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간증]

                                            제 마음 을 열게요.

                                  들어와 주세요.

                                                                                                                                          - 윤주영(남인천교회)


   복음집회 둘째 날인 토요일(9월 24일) 저녁이었습니다. 자리에 앉는 순간 제 옆쪽으로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띄었습니다. 30여 년 전 어렸을 적 신림동 모임에 다녔을 때 부모님과 함께 모임 생활을 하시던 0 0 이모였습니다. 너무나 뜻밖의 만남에 가슴이 뛰었으나, 머리 수건을 쓰고 있지 않은 저의 모습을 보여드리기가 창피하여, 이내 고개를 돌렸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날 밤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이상하게도 이번 복음집회에는 올인하고 싶은 막연한 마음으로 일과 약속을 모두 뒤로 미루게 되었습니다. 이런 제 모습에 내 자신도 의아했습니다. 스트레스로 시달렸던 여름캠프와는 아주 달랐던 것입니다. 몇 년 동안  모임에 발걸음을 끊었었기에, 예전부터 알았던 많은 성도님들과의 만남과, 머리 수건을 쓰지 않은 저만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인해 캠프장을 뛰쳐나오고 싶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그늘 아래서, 모임으로부터, 또 성도님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그 속에서, 부모님께 누가되지 않고, 또 교회 친구들의 본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학교 친구들이 여기저기 놀러 다닐 때,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꿋꿋하게 그 무리에서 빠져나오곤 했습니다. 물론 그 소외감은 컸습니다. 교회에서 무릎 꿇고 앉아 있고, 집회가 끝나면 마지막까지 뒷정리를 하고, 장시간 찬송 반주를 하며, 묵묵히 설거지를 하는 등, 누가 강요하진 않았지만 저는 당연히 할 일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런 제 자신을 스스로 다독이며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부모님을 따라 당연히 크리스천이 되어야하는 것으로 인식하였습니다. 또한 세상 친구들의 가정은 화목하지 못하다는 부모님 말씀에 우리 집에 대해 자부심도 가졌습니다.

   또한 주일학교 때부터 교회와 부모님의 울타리를 벗어나면 큰일이 나는 줄로 알고, 구원받아야 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심각한 고민 없이 죄, 지옥, 예수님, 십자가, 구원, 영생 등에 대해서 익히 들어온 저는 복음을 들어도 새롭지는 않았습니다.

   모임에는 제 또래 친구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우리는 무척 친한 친구들이면서도, 때로는 선의의 경쟁자이기도 하였습니다.

   중학생 무렵, 어른들로부터 "그 집 아무개는 구원 받았다더라. 저 집 아무개는 아직 못 받았다더라"는 등등의 말들이 들려왔습니다. 구원받았다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어떡하지...' 하며 마음 한쪽 구석이 항상 무거웠고, 밤마다 고민을 하고, 부모님이 휴거되었을까봐 항상 두려움을 갖고 지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겨울방학(1991년)에 모임에서 전도집회가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둘째 날인가... . 강사 형제님은 부활에 대해서 전하셨습니다.

   "죄인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감옥에서 복역을 하고 나와야 하듯, 예수님도 인간의 죄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무덤에서 3일간 복역을 하시고 부활하신 것이다. 부활이 없었으면 우리의 죄 문제가 완벽히 해결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여태까지 제가 들어보지 못한 또 하나의 새로운 관점이었습니다. 저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들떴습니다. 그리고 우리 죄 때문에 죽으시고 의로움 때문에 사셨음(롬 4:25)을 새롭게 깨달았노라고 형제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2-3개월 후 또래 친구들과 함께 침례를 받았습니다. 한동안 성경도 열심히 보고, 아침저녁으로 기도도 하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2-3학년 때는 학교공부로 저녁집회에 나가지 못했고, 일요일도 오후집회는 잘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우리 식구와 몇 가정이 금천모임을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 저는 갑자기 주어진 자유와 새로운 것들과 인간관계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과 달리, 착하고 건전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친구들이 세상에 많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의 친구들도 자주 만나며 더욱 잘 알게 되고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이 제가 알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름을 알아가며, 하나님의 존재와 부모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몸은 모임에 있어도 마음은 점점 멀어져갔습니다. 부모님께 반항도 많이 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 IMF가 끝나지 않은 1998년도에도 순조롭게 취직되어 저는 더할 나위 없이 평탄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여자들이 별로 없는 직장에서 상사들에게 귀하게 대접받으며 즐겁게 생활하였습니다. 자신감에 차 더 이상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한편 부모님과 모임에서는 저의 결혼을 위해 기도하였고 다른 모임의 형제들과의 만남을 주선해주시기도 하셨지만 성과가 없었고, 저는 더더욱 모임 생활을 기피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때때로 받는 업무 스트레스와 사회생활에, 모임생활은 더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웠습니다. 어릴 때부터 지켜온 신앙은 이제 불편함과 속박, 피해 의식으로 다가왔습니다. 오히려 세상에 있는 시간이 더 편했습니다. 더 이상은 이중생활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모임에 나가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직장을 옮기고, 세상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 마음이 차라리 편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생활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있는 한 제 자신이 완벽히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독립할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

   동생이 먼저 결혼하여 나가고 우리 세 식구는 수도 없이 부딪치며 몇 년을 보냈습니다. 집에서도 외롭고 밖에서도 외로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겉으로는 부족함이 없었지만 내면에는 원망과 피해의식이 극도로 달했습니다.

