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

                                                                                  존 필립스


                                            CHAPTER 12

 

                                    교제의 기쁨

                           The Enjoying the Fellowship


   "교회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일반인들의 견해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견해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일반인들의 교회에 대한 개념은 대략 이렇습니다. 주후 2내지 3세기경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한 이래 약 천년동안 로마교황이 지배하고있는 캐톨릭과 캐톨릭으로부터 분리된 희랍정교회(동방정교회), 그리고 15세기,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을 시작으로 영국, 스위스, 독일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 종교개혁가들에 의해 생겨나게 된 수많은 종파, 교단 독립교회들, 그리고 현재까지 전 세계에 분산되어 발전되어 온 모든 교회들, 이들을 총망라하여 교회(church)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교회일까요? 아니면 전 세계의 기독교로 묘사되는 것이 더 나을까요? 교회는 무엇일까요? 신약성경은 이것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본과를 통하여 조심스럽게 연구해 보고자 합니다.


   교회의 신비 (The Mystery of the Church)


   구약 성경은 교회에 대해 직접적인 계시를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영적인 면에서 다양한 형태로 교회의 그림자가 숨겨져 있었지만, 그러나 구약시대에는 교회는 숨겨진 비밀이었습니다. 교회의 출현, 성격, 그리고 확장의 과정에 대해서는 신약 성경에만 계시 되어 그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가리켜 비밀(a mystery)이라고 하였습니다(엡 3:9-10; 5:32). 여기에서 말하는 비밀이란 어떤 불가사의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전 시대에는 감춰져 있던 것, 인간의 이성이나 논리에 의해 일찌기 발견되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님에 의해 비로소 우리 인간들에게 밝히 계시되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신약에서는 여러 가지 비밀(신비)들을 말씀하고 있는데, 교회는 이 비밀들 중의 하나입니다.

   신약성경은 하나님께서 오순절(주 예수님의 부활로부터 50일째 되는 날, 주님의 승천 후 10일 째 되는 날)에 탄생시키신 교회를 세 가지 비유로 우리들에게 설명합니다.


   1. 교회는 몸과 같다 (The Church As a Body)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의 살아있는 몸과 같습니다(고전 12:12-27; 롬 12:4-5). 몸의 각각의 지체들은 중요하고, 각각 한 성령과 한 생명을 공유하고 있고, 각각 독특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고, 각각 다른 지체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있으며, 각각의 지체들은 한 머리로부터 직접적인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몸인 교회의 머리는 오직 그리스도이십니다.

   여기에서 우리 자신을 검토하고,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정말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한 자인가?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참된 교회에 속한 지체인가? 나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 안에서 다른 거듭난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는 자인가? 나는 나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2. 교회는 신부와 같다 (The Church As a Bride)


   교회는 신랑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엡 5:22-32); 고후 11:2). 사도 바울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을 통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주님은 교회의 신랑이시며, 교회는 또한 주님의 신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자신을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신부인 참된 교회 안에 속한 자인가? 나는 다시 오실 신랑을 기다리는 소망 가운데 살아가며, 그를 매일 사모하고 사랑하며, 신부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가? 과연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은 진정한 거듭난 그리스도인인가?


   3. 교회는 건물과 같다 (The Church As a Building)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기초 반석이 되신 건물과 같습니다(엡 2:19-22; 고전 3:11; 10:4). 우리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교회를 위하여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마태 16:17-19). 그렇지만 주님은 그리스도이신 자신의 기초(반석)위에 교회를 세우실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주님은 자신을 반석(the Petra, a Rock)이라 부르시고 베드로는 한 개의 작은 돌(a petros, a piece of rock, a pebble, a stone)이라 부르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4-8절을 보면 베드로는 그 차이를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여 세워진 것이라는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교회에 속한 작은 산돌들입니다(벧전 2:5; 엡 2:20-22). 사도 베드로 역시 주님의 교회의 한 개의 산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를 첫 번째 교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주님 자신이나 신약성경은 교회의 기초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심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고전 3:10-11; 엡 2:20). 여기에서 자신을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과연 그리스도께서 반석이 되신 교회에 속하여 있는가?

   이상의 교회의 개념은 매주마다 모여 신부나 목사의 집례에 따라 종교 의식을 거행하는 특정 장소로서의 교회의 개념과는 매우 다릅니다. 사실 그런 통속적이고 잘못된 교회의 개념은 문화, 역사, 전통, 배경에 의해 만들어져왔습니다. 진정한 교회의 개념은 신약성경에 의해 정립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형태 (The Mirror of the Church)


