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동생들이 역사를 바꿨다…둘째를 낳자

입력 2015-02-11 20:40:13 | 수정 2015-02-12 01:09:46 | 지면정보 2015-02-12 A34면
맏이만 있는 사회엔 혁신이 없다
최대 리스크는 복지 아닌 저출산
둘째 낳는 가정에 지원 몰아주자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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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이 출간된 1857년,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유럽 지식인 사회는 찬반양론으로 확연히 갈렸고, 격렬한 논쟁이 시작됐다. 반대 세력들은 공개적으로 야유를 쏟아냈다. 찰스 다윈의 주장은 허위이고, 과학적 오류이며, 의도 자체가 불손하다고 말이다.

프랭크 설로웨이라는 심리학자가 종의 기원 출간 당시 논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일일이 분석했다. 놀라운 결과가 도출됐다. 다윈의 주장을 격렬히 반대한 사람들 대부분은 맏이, 열렬히 지지한 사람들 대부분은 후순위 출생자였던 것이다. 후순위 출생자들이 진화론을 지지할 확률이 맏이들보다 9.7배 더 높았다는 결론이다. 우연한 결과가 아니다. 출생순서에 따른 이 같은 차이가 우연히 생길 확률은 10억분의 1에 불과하다.

맏이는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부모의 관점을 수용한다. 힘의 유지에 신경을 쓰느라 타성에 빠지고, 그래서 보수적 태도를 갖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반면 첫째에 맞서 반항적으로 성장한 동생들은 개방적이고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성향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는 것이다. 설로웨이의 결론은 과감하다. “반항적인 동생들이 역사를 바꿨다.”

무리하게 진화론과 출생서열을 연결시킨 것일까. 설로웨이는 이런 방법으로 종교개혁 프랑스대혁명 등 121개의 역사적 사건과 코페르니쿠스혁명 상대성이론 등 28가지 과학 혁신을 조사했다. 이 논쟁에 개입된 6566명의 전기적 자료를 분석했다. 결론은 같았다. 870쪽 분량의 역작 ‘타고난 반항아(Born to Rebel)’의 내용이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1.19명이다. 15세부터 49세까지의 가임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아이의 숫자다. 당연히 첫째만 있는 사회다. 출생률 저하가 큰 문제라지만, 맏이만 있는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이 그 위험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회에 활기가 떨어지고 변화의 바람이 잦아드는 것은 단순히 고령화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력 감소의 부작용보다 혁신의 기회가 줄어든다는 위험이다.

다윈은 프랑스 사람들이 왜 이토록 진화론을 믿지 않느냐며 불평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답은 둘째의 부재였다. 진화론 출간 당시 유럽 과학자 평균 형제 수는 2.8명이었지만, 프랑스 과학자들의 평균 형제 수는 1.1명에 불과했던 것이다. 프랑스가 18세기 유럽의 산업화 과정에서 후발국가로 뒤처진 것은 인구가 제자리걸음을 한 탓이라는 건 증명된 사실이다.

맏이의 변화 기피 성향이 문제가 된다지만, 외둥이는 알다시피 더 심각한 응석받이다. 경쟁할 형제가 없으니 의존적이 되고, 자기중심적이 된다. 게다가 어른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한다. 3대 심리학자로 출생서열을 집중 연구한 알프레드 아들러의 설명이다.

외둥이 사회의 부작용은 중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34년 산아제한 정책 탓에 조부모에 외조부모, 부모, 그리고 한 자녀로 가족이 구성되는 ‘4-2-1 포메이션’이 일반적이다. 샤오황디(小皇帝)들은 더 없이 행복하다. 가만히 있어도 ‘4-2’의 모든 것이 다 제 것이 된다. 도전이 필요 없다. 한국도 다를 게 없다.

잘나가는 선진국은 둘째가 있는 사회다. 미국이 그렇고, 유럽 주요국이 그렇다. 일본처럼 둘째가 없는 사회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기업에 취직해 힘들게 살 이유가 없다.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휴대폰 게임에 몰두할 뿐이다. 나라는 절망을 향해 가지만, 젊은이들은 오히려 희망이 없어서 행복하다고 답한다. 지금을 즐길 뿐이라는, 소위 ‘사토리(깨달음) 세대’다.