   또 구원의 확신도 없었습니다. 급기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도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도 나는 하나님과, 교회와 상관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새로 옮겨온 직장은 강한 조직문화와, 약간 다른 분야의 일로 적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 탓, 부모님 탓으로 돌리며 무기력함과 낙담, 원망으로 매일매일을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이런 저의 내면의 모습을 절대로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2-3년을 괴롭게 보낼 즈음,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저와 같이 입사한 동기로서 힘든 회사생활에서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 사람과의 만남을 아시고 부모님은 낙담하셨으나, 제부는 그 사람을 몇번 만나기도 하면서 모임으로 인도하기 위해 여러모로 신경을 써주었습니다. 저는 그저 옆에서 방관만 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는 그 사람은 절대로 구원받을 사람이 아니라고 장담하였습니다. 또한 결혼을 안 하면 안 했지 모임 안에서 결혼할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 10월 경 제가 급성 임파선염으로 10일 정도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제가 퇴원할 즈음 교회에 나가보겠다고 말하더니, 얼마 안 있어 제부가 소개한 인천남부모임에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제부와 그 사람이 처음 만난 지 6개월여 만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교회에 가지 않으면서도 그 사람이 교회에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왠지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일요일 예배를 한 달 정도 참석하다가 그 모임의 형제님의 인도로 서인천모임의 전도집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전도집회에 다녀온 그는 "오늘 강사님 말씀은 좋더라"고 하길래 제가 "강사님이 누구신데?" 하고 물으니 "'ㅇ' 무슨 선생님이라던데..."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ㅇㅇㅇ 형제님?" 하니 "응, 맞아!" 하는 것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ㅇㅇㅇ 형제님은 제가 대학생 때부터 청년시절을 보내는 동안 줄곳 저의 상태를 아시고 여러 번 만나서 이런저런 교제를 해주시던 분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 분을 보게 됐다니, 그리고 말씀이 좋다고 말하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 뒤로 ㅇㅇㅇ 형제님과 개인적으로 몇 번 만나 교제를 하였으며, 동인천모임에서 하는 그 형제님의 성도집회까지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구원에 대한, 성경 말씀에 대한 질문이 많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이 상황에서 저의 입장이 난감하였습니다. 그의 질문에 제가 가진 지식으로 성실하게 답을 하다보면, '이건 내가 바라던 상황이 아닌데... , 내가 과연  답할 자격이 있나...'라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어 '나도 잘 모른다. 나한테 질문하지 말고, 그 형제님이나 제부나, 인천남부모임 형제님께 물어보라'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인천남부모임에서도 올해 4월 21일부터 그 형제님을 직접 강사로 모시고 복음집회를 계획하셨습니다. 제부나 부모님이나 저 또한 이 기회가 그 사람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기회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때까지도 방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이번 복음집회는 같이 가야 한다는 권유로 할 수 없이 저도 함께 참석하였습니다. 3일째인 토요일 낮, 그 사람은 모임에서 개인교제를 하고 저는 집에서 뒹굴뒹굴 하고 있을 때 그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 속 음성은, 북받치는 감정을 간신히 차분히 가라앉힌 듯,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은혜에 한없이 죄송스럽고 감사하다. 일요일 날 예배드리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나 구원받았다" 라고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며 나도 모르게 축하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여기 있는데, 혼자만 멀리 가느냐"며 통곡하였습니다.그러자 그는 저에게 "그동안 나보다 자재를 많이 모았으니 주영씨는 한번 쌓기 시작하면 높게 쌓을 수 있을거야"라고 위로하였습니다. 그날 저녁 복음집회에 같이 참석하여 그 사람은 손을 번쩍 들어 구원받았음을 표현하였고, 그 다음날 일요일에는 예배시간 도중 " 다 이루었다" 는 말씀에서 감사함을 주체하지 못해 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뒤 며칠간 그 입에서 어울리지 않게 쏟아져 나오는 고백과 말씀 구절들을 들으며, 저는 마냥 신기하기만 하였습니다. 절대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한 그가 저렇게 변하다니...

   한편 인천남부모임은 규모가 커서 개인 교제를 나누기에는 서먹서먹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구원받은 그 다음 주부터 저희는 남인천모임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남인천모임은 제가 어릴 때 다녔던 모임과 같이 바닥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으며, 성도님들도 그리 많지 않았고 저희를 따뜻하게 맞아주셨습니다. 옛날 생각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사람이 저에게 전도를 하며, 저를 위해 기도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는 "아니, 나만 해결되면 되는 줄 알았더니. 이게 뭐야. 난, 주영씨가 구원받은 사람인 줄 알았잖아~" 하며 놀리곤 하였습니다.

   저는 그의 변화되는 모습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의심이 가득 찬 마음으로 일요일마다 참석하였습니다. 그는 저에게 밤마다 같이 전화로 기도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리하여 6월 중순부터인가 밤마다 기도를 같이 하였습니다.

   그 후 여러 성도님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괴로움으로 보낸 8월 캠프가 끝난 며칠 후, 그 사람은 "캠프에서 아는 사람을 본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며칠간 기억을 더듬더니 "아! 생각났다! 대학교 때 학부 학과장님이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아버지를 통해 알아본 결과 그 교수님은 상도동 모임의 형제님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우리 둘은 서로 깜짝 놀라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금천모임에서 청년집회를 했을 때 그 교수님과 그 사람은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신이 났습니다. 이렇게 그에게 또 하나의 선물을 주시다니요.

   남인천모임 식구들은 저에게 지속적으로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다 기억나진 않지만 어느 주일 말씀시간에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 (시 32:9)는 말씀은 저의 마음을 찌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성도님들의 관심과 사랑 안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제 마음은 조금씩 유하여져 갔습니다.

   기다리던 9월 복음집회가 시작되었고, 첫째 날 말씀을 듣고, 둘째 날 개인교제 역시 제 마음에 와 닿지 않아 또 낙담이 되어 풀이 죽었습니다.

   그날 저녁 집회 때 저를 알아본 ㅇㅇ 이모는, 머리 수건을 쓰지 않은 모습을 유심히 보셨는지 구원문제를 다시 생각하고 있다는 저의 말 한 마디에 당장 그 자리에 앉힌 후 말씀을 펴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이야기였습니다. 25절의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로 시작하셨습니다. 자매님은 "예수님이 더디 믿는 주영이에게 하시는 말씀이야."

   여기서 저는 "앗!" 하였습니다. 또 28절 이후로 죽 읽어주셨습니다. "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 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실 때에야 비로소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보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걸으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가까이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어. 그러나 예수님은 목적지가 다가왔을 때 당신의 가실 길을 더 가시려다가 제자들이 강권하여 초대하자 그 때서야 그 집에서 유하시며 식사를 하신 거야. 예수님은 온유하신, 즉 젠틀하신 분이기 때문에 들어오시라고 강권하여 초대하지 않으면 억지로 들어오시지 않는 분이지. 그리고 일단 들어오시라고 영접한 후에라야 비로소 주님임을 알아볼 수 있는 거야. 어때, 이번에도 예수님 그냥 지나가시게 할 거야?"