   지금까지 우리는 우주적인(universal aspect) 교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주적인 교회는 현실적으로 볼 수 없는 교회입니다. 우주적인 교회의 지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이미 하늘나라에 가 있으며, 땅에 남아 있는 이들도 온 지구상에 널리 흩어져 있습니다. 신약 성경은 또한 지역적인(local-ized aspect) 교회들에 대하여 자주 언급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는 대개 우주적인 교회를 언급하고 있는 반면 고린도서에서는 주로 지역적인 교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지역적인 교회는 우주적인 교회의 축소판입니다. 신약성경 안에서는 오늘날처럼 수많은 교파와 교단들로 갈라진 교회들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지역교회 내에서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한 분열이나 파당적인 운동에 대해서 엄히 정죄하고 있습니다(고전 1:11-17). 다만 신약 성경에는 여러 곳에 있는 지역 교회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롬 16:5, 15,16; 계 1-3장). 또한 같은 지역 안에있는 모임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음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의 여러 서신서들에는 사도시대 당시 여러 지역 교회 안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단과 그릇된 교리들에 대한 대응, 도덕적인 범죄자들에 대한 지역교회 내의 처리, 또 믿는 자들의 영적인 결핍에 대한 도움, 성도들을 바로 세워주기 위한 교훈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역 교회는 불가시적인 우주적인 교회의 연합과 실재, 신비한 교통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가시적인 유기체입니다.


   교회의 구성원 (The Membership of the Church)


   교회란 기독교란 간판 아래 일정한 건물에 모이는 무리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고 거듭나서 성령 안에서 하나 된 자들이 모인 유기체라는 사실을 이미 언급했습니다. 지역 교회는 반드시 이러한 진리를 따라야 합니다. 지역 교회는 오직 거듭남으로써 주님과 연합된 자들로만 구성됩니다. 이렇게 교회의 구성원이 된 각 지체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교회의 사역에 참여하게 되는데, 특히 전도와 양육을 위해 협력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의 초대교회 성도들은 놀라운 간증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감히 그들과 상종할 수 없을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행 5:11-14). 또한 교회는 그 순결을 보존하고  지키기 위하여 엄한 징계로 죄를 범한 지체들을 치리(징계)하였습니다. 지역교회의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러한 훈련과 치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고전 5:1-13).

   그리고 참된 그리스도인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가 필요한데, 이는 지역 교회를 통하여 이뤄지게 됩니다. 교회가 처음 태어나던 날,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삼천 명이나 되는 큰 무리가 일시에 구원을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무리는 즉시 지역교회에 더해지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 2:41-42).


신약 성경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교회안에서 두 가지 중요한 예식을 시행하도록 우리에게 명하셨습니다. 그 첫째는 침례(Baptism)이며, 둘째는 주의 만찬(the Lord's Supper)입니다. 이 두 가지 예식은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주님의 죽음에 동참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주의 만찬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위해 죽으신 우리 주님을 기억하며 묵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침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나 자신도 죽었음을 공적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예식의 시행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성장을 위하여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초대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침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하였습니다(마 28:19-20); 행 8;12, 16, 36; 9;18; 10:47; 16:15,33; 18:8; 19:3). 그들은 주의 날에 모여 떡과 잔(포도주)을 나누며, 우리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서 자신의 몸을 드리신 주님의 죽으심을 묵상하며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고전 11:23-26). 주의 만찬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께로부터 받은 크고 놀라운 사랑과 은혜들을 기억하도록 하며, 은혜에 빚진 자로서 온 몸과 마음을 드려 헌신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롬 12:1-2). 침례와 주의 만찬에 관해서는 엠마오의 다른 교재들을 통하여 더욱 자세히 공부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사역 (The Ministry of the Church)


   주님께서는 각 그리스도인들에게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협력하여 사용할 수 있는 영적 은사들을 주셨는데 그 목적은 "모든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함"(엡 4:11-12)입니다. 신약성경 안에는 능히 기쁨으로 남을 섬기기에 충분한 다양한 은사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고전 12;29). 또 특별한 은사들도 있는데 바로 "사도들, 선지자들, 전도자들, 목사들, 교사들" 입니다(엡 4:11). 사도들(Apostles)과 선지자들(Prophets)의 은사는 초대교회 시대에 성령님에 의해 교회의 기초를 세우기 위해 특별히 부름받은 자들에게 주어졌습니다(엡 2:20; 3:4-5). 이런 은사들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 있어서 오늘날 선교사들이나 설교자들의 사역이 이러한 은사의 역할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도자들(Evangelists)은 성령님에 의해 복음을 전하여 불신자들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구원에 으르도록 돕는 은사입니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생활 간증을 통하여 믿지 않는 자들에게 주님을 증거할 책임과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도자는 믿지 않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주님께로부터 특별히 은사를 부여받은 자들입니다 목사들(Pastors)은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필요를 도와주는 특별한 은사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목자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교사들(Teachers)은 성령에 의해 성경의 진리와 교리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분명하고 바르게 깨우쳐 주는 특별한 은사를 받은 자들입니다.


