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은 식습관과 무관하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5.02.19 01:01 / 수정 2015.02.19 07:09

발병 사례 3분의 2가 유전이나 나쁜 생활습관이 아니라 무작위 돌연변이에 의한 것이라는 연구 결과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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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부 과학자들은 건강한 식습관을 가진 사람들과 매일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는 사람들의 암 발병 확률에 거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는 암의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고 들어 왔다. 팝콘, 비유기농 과일, 통조림 토마토, 가공육, 양식 연어, 감자칩, 소금이나 식초에 절인 음식, 훈제 식품, 유전자변형 식품, 사탕, 인공 감미료, 다이어트 청량음료, 알코올, 적색육, 심지어 흰 밀가루까지 우리 목숨을 노린다고 말이다.

이제 이런 이야기는 들을 만큼 들었다.

최근 존스 홉킨스 의대에서 발표한 한 연구는 암 환자 대다수가 단순히 운이 없어서 병에 걸린 경우라고 주장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렇다. “일단의 과학자들은 다양한 종류의 암 발병 사례를 연구한 결과 그중 3분의 2가 유전이나 흡연 등의 위험한 습관 때문이 아니라 무작위 돌연변이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과학자들에 따르면 누가 암에 걸리고 누가 걸리지 않느냐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단지 운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먹고 마실 것인가에 그렇게까지 신경 쓸 이유가 뭔가?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베이컨 한 조각을 먹을 때마다 죽음의 공포를 떠올릴 이유가 있을까?

그것은 진화의 결과일지 모른다. 예부터 인간 대다수에게 의심은 아주 자연스럽고 타당한 감정이었다. 예를 들어 맛있어 보이는 딸기가 평범한 딸기인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위장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음식물에 대한 의심이 여전히 타당하다. 얼굴 없는 거대 기업이 우리 몸에 독을 주입할지 모른다는 우려에 밤잠을 설치는 사람들은 ‘짐바브웨에서는 수돗물 한 컵보다 다이어트 콜라 한 캔을 마시는 게 일반적으로 더 안전하다’는 사실에 무릎을 치며 공감할지 모른다.

흥미롭게도 음식물에 관한 강박관념은 유명인사들 사이에 훨씬 더 널리 퍼져 있는 듯하다. 기네스 팰트로가 대표적인 예다. 영국 일간지 가디안에 소개됐듯이 그녀는 프렌치 프라이(감자 튀김)를 과식하고 나서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요리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팰트로는 병원에 가서 뮌하우젠 증후군(병원 치료를 받으려고 계속 몸이 아픈 척하는 정신 이상 상태) 환자보다 더 많은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몸이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한 의사는 그녀가 후추와 옥수수, 가지 등 거의 모든 농산물에 알레르기가 있다고 진단했다. 키노아(안데스 산맥의 명아주속 식물), 그리고 특별한 경우에 약간의 석류를 제외하고는 거의 아무것도 먹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유명인사들의 이런 특이한 행동을 이해하려면 조너선 하이트 뉴욕대 교수의 말을 참고하는 게 좋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의 연설문 작성자로 일했던 하이트는 획기적인 저서 ‘바른 마음: 나의 옮음과 그들의 옮음은 왜 다른가’에서 진보주의자는 음식을 도덕적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고 썼다.

진보주의자는 보수주의자가 섹스에 대해 강박관념을 갖는 것과 흡사한 방식으로 음식에 대해 강박관념을 갖는다. 이들은 먹는 행위를 성교와 마찬가지로 부도덕의 잠재적 근원으로 본다. 따라서 이들에게 가까운 지역에서 유기농으로 재배된 토마토를 찾는 일은 루르드나 메카 같은 종교 성지의 순례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준종교적 정화의 한 형태다.

최근의 한 정책 토론회에서 논의됐듯이 인류의 집단 건강을 포함해 거의 모든 것이 향상되고 있다. 그러니 버터에 지진 베이컨과 진한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시작해도 괜찮지 않을까?