입만 열면 복지를 떠드는 정치인들이다. 웃기는 사람들이다. 이런 추세라면 2750년이면 아예 국민이 소멸된다는 데 말이다. 한국의 최대 위기는 바로 저출산이고, 둘째의 부재다.

한 자녀는 어떻게든 키울 수 있다. 첫째부터 무상 시리즈를 적용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셋째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낳으라 낳으라 해도 쉽지 않다. 낳지도 않는 셋째를 지원해 봐야 헛일이다. 둘째를 낳는 집에 다 몰아주자. 예산이고, 제도적 지원이고 말이다. 재앙은 벌써 저만큼 다가왔다. 동생이 필요하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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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웬만하면 그들의 사랑을 막을 수 없다 역경을 뛰어넘은 러브 스토리

코스모폴리탄 | 입력 2015.02.0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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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모두 로맨스를 꿈꾼다. 백마 탄 왕자와의 꿈같은 로맨스는 아닐지라도, 내 눈에는 완벽한 나만의 이상형과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는 것. 최근 평범한 노부부의 사랑을 담은 다큐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그토록 인기몰이를 한 것도 소박하면서도 진실된 로맨스를 향한 많은 이들의 갈망이 반영됐기 때문일 거다. 이달, 코스모는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뛰어넘는 위대한 사랑의 힘을 몸소 증명한 아름다운 커플들을 만나봤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들의 러브 스토리에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story 1. 사랑에 장애가 있나요?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잃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도전하며 살아가는 남자. 그리고 그의 멋진 영혼을 알아볼 줄 아는 여자. 그 어떤 커플보다 완벽한 그들의 사랑 이야기.-권주리(30세, 뮤지컬 배우) & 박항승(30세, 교사)

    그를 만난 건 6년 전 소개팅에서였어요. 그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소개팅 전날 밤에야 알게 됐죠. 그 얘기를 듣고 너무 당황했지만 이미 잡은 약속을 취소할 수도 없으니 일단 소개팅에 나갔죠. 약속 장소는 강남역. 당시 여름이었는데, 반팔 티셔츠를 입은 그가 팔 한쪽이 없이 걸어오더군요. 그러고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어요. 만나자마자 자기 소개를 하고, 바지 한쪽도 걷어 올려 의족을 보여주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그런데 사는 얘기를 들어보니까 저보다 훨씬 열심히 살고 있더라고요. 장애가 있음에도 그것이 크게 불편하지 않은 듯 행동하는데, 그의 건강한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대화도 잘 통했고, 꽤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강남역 7번 출구에서 작별 인사를 하며, 그는 "다음에 인연이 되면 또 봬요"라고 하더군요. 애프터 신청도 하지 않았고요. 나름 그를 괜찮게 봤던 터라 좀 실망을 했어요. 사실은 제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해서 연락을 못 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지만요.

    6개월 뒤, 그와의 만남을 서서히 잊어갈 때쯤 대전에서 지내던 그가 시험을 끝내고 서울에 올라왔다며 만나자고 연락이 왔어요.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가 이번 겨울에 혼자 제주도 여행을 갈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마침 그때 저도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터라 같이 가자고 제안했죠. 2박 3일 내내 같이 여행을 하면서 이성적인 호감이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그도 그랬는지,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뒤 저에게 고백을 했어요. 허브아일랜드에 데려가더니, 가방에 숨겨뒀던 꽃을 내밀며 수줍게 고백하더라고요. 기분이 정말 좋았지만 한 번쯤 튕겨줘야 할 것 같아 생각 좀 해보겠다고 했죠. 그렇게 거절을 당하면 자존심이 상해 포기할 법도 한데, 일주일 뒤에 저를 또 찾아와서 진심 어린 표정으로 또다시 고백을 하더군요. 저는 그에게 제 단점을 마구 늘어놓기 시작했죠. "난 성격도 더럽고 청소도 잘 안 한다. 단점이 정말 많다. 나의 바닥까지 사랑할 수 있겠냐?" 이런 식으로 말이에요. 그는 "자신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2011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 한강에서 세 번째 고백을 받고 결국 우리는 사귀게 되었어요.