   또한 지역교회는 집사들과 장로들의 사역이 필요합니다. 집사들(Deacons)은 지역교회 안에서 주로 비영적인 일이나 일반 사무적인 일들을 지혜롭게 처리하는 은사를 가진 자들입니다(행 6:1-7, 딤전 3:8-13), 장로들(Elders) 혹은 감독들(Bishops)은 지역교회 성도들의 영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특별한 은사들을 부여받은 자들입니다. 이런 은사의 자격들에 대해 성경은 분명히 교훈하고 있습니다(딤전 3:1-7; 디도 1:5-9). 사도 베드로 역시 자신이 장로들 가운데 하나임을 말씀하고 있으며(벧전 5:1-4), 그는 장로의 은사를 맡은 자들에게 "맡기운 자 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말씀 선포 (The Message of the Church)


   지상의 교회는 잃어버린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대사입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향하여 그리고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을 향하여 말씀을 선포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들을 향해서는 신약의 중요한 진리들을 가르침으로써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믿음을 건축해 나갈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합니다(유다 20절). 이러한 가르침을 사도들의 교리라고 부릅니다. 교회는 성경 속에 감추어진 위대한 진리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밝혀내어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모든 잃어버려진 자들을 향하여 우리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구원의 길과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증거해야 합니다.

   교회가 선포해야 할 말씀은 반드시 성경에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더 보태거나 뺄 수 있는 권위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계 22:17-19). 교회는 그릇 가르치는 자들을 주의하여 살피며 경계하고 이러한 자들을 제거해야 합니다(롬 16:17-18; 갈 1:6-9; 골 2:4-23).

   교회가 선포해야 할 말씀은 그리스도 중심이어야 합니다(고전 1:23-24).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증거하여야 합니다(고전 2:4, 13). 중요한 여러 진리 가운데, 무엇보다도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의 선포가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들 되심, 동정녀 탄생, 신성과 인성이 함께 조화 된 흠 없고 놀라운 생애, 속죄를 위한 죽으심, 육체적 부활, 승천, 하나님 우편 보좌 앞에서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중보사역, 재림에 관한 진리 등을 선포해야 합니다.


   교회의 선교 사명 (The Mission of the Church)


   이 지상교회는 잃어버린 죄인들을 구원하는 전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주님은 어느 때에도 이런 것을 계획하신 일이 없습니다. 교회란 낱말은 희랍 원어로 에크레시아(ecclesia)로써 "밖으로" (ecc)란 의미와 "불림을 받음" (lesia)이란 의미의 합성어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란 곧 "밖으로 불림을 받은 무리"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이러한 성격을 분명히 나타낸 좋은 예로서 초대교회 예루살렘 회의 중에서 야고보가 사도 베드로의 선교 보고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언급했던 말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처음으로 이방인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들을 '이끌어 내신 일'을 시므온이 우리에게 밝히 드러냈으니" (행 15:14).

   활동적인 지역교회들은 자기 나라 안에서와 해외에서 활발한 선교활동들을 펼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세상에는 아직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은 지금도 그리스도 밖에서 영원히 잃어버린 상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해야 할 선교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승천 하시기 직전 그의 제자들에게 선교의 사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명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8-20).

   모든 교회는 이러한 선교 사역에 참여해야합니다. 우리 모두는 일어나서, 길 건너편의 우리의 이웃이나, 버스 안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그밖의 누구에게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며, 우리의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혹은 누군가는 직접 먼 나라에 나가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드려 교회의 선교활동을 도우며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선교의 책임에 대해서 성경은 수없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하여 초대교회의 선교 현황과 사도바울의 선교 활동에 대해서 기록한 것들을 직접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롬 15:14-33). 한 순간도 쉼 없이 오직 잃어버린 영혼을 향하여 열정을 다 했던 사도 바울의 맥박 위에 손을 얹어 보십시오. 빌립보서 3장 13절에서 그는 "형제들아 나는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얻기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말하였습니다. 그가 이 서신을 기록할 당시 그는 이미 갈라디아와 소아시아 지방과 마케도니아와 희랍 지역에까지 복음을 전파하였으며, 수많은 도시에 주님의 교회들을 일으켰고, 수 천 명의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였으며, 수많은 남녀들을 선교 사역에 동참하도록 큰 감화를 끼쳤습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대 사역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한 일이 단지 시작에 불과 하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모든 제자들은 배반자 가롯 유다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은 해외에 교회를 세운 제자들의 사역, 그 교회들의 성장, 그들의 역동적인 활동, 그리고 헌신적으로 선교에 동참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으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우리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사도행전을 통하여 장차 이루게 될 교회의 청사진이 되었습니다. 신약 성경 마지막 부분에 있는 성령님의 초청의 말씀은 전도 사역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수를 받으라" (계 22;17).

   "오라(come)" 성령님의 이 놀라운 메시지는 바로 오늘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복음의 초청입니다.