[ 필자 마리안 L 투피는 HumanProgress.org의 편집인이며 세계 자유와 번영 센터의 수석 정책 분석가다. ]

글=마리안 L 투피, 번역=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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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떠러지에서 만난 사람들 자살 유가족 이야기

자살극복 삽화 이미지

흔히 자살자 유가족을 ‘생존자’라고 부른다. 마치 가족 중 하나가 자살을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자살을 시도했다가 살아남은 것 마냥, 마치 언제라도 또 그렇게 자살을 시도할지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결코 좋은 소린 아니지만 그렇게 부르는 것도 일견 납득이 간다. 자살 유가족들은 먼저 간 그들과 같은 선택을 할 확률이 매우 높다니 말이다. 가족을 자살로 잃은 경험은 그만큼 고통스럽다. 아니, 사랑하는 사람을 자살로 잃은 것보다 이 세상에 더 나쁜 일은 없다.

하루하루 버텨내던 어둠의 시간들

 

하물며, 외아들을 자살로 잃은 부모는 어떻겠는가? 남은 나머지 생을 어찌 살아야 할 지, 아니 당장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야 할 지, 심지어 지금 살아있기나 한 것인지 모를 정도로 고통스럽고 버거운 시간 속에 던져지기 마련이다.

내 아들은 2년 6개월 전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아들은 대학졸업을 1년 앞두고 있었고, 군대도 만기제대했다. 부모로서 다 키웠다고 생각했던 시점이었다. 그 때, 청천벽력이 떨어진 것이다. 죽은 아이를 붙잡고 통곡을 해도, 죽어라 하늘에게 빌고 빌어도, 그 애원을 욕설과 원망과 저주로 바꿔 다시 하늘에 퍼부어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충격으로 각막이 파손되어 그야말로 피눈물을 흘리게 된 눈과, 갑자기 잘 들리지 않게 된 귀 등 후유증만 남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차라리 피눈물을 흘리며 통곡할 때는 나았다. 진짜 문제는 장례를 치르고 난 후부터였다. 아들의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여 주관한 장례는 화장으로 치러졌다. 아들을 연기로 날려 버리고 난 후, 약 100일 가량을 나는 폭음으로 지샜다. 끊었던 담배도 하루에 3~6갑 피워댔다.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어찌어찌 버티며 지낸 것이다. 이런 삶이 끔찍해서 아들을 따라 죽으려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다가도, 고향에 계신 어머님과 나보다 더 고통스러울 아내를 생각하며 견뎌냈다.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디게 해준 사람들

 

그렇게 어찌 시간을 흘려 보내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분명 나 같이 가족을 자살로 잃은 사람이 또 있을 텐데, 그들은 어떻게 살고, 어떻게 견뎌내는 것일까?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서울시자살예방센터에서 운영하는 ‘자작나무(자살유족의 작은 희망 나눔으로 무르익다)’라는 곳을 찾았다. 자살유족들을 위한 시설이었다. 자살자 유가족들이 모여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주제로 연구도 하고, 강의도 듣고, 서로 경험을 나누는 곳이라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곳을 찾았다.

첫 상담 때 나를 맞이한 것은 꼭 아들 또래의 젊은 상담 선생님이었다. 그 앞에서 아들 이야기를 하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한바탕 울고 나니 좀 시원해진 것도 같았다.

그리고나서 한 달에 한 번 있다는 유가족들 모임에도 나가보았다. 나보다 앞서서 가족의 자살을 경험한 이들이 아픔을 이겨내며 가끔씩 웃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희망도 생겼다.

나는 조금씩 나아지기 위해 노력했다. 100일이 지나면서 술을 끊기 위해 일부러 대리운전 일도 3개월간 해보고, 아내와 같이 교회에 나가 울면서 예배를 드리거나 찬송가를 부르기도 했다. 천국에 있을 아들을 대신해서 아들의 블로그에 매일 일기를 쓰며 위안을 삼아보려 하기도 했다. 가슴이 송곳으로 찔리듯 늘 아프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와중에도 한 달에 한번 있는 자작나무 모임에는 꾸준하게 나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모임에서 빠지지 않는 고정 멤버가 되어 있었다. 또한 나도 모르게 나보다 늦게 사고를 당한 유족들을 위로하고 어쭙잖은 조언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 남을 위로할 처지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다른 이들을 위로하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을 위로하는 일임을 곧 깨달았다. 내친김에 용기를 내서 협회에 나가 심리상담사 공부를 하며 자격증을 땄다. 그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도 사람은 살고, 사랑할 수 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즈음, 우연히 한국의 자살자 수가 다른 선진국 평균에 두 배에 달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당시 뉴스에서는 아들이 떠났던 2010년 통계를 보여주었다. 그 해에만 1만5800명이 자살을 했고, 이것은 약 34분에 한 명 꼴로 자살자가 생긴다는 소리라고 했다.