    연애를 시작한 뒤 알콩달콩 행복한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저희에게도 위기는 있었어요. 연애 초반 부모님에게 그를 소개해주려고 데려갔는데, 그의 모습을 보시고는 "그냥 친구로 잘 지내라"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더군요. 얼마 뒤 부모님에게 친구가 아니라 사귀는 사이라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더니 엄마가 너무 속상해하셨어요. 저 때문에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니까 저도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정말이지 거의 매일 울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눈물 흘리고 있는 제 옆에서 그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장애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바꿀 수 없는 걸 슬퍼하지 말고 같이 해결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라고요. 그때 그의 말을 듣고 '와, 이 남자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자들이 원하는 게 그거잖아요. 어려운 순간이 찾아왔을 때 주저앉기보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 말이에요. 그때부터 저도 울기만 할 게 아니라 엄마를 설득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를 우리 집에 자주 오게 만들었어요. 장작 패는 것도 보여드리고 청소하고 요리하는 모습도 보여드리면서 신체적으로 불편한 점이 있지만 그것이 삶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과 그게 나와의 사랑에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드렸어요.

    그렇게 2년 정도 지나니, 점점 부모님도 그의 진면목을 알아보시더군요. 이제는 오히려 아빠가 "사는 데 장애는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한 거다" 이런 얘기를 해주시고, 종종 제가 "아, 어떻게 하지?"라고 고민하면 오히려 "넌 살면서 고민할 게 얼마나 많은데 그깟 다리 한쪽 때문에 고민하고 있느냐?"라고 핀잔을 주시죠.

    그는 자신의 장애를 원망하거나 절망하지 않아요.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장애 때문에 자기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 제한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저는 그가 세상의 재미있는 것들을 더 많이 경험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더 많이 늘려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단 해보고 안 되면 포기하자!"라며 도전 과제를 던져줬죠. 그는 보드를 타기 시작했고, 수영, 요리에도 도전했어요. 그는 무엇이든 시작하면 오히려 제가 말릴 정도로 열심히 노력해요. 의족을 끼고 스노보드를 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타죠. 스노보드를 한 번 타려면 의족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살이 뭉개질 정도로 고통을 감수해야 해요. 그런데도 너무 즐거워하면서 4~5시간을 멈추지 않고 타는 거예요. 제가 "도대체 뭐가 그렇게 재밌느냐"라고 물었더니, 그는 "내가 기억하는 한 내 인생에 이런 스피드로 달려본 적이 없다. 늘 의족을 끼고 달리기 때문에 이제까지 나는 빨리 뛸 수가 없었는데, 스노보드를 타면 빠르게 달릴 수 있다. 그래서 보드를 타면 너무 벅차고 가슴이 뛴다"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는데 너무 가슴이 아파서 남몰래 눈물을 흘렸죠. 우리는 성향도 많이 다른 편이지만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장점을 키워주며 더욱 멋있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어요. 정말 인연을 만나면 '종이 울리는' 경험을 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 종소리를 듣진 못했지만 그와 함께라면 평생 재미있게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드는 걸 보면 우리가 인연임은 분명한 것 같아요.

    4년간의 열애 끝에 드디어 우리는 결혼을 해요. 결혼식에서도 보드를 타면 좋겠다는 그의 아이디어를 적극 수렴해 강원도의 스키장에서 결혼식을 진행할 예정이에요. 웨딩드레스와 턱시도 차림으로 스노보드를 타고 행진하는 신랑 신부, 아름답지 않나요? 하하.

    story 2.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 그대로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에 그의 불치병조차 두렵지 않았던 여자, 사랑하는 그녀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헌신적인 서포터즈를 자처한 남자. '받기 위한 것이 아닌, 사랑 그대로의 사랑'이라는 이상적인 사랑의 정의를 실현한 이들의 아름다운 로맨스.-고민정(37세, 아나운서) & 조기영(48세, 시인)