   교회의 운영 (The Methods of the Church)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세상적인 방법은 주님의 교회 운영에 끼일 곳이 없습니다. 지상의 교회는 이 세상과 짝하지 않으며, 세상에 예속되지도 않으며, 세상적인 방법을 취하지도 않고, 세상의 운영 방식을 모방하지도 않습니다. 지상의 교회의 운영권은 전적으로 성령님께서 소유하셔서 그분의 계획과 능력이 지상교회를 통하여 이 세대에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의 운영은 반드시 영적이어야 하며, 육적인 것을 배제하고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고후 10:4). 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힘을 빌려서는 안 되며, 불신자들의 후원을 원해서도 안 됩니다(고전 1:26-29; 2:6-8; 요한 3서 7절). 또한 교회는 세상적인 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타국과 같은 이 땅 위에 심기워 졌습니다. 그 뿌리는 하늘에 두고 있으며, 위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교회가 하늘의 기준보다 더 낮은 기준을 따를 때, 세상의 멸시와 혐오감을 받았고, 하나님과 인간 모두에게 그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모든 역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신약 교회의 표준을 따르는 지역 교회를 찾아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아마 당신은 지상에서 완전한 교회를 찾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지역 교회든지 간에 불완전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배우고 살펴보았던 교회들 중 가장 표준에 가까운 교회를 당신은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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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믿음에 있는가

                         시험하고 확증하라


                              생명 없는 허수아비 신자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복음 5:24).


   기독교와 비기독교와의 확실한 차이가 무엇인가? 생명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닌가?

   영생이 무엇인가? 영원한 생명의 약자(略字)이다(요한일서 2:25). 우리의 자랑이 무엇인가? 생명이 아닌가? 눈이 있어 길을 다니나 참된 길이 되신 주님을 보지 못하던 소경이요, 세상 만물을 보고 있으나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를 알지못하던 살았다 하나 죽은 자가 아니었던가? 이와 같이 죽은 생명이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랑이 아닌가?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는 오늘의 기독교인이 생명을 얻지 못하였다면 이는 진정 슬픈 것이다.

   누구보다도 필자는 생명 없는 종교인 생활을 17년이나 하였던바 이 일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다. 서두의 제목을 보면 허수아비 신자들을 제시하였다. 허수아비는 모양은 틀림없이 사람이라서 논 가운데 세워두면 참새가 처음에는 속으나 조금 시간이 지나 생명 없는 것이 드러나면 그 때는 생명 있는 참새를 속이지 못한다.

   오늘의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자의 모양은 가졌으나 생명이 없으므로 사단의 조롱거리요 장난감으로 전락하여 사단에게 평생 농락당하다가 지옥에 가는 것이다. 지옥에 가서야 이 사실을 깨달을 터이니 그 절망이 어떠하겠는가?

   여기서는 사단에게 농락당하는 생명 없는 기독교인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보고자 한다.

   생명 없는 종교인들의 첫 번째 모습은 성경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생명 없는 신자들은 생명이 없으므로 성경의 의미를 도무지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혹 깨닫는다 할지라도 더듬는 수준이니 그 답답함이 얼마나 하겠는가?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성도는 구원의 즐거움을 이기지 못하여 동네의 선배 목사님에게 가서 " 나 구원 받았다" 고 간증하였다. 그는 신앙경험이 아주 적었으므로 그가 당연히 구원 받았으리라 생각하고 간증하였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은 기가 막힌 말이었다. 함부로 구원 받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시한 말씀은 빌립보서 3장 12절의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를 인용한 것이었다. 그 성도는 교회 출석 경력이 많지 아니하므로 어리둥절하여 집에 돌아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여 다시 그 말씀을 살펴보니 믿는 성도들의 상급에 관한 말씀인 것이 분명하였다. 그가 영적인 아이라도 깨닫는 것을 목사님도 더듬고 있는 것이다.

   생명 없는 죽은 신자는 지도자건 평신도건 소경일 뿐이다. 수많은 신자들이 죽은 자들이므로 성경이 깨달아지지 아니하므로 고통 당하고 있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 열심인 신자들이 여호와 증인을 비롯한 드러난 이단들에게 미혹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경의 무지에서 오며, 생명 없는 죽은 신자이기에 오는 것이다.

   생명 없는 거짓 신자에 대하여 성경은 여러 경로를 통하여 언급하고 있다. 일찍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사역을 예언하면서 쭉정이에 관해서 언급하였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태복음 3:12).

   "쭉정이", 이것의 정체가 무엇인가?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생각하기를 열심 없는 기독교인들이라고 생각한다. 진실로 그러할까? 그러면 기독교의 열심 있는 신자들은 여기에 해당 없는가? 정말 그러할까? 아니다. 분명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차이다. 알곡과 쭉정이는 생명의 차이다. 농사를 지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쭉정이는 죽은 곡식이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대단한 열심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감동시킨 모습으로 보일지라도 생명 없는 쭉정이일 수 있다.

   말씀 부분에 관해 더 생각해 보자! 필자가 여호와 증인에 관해 언급하였거니와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유치하고 억지인가는 거듭난 생명 있는 신자라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들이 삼위일체를 부인하거니와 성경은 너무도 명확한 증거들을 말하고 있다. 생명은 성경을 깨닫는 능력인 것이다.