자작나무 모임에 한층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자작나무 같은 모임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살이 얼마나 큰 비극이고 아픔인지 알고 있는 우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면 조금이라도 자살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비공식 모임도 갖고, 죽음과 슬픔 그리고 종교와 철학에 대해 토론도 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보다 깊이, 그리고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지금 나는 삶과 죽음에 있어서는 제법 철학자 흉내를 낼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은 언젠가 다 죽는다는 것, 그러나 다만 순서가 뒤바뀔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죽음 뒤에 더 큰 세상에서 헤어진 아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또, 나 역시 매 순간 죽어가고 있으며, 언제 죽어도 마음이 편안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또 얼마나 어려운 경지인지도 알게 되었다. 아들이 떠난 후 2년 동안 내가 깨달은 것들이다.

아들의 뜻밖의 선택이 아니었다면 난 지금도 열심히 돈을 벌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여느 중년의 누군가처럼 평범하게 늙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늙어 죽을 때, 갑작스러운 이별과 준비되지 않은 죽음에 괴로워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나는 늙어가고 있고, 준비되지 않은 이별들은 언제나 갑자기 찾아와 아프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죽음의 두려움이나 준비 안된 죽음의 트라우마를 누구나 겪는 감기 같은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죽음 역시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깨달은 가장 크고 중요한 사실은, 죽고 사는 일이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고, 천길 만길 낭떠러지 밑에서도 사람은 살며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의 자살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자작나무 같은 유가족 모임을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다. 나는 자작나무에서 나와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서로 상처를 어루만지며 아픔을 이겨냈다. 홀로 견디기에는 너무나 큰 아픔인 만큼, 그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고통을 나누면 조금은 견디기 편해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누군가 혹시 지금 이 순간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면, 당신이 떠난 후 나처럼 아프고 괴로워할 당신의 가족을 생각해서 한번만 더 굳세게 마음을 먹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꼭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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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늪에서 나오기까지 자살 시도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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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되돌아보면,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난 채 내리막길 위를 달리는 버스에 홀로 올라타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 위태로운 버스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라서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었고, 홀로 빠져 나오려 몸부림을 쳐도 옴짝달싹 할 수도 없었다. 고장난 버스는 나를 싣고 여기저기 부서지고 깨지면서 아래로 아래로 달렸고, 나는 기어이 버스와 함께 늪에 내팽개쳐졌다.

난 여자라기보다는 그저 한 아이의 엄마로서만 살아왔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로 인해 세상에 태어난 내 아이를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노라 자부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녹록하지 않았다. 일을 하다 갑작스레 장애를 얻게 된 것이다.

한번 시작된 불행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망가지고 부셔져버린 생 앞에 남겨진 것이라곤 어깨를 짓누르는 빚덩이였고, 남편의 언어폭력은 수위를 넘어서고 있었다. 무엇보다 날 괴롭혔던 건, 고장나고 녹슬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쓸모없는 기계처럼, 나란 존재가 귀한 내 아이에게 앞으로 쓸모없는 짐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넘기고,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잠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자살, 죽음, 우울’이라는 단어가 친근하게 들렸고 자살에 성공한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토록 열심히 살았던 내 이십여 년의 시간이 억울해 통곡을 하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남 몰래 자살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살 도구들을 모으고, 죽을 장소를 찾아 다니기도 했다. 죽음이 바로 옆에 와 있는 것 마냥 가깝게 느껴졌다.

