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달러에 회사 인수…연매출 60억달러로

[미주중앙] 입력 2015.05.29 05:18 / 수정 2015.05.29 05:19

포브스, '최고 여성 CEO' SHI 타이 이씨 심층 인터뷰

 
미 소수계 소유 기업 '톱 3' 여성 억만장자 18명에 포함
고객 서비스에 최우선 두고 망해가던 회사 최고로 키워


SHI 인터내셔널. 1989년 설립된 소프트웨어·하드웨어를 구입 및 재판매하는 IT 기업이다. 연매출 60억 달러, 자산 18억 달러(추정) 규모다. 이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여성이다. 미국 내 여성 소유 기업 중 가장 크고 소수계 소유 기업 톱 3 중 하나다. 이 기업을 한인 여성이 이끈다. 주인공은 타이 이(Thai Lee·56·사진) CEO. 그는 미국 내 자수성가한 여성 억만장자 18명 중 한 명이다. 포브스가 뉴저지 서머셋에 있는 SHI 본사를 찾아가 그와 심층 인터뷰한 기사를 27일 보도했다. 이씨의 성공스토리를 소개한다.

내 비즈니스를 하자= 태국 방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국의 유명 경제학자.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0대에 미국에 왔다. 암허스트 칼리지에서 생물학과 경제학을 복수전공했다. 하지만 전문직 취업이 쉽지 않았다. '성공하려면 내 비즈니스를 하는 게 최상이겠구나.'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서 MBA를 받았다. 한국에서 자동차 부품 제조사인 대성산업, 미국에서 프록터&갬블(P&G),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등에서 일했다. 창업에 필요한 경험을 쌓기 위해서다.

시작은 변호사인 남편과의 만남이었다. 남편의 도움으로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비즈니스 라이선스를 파는 소프트웨어 하우스를 100만 달러에 인수했다.

당시 직원은 5명, 거의 망해가는 회사였다. 그는 이름을 현재 회사명으로 바꿨다. 그리고 20년 만에 직원 3000명, 미국과 캐나다, 영국과 독일, 홍콩 등에 지사 30여 개를 둔 회사로 성장시켰다. 고객은 보잉, 존슨&존슨, AT&T 등 1만75000개 기업 및 개인에 달한다.

직원에 권한을 주다= 그는 테크놀로지에 관심이 없었다. SHI를 시작할 당시에는 개인 컴퓨터가 귀했다. SHI에는 재고도 없고 자금도 적었다. 제품 판로도, 유통망도, 마케팅도 없었다. 그런데도 매년 성장했다. 지난해엔 15% 성장률을 기록했다.

성공비결은 최첨단 기술과 거래 노하우가 아니라 고객 서비스 최우선이었다. 사실 IT업계는 거래업체와 고객이 자주 바뀐다. 하지만 SHI 고객 보유율 및 재방문율은 99%에 달한다.

고객 관리에 필요한 결정을 담당 직원이 직접 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사장이라면 고객을 잡기 위해 어떻게 하겠어요. 고객에 대한 책임을 저야 한다면 고객 관리를 위한 결정도 할 수 있어야죠."

고객과 직원은 파트너가 됐다. 고객은 SHI에 신뢰를 보냈고 마음과 지갑을 열었다. SHI의 목표는 2019년 100억 달러 매출 달성이다.

나 없는 회사를 준비하다 = 그는 30대에 사업을 시작하고 40대에 가정을 꾸리겠다는 목표를 이뤘다. 지금은 '포스트-리(post-Lee) SHI'를 생각한다. 지금 회사를 떠난다는 게 아니다. 그 없이도 SHI가 잘 돌아가고 성장할 수 있는 길, 미래에 대한 준비다.

이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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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를 버티게 한 주문 … “언젠가는 괜찮아질거야”

[중앙일보] 입력 2015.05.29 00:33 / 수정 2015.05.29 00:52

2030 청춘들과 토크 콘서트
벤쿠버 금 따고 허탈감에 고통…시합 안나가겠다 떼도 많이 써
어떤 일이든 도전은 용기가 필요
노력하고 집중하면 성공 따라와

 
피겨 여왕’ 김연아가 삼성 주최 ‘플레이 더 챌린지 토크콘서트’에서 강연자로 대중 앞에 나섰다. 김연아는 장난스런 표정과 털털한 자세로 청중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노력을 담담히 들려줬다. [사진 삼성]
‘피겨 여왕’ 김연아(25)가 오랜만에 대중 앞에 섰다. 비록 아이스링크는 아니었지만 무대 위에서 자신의 성장 과정과 도전 정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연아는 28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삼성 주최 ‘플레이 더 챌린지(Play the challenge) 토크콘서트’에서 강연자로 나섰다. 삼성이 주최한 이 행사는 각계 명사들이 20·3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도전의 의미와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5000여명의 관객들로부터 큰 환호를 받으며 무대에 등장한 김연아는 사회를 맡은 가수 윤종신과 대화 형식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지난해 5월 아이스쇼를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김연아는 최근 평창 겨울올림픽 홍보대사 활동과 후배 지도로 여전히 바쁘다고 했다. 김연아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경험하고 느꼈던 것을 이야기하겠다. 가볍게 들어달라”며 호응을 유도했다. 때로는 장난스런 표정과 털털한 자세로 분위기를 가볍게 했지만 피겨 여왕이 되기까지의 경험과 노력을 청중들에게 담담히 들려줬다.