   전도하면서 성경에 대하여 너무도 모르는 신자들을 만나 왜 그토록 성경을 모르냐고 물으면 "우리가 전문가도 아닐 뿐 아니라 바빠서 언제 성경을 배울 수 있겠는가" 하고 반문한다. 그러나 이것은 전문가의 문제가 아니고 생명의 문제이다. 영생을 얻으면 살았으므로 자연히 성경이 깨달아진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요 당연한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젖을 찾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당연한 것이다.

   생명 없는 신자의 두 번째 모습은 무엇인가? 그것은 말씀에 대한 감각이 없다는 것이다. "말씀에 대한 감각을 느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거듭난 것은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하고 두려워하여 순종하는 것은 거듭난 자의 당연한 변화이다.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고, 사도들은 자기 시대를 다 보내고 부활을 기다리고 있으며, 오직 지금은 그분들에 의해서 남겨진 성경과 성경을 깨닫게하는 성령님이 역사하실 뿐이다. 현대의 기독교에 있어서 성경의 권위가 세워지지 않고는 결코 바른 교회가 세워질 수 없다. 사실이 그러한데 현실은 어떠한가? 성경에 대해서 지나치게 무지할 뿐 아니라 알아도 순종치 아니한다.

   필자는 어떤 경우에 성경의 진실한 가르침을 말하면 그들은 자기 교회의 체제를 이야기하거나 목사님의 가르침이 제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이 만든 제도나 사람의 가르침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은 성경에 대한 깨달음이 있기보다는 귀동냥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얻어들은 지식이 전부이다. 그들의 실제적인 고백도 그러하다. 자세히 말씀으로 개인 교제를 하고나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자기 교회에서는 들어보지 못했으며 자신은 주일날이나 수요일 예배시간에 간단한 설교 듣고 집에 오면 그만이었다고 고백한다. 말씀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알아가는 것이 생명있는 자의 기쁨이다. 그러나 생명 없는 이들의 이야기는 사람이 만들어낸 제도와 그들의 이야기를 더 높이되 심지어 말씀의 내용과 반하는 이야기에도 말씀보다 사람의 말을 더 따라가는 실정이다!

   제도를 이야기하였거니와 생명 없는 사람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제도와 조직이 필요할 뿐이다. 무슨 뜻인가? 생명 없는 마네킹을 생각해보자! 마네킹 10개를 세워놓고 아무리 말해도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이리저리 옮겨놓으면 움직이는 피동적인 물체일 뿐이다. 그러나 생명 있는 사람을 세워두고 있으면 자신의 분별력을 가지고 움직일 것이다. 생명이기 때문에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다. 제목처럼 허수아비는 생명이 없으므로 언제든지 거기에 머물 뿐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생명체이므로 성경을 읽고 깨닫고 존경하고 순종하고자 한다.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면 마음이 불편하고 주님 앞에 죄송하며 스스로 고통스러워한다. 이것이 생명이요 생명의 활동이다. 오늘날 생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종교인들을 모아놓고 조직을 만들어 인위적인 방법으로 교회라는 이름을 붙이고 운영을 해나가면 다 교회인줄 아는가? 참된 교회는 거듭난 생명체들이 모여 조직과 규칙이 없어도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아름다운 성경적인 교회를 이루어 나아간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생명 있는 자들의 특징은 성경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으면 양심에서부터 통증을 느끼는 것이다. 산사람이 꼬집으면 통증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죽은 자에게 무슨 통증이 있겠는가? 성경을 읽으면서도 들으면서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며 사람의 말을 주의 종의 말이라는 미명 아래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숭배하는 오늘의 현실은 기독교에 사람 우상이 깊숙이 침투해 있는 증거인 것이다.

   세 번째로 생명 있는 자는 생명의 근원을 안다. 생명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피에 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보면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생명의 근원이 피에 있으므로 구약이 지시하는 동물들의 피로 말미암아 믿음의 선진들은 부지런히 속죄의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사는 한계가 있으므로 우리의 죄를 영원히 속죄하지 못했다. 히브리서에는 이와 같은 구속의 진리가 분명하게 다루어져 있다.

   "염소와 황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히브리서 10:4).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 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히브리서 9:12).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죄인의 모든 죄를 영원히 사하사 죄인에게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권한을 주셨는데 이것이 영생, 즉 영원한 생명이다. 생명의 근원은 주님의 피가 되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필자가 교파를 초월하여 누구를 만나든지 생명의 근원되는 피의 공로를 사랑하는가를 살펴보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피의 능력을 알고 전하고 사랑하며 자랑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어떤 집사님을 만나서 대화한 내용의 일부를 소개해 보고자한다. 필자는 "거듭난 경험이 있느냐"고 질문했다. 그는 당연히 거듭났다고 대답했다. "어떻게 거듭났느냐" 고 물으니 "예수님을 믿으니 거듭났지 않는냐? 구원은 믿음으로 되는 것이니 당연히 구원 받았으며 거듭났다"는 대답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거듭남에는 증거가 있지 않겠는가?" 하니 "그냥 믿으면 되지 무슨 증거가 필요하느냐"고 불쾌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덧봍이기를 자기도 처음에는 교회에 나가면서도 하나님의 존재를 잘 믿지 못하였는데 질병으로 인하여 큰 어려움을 겪고 난 뒤에 확실히 믿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기는 마음속에 주님을 틀림없이 믿으니 구원 받았다고 주장했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