   자매님의 말씀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믿지 못하겠다고 주장하는 저에게 '더디 믿는 자!' 라며 호통을 치시는 듯했습니다. 또 예수님이 옆에 가까이 계셨는데도 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여러 번 지나쳐 가시게 놔둔 제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도 제 마음 문을 연 적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문 열고 들어오시라고 간절히 강권한 적도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제 상처와 원망과, 날 믿게 해보시라는 교만한 마음만 들이대며, 저의 노력을 알아달라고만 외쳤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하나님을 부정하고 예수님을 무시하는 순간에도 옆에서 바라보고 계셨을 예수님이 떠올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펑펑 울고야 말았습니다. 무엇보다 온유하신 예수님이 이렇게 못된 저를 오랜 시간 기다리셨다는 생각에 말로 다 못할 죄송스러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날 밤 저는 처음으로 예수님께 일대일로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 . 제 마음 문을 열게요. 들어와 주세요. 그동안 저의 문밖에 오래 서서 기다리시게 해서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

   그 다음날 일요일 예배시간에 저는 어제 ㅇㅇ이모가 잠깐 들려주신 찬송가가 생각나 찾았습니다. "주 예수 대문 밖에 기다려 섰으나 단단히 잠가두니 못 들어오시네. ...나 주를 믿노라고 그 이름 부르나 문밖에 세워 두니 참 나의 수치라. ...문 두드리는 손은 못 박힌 손이요 또 가시면류관은 그 이마 둘렀네. ...이처럼 기다리심 참 사랑이로다. 문 굳게 닫아 두니 한없는 내 죄라. ...주 예수 간곡하게 권하는 말씀이 네 죄로 죽은 나를 너 박대할소냐. ...나 죄를 회개하고 곧 문을 엽니다. 드셔서 좌정하사 떠나지 마소서." 딱 제 고백이었습니다.

   이어진 복음 말씀 시간에 보여주신 한 구절에서 눈이 커졌습니다. 마치 주님께서 제게 화답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나의 마음이니 나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나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났으매 나를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였으니 곧 십자가에 죽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너의 입으로 나를 주로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2:5-11).

   온유하신 예수님이 제 마음에 들어 오시며 장엄하게 하시는 말씀이셨습니다. 결국 저를 무릎 꿇게 하시고 주로 시인하게 하시고 영광을 받으신다는 이 말씀은 1%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 깨달음을 주체할 수 없어 여러 성도님들께 말씀드렸고, 감사함과 감격스러움을 여기저기 알리게 되었습니다. 상상도 해보지 않은 제 모습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부모님과 얼싸 안으며 기쁨을 나눴습니다. 고생했다고 하셨지만 전 아무것도 한 게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얘기를 나누다가 "그럼 이제는 생명책에 네 이름이 있다는 확신이 있니?" 라는 엄마의 질문에 저는 다시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아직 거기까지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저는 다시 말씀을 폈습니다. 하하... . 그러나 그 문제에 답을 찾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식상하다고 생각했었던 요한복음을 펴자 1장 1절부터 주욱 모든 해답을 저에게 새롭게 말씀해주고 계셨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 ."

   예전에 이 구절을 대했던 시각과 완전히 다른 시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혈통도 아니고 육정도 아닌 하나님이 직접 일대일로 낳으셨고 자녀 삼으셨다는 말씀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이제는 부모님이 믿고 있는 하나님, 성도들이 믿는 예수님이 아닌 저의 하나님, 저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또한 이 말씀도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하심이니라" (딤전 1:13-16).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할 때 저절로 엎드러집니다. 과거의 상처들도 더 이상 제 삶의 약점과 어두움이 되지 않습니다. 기쁨과 감사함의 시간들로 채워집니다. 다른 성도님들도 이런 경험을 다 하셨구나! 나는 이제야 하다니... .

   저는 옛날에 받았다고 생각한 구원이 구원이 아님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한없는 죄인임을,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깨달은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은 이제 주님이 제 바로 옆에서, 마치 그 현장에 제가 있는 듯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하시는 말씀으로 모두 들립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4:26).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눅 24:51-53).

   예수님이 이천년 전에 하셨던 말씀들이 이제야 깨달아집니다. 그리고 큰 기쁨과 든든함으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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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저는 2011년 10월 침례를 다시 받았으며, 주님이 주인 되신 저는 부모님과 더할 나위 없는 애틋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주님께서 그 사람과의 결혼을 허락하셨고 이쁜 딸도 주셔서 현재 주님 안에서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께서 저를 일절 오래 참으시고 변화시키셨듯이, 오랜 시간 구원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 모두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든 결국 역사하시리라 믿습니다.) *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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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김화순 (일산교회)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수천 년이 흘렀지만, 벌레보다 못한 저를 주님의 보혈로 값없이 영생을 얻게 하여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천만번 감사를 올립니다.

   저는 중국 흑룡강성 계서에서 태어나 굴레 벗은 송아지처럼 제멋대로 즐기며 살다가 스물 네살에 결혼했습니다. 막상 결혼하고 나니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이젠 모든 것이 끝났구나. 앞으론 무엇을 바라고 살지? 인생이란 너무 허무하다. 내가 만일 죽고 나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까? 나는 어떻게 될까?" 하며 늘 고민에 싸였지만, 막상 물어볼 만한 곳도 없고 해답을 얻을 길도 없었습니다.

풀과 꽃은 겨울엔 죽었다가 봄이 오면 따뜻한 햇살을 받아 그 뿌리에서 다시 새움이 트고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데 나라는 존재는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으니... . 옛말에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 고 했지만, 나같은 인간은 애당초 태어나지 말았더라면 하고 슬픔과 후회와 허무한 생각이 밤낮 지속되었습니다.

   하루는 잠자리에 누워 남편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다가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나는 .진지하게 물었는데, "집에서 너무 편안하니 바보같은 궁리만 하고 있다" 고 툭쏘는 남편의 대답에 본전도 못 찾고 말았습니다.

