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농촌현장> 종자 지켜라..세계는 종자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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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전쟁 군수기지 '국립농업유전자원센터' (수원=연합뉴스) 신영근 기자 = 종자전쟁의 군수기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경기도 수원 농촌진흥청 국립농업유전자원센터. 농업유전자원센터는 국내외 식물 유전자원 27만여점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있다. 2010.2.21 << 지방기사 참고 >> |
종자 보존 외국 자원 도입 시급..로열티 유출 막아야
일제하.전쟁 전후 엄청난 종자 외국 유출
국립농업유전자원센터 27만여점 보존.."후손에 안전하게 전달"
(수원=연합뉴스) 신영근 기자 = 고려 공민왕 시절 문익점 선생이 원나라에서 가져왔던 목화씨 몇 개가 이 땅의 의류문화에 혁신을 가져왔고 민초들은 따뜻한 겨울을 보내게 됐다.
딸기의 경우도 일제 치하에 있던 1943년 경남 밀양 삼랑진 금융조합 이사였던 송준생 씨가 일본 금융조합이사회에 참석한 뒤 일본 딸기 모종 10포기를 가져와 삼랑진에 심은 것이 시초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꾸로 우리 토종이었던 털개회나무(정향나무)가 해방 직후 어수선하던 시절 미국 농무부 소속 미더교수에 의해 태평양을 건너가 미국서 개량된 후 '미스킴라일락'으로 바뀌었다.
미스킴라일락은 미국 라일락시장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최고 품종이 됐고 국내로 역수입되고 있다.
또 크리스마스 트리로 인기를 끄는 구상나무 역시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종자개량 후 특허등록이 돼 재배용으로 수입하려면 거꾸로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다.
모두 종자, 생물자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기다 현재 우리 농가에서 재배하고 있는 고추와 딸기, 토마토, 파프리카 등은 물론 과일과 화훼 등 대부분이 로열티를 지불하고 종자를 들여오고 있으니 농업의 미래를 위해서도 종자 수집ㆍ보존과 개량은 필수적이다.
◇종자전쟁의 지휘본부..국립농업유전자원센터
비타민A가 많이 함유된 황금쌀과, 속은 당근 특유의 주황색이지만 겉은 천연 색소 안토시아닌을 함유해 보라색을 띤 당근, 팥은 붉은 적색이라는 상식을 깬 녹색과 살구색 팥, 색깔이 너무 고와서 입이 아니라 눈으로 먹게 된다는 노랑과 핑크색 느타리버섯..
최근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신품종 작물들이다.
이들 작물은 전통적 교배의 산물이기도 하고 각 작물이 지닌 특이 유전자를 다른 작물에 이식해 만든 생명공학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국립농업유전자원센터가 보유하고 있는 종자를 포함한 다양한 식물 유전자원이 있다.
경기도 수원시 서둔동에 있는 농촌진흥청 국립농업유전자원센터.
이곳은 종자전쟁의 '군수기지', 미래 세대를 위한 '노아의 방주', 종자계의 '한국은행'이라고도 불린다.
식물종자 1천777종 15만9천여 점과 뿌리로 번식하는 식물 영양체 996종 2만7천100여 점, 미생물 5천243종 1만9천300여 점 등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다 동물의 생식세포 25종 6만5천여 점과 곤충 14종 361점 등 모두 8천 여종 27만2천100여 점의 유전자원이 언제가의 '발아'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
하나의 종자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종자전쟁의 시대, 이곳에서는 종자 확보와 분류, 증식, 분양이라는 소리 없는 전쟁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
농업유전자원센터는 지난해 종자를 포함 1만2천257점의 유전자원을 농진청 산하 국립농업과학원이나 식량과학원, 원예특작과학원은 물론이고 전국 대학과 연구소에 분양했다.
이렇게 분양된 원종들이 새로운 품종으로 변신, 소비자를 찾고 있는 것이다.
농업유전자원센터 김정곤 소장은 "우리 민족에게 주곡 자급이라는 선물을 안겨준 '통일벼' 역시 다양한 벼 종자의 교배 끝에 탄생한 작품"이라며 "앞으로 통일벼에 맞먹을 정도로 세상을 변화시킬 또 하나의 획기적인 종자를 탄생시키기 위해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종자를 모으고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출된 종자를 회수하라!
일본 제국주의 치하 36년을 지나 미군 점령기, 한국전쟁 등 지난 100년간의 역사적 아픔을 겪는 동안 우리 산하에서 자라던 각종 식물과 곡류 종자는 어떤 신세였을까?
우리 땅이 유린당하면서 토종 종자들 역시 일본과 미국인 등의 손에 들려 한반도를 떠나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다.
한국이 주곡 자급과 함께 산업화와 선진국 진입에 성공했다지만 농업분야에서 종자들을 챙기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미국 농무부 농업연구청이 보유하고 있던 한반도 원산의 농업 유전자원 6천여 점 중 우리가 확보하지 못한 콩과 마늘, 양파 등 34종 1천679점은 2007년에야 돌아왔다.
일본과는 계속된 줄다리기 끝에 일본 농업생물자원연구소가 보유하고 있던 보리와 콩, 팥 등 32종 1천546점의 종자를 2008년에 돌려받았다.
국내에는 기록으로만 남아있던 섬유와 고급 식용유 생산이 가능한 '아마(亞麻)' 종자를 비롯해 조 품종인 '오십일조', 수수 품종인 '홍봉자', 식용 피 품종인 '수래첨' 등이 이때 고향 땅에 돌아왔다.