   그러나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아니한 것을 생명 있는 자는 이미 알고 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고 영혼의 생명은 십자가의 피에 있다. 거듭난 사람들이 피를 사랑하고 피를 전파하고 피를 노래하는 그 감격을 아는가? 바울은 이 일에 교회들에게 보낸 서신 여러 곳에서 외치고 있다. 피의 가치를!(로마서 3:25, 에베소서 1:7, 골로새서 1:20, 히브리서 9:11~22 등). 그는 단정코 외치기를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다"(히브리서 9:22)고 하였다.

   거듭난 경험 있는 어떤 찬송가 저자는 피의 속죄가 맘속에 증거가 된다고 찬송하고 있다 (찬송가 186장 5절). 그리고 184장에서는 더욱 강력하게 피를 증거하고 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다시 성케 하기도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나를 정케 하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사죄 하는 증거도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이 얼마나 놀라운 찬송인가! 이외에도 수많은 찬송들이 피의 공로를 증거하고 있다. 교회사 2000년 동안 수많은 시인들이 십자가의 피 공로를 노래하였다. 그렇다. 거듭난 생명은 피의 가치를 안다. 거듭났다고 말하거나, 구원을 주장하거나, 영생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말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의 가치를 양심과 인격으로 깨닫고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대의 모든 죄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로서 깨끗하게 씻음 받았는가? 그렇다면 그대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확신해도 좋을 것이다. 그 책은 생명 있는 자들의 이름만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독자여,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을 부여 받은 생명체들의 모임이다. 그래서 교회라는 단어의 뜻도 "에클레시아"라고 하여 "불러낸 무리"라는 뜻이다. 생명 있는 자들이 따로 모여 생명의 교제를 나누는 신성한 모임인 것이다. 만약 이글을 읽는 독자 중에 생명의 활동이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나지 않고 있다면 그대의 영원을 위해서 자신의 구원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생명 없는 허수아비 신자, 쭉정이 신자가 아닌지 자신의 구원 문제를 냉정히 검토해 보아야 한다. 생명 없는 자가 아무리 열심히 하나님을 섬긴다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한복음 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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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의 원리

                                                                  월리암 맥도날드 저

 

   머리말

   이 책은 새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쓰여 졌습니다. 이 책의 목적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가운데 성장하는 법을 알기 원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입니다. 많은 말씀들이 이 부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의 말씀들은 매우 주의 깊게 살펴보며 읽어야 합니다. 인용된 성경구절들은 강조체로 되었고, 일반적으로 한글 개역성경에서 인용했습니다. 여기에서 당신은 거듭난 결과와 확실하고 영원한 구원의 사실을 배우게 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유혹을 이겨나가는 방법과, 기도와 전도와 성경연구 등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해 성경말씀으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공부는, 주님이 당신의 마음을 열어 그의 말씀을 통해 당신에게 가르치고자하시는 진리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도함으로써 시작하십시오. 최소한 두 번 이상 읽으십시오. 한번은 내용의 개략적인 흐름을 위해서 한번은 연구하기 위해 천천히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본문에 언급된 모든 성경구절들을 찾아서 직접 확인해보고 모든 각주들을 조사하며 읽으십시오.

 

   1장 거듭남의 결과들

 

   사람이 거듭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먼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령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그 죄를 벌하셔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죄에 대한 형벌은 "지옥"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로 영원히 고통 가운데 사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결국 자신은 죄인이기 때문에 이 죄에서 자기 자신을 구원해 줄 구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하여 이미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 대신 죽도록 십자가에 내어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죄인은 자신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 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어서 이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 성령께서 이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고 의지하도록 도우십니다. 이 죄인이 그 마음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가 그리스도께 자신의 구주와 주님이 되어 달라고 요청할 때, 그의 죄는 용서되어집니다. 이 때 성령께서 그 마음의 진실함을 아시고 능력을 베푸셔서 그에게 생명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이 죄인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을 치시고 그 안에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에 그는 거듭나게 되며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죄인이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가 되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삶의 시작일 뿐입니다. 성경은 이 외에도 많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중 열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삼았기 때문에 그를 받아들이십니다. 에베소서 1:3, 6을 보면 하나님 곧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자안에서 우리를 받아들이셨습니다. 여기서 "사랑하시는 자"는 그 분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그의 아들을 보시고, 그다음에 그리스도인을 보십니다. 그 분은 그리스도인들을 자신의 아들에게 속한 사람들로 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 안으로 들어오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에 기뻐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서 환영받으시는 한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께 환대를 받습니다. 이것은 영원합니다(엡 2:6~7)

