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농촌현장> 고성發 농업혁명 `생명환경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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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과 화학비료 없이 자란 생명환경쌀 (고성=연합뉴스) 임형섭 기자 = 화학비료와 농약 대신 토착 미생물을 활용해 기른 경남 고성군의 생명환경 쌀. 이 쌀은 '명품쌀'이라는 이미지에 힘입어 시중에서 인기품목이 된 것은 물론 미국 수출에도 성공했다. 2010.1.31 << 지방기사 참고, 사진 고성군 제공 >> hysup@yna.co.kr |
※편집자주 = 한국 농업이 거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정부와 유관 기관.단체 등을 중심으로 전면적인 시장개방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여러가지 요인으로 속도는 더디다. 내놓는 대안도 제각각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일부 농민들은 새로운 농법과 첨단 기술을 도입하고 품질 고급화에 나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농업 선진국 못지않은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경우도 있다.
연합뉴스는 위기 속에서 새로운 활로가 절실한 한국 농촌과 농민들의 실상을 들여다보고 앞으로 나가야할 길을 찾아보는 연중 기획을 마련했다. 우선 전국 각지에서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도 새로운 농사 모델을 만들고 있는 농민, 농촌마을 등을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한다.
농약.화학비료 대신 미생물 투입..축산.수산으로 확산
국내외서 벤치마킹..'생명 쌀' 미국서도 호평
(고성=연합뉴스) 임형섭 기자 = "생명환경농업은 한국 농업의 돌파구가 될 수 있습니다. 벼농사뿐만 아니라 축산.과수에다 수산업도 여기서 해법을 찾았습니다"
경남 고성군이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토착 미생물을 배양해 땅심을 살리는 `생명환경농업'을 시작한 지 2년. 기존의 농업 관행을 완전히 벗어난 `모험'을 감행했던 고성군 농민들과 군 관계자들의 눈에는 이제 자신감이 넘치고 있다.
지난해 고성군내 생명환경농업 논 388ha에서 수확한 쌀은 약 2천700여t, 투입된 경비는 약 13억원이다. 화학비료나 제초제, 살충제를 쓰지 않은 친환경 쌀인데도 오히려 관행 농업에 비해 경비는 25%나 줄고 농민들의 수익은 15%가량 늘었다고 고성군은 31일 밝혔다.
고성군은 생명환경농법이 일단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하면서 이제 이 농법을 전국으로 퍼뜨리는 데 주력하는 한편 벼농사 외 다른 부문에도 실험을 확대하고 있다.
◇과수.축산으로 번지는 생명환경농업 = 생명환경농업 바람은 벼농사를 넘어 축산과 과수에도 옮겨가고 있다.
최근 700여마리의 소를 기르는 고성군의 농가 4곳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무항생제 축산농가 인증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농장 2곳의 4천500여마리 돼지가 무항생제 인증을 받기도 했다.
일반 축산농들은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항생제를 먹이지만 이들 농가에서는 항생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토착 미생물 등을 통해 면역력을 키운다.
특히 고성군에서는 2012년부터 가축분뇨 해양투기가 금지되면서 분뇨 처리에 골머리를 앓는 전국 지자체들에 생명환경농법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과수업에도 생명환경농법이 적용돼 지난해 9월에는 단감을 재배하는 농가 6곳이 무농약 인증을 받았다.
단감을 재배하는 강성중씨는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농약을 쓰지 않고 미생물을 길러 써보니 생산비를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땅속 영양분을 잘 빨아들여 그런지 다른 감보다 훨씬 당도가 높았다"며 만족해했다.
고성군은 단감 6곳, 참다래 22곳 등 28곳의 농가에서 이뤄지는 생명환경 과수업을 점차 확대시킬 방침이다.
올해 고성군은 생명환경농업에서 얻은 노하우를 `생명환경 수산업'에도 적용하고 있다.
생명환경 수산업이란 항생제를 사용하는 기존 양식법과는 달리 토착 미생물을 활용해 수질을 개선, 양식장의 질병 발생을 막겠다는 것이다.
고성군은 지난해 넙치 양식장 가운데 시범어가를 지정해 운영한 결과, 물고기 생존율이 기존 방식보다 30%가량 늘었다고 전했다.
고성군 해양수산과 어업생산담당 안명준 계장은 "이 원리를 이용하면 각종 물고기 질병은 물론이고 양식장 최대의 적인 적조현상도 예방할 수 있다"면서 "올해 이 양식을 좀 더 시험해보고 결과에 따라 본격적으로 양식장에 보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줄잇는 벤치마킹 = 지난해 1년 동안 전국 지자체 관계자 등 7천여명이 고성군 농업기술센터를 방문해 토착 미생물을 배양하는 방법과 이앙 방법, 쌀 저장 방법 등을 배우고 갔다.
지난해 7월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참다래 재배현장을 방문했으며 한달 뒤에는 한승수 당시 국무총리가 연구소를 방문하는 등 중앙정부 차원의 관심도 높다.