   그 후 책들을 읽어보아도 해답을 얻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몊 십년을 마음속에 의문만 갖고 살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이라 중국에는 하나님 말씀도 성경책도 없었습니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롬 10:14).

   제가 하나님을 찾게 된 것은 생활이 쪼들림도 아니요, 건강이 나빠서도 아니요, 그 어떤 어려움에 부딪혀 찾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갈급한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영생을 찾기 위해 긴긴 세월을 흘려보내다가 1992년 초, 저의 셋째 동생이 집에 찾아와 저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권했습니다. 당시 저의 대답은 "너는 하다하다 이젠 별소릴 다한다" 고 쏴붙이며 "너 혼자나 믿어!" 하고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실망하지 않고 몇 번이나 권하면서 밤이면 찬송도 배워주고 돌아갈 때 "언니, 우리 같이 하나님 믿고 천국 가자" 면서 성경책 한 권을 주고 갔습니다.

   도대체 이 묵직한 책 속에 무슨 심오한 비밀이 있는지 궁금해 펼쳐 읽어보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2:7).

   진화론이 이미 머릿속에 꽉 박힌 나로서는 근본 믿어지지 않아 책을 덮어놓고 몊 달동안 보지 않고 있다가 궁금해서다시 책을 열고 시편, 잠언, 전도서를 재미로 읽어보니 차츰차츰 느낌이 달라서 다시 창세기부터 매일 책을 읽어갔습니다.

   그 때 마침 한국에서 전도자가 우리집을 찾아와서 처음 복음을 자세하게 전해주었고, 전해주는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이 계심과 천국과 지옥과 영생에 대해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주 짦은 시간에 믿었다보니 구원의 확신이나 큰 기쁨은 느끼지 못했지만, 이제는 지옥에 안가게 되었다고 안심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죄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앙태하였나이다" (시 51:5) 라는 말씀을 읽을 때, 나는 비교적 선하게 살고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며 살았으니 절대로 지옥에는 안 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요. 하나님 말씀에 비춰보면 어지러운 세상에서 저 역시 인간의 욕망대로 살아온 추악한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 (롬 6:23)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로마서 10장 9-10절에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저는 1993년 5월 7일 구원받고 침례에 순종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 오랜 시간을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예배도 드리지 못하며 주님 안에서 성장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2002년 5월에 한국에 가도록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때만 해도 비자받기가 너무너무 어려운 시기였는데도 하나님이 사랑으로 감싸주셔서 우리 세 자매 비자가 단번에 나온 것이 기적이었습니다. 이를 본 주위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했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후 진해모임에서 첫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가정모임에 가려면 성경책을 품속에 넣고 문 열고 나와서 사방을 살펴보고야 발걸음을 옮겼으며, 찬송도 옆집에 들릴까봐 작은 목소리로 불렀는데, 진해모임에서 자유로운 가운데 예배드리니 감격에 북받쳐 눈물이 얼마나 쏟아지던지, 이것이 바로 지상천국이라 느껴졌습니다. 그해 9월부터 일산모임에 와서 형제 자매님들과 함께 주님의 사랑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주님의 고난에 관한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 해골의 골짜기, 죽음의 골짜기를 맨발로 걸으신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무거운 십자가가 힘에 겨워 몇번이고 쓰러지시고, 다시 일어나 걸으실 때 채찍에 맞아 찢어진 온 몸에서 흘러내리는 피, 참을 수 없는 그 아픔, 십자가에 못 박혀 당하신 고통, 누굴 위한 것이었는지요. 누가 그 고통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응당 죄인 중에도 괴수인 내가 받아야할 그 고통을 주님께서 대신 받으셨으며, 머리에는 가시관 쓰시고 두 손과 두 발에는 녹슨 대 못이 박히고, 옆구리에는 창에 찔리사 피와 물을 다 쏟으시고 나의 죄를 대속하시고 "다 이루었다"고 큰 소리로 외치시고 영혼이 떠나가신 것을 볼 때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알게 되었고, 내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생명과 모든 것을 값없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구원받은 성도로서 주님께 연보할 때면 봉투에 돈을 좀 더 넣을까 말까 망설이는 저의 어리석은 마음을 고백합니다.

   존경하옵는 성도님들, 저는 보잘 것 없는 인간, 무너져가는 낡은 장막이지만 주님 안에서 한 지체가 되었으며, 거룩하신 우리 주님의 붉은 피가 심장 속에 고동칩니다. 이제 저는 첫사랑을 기억하며 힘 입게 앞만보고 나아가길 원합니다. 저의 짦은 여생을 찬란한 천국의 소망을 갖고 항상 기쁨으로 찬송하며 기도하는 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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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간증]

                         아빠, 천국에서 만나요.

                                                                                                                                                            - 오현미

   아빠가 예수님을 믿고 돌아가신 지가 2년이 되어 갑니다. 아빠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복음을 전해주신 형제, 자매님들과 전도출판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저의 고향은 목포에서 배를 타고 들어 가야 하는 섬, 신안군 도초입니다. 섬이기는 하지만 고기잡이를 하는 건 아니고 농사를 주로 지어서 먹고 삽니다. 아빠는 이곳에서 나고 자라시고 평생을 사셨습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거의 평생 아빠는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셨습니다. 아빠 자전거 뒤에 타고 꼭 붙잡았던 아빠의 등이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아침 일찍 자전거 타고 논을 한 바퀴 돌고 오실 때면 들국화 한 다발이나 들꽃을 빈병에 꽂아 놓으라고 하시며 건네주시곤 했습니다. 아빠는 농협 연쇄점 지배인이셨는데 잘 사다주셨던 것은 초코파이였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상품이 처음 나오면 사 오셔서  우리들에게 먹이곤 하셨습니다. 삼분 카레 처음 먹던 날 그 이상야릇한 맛에 놀랐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아빠가 농협 사무실에 근무하실 때는 혼자 아빠를 찾아가기도 했는데, 아빠랑 손잡고 가게에서 바나나킥 한 봉지를 사들고 행복했던 기억은 지금도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그러나 슬픈 기억이 더 많습니다. 어느날 밤, 술을 드시고 혼자 우시던 모습,  술 드시고 자전거타고 오시다가 넘어져서 다치신 모습, 그런 아빠의 모습이 왜 그렇게 외롭게만 보였던지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아빠는 술을 드시지 않는 날이 거의 없으셨고, 부모님은 싸움을 자주 하셨습니다. 싸우시는 부모님이 무서워서 헛간에 숨어있던 기억, 그리고 방문이 항상 부셔져 있거나 떨어져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날은 비가 오는데 방문이 떨어져서 비가 자꾸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떨어진 문짝으로 아래를 가려 놓고 문설주에 기대어 서서 멀리 하늘을 말없이 쳐다보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아빠는 모든 괴로움과 외로움을 술로 달래셨습니다.