    대학교 1학년 때, 동아리 방에서 그를 처음 봤어요. 당시 그는 졸업한 선배로서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잠시 학교에 들른 거였는데, 완전 새내기인 저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저 대선배님으로 그를 대했지만 그는 계속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나중에 말했어요. 그러다가 친한 선배와 후배로 자주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죠. 제가 심적으로 너무 괴로웠던 시기가 있었는데, 하루는 그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그가 대뜸 "바다 보러 갈래?" 하더군요. 해변을 거니는데 그가 음악을 한 곡 들려줬어요. 푸른하늘의 '사랑 그대로의 사랑'.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기 위함이 아니라 사랑 그대로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오는데, 그걸 듣고 '아, 이 사람이 나를 여자로서 좋아하는구나'라는 걸 처음으로 느꼈어요. 어쨌든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리는 연애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리고 2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서울 집을 정리하고 고향인 전라북도 정읍으로 내려갔어요.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돌봐드려야 하고 조용하게 고향 집에서 글을 좀 써야 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를 자주 볼 수 없어서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동아리 선배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조기영 선배,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병에 걸렸대. 불치병이라는데?" 하필 날씨도 너무 좋은 봄날이었죠. 그에게 전화해서 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냐며 화를 내고 펑펑 울었어요. 그는 "네가 나 같은 사람을 계속 만나는 게 너무 미안하고 못된 일을 하는 것 같다"며 헤어지자는 얘기를 어렵게 꺼내더라고요. 물론 저는 싫다고 했죠. 그가 불치병에 걸렸다 해도 '어떻게 하면 이 사람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지, '앞으로 내 삶은 어떻게 되지?' 같은 고민은 아예 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왜 당신은 빨리 병을 털어버릴 생각은 안 하고 나를 밀어내려고만 하느냐. 그런 말 하지 말라달라"고 말했죠. 저는 어떻게든 그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인터넷과 각종 서적을 뒤적이며 치료약을 찾고 증상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음식을 연구했어요.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차비를 벌어 매주 그를 보러 정읍에 내려갔죠.

    내려갈 때는 그를 만난다는 생각에 웃으면서 내려갔다가 올라올 때는 병이 더욱 악화된 모습을 보면서 올라와야 되니 정말이지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았어요.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세 시간 내내 울곤 했죠.

    얼마 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그 병을 치료하는 클리닉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치료를 받기 시작하니 눈에 띄게 병세가 호전되더군요. 완치라는 것은 없는 병이기 때문에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하지만 그래도 일상생활에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회복이 되었어요. 그리고 저는 4학년이 되었죠. 졸업 후 뭘 해야 할지 고민하는 저에게 그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제안했어요. 그리고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었고요. 카메라 테스트를 연습하도록 캠코더로 저를 촬영하며 피드백을 해주고, 직접 작문 코칭도 해주었죠. 열정적인 그의 개인 교습 덕분에 저는 아나운서라는 꿈을 이루게 됐어요. 그가 저에게 정말 특별한 존재인 것은, 단순히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재능을 알아봐주고 그 재능을 갈고닦게 이끌어준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이자 인생의 스승과 같은 존재랄까요? 지금 우리는 결혼해서 귀여운 두 아이와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종종 싸우기도 하지만 그걸 극복할 수 있는 건 우리가 옛날에 함께했던 추억 때문인 것 같아요. 그때를 회상하면서 "우리가 그런 시절을 같이 겪어왔지. 그땐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렇게 행복했는데"라는 얘기도 하고, 함께할 수 있는 현재의 삶에 고마워하기도 하죠. 요즘은 부부 MC로 KBS2 <결혼이야기>라는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고 있어요. 그와 함께이기에, 인생이 갈수록 더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정말로요!

    Editor 김혜미 Photo (메인)GettyImagesBank, (커플)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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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 학살 피해 국경 넘는 난민들…개신교가 품는다
미주 한인 사역자들이 돌아본 터키 난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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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15/02/10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5/02/09 22:34
 

터키 가지안테프 지역 난민촌에서 아이들이 찬양하는 모습. [박성규 목사 제공]
터키 가지안테프 지역 난민촌에서 아이들이 찬양하는 모습. [박성규 목사 제공]
IS는 주로 시리아와 이라크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중이다. 난민들은 IS의 학살을 피해 터키 국경을 넘고 있다 보니, 난민촌은 주로 터키 남동부 지역 다야르바키르, 가지안테프, 하타이, 아다나 등에 세워져 있다.<br />
IS는 주로 시리아와 이라크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중이다. 난민들은 IS의 학살을 피해 터키 국경을 넘고 있다 보니, 난민촌은 주로 터키 남동부 지역 다야르바키르, 가지안테프, 하타이, 아다나 등에 세워져 있다.
하타이 지역 난민촌을 방문한 박성규 목사와 김진영 선교사.
하타이 지역 난민촌을 방문한 박성규 목사와 김진영 선교사.
하타이 난민촌의 생활 모습.
하타이 난민촌의 생활 모습.
난민 70여 만 명 터키 국경 넘어
터키 남동부 곳곳에 흩어져

