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 6월 16일
요한복음 6장 60-71절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가버나움 회당에 모인 군중 속에는 주님을 시인하는 상당수의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다수는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고 생각했기에 그분을 계속 따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헌신의 문제가 아니라 변절의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 역시 동일한 도전에 직면합니다. 오늘의 구절들은 주님께서 완전한 지식을 갖고 계심을 말해줍니다(61,64,65,70). 심지어 그분은 부활을 포함하는 자신의 승천에 대해서도 알고 계셨습니다(62절). 그 승천은 주님의 모든 가르침을 온전히 입증하고 확증할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불신은 주님이 전달하시는 진리를 조금도 무효화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사명을 완수하신 후 하늘로 돌아가실 터였습니다.
이제 주님은 열두 제자를 향하시고는 다음의 날카로운 질문으로 도전하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너희도! 그러자 베드로는 자신이 다음과 같은 그분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있음을 급히 보여주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이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은 그가 영적으로 높은 곳에 올랐음을 보여줍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68절). 베드로는 주님의 본질적인 신성 뿐 아니라 오직 그분의 말씀이 생명을 줄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주님" 이셨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뉘게로 가오리이까?" 주님 외에 도대체 누구에게로 갈 수 있을까요? 베드로의 이 놀라운 고백은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마 16:16 참고). "우리는 주께서 그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확신하나이다"(흠정역). 그들은 주님을 믿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그분이 이렇게 고백하기에 합당한 분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 주님과 필적할 수 있는 자는 전혀 없습니다!
이 뛰어난 고백에서 베드로는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모든 제자들을 포함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말을 바로잡으셨습니다. 이는 열두 제자 모두가 참된 신자들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70절. 요13:2,27: 17:12 참고). 열두 제자에 포함되었지만 유다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64,68,70,71절). 유다는 "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베드로와 달랐습니다. 베드로는 때때로 넘어지긴 했어도 참된 신자였습니다(요 18:17-27). 그는 영생을 가지신 주님을 떠나 완전히 "갈" 수 없었습니다. 반면에 유다는 나머지 제자들과 달리 떠나간 무리와 동류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가지 않고 머물렀습니다. 신앙고백과 영생을 소유함은 매우 다릅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요 3:36). 유다는 발이 씻겨졌습니다(요 13장). 그러나 이보다 먼저 그의 마음이 깨끗해지고 주님께 확정되어야 했습니다(시 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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