자살의 유혹 속에서 그래도 구원의 끈이 되어 준 것은 아들의 존재였다. 좌절해 있는 나를 붙잡고 “엄마가 응가를 싸고 기어 다녀도 엄마만 내 곁에 있으면 돼.”라고 말하는 아들을 보며 그래도 살아가야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내가 죽는다면, 불쌍하고 가엾은 내 아이는 어떻게 하나. 아이의 마음에 평생 남을 그 상처는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고 잠든 아이의 얼굴을 쓸며 몇번이고 마음을 다잡았다. 나 혼자 힘만으로는 힘들 것 같아서 어렵게 용기를 내어 ‘서대문구 정신보건센터’를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막상 입구에서는 발이 떨어지지 않아 그냥 돌아서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불안하지만, 그럭저럭 시간이 지나가는가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뒤늦게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외도만으로도 배신감과 충격에 죽을 듯 힘들었는데, 남편의 악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폭언으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남편의 상간녀는 나에게 직접 전화해서 ‘죽이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억울함과 분통함에 피가 타 들어가는 듯 괴로운 시간들이었다. 가장 처참한 모습으로 그들 앞에서 죽어 보이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때마다 아이를 생각하며 이를 사리물었다. 나마저 떠나면 아이 곁에서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괴로움에 지쳐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어떻게든 이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절박하게 서대문구 정신보건센터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통화음이 가는 순간까지 망설임과 후회가 일었지만, 막상 상냥하고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툭하고 긴장이 풀어졌다. 나는 그 목소리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울면서 내 이야기를 쏟아냈다. 앞뒤도 없이 그저 쏟아져 나온 내 넋두리에 당시 상담사였던 간호사는 따뜻하게 귀를 기울여주었다.

한참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그녀는 만남을 청해왔다.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고 나니 또 망설임이 찾아왔지만, 용기를 내서 결국 상담까지 받았다. 상담 결과는 치료를 요하는 고도의 우울증이었다. 당장 치료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 놈의 돈이 문제였다. 병원 치료는커녕 약 한 알 맘편히 사 먹을 형편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담한 것이 되려 후회가 되었다. 그냥 모른 채 그렇게 살 것을...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닌데도 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더욱 절망스러웠다. 그 때문인지 자살 충동은 더욱 강해졌고 마치 벼랑 끝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듯한 심정이었다.

그때 뜻밖의 도움이 내게 주어졌다. 내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 상담 간호사가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이리저리 방법을 찾아준 것이다. 뿐만 아니었다. 그녀는 동사무소와 구청사회복지과에 연락해서 어려운 생계에 대해서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그러고도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그녀는 매일같이 전화를 하고, 때론 집으로 찾아와 나를 위로해주며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그녀의 노력으로 나는 조금씩 희망을 향해, 세상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그 때의 감사를 어떻게 전해야 할지. 정말이지 엎드려 큰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치료를 시작한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직도 나는 자살의 유혹에서 완전히 빠져 나오지는 못했다. 그러나 일년 동안 내 곁을 지켜준 사람들의 도움으로 나는 한결 강인한 사람이 되었다. 치료 기간 동안 진료실 문 앞까지 나와 환히 웃으며 나를 맡아준 원장님, 전화로 안부를 챙기고 내 상태에 대해 늘 신경을 써주는 간호사님, 나를 이끌어준 상담사님. 그들을 생각하면서 다시 힘을 낸다. 이 몸짓, 이 웃음이 삶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여전히 하루하루는 힘겹다.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남편의 폭력과 외도, 나의 장애, 가난은 여전히 나를 놓아주지 않고 해초처럼 발에 감기어 있다. 언제부터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비참해진 것일까 생각하면 괴로움은 파도처럼 거세고 흉폭하게 가슴을 덮쳐온다. 그래도 다시 이를 꼭 물고 내일을 마주하기 위해 힘을 낸다.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1년 동안 치료를 받으며 깨우친 것은 내게 해를 끼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우울증에 대해 쉽게 이야기한다. 잠시 스쳐가는 ‘마음의 감기’ 같은 것이라고. 그러나 우울증으로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의 깊이를 모른다. 감기에 걸렸다고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꼭 이야기하고 싶다. 적극적으로 치료하라고. 감기처럼 절로 낫는 병이 아니니 치료를 받고 온 힘을 다해 떨쳐내려고 노력하라고.