난민 수용할 재정·공간 태부족
UN과 터키 정부도 지원 어려워

터키개신교교회협의회 주도로 사역
한인 선교사·개신교 단체들 나서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이하 IS)’로 인해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 이라크와 시리아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중인 IS가 쿠르드족 등을 집단 학살하면서 터전을 빼앗긴 주민들이 터키 국경을 넘고 있어서다. 이는 무려 7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라크와 시리아 접경인 터키 남동부 지역 곳곳엔 난민촌이 설치됐지만 이들을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각 난민촌에는 개신교 선교사 및 단체들이 힘겹게 사역을 펼치고 있다. 토런스 지역 주님세운교회 박성규 목사, 김진영 선교사(실크웨이브미션), 윤삼혁 장로(소아과 의사) 등이 지난달(1월14일~1월28일) 그곳을 다녀왔다. 3일 박성규 목사(이하 박)와 김진영 선교사(이하 김)를 만나 현지 상황을 들어봤다.


-어떻게 가게 됐나.

(박)"지난해 9월경부터 난민이 몰렸다고 한다. IS가 영토 확장을 위해 마을을 불태우고 학살을 자행하자 이를 피해 도망가는 난민이 수십만 명이다. UN도, 터키 정부도 이들을 지원할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난민촌도 일부에만 허용될 뿐 수십만 명이 그대로 방치되는 극한의 상태다. 이 소식을 듣고 현지 한인 선교사들과 함께 현장을 돌아보고 미주 한인교계가 조금이라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고자 했다."

박 목사 일행은 디야르바키르를 중심으로 여러 개의 난민촌을 돌아봤다. 디야르바키르는 수도 이스탄불에서 남동쪽 지역으로 약 2500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 김진영 선교사는 13년간 터키 선교사로 활동했었다.

-어떤 사람들이 국경을 넘나.

(김)"대부분 IS의 학살을 피해 도망온 사람들이다. 디야르바키르에만 쿠르드족 예지드인 난민이 약 30만 명이 있다. 또 가지안테프, 아다나, 하타이(옛 안디옥) 지역 등의 시리아 난민까지 합하면 70만 명 정도다."

-현지 상황은 어떤가.

(박)"난민은 구름떼처럼 몰려드는데 이를 더이상 수용할 수가 없어 터키 정부도 애를 먹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갈수도 없다. IS가 돌아오지 못하게 지뢰밭까지 설치했기 때문에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 국경 지역은 산간 지방인데 산을 넘다가 굶어죽거나, 겨울에 얼어 죽는 사람도 많다. 또 IS의 학살로 가족을 잃고 노예로 팔려가는 등 말로 다 하지 못할 아픔의 사연이 그들에게 있다."

UN도 1월부터 난민 지원을 중단한 상태다. 재정적으로 감당이 어려워서다. 난민촌은 터키내 크루드 지방정부가 관할한다. 현재 '터키개신교교회협의회(TEK)'와 한인 선교사들이 이 지역을 대상으로 사역을 펼치고 있다. 박 목사는 터키로 떠나기 전 난민돕기 음악회를 통해 얻은 수익금과 교회 헌금 등 총 11만 달러를 실크웨이브미션을 통해 현지 지원금으로 전달했다.

-난민촌 상황은.

(김)"예를들어 하타이 인근의 경우 30만 명의 난민 중 1만5000명 정도만 난민촌에 있다. 나머지는 그냥 버려진 공장, 고가도로 밑, 길거리 등에서 겨울을 보낸다. 심각하다. 구호 물품부터 의료 서비스까지 지원이 시급하다."

-난민들은 어떤 상태인가.

(박)"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무엇보다 그들에겐 '무슬림에 의해 이렇게 아픔을 겪을 줄 몰랐다'는 상처가 생겼다. 너무나 비참해 한다. 그래서 자신들을 지원하고 도와주려는 개신교인에게 마음을 쉽게 열고 상당히 호의적이다. 백인에 대해서는 다소 적대적이지만, 한국인은 반감없이 좋아한다."

