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 제자도

횃불 2020. 6. 19. 09:11

[되새김]

 

                                                    제 자 도

 

                                                                                                                         - 마일즈 스텐포드

 

그리스도의 제자는 먼저 주님과의 교제를 가오는, 십자가에 참여하는 삶을 유지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제자도입니다.

 

"십자가의 구속을 경험하는 일과 십자가에 참여하는 삶을 사는 것은 둘 다 참된 제자도의 조건으로 전파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해답이 되신다. 하지만 그분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십자가가 필요하다."

 

영적인 진보에 있어 우리 주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억지로 압박하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본을 보이시는 인도자로서 우리를 한걸음씩 인도하여 가십니다. 우리가 자기노력을 의지하여 싸우다보면 패배하게 되고, 그 때 우리는 이러한 절망적인 실패에 대한 해답을 갈구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 우리는 십자가에서 해방에 관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동일시), 이로 인해 그러한 자유로 들어가고 싶은 굶주림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 자유는 부활하신 주 예수님과의 사귐을 위한 자유입니다. 해결책은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십자가가 우리 안에서 역사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께 성별되게 만들 수 없고 어떤 것도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 수 없다. 왜냐하면 오직 십자가만이 거룩에 대한 장애물을 죽음의 자리에 묶어둘 수 있기 때문이다" (G. Watt).

 

"잃어버린 자들을 향한 모든 성공적인 사역의 배후에는 내면에 영적인 충동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영적 충동의 배후에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재생산하시는 성령이 계신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특징적인 표시는 바로 십자가이다. 우리가 섬김에 적합한 사람이 되려면 십자가에 대한 살아있는 경험이 우리의 삶을 지배해야 한다."(J. E. Conant).

 

주님께서는 제자도에 대해 언급하실 때보다 더 단호하고 확실하게 말씀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눅 9:23).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27).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단순합니다. 자아(self)는 주님을 따를 수도 없고 따르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고, 십자가를 지는 삶은 자기에 대한 죽음을 불러오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의 새로움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옛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고, 새 것을 향해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성경의 표현으로 하자면, 그는 "죄에 대하여는 죽어버린 자요 하나님에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 (롬 6:11)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을 위해 주 예수님께서는 각자가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최종 결론입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할지 그 방법에 대해 살펴봅시다.

 

우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선 십자가가 우리가 흔히 십자가라고 부르는 떠맡기 싫은 일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십자가는 생명을 포기하고 자기에 대해 죽는 것을 가리킨다. 주 예수님께서 이러한 삶을 사셨듯이, 이러한 삶은 또한 우리 삶의 특징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삶은 어려운 순간보다 오히려 번영의 순간에 더 필요하며, 이것이 없이는 십자가의 충만한 축복이 우리에게 열릴 수 없다."(Andrew Murray).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십자가와 주님께서 말씀하신 십자가를 혼동하지 않으면 좋겠다. 때로 자기 연민에 빠진 그리스도인들도 스스로를 한탄하면서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십자가의 관점을 버리고 주님의 십자가를 취할 때, 그분의 십자가는 우리의 십자가가 되고, 그분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이 되며, 그분의 장사됨이 우리의 장사됨이 되고, 그분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 되며, 그분의 부활생명이 우리의 생명의 새로움이 될 것이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어떤 무거운 짐이나 어려움, 질병, 있기 싫은 상황이나 관계를 금욕적으로 견디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런 종류의 일들을 견디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이런 것들을 포함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십자가를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져야 하는 십자가는 갈보리의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는 그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힌 십자가입니다(갈 2:20 참조). 바로 그 십자가에서 영원한 해방선언이 어린 양의 보혈로 서명되었고 성령으로 인쳐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이 해방의 진리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말하기 슬프지만, 자신들이 받는 죄의 억압을 수용하지 않고 그것을 미워하는 자리에 온 사람들만이 자유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십자가를 받아들이는데 걸림돌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십자가에 대한 적대감은 죄인이든 성도들이든 단순히 도덕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메시지는 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갈구하고, 하나님의 의를 경험하는데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만이 환영하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유에 대한 굶주림이 강력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 노만 다우티(Norman Douty) 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영적인 해방을 위한 하나님의 길은 십자가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길이 불신자들을 불쾌하게 하듯이 이 길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싫어하는 길이다."

 

그리스도인이 십자가를 올바로 이해하게 되면, 즉 죽음의 자리로 이해하게 되면, 그는 십자가에 참여하는 것을 주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다른 길은 없습니다. 십자가의 길만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사역을 완수하신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십자가의 피할 수 없는 길에 마침내 복종하기까지 우리에게 굶주림을 허락하셔서 지속적인 압박을 느끼게 하십니다.

자아가 우리에게 참기 어려운 존재가 될 때, 그리고 우리가 누가복음 14장 26절에서 말씀한 대로 "우리 생명을 미워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우리의 십자가를 질 준비가 될 것입니다. 자아에 대한 이러한 깊은 부담과 주님을 닮고자 하는 갈망이 십자가의 효력-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듭니다. 비참한 속박의 참담한 시절을 오래 겪다보면 주 예수님 안에 있는 자유가 참으로 귀하게 느껴지고, 그것을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우리 주 예수님과 바울의 태도를 동일하게 갖게 됩니다. 주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히 12:2). 사도 바울의 태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

"너희 안에 이 마음(태도)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과의 사귐을 가로막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가져다주는 십자가를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성령께서 우리 개인을 위해 오랫동안 위탁 받아 보관해 오신 완결된 사역으로 여기고, 우리의 해방이 되는 십자가를 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의 위탁재산이 되는 십자가에 대해 이야기하십시오!

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의 속박이 그리스도 안에서 갈보리에서 깨뜨려졌음을 알게 되고, 자유에 대한 굶주림으로 인해 마음이 준비되면, 우리는 십자가의 완결된 사역을 의지하게 되고 우리 것으로 삼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믿음으로 기쁘게 그리고 기꺼이 갈보리에서 이루어진 완결된 해방의 사실을 내것으로 취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진실로 죄에 대해 죽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대해서는 살아 있다고 여깁니다.

바로 이것이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배우게 되면 우리는 이러한 사실이 우리의 경험에도 적용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죽음의 완결된 사역을 깨닫게 하시고 이 사실을 모든 옛 본성에 적용시키십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죽음의 자리 곧 갈보리의 죽음의 자리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사실에서 돌아서서 십자가가 아닌 다른 것-우리 자신을 포함해서-을 의지하게 되면, 자아는 십자가에서 다시 풀려나 활동을 시작하면서 전과 같이 우리를 노예 삼으려 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십자가의 완결된 사역을 의지하는 태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아돌프 사피어(Adolph Saphir)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십자가와 함께 시작되고-'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도다'-주 예수님의 영광과 함께 끝나는 좁은 길은 주님께서 자신의 제자들을 자신 가까이로 이끄시고 그들과 함께 동행하시는 길이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주님께서는 생명의 유일한 근원으로서 우리안에 사신다. 옛 '나'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섬김에 어떤 기여도 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에 사용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옛 나에게 사망을 선고 하셨다. 우리의 삶에 주인은 둘이 될 수 없다.

만약 옛 '나'가 우리를 소유하고 있다면 그리스도는 나의 주인이 되실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구속의 위대한 사실-'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을 기쁘게 붙잡는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서 생명을 역사하게 하시고 우리를 자신의 종으로 삼으시며, 그분의 승리의 열차에 태워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Posted by 행복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