고성군은 다른 단체들의 이목이 쏠려 있는 지금이야말로 생명환경농업을 전국적으로 확대시킬 기회로 보고, 지난해 `생명환경농업 정착의 해'에 이어 올해를 `생명환경농업 확산의 해'로 정했다.
이미 경남도에서는 창녕군 우포늪 일대를 생명환경농업지역으로 지정하고 올해부터 시.군별 1곳씩 20ha 이상 농지에 생명환경농업을 적용시키기로 했다.
전남 곡성에서도 지난해 시범사업을 거쳐 본격적으로 생명환경농업을 시작했을 정도로 이 농법은 다른 시.도까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고성군은 지역내 생명환경농지를 30개 단지 388ha에서 올해 50개 단지 1천ha, 2012년에는 1만ha까지 늘리는 한편 1월말께 견학단 등을 대상으로 한 교육센터를 개소, 농법 확산에 주력할 예정이다.
◇외국서도 관심, 미국서 '호평' = 지난해말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으로 수출된 쌀 20t이 벌써 거의 다 판매돼 현지 유통업체에서 다음 물량을 빨리 보내달라는 독촉이 올 정도로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고 있다.
고성군은 내달초 추가 물량을 보내는 한편 다른 나라로의 수출도 타진하기로 했다.
외국 농민단체들도 큰 관심을 보이며 잇따라 방문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 규슈(九州) '환경보전형 농업연구회' 회원과 미국 하와이주 방문단, 미국 퀸즈 YMCA 방문단 등 모두 110명가량의 외국 방문객이 농업연구소를 견학하고 돌아갔다.
이학렬 고성군수는 "몸에 좋은 친환경 쌀이라는 점에서 경쟁력이 생기는 것 같다. 아직은 개척 단계이지만 외국 수요도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형 농업혁명' 가능할까 = 2008년 고성군이 처음 생명환경농업에 뛰어든 이래 이 농법은 `농업 혁명'이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일반적으로 유기농이 안고 있던 `고비용 저생산'이라는 단점을 극복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면서 세계무대에서도 통할 경쟁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벼농사와 애호박 농사를 짓는 김종배씨는 "2년 동안 생명환경농업을 하면서 미생물을 비료로 사용해 보니 정말 땅이 건강해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며 "이제 다른 방식의 농사는 하라고 해도 못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검증을 더 거쳐야 하며 해결할 과제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환경농업단체연합회 최동근 사무총장은 "관행농업의 문제점을 극복한 것은 물론 그동안 고비용이란 문제를 안고 있던 친환경 농법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줬다고 본다"면서도 "그렇다고 다른 모든 친환경 농법을 대체할 수 있을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최근 농촌진흥청이 고성 생명환경농법에 대해 '관행 농법보다 생산비가 더 많이 든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낸 것을 비롯해 경제성 부분에 더 검증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성군 농업기술센터 이수열 정책과장은 "기존 산파식 대신 포트식 이앙기를 일본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초기비용이 다소 비싼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기계 내구연한을 고려한다면 경제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농법이 대중화돼 국내에서도 이앙기가 생산된다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관행농업에 익숙한 농민들이 하루아침에 농법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이학렬 군수는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농민들을 잘 교육하고 마케팅도 지원한다면 농민들도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세계적으로도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생명환경농업이야말로 한국 농업에 경쟁력을 불어 넣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 생명환경농업이란 =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는 관행농법 대신 농민들이 토착 미생물을 직접 배양해 농사를 짓는 방식이다.
벼를 심기 전 대나무숲과 활엽수림에서 채취한 토착 미생물을 배양소에서 기른 뒤 논에 살포해 땅에서 유기물 분해가 잘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벼가 한창 클 때에는 화학비료와 농약, 제초제 대신 쑥과 미나리로 만든 녹즙, 한방영양제, 꽁치, 고등어와 굴 껍데기 등으로 만든 비료를 공급한다.
이 방법을 통해 자연생태계를 복구하는 것은 물론 벼를 튼튼하게 해 수확까지 늘어나게 하는 등 1석2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고성군의 설명이다.
축산업에서도 미생물을 이용해 항생제를 쓰지 않고 건강한 소, 돼지를 사육하는 것은 물론 분뇨 처분 걱정도 없다는 장점이 있다.
생명환경 축산업에서는 소나 돼지에 항생제를 넣지 않은 사료에다 미생물을 섞어 먹여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높인다.
가축 체내에 항생제가 축적돼 소비자의 건강을 해치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게다가 축사 바닥에는 황토와 톱밥을 미생물과 섞어 깔아놓기 때문에 가축 분뇨가 미생물에 의해 손쉽게 분해된다.
고성군 농업기술센터 이수열 정책과장은 "미생물을 활용해 냄새도 없고 바닥도 푹신푹신한 위생적인 축사를 운영할 수 있다"며 "깨끗하게 자란 가축인 만큼 소비자들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hysu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