   대학 일학년 때 내가 예수님을 안 뒤 한 가지 소원은 아빠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은 나의 삶을 바꿀 만큼 너무나 기쁘고 중요했고, 사랑하는 아빠도 이 사실을 알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아빠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전혀 받아들이시지 않으셨습니다. 얘기를 잘 하시다가도 예수님 이야기만 하려고 하면 신기하게 화를 내시고 말도 못 꺼내게 하셨지요. 저는 그냥 안타까이 바라보며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은 아빠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날 아빠는 입안에 뮈가 나서 아프다고 배를 타고 치과에 나오셨습니다. 의사는  구강암이라며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정말 앞이 캄캄한 상황에서 광주 전대 병원에서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술하는 날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아빠는 진정제를 드셨어요.


   약을 드시고

   힘없이

   말없이

   앉아계신 아빠의 모습이

   한 없이 가엾고

   걱정이 되요.


   수술 침대에 실려 가는

   아빠의 손을 잡고 따라가며

   "아빠 힘내요

   사랑해요."

   라고 밖에 할 수가 없었어요.


   열한 시간 사십 분 만에

   목에 호수 꼽고

   고통스런 모습으로 나오셨어요.

   나는 아빠를 쳐다 볼 수가 없었어요.


   전에는 다 몰랐어요.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하신

   주님의 아픔을

   저는 보았어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신

   주님의 모습을.


   수술 후 아빠는 음식도 잘 못 드시고 말도 잘 못하게 되셨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광주교회 형제, 자매님들께서 찾아 오셔서 아빠를 위해 계속 기도하고 복음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빠는 여전히 마음을 닫고 계셨습니다. 나는 아빠를 간호하며 아빠에게 성경 구절을 반복해서 읽어주기도 하고 조그마한 전도 책자를 계속 읽어 드렸습니다. 나는 아빠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옆에 있었던 악한 강도처럼이라도 구원받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빠는 수술 후 4개월이 못 되어 암이 재발되었고, 광주병원에서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집 가까운 목포중앙병원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목포중앙병원에서도 절망적인 아빠를 반겨주지 않았지만 입단 입원을 했습니다.


   중앙병원 713호실


   어제는 편안해 하셨는데

   오늘은 힘들어 하세요

   지금껏 병실과는

   왠지 분위기가 달라요.


   의사가 하는 말

   아빠에게는 이제

   아무 희망도 없대요.


   주님은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 일을 하셨습니다. 아빠가 중앙병원에 입원하시고 며칠 후, 어느 날 아침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엄마가 하시는 말씀, "느그 아빠가 혼자 책을 읽더니 저렇게 좋아한다야" 하시는 거였습니다. 아빠의 표정은 아주 밝았고 내가 읽어주다가 옆에 두고 간 '믿어도 죄인인가?' 라는 책을 손에 들고 웃으시며 분명치 않은 발음으로 "이 책 내가 가져가도 되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내가 된다고 하자 아빠는 가방에 소중히 책을 담으셨습니다.

   "그럼 아빠 천국 갈 수 있어요?"

   내가 묻자 아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처음에 이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천국 가게 되었다는 말은 아빠에게서 너무나 듣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 병원에 들렀을 때 엄마하고 아빠는 다투고 계셨습니다. 병원에서는 진통제만 드시면 되니까 퇴원을 해도 된다고 해서 아빠는 퇴원하고 싶다고 하셨고, 엄마는 겁이 나서 퇴원하면 절대 안 된다고 말리고 계셨습니다. 엄마는 화를 내시며 병실에서 나가시고 아빠도 화를 내셔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나는 이대로 퇴원을 하면 내 일을 기약 할 수 없어서 걱정이 되어 아빠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아빠, 나한테만 진짜 말해봐요. 예수님 믿으면 의인이고 안 믿으면 죄인인데, 의인이면 동그라미, 죄인이면 가새표 해봐요."

   아빠는 말을 정확히 하실 수 없으셨기 때문에 내가 손가락을 사용해서 말을 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붙여 동그라미를 그리며 분명하지도 않은 발음으로 "오우케이!" 하시면서 활짝 웃으셨습니다. 나는 아빠와 손 바닥을 마주치며 좋아했습니다. 그 뒤 아빠는 달라지기 시작하셨습니다.  짜증내거나 병에 대한 절망감도 없이 언제나 환하게 웃으시며 긍정적이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2주 동안 아빠는 우리 집에 머물러 계셨는데 오히려 옆에 있는 엄마와 나를 위로하며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렇게 싫어하시던 찬송가를 들려 주면 좋아하셨고 성경 말씀을 들려주면 좋아하셨습니다. 몸은 비록 날로 쇠약해 가셨지만 마음은 전혀 슬퍼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루는 소파에 누워 계시다가 방안에서 나오는 나를 보고 팔을 휘저으며 크게 동그라미를 그리셨습니다. 나는 아빠가 이상해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왜 저러시나 하고 자세히 봤더니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계셨습니다. 천국 갈 수 있다고, 기쁘다고 손가락으로 말씀하시는 거였습니다. 아빠가 그렇게 행복해 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내 기억에는 없습니다. 우리 집은 마치 작은 천국과도 같았습니다.

   나는 아빠가 언제까지나 그렇게 옆에 계셔주기만 바랬습니다. 아니, 계실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헤어질 날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퇴근해서 돌아와보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옆에 있는 작은 수첩에는 천국에 다녀오셨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천국


   퇴근해서 집에 오니

   아빠가 편히 주무세요

   옆에 쪽지에는

   천국에 다녀오셨다고

   써 있어요.