 

   2.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요 1:12). 만일 당신이 위대한 사람이나 왕 또는 대통령의 자녀가 된다면 얼마나 영광스럽겠습니까! 전능하신 창조주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이보다 얼마나 더 영광스러울까요! 당신은 그 분 가족의 일원이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3.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 의해 의롭게 되었습니다(롬 5:1, 8:30, 33). 의롭게 되었다는 것은 죄 사함 받았다는 것 이상입니다. 죄를 범한 사람은 죄 사함을 받기는 하지만 의롭게 되지는 않습니다. 이와 같은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어떤 사람이 이웃의 돈을 훔쳐서 법정의 판사 앞에 끌려갔습니다. 그 사람은 유죄로 판명되었고, 그는 감옥에 가야만 하게 되었는 데, 바로 그때 한 친구가 그 법정에 나타났습니다. 그 친구가 말하기를 "만일 이 사람을 자유롭게 해 준다면 내가 이 사람의 빚과 도둑질에 대한 벌금을 다 지불하겠소."라고 했습니다. 재판장은 그렇게 하는 것에 동의하고, 도둑질했던 사람은 법정을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에게 여전히 죄가 있지만 그의 범죄로 인한 형벌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를 위해 벌금을 내 주었기 때문에 그는 용서받고 형벌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의롭게 된 것은 아닙니다. 그의 죄악 된 행동은 여전히 남아 있고 사람들은 그가 도둑임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나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죄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지은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 6:23).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을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 분의 죽음이 믿는 자들의 죄에 대한 값을 지불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시고, 그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심판을 결코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엡 1:7, 요 5:24).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의롭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를 과거의  어떤 죄악 된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새로운 사람으로 보시기 위해 그의 죄를 완전히 제거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마치 그를 한 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는 사람처럼 여기십니다.

 

   4. 그리스도인의 몸은 성령님을 위한 집입니다(고전 6:19). 성경은 하나님이신 성령님께서 거듭난 각 사람들 속에 거하신다고 가르쳐 줍니다(요일 4:13). 그리스도인의 몸은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 혹은 집입니다. 믿는 자는 그의 속에 성령님께서 거하시므로, 언행과 그가 가는 장소 등에 주의해야 합니다. 

 

   5. 그리스도인은 참된 교회의 구성원이 됩니다. 이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행 2:47). 이 세상에, 참된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보다 더 영광은 없습니다. 이 교회는 전 세계의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묘사되고 있는데(골 1:18) 이 "몸" 은 이 땅에 있고 "교회의 머리" 이신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십니다.

 

   6.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롬 8:17). 상속자는 어떤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재산을 물려받게 되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많은 땅과 어마어마한 돈을 가지고 있던 부자가 죽는다면, 이러한 부자의 재산들은 그의 아들들에게 분배됩니다. 그들은 그의 상속자들로서 부자인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분은 우리가 살고 있는 땅과 해와 달과 별 등의 하늘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죽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언젠가 그분은 그의 모든 보물들을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는 모든 거듭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상속자라고 일컬어지는 것입니다.

 

   7. 그리스도인은 성도라고 일컬어집니다(롬 1:7). 성경은 구원받은 자들을 성도 혹은 하나님 백성이라고 부릅니다. 성도는 성령님께서 하나님께 속했다고 선택한 사람입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을 위한 특별한 사람으로 믿는 자들을 구분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을 바라 보십니다. 그 분은 먼저 그리스도를 보시는데, 그리스도는 거룩하십니다. 그리스도는 결코 죄를 짓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거룩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의 거룩으로 옷 입은 자들"로 보십니다(고전 1:2). 이렇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매우 특별한 사람, 즉 성도인 것입니다.

 

   8.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합니다(골 2:10).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전" 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해 더 이상 해야 할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의미합니다. 물론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 안에서 완전하지 못한 것들과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모든 기준을 만족시켰는데, 그 분은 완전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신자들을 보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먼저 그리스도를 보시고 만족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는 자들을 보시고 역시 만족해하십니다. 이것은 믿는 자들이 완전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합니다.

 

 

   9. 그리스도인들은 신의 성품을 받았습니다(벧후 1:4).

   이 거룩한 성품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모든 사람은 인간적인 성품을 그들의 부모로부터 받습니다. 이 성품은 인류 대대로 전해 내려온 아담의 죄악된 성품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두 가지 성품이 있습니다. 즉, 태어날 때 받은 자신의 인간적인 성품과 거듭날 때 받게 된 거룩한 성품입니다. 이 거룩하고 새로운 성품은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에 대해 알고 싶어 하도록 만듭니다. 그는 자신들에게도 하나님과 그리고 자신들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새로운 사랑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 안에 있는 거룩한 성품은 그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도록 합니다(골 3:10, 고후 3:18).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자녀들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10.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키신다는 것을 알고 즐거워합니다(롬 8:28).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유익이 되는 일들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십니다. 그 중에는 기쁜 일도 있지만 시련과 시험도 믿는 자들에게 더 깊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이러한 일들은  믿는 자들로 하여금 그 분께 더욱 가까이 가게 합니다.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은 그 자녀들이 하나님의 길을 이해할 수 없을 때조차도 인내하고 그분을 신뢰하도록 가르치십니다(롬 5:3~5).