그리고 주로 북한지역에서 유출돼 독일 식물유전자원연구소가 보유하고 있던 배추와 보리, 밀, 콩 등 270여 종, 900점은 지난해 돌아왔다.
개풍보리와 개성배추 등 북한에서 재배됐지만 이름만 알려진 종자의 국내 복귀는 통일시대를 대비할 수 있는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외로 유출된 우리 종자를 찾는 작업과 함께 국내 종자 수집도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현재 농업유전자원센터가 보유하고 있는 종자 중 벼와 보리 등 식량작물은 414종 12만2천여 점으로 전체 종자의 76%를 차지하고 있지만 특용작물과 원예작물은 각각 258종 1만8천500여 점, 462종 1만5천여 점으로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특히 각종 건강 기능성 물질의 보고인 특ㆍ약용 작물 종자 수집은 시급한 상황이다.
지난해 농업유전자원센터가 국내에서 확보한 종자는 4천900여 점으로 농가에서 재배중인 재래종을 농업인으로부터 기증받은 것에서부터 연구진이 직접 채취한 야생종까지 다양하다.
마지막으로 종자를 확보하는 방법은 우수한 해외 유전자원을 도입하는 것이다.
우수한 식물 자원을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종자 보존이나 연구 능력이 부족한 국가와의 협력 사업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아열대나 열대작물과 함께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바이오 에너지 작물 등이 주요 수집 대상이다.
센터는 지난해 공동 연구작업을 통해 우즈베키스탄과 미얀마, 몽골 등지에서 3천700여 점의 우수 유전자원을 도입했다.
농업유전자원센터 기획협력팀 김창영 연구관은 "토종 종자 반환 작업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우리 유전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몇몇 동유럽 국가와도 접촉하고 있다"며 "한반도 환경에 가장 어울리는 우리 종자의 확보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밝혔다.
◇종자, 후손에 안전하게 전달하라!
국내외에서 수집된 유전자원은 현 세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먼 미래의 후손에게도 안전하게 전달해야 한다.
2006년 건립된 농업유전자원센터는 농업 유전자원 50만점을 잘 보존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지하1층.지상3층, 연면적 9천507㎡ 규모로 리히터 규모 5의 지진에 견딜 수 있는 설계와 유전자원의 입ㆍ출고를 로봇이 담당하는 첨단 시설을 자랑한다.
새로 수집됐거나 증식된 종자는 몇 가지 단계를 거쳐 보존된다.
먼저 자원준비실을 통해 해당 종자의 정보가 전산화된다. 정보처리가 완료된 종자는 4∼6주 동안 건조실을 거치면서 중ㆍ장기 보존에 적합한 수분 함량을 유지한다. 일반 종자는 5∼7%, 기름기가 많은 유지종자는 3∼5% 정도의 수분을 지니게 된다.
활용 빈도가 많은 종자는 중기 저장고에 보존된다. 이곳은 종자의 유전적 변이를 막고 기본적인 활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영상 4도에 40%의 습도를 유지해, 30년 정도는 문제없이 종자를 보존한다.
영하 18도의 온도를 유지하는 장기 저장고에서는 100년간 보존이 가능하다.
중기 저장고와 똑같은 종자가 장기 보존되면서 각종 천재지변에 대비하고 있다.
이밖에 종자의 표본을 농업인이나 연구진이 쉽게 살펴볼 수 있는 표본실과 영하 196도로 운영되는 초저온 저장시설과 DNA 조직은행, 동결건조 보존시설도 종자의 안전한 보존을 위해 운영되고 있다.
일의 순서상 농업유전자원센터의 마지막 업무는 분양이다. 가깝거나 혹은 먼 미래에 종자를 원하는 농업인과 종묘업체, 대학, 연구소에 양질의 종자를 안전하게 전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종자 특성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전산화하면서 분석하는 것이다.
현재 센터가 보유한 종자의 73% 정도는 사람의 주민등록과 비슷하게 종자의 형태와 색, 발아 후 모습 등 기본 형질 분석과 입력이 완료됐다.
하지만, 기본 형질 분석만으로는 농가의 창고에 보관된 종자와 다를 바 없다.
종자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용 형질 분석이 필요하다.
발아한 종자가 어떤 성장 과정을 통해 어떻게 수확되고 어떤 성분이 포함돼 있는가 하는 것이다.
농업유전자원센터의 이용 형질 분석률은 아직 15%에 그치고 있다. 농업유전자원센터는 국가 차원에서 종자를 관리 보존하는 다른 연구기관.대학과 공동으로 이용 형질 분석에 나서 2012년 35%, 2017년 80%의 분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센터의 안전한 보존 능력은 국제기구도 인정해, 2008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작물다양성재단'(Global Crop Diversity Trust)이 농업유전자원센터를 세계 각국의 주요 유전자원을 보존하는 '국제안전중복보존소'로 지정했다.
천재지변이나 전쟁에 대비해, 인류의 소중한 유산인 종자를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노르웨이에 이어 우리나라가 세계 두 번째로 식물 '노아의 방주'가 된 것이다.
노아의 방주가 된 후 국제미작연구소(IRRI), 세계채소연구센터(AVRDC) 등 국제기구와 미얀마 등 개발도상국가들이 농업유전자원센터에 종자를 위탁 보존하고 있다.
김정곤 소장은 "100년을 안전하게 종자를 보존하는 동시에 잠들어 있는 씨앗의 증식과 분석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종자를 탄생시키는 것이 목표"라며 "센터는 이를 위해 국내외 유전자원 수집과 보존, 증식 업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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