   정말 이래요


   저녁에

   목회자님이 오시자

   함박꽃 같은 웃음으로

   반기시는 아빠


   천국이 어떻드냐는 물음에

   눈물 흘리시며


   손짓, 몸짓으로

   열심히 설명하세요.


   그러다 가만히

   쪽지에 적으시는 말


   고생했다고 안아주시며

   그렇게 반갑게 맞아 줄 수가... .

 


     "아빠 이제 예수님 믿었으니 자식들 한테도 에수님 믿고 천국에서 만나자고 말해야지요?" 하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이시곤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5일 후 조용히 아빠는 눈을 감으셨습니다. 하고 싶은 말 다 못하고 가신 아빠의 눈가에 이슬처럼 맺히던 눈물을 보았습니다. 엄마에게 장례식을 교회에서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마지막 부탁이 되었습니다.



   아빠가 그리울 때


   퇴근길

   아빠가 그리워

   눈물이 앞을 가리면


   하늘을 보고

   가만히

   아빠를 불러보아요.


   그러면

   일기장에 한 줄 쓰신

   마지막 말


   "아, 편하다!

   딸내미 덕분이지 뭘... .껄껄."


   아빠 목소리

   아빠 웃음소리

   들리는 듯해요.


   아빠를 성도들의 찬송과 축복 가운데 데려가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빠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복음을 전해주신 많은 형제, 자매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책자를 통해 깨달을 수 있도록 해주신 전도출판사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적습니다.

   아빠가 하늘나라에 가신 뒤에 나는 늘 가방 속에 소책자를 가지고 다닙니다. 누군가와 함께 소책자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저의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아빠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너무나 아쉽지만 천국에서 만날 수 있음에 감사드리며, 남아 있는 가족들이 모두 아빠와 함께 천국에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아빠! 천국에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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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은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는 제목의 간증문을 통해 “난 성경에 맞춰 내 삶을 바꿔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성실하다는 점 하나 빼면 난 참 나쁜 사람이었다. 따뜻한 척 하지만 사실은 차갑고, 나밖에 모르고, 방탕하게 놀고, 목적을 위해선 거짓말도 하는… 그랬던 내가 주변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바뀌기 시작했다. 아니 달라진 생활 때문에 주변 사람들 자체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박진영은 “예수님이 날 위해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며 “물론 난 이미 웬만한 신학대 졸업생 못지 않게 성경을 잘 알고 있었고, 성경과 그 속의 예수님을 내 구원자로 받아들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결심과 나의 의지였지 내 마음 속에서 믿어졌던 것은 아니었다”고 써내려갔다. 

그러던 그는 성경을 읽다 깨달았다며 “지난 5년간 내가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고, 아무리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생활이 올바르게 바뀌었어도 장님이라는 것을 알고있었기에 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박진영은 “난 지금 두렵다. 다른 거듭난 사람들에 비해 내 믿음이 너무나 작기 때문”이라며 “내 안의 겨자씨가 큰 겨자나무가 되도록 ‘서로 사랑하라’라는 계명 아래 교제속에서 잘 커나가고 싶다”고 마무리했다. 

가수 박진영.

가수 박진영.

■이하 박진영 간증문 전문이다. 

겨자씨만한 믿음 

2017/ 4/ 27 밤10시 히브리서 10장 10절을 읽다가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수십 번 읽었던 구절인데 ‘우리’라는 말 속에 내가 들어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니 그 전에도 논리적으로는 알았지만 마음에서 처음으로 사실로 느껴졌다. 이게 왜 나에게 신기한 일인지 지금부터 써내려가 보겠다. 

2008년 미국시장에서 성공해보겠다는 꿈을 품고 한창 뛰어다니고 있을 때 나는 불현듯 ‘운이라는 게 뭘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운이라는 게 사람들 인생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치는데 그냥 말 그대로 운일 뿐일까 아니면 운이라는 걸 주관하는 신이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을 마음에 품은채로 계속 살아가다가 2010년 난 더 이상 이 걸 무시하고 살아가는 건 멍청하고 비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신이 있는 지 확인해보기로 결심했다.

난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반드시 우주와 인간을 만든 창조자여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만든 사람 말고는 그 만든 이유와 목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인간들의 생각은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종교경전 중에 창조자가 나오는 책들만 찾아봤다. 

원래는 여러 책을 비교해보려했지만 너무나 신기하게도 이 우주와 인간을 만들었다는 창조자가 그것을 어떻게 만들었고 왜 만들었는지 자세하게 써놓은 책은 성경 한 권밖에 없었다. 그래서 비교해보며 공부해보려고 한 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할 수 없이 성경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해보는 방향으로 내 공부는 바뀌었다.

성경의 논리는 간단했다. 

1. 이 책의 저자는 하나님이라는 존재이며 우주 (시간, 공간, 인간)를 창조했다.

2 .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선택한 인간들의 영혼을 움직여 이 책을 기록, 편집, 번역, 유지했다. 

3. 하나님은 원래 우주와 그 속의 모든 걸 영원하도록, 썩지 않도록 창조했고 그 창조의 목적은 인간과 함께 사랑하며 살기 위한 것이었다. 

4.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유의지가 있어야하므로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를 주셨고 또한 그 자유의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인간 앞에 두 개의 선택을 주셨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길과 사탄이 가라는 길. 

5. 인간은 하나님의 말을 버리고 사탄이 가라는 길 즉, 하나님이 가면 죽는다고 말한 길을 선택함으로써 시간과 죽음의 노예가 되었다. 

6. 인간이 느끼는 허전함, 허무함, 두려움 등은 시간의 노예이기에 생기는 것이며 이 시간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다시 말해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구원이라고한다.

7. 따라서 구원은 시간 안에 있는 존재가 절대로 해줄 수 없으며 시간 밖에 있는 존재만이 해줄 수 있다. 

8. 하나님은 지금으로부터 몇 천년 전에 기록된 성경책에 인간의 과거와 미래 특히 유대인의 미래를 다 미리 예언해놓으심으로써 자신이 시간 밖에 있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한다.