터키개신교회협의회는 5000여명의 터키 개신교인 연합 단체다. 이는 터키 전체 인구(7800만명)에 비하면 극소수이지만 난민 사역을 적극 주도하고 있다.

-난민을 돕는다지만 이슬람에서 선교가 가능한가.

(김)"지금 그곳을 지원하는 단체가 대부분 개신교 단체 및 선교사들이다. 터키 중앙정부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쿠르드 지방정부는 개신교 선교사와 단체에 대해 상당한 신뢰를 갖고 있다. 지금이 복음을 전하며 무슬림을 도울 수 있는 적기다."

-어떤식으로 도움이 가능한가.

(박)"먼저 구호품이다. 그들은 옷 하나만 입고 약간의 짐만 싸서 국경을 넘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다. 또 교육도 필요하다. 현지에선 천막을 치고 난민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난민들은 이슬람에 대한 실망과 아픔 등으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 아무런 제약없이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한인교계가 할 수 있는건.

(김)"물론 우리가 모든걸 해결할 수는 없다. 다만 조금이라도 그 땅을 위해 나누고 베풀고, 섬길 수는 있지 않느냐. 그들이 UN을 통해 정식으로 난민 자격을 부여받으려면 적어도 5~10년은 걸린다. 그 사이 그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빵'도 전해줄 수 있겠지만 복음도 함께 전할 수 있는 기회다.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그들을 돌아봤으면 한다."

▶도움 문의:(310)482-0574

장열 기자

rya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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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는 국가 운영 체계 잘 아는 사람들”

수니파 중심의 반군 세력들…탄탄한 재정으로 영향력 확장


‘이슬람 국가(IS)’의 실제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김진영 선교사는 “IS는 수니파가 중심이 된 시리아 반군과 이라크 반군이 하나로 뭉친 세력으로 절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한 힘을 키워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IS는 이슬람내 혈통 계승을 둘러싸고 수백년간 끊이지 않는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의 갈등을 배경으로 태동한 세력이다.

김 선교사는 “주로 IS는 과거 군장성, 공무원, 정치인, 경찰 등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그들은 국가 체계나 운영 방식을 잘 아는 사람들”이라며 “IS는 여러개의 원전을 소유하고 있는데 탄탄한 재정을 바탕으로 순수 이슬람 국가 건설 이념을 내세우기 때문에 곳곳에서 차별받는 무슬림이나 이상주의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많이 현혹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는 원인에는 IS의 극단적 개종 정책이 있다. 특히 예지드인의 경우 무슬림이 다수인 크루드족내에서 특별히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IS의 학살은 심각한 상황이다.

김 선교사는 “IS가 특히 예지드인을 공격하는 것은 영토 확장의 목적도 있겠지만, 그들은 무슬림이 아니기 때문에 개종을 요구하거나 이에 반대할 경우 집단 학살을 통한 일종의 인종 청소를 하는 것”이라며 “물론 IS의 극단적 행동 때문에 이슬람권내에서도 어느 정도 반감은 있지만, 영향력이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음은 분명하다”고 전했다.

장열 기자
3일 본지를 방문한 김진영 선교사(왼쪽)와 박성규 목사.
3일 본지를 방문한 김진영 선교사(왼쪽)와 박성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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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을 깨지 않고도 노른자와 흰자를 섞는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5.01.28 07:01 / 수정 2015.01.28 08:34

 
 



날계란을 깨뜨리지 않고 흰자와 노른자를 섞을 수 있을까?

유투브에 공개된 영상은 연노란색으로 변한 계란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먼저 긴소매 옷과 날계란, 고무줄을 준비한다. 옷 소매의 한쪽 구멍에 계란 1개를 넣은 뒤 양 소매 끝을 줄로 묶어 고정시킨다. 그러고 나서 옷의 양 끝을 잡은 채 빠르게 몇 번 돌려주다 다시 당겨준다. 이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하기만 하면 계란을 깨뜨리지 않고도 흰자와 노른자를 섞을 수 있다.

이후 끓는 물에 이 계란을 푹 삶은 뒤 계란 껍질을 까보면 흰자와 노른자가 고루 섞여 먹음직스럽게 익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영상은 2년 전인 2013년 3월에 게재된 이후 지금까지도 요리 관련 ‘꿀팁’으로 소개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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