찾게 되자 이렇게 물었습니다.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즉 어떻게 가버나움에 오셨는지를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주님은 직접적인 대답을 주지는 않으셨습니다. 만약 많은 사람들을 먹였던 그 기적에서 아무 가르침도 얻지 못했다면 호수를 어떻게 건넜는지를 설명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들은 여전히 주님을 지도자로 삼으려는 강한 욕망을 품고 있었습니다(15절). 주님을 찾는 이 무리는 그분을 랍비로 인정 하는(25절) 한편 그분을 신비로운 분으로 여겼습니다.
이런 그들의 호기심을 채워주는 대신 주님은 그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진실로 진실로"는 매우 중요한 진술을 시작하기 전에 주님이 사용하신 표현인데 요한복음에서 자주 나옵니다. 그들은 외면적인 것 너머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기적적으로 주어진 떡만을 보았습니다. 즉 떡의 기적으로 인해 커다란 영향을 받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중요한 것은 일시적인 가치를 지니는 기적의 행위가 아니라 영원히 가치 있는 것을 주시는 그분을 믿는 것임을 알리셨습니다(사 55:1,2).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그분은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 인생의 으뜸가는 목표를 말씀하셨습니다. 굶주림을 채우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영과 혼과 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살전 5:23). 몸의 필요 역시 꼭 채워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이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필요합니다(신 8:3). 이 사람들은 주님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았습니다! 분명 이는 떡을 더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영적이고 영원한 삶이 물질적인 떡을 지속적으로 공급함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영적인 떡은 영원히 존재하며 영원히 우리를 충족시킵니다.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27절). 이것은 주님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유일한 분임을 뒷받침합니다. 이것은 또한 떡 굽는 자이신 주님이 자신의 떡에 날인하는 것을 암시하는 듯합니다(32절). 이 구절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 물질주의적인 세대에서 커다란 도전을 받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에 대해 그릇된 동기를 품은 듯 보이는 이러한 때에 우리의 인생은 무엇에 주안점을 두고 있나요? 그것은 일시적인 것인가요 아니면 영원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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