9. 미래를 다 아시는 하나님은 인간이 죽음의 길을 선택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들을 구원할 방법을 처음부터 만들어놓으셨고 그게 예수이다.

따라서 성경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해보는 방법은 간단했다. 성경책에 씌여있는 수많은 예언들 중에 한 개라도 틀린 것이 있는 지 보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유대인의 대한 예언들과 실제 유대인의 역사를 비교해보기 시작헀다. 각종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결국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세상과 단절한 채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성경을 파헤치며 살았다. 집을 떠난 지 2달 후, 2012년 10월 나는 틀린 예언을 찾는 걸 포기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틀린 걸 찾기는 커녕 오히려 성경 앞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미래를 완벽히 맞추는 건 신이 아니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난 성경에 맞춰 내 삶을 바꿔나갔다. 성실하다는 점 하나 빼면 난 참 나쁜 사람이었다. 따뜻한 척 하지만 사실은 차갑고, 나밖에 모르고, 방탕하게 놀고, 목적을 위해선 거짓말도 하는… 그랬던 내가 주변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바뀌기 시작했다. 아니 달라진 생활 때문에 주변 사람들 자체가 바뀌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성경과 그 속의 주인공인 예수, 그 예수님이 날 위해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더이상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어서 인정하게 됐지만 마음에서 사실로 믿어지지는 않았다. 아무리 믿으려고 애를 써봐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성경은 결국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씌여진 책인데 난 과연 구원을 얻은 것일까? 만약 아니라면 구원을 어떻게 얻어야 하는걸까? 

내가 헷갈렸던 것은 구원의 정의와 그것을 얻는 방법에 대해 교파마다 모두 조금씩 다른 설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천주교 기독교 구분 없이 100명이 넘는 성직자분들의 설교를 책을 통해, 영상을 통해, 혹은 직접 만나 듣게 되었다.

대부분의 말씀은 구원이 뭔지,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또 자신이 구원을 얻었는지 안 얻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 지에 대해 정확하고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고 약간 두리뭉실하게 설명을 하고 있었고 또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눈 분들은 모두 나 정도로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고 또 그에 맞게 삶이 바뀌었으면 이미 구원을 받은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물론 난 이미 왠만한 신학대 졸업생 못지 않게 성경을 잘 알고 있었고 성경과 그 속의 예수님을 내 구원자로 받아들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결심과 나의 의지였지 내 마음 속에서 믿어졌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자꾸 나에게 구원을 받았다, 하나님의 자녀다, 성령이 임했다, 거듭났다라고 하니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내 마음은 점점 괴로와져갔다. 그 와중에 내가 성경을 많이 알고있다보니 나에게 성경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나는 성경을 가르칠 때마나 ‘나는 아직 성경에 대한 의심이 남아있는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하고 가르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가르치는 사람들 중에 완전히 성경이 믿어졌고 2천년 전에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모든 죄, 과거의 지은 죄와 미래에 지을 죄까지 모두 대신 짊어지고 가셨다는 게 믿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오히려 나에게 ‘근데 당신은 왜 이게 안 믿어지세요?’라고 물어볼 때도 난 너무나도 초라해졌고 괴로웠다.

내가 아직 성경을 덜 공부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에 구약, 신약을 왔다갔다하며 죽어라 공부를 해도 성경에 대한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성경을 가르칠 때 ‘예수님이 여러분의 죄를 다 해결해놓으셨다’는 말을 하면서도 난 그 ‘여러분’ 속에 들어있지 않았다.

주변에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기도를 더 열심히 해보라는 얘기에 기도를 해보는데 이상하게도 ‘절 구원해주세요’라는 말은 잘 나오지 않았다. 구원을 받고 그 감사함에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많았지만 한편, 실망스러운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구원을 받은 사람은 그 죄가 모두 해결되어 있기에 지옥은 가지 않지만 하나님 자녀로서 상과 벌(살아있는 동안), 칭찬과 부끄러움(죽고나서)이 있다고 아무리 가르쳐도 잘 듣지 않았다.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 편해져 세상 속에 다시 빠져 사는 사람, 세상 일에 흥미가 떨어졌다며 게을러지는 사람, 구원 받지 않은 사람들보다도 못한 인격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난 구원을 갈망하면서도 구원 후 내 자신이 행여 안좋은 쪽으로 변할까 두려워 결국 모든 기도의 끝은 ‘구원해주세요’란 말 대신 ‘제 인생을 책임져주세요’라는 말로 끝마치게 되었다.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한지 5년이되도 마음속에 의심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고 난 구원을 거의 포기하게 되었다. ‘60살이 넘어서 죽기 직전에나 믿음을 주시려나…설마 이렇게 그냥 죽이시지는 않겠지’란 생각으로 버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성경을 공부한지 7년이란 세월이 흐른 2017년 4월 27일 밤 10시 히브리서 10장 10절을 읽는데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라는 구절의 ‘우리’라는 말 속에 내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전에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 전에 알았다는 말과 지금 알았다는 말은 다른 뜻이었다. 머리로, 논리적으로 이해하게 된 것과 마음에서 사실로 믿어진 것의 차이였다. 다시 말해 믿으려고 애쓰는 것과 믿어져버린 것의 차이였다. 

그렇게 믿으려고 애를 쓸 때는 안 믿어지던 것이 그냥 한 순간에 믿어져버렸다. 반대로 안 믿어보려고, 의심해보려고 해도 잘 되질 않았다. 그 때서야 알았다. 성경에 왜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거로 표현되어 있는지. 