비록 찰나에 불과한 삶일지언정, 앞으로 나는 부끄럼 없이 살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 서대문구 정신보건센터에 근무하시는 간호사님, 복지사님, 의사선생님, 그리고 어두운 곳에서 웅크리고 있던 내게 처음 손을 내밀어준 간호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많은 이들이 나처럼 도움을 받고 절망을 이겨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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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가족이나 친구에게 털어놓기 어려운 자살 관련 상담은 과연 어디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보건복지부는 2005년부터 전국 공통 자살예방 및 정신건강상담전화인 1577-0199를 운영하고 있다. 이 상담전화는 2013년 현재, 전국 11개 시도(서울, 인천, 부산, 대구, 광주, 대전, 경기, 강원, 충남, 충북, 전북)에서 광역과 기초정신건강증진센터를 통해서 24시간 365일 운영되고 있다. 나머지 6개 시도광역자치단체(전남, 경북, 경남, 제주, 울산, 세종)에서는 낮 시간 동안에는 해당지역의 정신건강증진센터 또는 보건소에서, 그리고 야간 및 휴일에는 권역별 국공립정신의료기관에서 상담전화를 운영하고 있다.

자살예방상담전화를 통해서 누구나,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지 무엇이 자신을 힘들게 하는지 객관적으로 검토해볼 수 있다. 종종 ‘남들이 보기에’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문제일 수도 있으며, 가까운 주변사람들에게조차 털어놓기 어려운 고민인 경우도 있다. 또는 문제가 너무나 크다고 느껴서 어느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전화상담을 한다고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경제적 문제가 해결이 되겠는가?’라는 생각은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의문사항이다.

그러나 문제의 종류나 심각도와 상관없이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나를 힘들게 하는 ‘무엇’이 있다면 그 상황자체에 대한 검토와 함께, 나를 힘들게 하는 생각과 감정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즉,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문제의 객관적 사실(fact)은 무엇인가? 내가 그 문제적 사실로 인하여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면 분명 더 이상의 출구가 없다고 생각해서일 텐데, 내가 정말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1577-0199 자살예방상담전화는 언제 어디서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유용한 방법이다.

또 문제 하나하나에 대하여 상담자와 사실을 확인해나가다 보면, 스스로 해결방안을 찾게 되는 경우도 많다. 때론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우리 사회의 다양한 지원정책을 알게 될 수도 있다. 물론 대한민국의 복지서비스는 아직 부족한 실정이며, 선진국 수준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보완해야 할 점이 많이 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온통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던 누군가에게 한줄기 빛을 제시해주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다음으로는 죽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그 상황을 실제보다 더욱 나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요인은 없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선글라스를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 실제보다 더 어둡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려움에 처한 나의 상황을 터널에 들어간 것으로 비유해 보자. 터널은 물론 어둡지만 선글라스를 쓰게 되면 실제 어둠보다 더욱 어둡게 느끼게 될 것이다. 내가 처한 상황은 말 그대로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면, 다시 말해 터널 저 멀리 출구가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으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빠져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으면 그나마 인지할 수 있는 저 너머의 빛을 못 보게 된다.
다시 말해, 자신이 혹시 ‘우울’이라는 이름의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로 인해서 자신의 상황을 더욱 비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보는 작업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자살예방상담전화는 이 과정에 개입하여 객관적인 측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

다음으로 확인해봐야 할 것은 ‘죽음을 생각하는 나만의 이유’이다. 왜 죽고자 하는지에 대한 철저한 확인이 필요하다. 한 인간이 죽고자 하는 결심을 했다면 동시에 살고자 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이를 양가적 생각 또는 양가적 감정이라고 한다. 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도 알아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살아야 하는 이유도 알아야 한다. 자살예방상담전화는 이를 도울 수 있다.

1577-0199에 전화를 할까 말까 하는 순간도 결국 양가적 상황이다. ‘내가 이 상황에서 빠져 나오는데 도움이 될 거야’, ‘그들이 뭘 알겠어? 그냥 상투적인 위로나 하겠지’… 이런 갈등을 겪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행하지 않고서는 확인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자살과 죽음을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1577-0199로 전화해보길 바란다.

자살예방센터와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는 전화상담을 비롯하여, 필요한 경우 대면상담 및 의료기관 치료서비스도 지원한다. 또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상담을 제공하는 기관도 있으며, 그 외 각종 사회서비스와 보건 및 복지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상담자의 얼굴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전화 상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되면, 이와 같은 기관들을 찾아 대면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지역별 자살예방센터와 정신건강증진센터 정보는 아래 링크를 참고한다.

▷ 지역별 자살예방 상담센터 찾기
▷ 지역별 정신건강증진센터 찾기

작성
대한신경정신의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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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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