 

   이상,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몇 가지 놀라운 일들을 소개했습니다. 이런 일들로 인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1.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대해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 분을 찬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나타납니다(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는 12장에서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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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엠마오성경학교 사명(Misson)

 

   엠마오 성경학교는 성경강좌용교재들과 성장을 위한 보조교재들의 형태로 원거리에 있는 학생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전파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여기에 사용되는 성경강좌용 교재와 성장용, 전도용 보조교재와 소책자들은, 성령께서 학생들을 성경공부와 성경연구를 통하여 진리로 인도하심에 따라, 생명의 구원의 복음으로 전 세계를 복음화하여 교회진리에 따라  성경이 가르쳐주는 초대교회의 본을 따라 모이는 참된 교회를 심고 생명의 진리의 말씀으로 교회를 양육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할 목적으로 편집되고 준비되었습니다.

 

   ECS(엠마오성경학교)의 시작

 

   엠마오성경학교는 1942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통신학교로 처음 시작하였습니다. 개인적인 성경공부에 대한 관심과 필요가 점점 커가고 있는 당시의 분위기에 맞추어서, R. E. 할로우(R. E. Harlow), 존 스마트(John Smart), 그리고 C. 어네스트 타담(C. Earnest Tatham)박사는 각 강좌과목 단위로 12과를 만들고 각과마다 10개의 문제를 개발하여 각 강좌과목 교안을 기초로 하여 과목별로 책자를 만들었습니다. 당시에는 많은 지역에서 성경학교가 많은 사람의 기대 속에서 새롭게 세워지고 있는 것이 시대적인 추세였지만, 이런 추세에 부응하지 못하고 성경학교에 직접가서 공부할 수 없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에 직접 가지 않고도, 각 가정에서 직장을 유지하면서도 일과 후 자신의 시간을 쪼개고 아껴서 성경학교 과정을 통신으로 마칠 수 있는 매우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성경학교 프로그램을 제공하였습니다. 최초의 통신강좌는 엠마오성경학교 설립자들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남아 있는 빈방에 마련한 사무실에서부터 통신수업을 위해  교재를 발송함으로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그 때 시작하는 첫 달에는 137명의 학생들이 당시 개설된 3과목의 강좌 중 한 과목을 선택하여 등록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소규모로 조용하게 시작된 엠마오성경학교는 이제는 수 백개의 지역에 지역별 엠마오 성경학교가 세워지고 확장되어질 정도로 상장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엠마오강좌가 125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세계 110개 국가에 169개 엠마오성경학교를 통해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엠마오성경학교 성경학생들에게 연간 145만권의 엠마오 성경학교 성경강좌에 등록하여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줌으로써 매우 큰 유익을 주는데 까지 발전하였습니다.

 

   1949년, 엠마오 성경학교 통신강좌를 해외로까지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2개의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엠마오 성경학교 교장 윌리암 맥도날드가 통신강좌 과정을 통하여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통신강좌를 보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게 된 것이고, 또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던 중에, 엠마오 성경학교 강좌교재 중 가장 인기 있는 과목 중 하나인 성경의 기본진리(What the Bible teaches)를 몇 명의 엠마오성경학교 스탭 멤버들이 마음을 하나로 모아 교재를 만든 것입니다. 이 한 권의 책으로도 많은 사람이 진리를 깨달아 참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사건이라고 한다면, 필리핀 선교사로 나가 있던 시릴 브룩스(Cyril Brooks)가 DZAS 라디오 방송국을 설립하여 이 방송국을 통해서 이 과목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신청서를 써서 방송국에 보내준 청취자들에게 책자를 보내주어서 방송수업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25년간 백오십만(1,500,000)권의 강좌가 필리핀 전 지역에 보급이 되었습니다! 필리핀에서 시작한 그 이듬해부터  R. E. 할로우(R. E. Harlow)박사의 지치지 않는 헌신적인 노력과 개척선교 사역을 위한 엠마오 성경학교 해외 통신강좌는 전 세계 모든 대륙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는 전 세계 권역별, 국가별, 지역별 엠마오 성경학교 지역책임자 또는 교장들이 그들의 학생들과 함께 공히 전 세계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전 세계 엠마오 성경학교 교육, 문서, 선교 사역의 일부가 되어버렸습니다. 한국은 1965년에 맥카피(Wilber McAfee)선교사에 의하여 수원에서 앰마오 성경학교 통신강좌가 시작되었고 이듬해 1966년부터 윌리암 롤라(William Roller)선교사와 찰스 화이자(Charles Fizer)선교사와 워렌 던햄(Warren Dunham)선교사에 의해서 서울에서 한국엠마오 성경학교가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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