믿음이 온 후로 (After faith has come) 갈3:25 

하나님이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Eyes of understanding being enlightened) 앱1:18

예수께서 저희 마음을 열어 (He opened their understanding) 눅24:45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The Lord opened her heart) 행16:14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 Through faith which is in Jesus Christ) 딤후3:15 

마지막 디모데후서 말씀에 ‘내 안에 있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라고 씌여져있는 이유도 뭔지 알았다. 새로 생긴 믿음은 내가 그 전에 갖고 있던 믿음과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2천년 전에 셋째하늘에서 날 위해 내가 평생 지을 모든 죄를 위한 제사가 드려졌고 그게 날 위해 죽으신 예수님 피로 드려진 제사였기에 내 모든 죄는 영원히, 완전히 처리되었다는 게 사실로 믿어진다는 것이 정말 정상적인 일일까? 이것은 절대 인간의 믿음으로는 믿어질 수 없다. 너무 황당하고 엄청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라고 믿어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깨달은 건 그동안 내가 애써 그 ‘우리’란 말 속에서 나를 빼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마음 속 중심을 꿰뚫어보시는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난히 영악하고 악한 내 마음을 알고 계셨기에 나를 구원해주실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구원해주시는 사람들의 특징에 난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 것도 그런 생각을 부추겼던 것 같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 가난한 마음, 상한 마음, 절박한 마음…난 어느 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화목한 가정에서 부자는 아니었지만 부족함 없이 컸고 이루고 싶은 목표는 다 이루며 살았고 하나님을 찾게 된 이유도 힘들어서가 아니라 궁금해서였기에 난 스스로 구원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생각인지 깨달았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무리 착한 사람이나 아무리 악한 사람이나 그저 죄 속에서 신음하는 인간일 뿐인 것이고 그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하시기에 그 모든 사람들의 죄를 전부 다 책임져주신 것이다. 그 속에서 ‘난 아니야…난 해당이 안 될거야…’하고 있었다는 게 너무 어처구니 없었다. 그 제사는 이미 2천년 전에 드려진 제사이기에 이제와 내가 그 ‘우리’ 속에서 빠지고 싶어도 빠질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 한 가지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지난 5년간 나를 통해 거듭난 사람들은 대부분 감격해서 울거나, 너무 좋아 웃거나, 가슴이 뜨거워졌다고 하거나, 이제 죽음이 무섭지 않다며 확신에 찬 모습을 보였는데 난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냥 ‘히10:10의 ’우리’란 말 속에 내가 들어있네, 2천년 전에 내가 거룩해져버렸네’라는 깨달음 외에는 어떠한 감정의 변화도 없었다. 눅24:32처럼 가슴이 뜨겁지도, 사12:1처럼 기쁨이 넘치지도, 행8:36처럼 확신에 차지도 않았다. 고후13:5 너희가 믿음에 거하는지 시험하고 스스로 확증하라는 말씀때문에 난 일주일동안 아무에게도 나의 구원을 말하지 못하고 끝없이 스스로를 상담해봤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의 구원 여부에 대한 상담을 많이 했기에 다행히 내가 나 스스로를 상담할 수 있었다. 

Q: 아직도 의심이 남아있는가? 

A: 이제 이게 사실이 아니면 그건 하나님 책임이다 

증거: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사43:11

Q: 만약 죽었는데 내가 죄가 남아있다며 지옥에 가면 어떡하지?

A: 히10:10에 내가 거룩하게 되었다고 약속했다. 

증거: 주는 영원히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할 수 없으리라 딤2:13

Q: 믿어지긴 했는데 왜 이렇게 간단하지? 

A: 모든 일은 하나님이 2천년 전에 미리 다 해놓으신것이기에

증거: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일4:10

Q; 히10:10 한 구절 믿어졌다고 구원을 받아? 

A: 육체가 태어날 때 정자 하나만 난자에 들어가면 되 듯이 영혼이 태어날 때도 말씀 하나만 들어오면 된다. 

증거: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리고 깨달았다. 이 성경의 내용이 다른 사람들 얘기가 아니라 나와 하나님 사이의 얘기란 것을.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사탄)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앱2:1~9

내가 이렇게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지난 5년동안 내가 구원 받지 않았다는 것을, 거듭나지 않았다는 것을, 하나님 자녀가 아니라는 것을,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 크리스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장님이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요9:41 

지난 5년간 내가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고, 아무리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생활이 올바르게 바뀌었어도 장님이라는 것을 알고있었기에 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아직 완벽한 죄사함이 믿어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다시말해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다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아마도 본인이 구원을 받은 경험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 의하면 그것은 큰 죄이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대충 살짝)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화롭다 평화롭다 하나 평화가 없도다.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사탄)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6:14~15 

난 이제 백보좌 심판(계20:12)에 가지 않기에 지옥에 가지 않는다. 아니 갈 수가 없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

하지만 난 아직 두렵고 떨린다. 나에겐 구원 받은 사람들이 받는 심판, 그리스도 예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후5:9~10 

또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상 잘못 살 때 마다 아버지 하나님의 징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아요 참아들이 아니니라. 히12:7~8 

빌 2:12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열심히 노력해서 구원을 얻으라는 말씀이 아니다. 받은 구원을 잘 키워나가라는 말이다. 그래서 킹제임스 성경엔 Work out your own salvation으로 표현되어있고 그 번역본인 흠정역에는 ‘너희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라고 되어있다. 

히브리서, 베드로전후서, 야고보서, 요한일서, 요한계시록 등은 우리 이방인 주수신자로 위해 쓴 글이 아니라 7년대환란에 복음을 전할 유대인 144,000들을 주수신자로 해서 쓴 글임을 명심해야한다. 이 편지들도 우리가 열심히 읽고 공부해야하지만 여기에 구원을 우리의 노력으로 얻거나 우리의 잘못으로 잃어버릴 수 있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는 구절들은 예수님의 아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쓴 글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유대인들이 처한 상황은 우리와 달라서 구원에 관한 한 우리는 사도바울의 편지를 참고해야한다.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하려 함이라 갈2:8~9 

할례자(유대인)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이방인)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고전7:18

난 지금 두렵다. 다른 거듭난 사람들에 비해 내 믿음이 너무나 작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세상 모든 씨들 중에 가장 작은 겨자씨를 비유해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하셨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눅17:6

하나님께서 내게 확신이 넘치는 뜨거운 믿음을 주시지 않고 겨자씨 만한 믿음을 주신 것은 구원을 받고 교만해지거나 나태해지지 않게 해주시라고 기도한 것에 대한 응답이라 생각한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바울의 말씀처럼 내 안의 겨자씨가 큰 겨자나무가 되도록 ‘서로 사랑하라’라는 계명 아래 교제속에서 잘 커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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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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