 17년동안 피겨 선수 생활을 한 김연아는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좋은 기억은 순간 뿐이다. 한 대회에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도 길고 힘들었다. 부상도 잦았고, 육체적으로도,심적으로도 슬럼프가 많았다”고 말했다. 특히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중학생 때와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직후를 떠올렸다. 그는 “중학생 땐 성장기여서 몸이 많이 변할 때였다. 스케이트화도 잘 안 맞아서 자주 바꿨다. 그 때마다 엄마랑 자주 싸웠다.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밴쿠버 겨울올림픽 때는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이룬 뒤여서 허탈감이 컸다. 동기 부여가 안 돼서 다음 시합에 안 나가겠다고 떼를 썼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피겨 여왕’으로 끝까지 남을 수 있었던 건 도전의식과 끈기 덕분이었다. 그는 “고난과 슬럼프는 마음만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게 아니더라. 어렸을 땐 화도 내고 울기도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언젠가는 괜찮아질거야’라는 마음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김연아는 이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고려대 체육대학원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그는 학업에 매진하면서도 피겨 스케이팅과의 인연은 놓지 않았다. 김연아는 “최근엔 후배 선수들의 안무 연기를 봐주고 있다. 그래서 태릉선수촌에 자주 간다”고 말했다. “아직 여행다운 여행을 못 갔다”는 김연아는 “후배 선수들을 도와주는 게 당장 앞에 놓인 과제”라 고 했다.

 김연아는 “어떤 일에 도전하는 건 쉬운 게 아니다. 그래도 용기를 갖고 도전하면 언젠가는 보람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물론 도전만 할 것이 아니라 노력하고, 집중하고, 몰입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성공적인 도전이었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될 것” 이라고 강조했다.

김지한 기자 han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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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6년 만에 유리천장 깨지다…옥스퍼드 총장단에 여성 입성

[중앙일보] 입력 2015.05.29 16:14 / 수정 2015.05.2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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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대학인 옥스퍼드대에서 부총장(vice chancellor)직이 신설된 건 1230년이다. 우리 대학 기준으론 사실상 총장직이어서 때때로 총장으로 소개되곤 한다. 785년 동안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786년째엔 비로소 여성이 차지하게 된다. 가장 오랜 유리 천장들 중 하나가 깨지는 셈이다.

옥스퍼드대는 28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에 있는 세인트 앤드루스대 루이스 리처드슨 총장(56)을 앤드루 해밀턴 현 부총장의 후임으로 지명했다고 발표했다. 대학의 의결기구인 총회에서 승인을 받아 내년 1월 취임하게 되면 리처드슨 교수는 272대 부총장이 된다.

그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아일랜드 더블린의 트리니티칼리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집안의 첫 대학 진학자였다.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정치학 석사를, 하버드대에서 정부학 석사 및 박사를 받았다. 하버드대 래드클리프 고등학문연구원의 학장으로 있다가 2009년 세인트앤드루스대 총장으로 발탁됐다. 600년 된 세인트앤드루스대에서도 첫 여성 총장이었다. 안보와 테러 전문가로 테러조직이었던 아일랜드공화군(IRA)을 연구하기도 했다.

세 아이를 둔 리처드슨 교수는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옥스퍼드대는 세계의 위대한 대학들 중 하나”라며 “이런 놀라운 대학을 이끌 기회를 얻게 된 것을 엄청난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남자라도 다르게 느꼈을 것같지 않다”면서도 “여성의 지명이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는 날이 오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근래 대학들의 화두인 재정 확보와 관련해선 “옥스퍼드대가 성공적이라고 하나 하버드대 기부금이 옥스퍼드대보다 다섯 배”라며 의지를 보였다.

옥스퍼드대 총장인 크리스 패튼 경은 “학자로서뿐만 아니라 교육지도자로서 탁월한 이력이 지명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경쟁 대학인 케임브리지대는 2003년 첫 여성 부총장을 배출했는데 앨리슨 리처드 교수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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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간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 친구가 돼줬던 곳
-낙원동 박리다매 식당들 얘기…서민들의 ’낙원‘동

[헤럴드경제=이정환 기자]‘국밥 한그릇에 2000원.’

웬만한 음료수 한병도 2000원이 넘고, 명절 용돈으로 1000원짜리 꺼내면 아이들도 ‘장난 치세요’라며 뜨악한 표정을 짓는 세상인데, 해장국 한끼를 2000원에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사실이다. 1980년대 풍경은 아니다. 물론 아는 사람도 많은 곳이지만, 2015년 5월 현재 낙원상가 인근에 있는 60여년 전통의 국밥집 얘기다.

2000원 짜리 국밥과 이 국밥을 파는 소문난 해장국 집 풍경. 누구는 싼 가격 때문에, 누구는 추억을 찾아, 누구는 호기심으로 이곳을 찾는다. 이유는 다양해도 국밥 한그릇을 때우고 식당 밖을 나갈때면 정(情)을 뱃속에 채우고 가는 듯한 배부름을 느낄 수 있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이것이 가능한 곳은 바로 낙원동 일대다. 많은 시민과 외국 관광객이 찾는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거리 건너편.

관광객이 풍성한 인사동에선 고가 상품도 봇물을 이루지만, 낙원동에선 단돈 2000원만 있으면 마음의 부자가 될 수 있다. 낙원상가 주변 2층짜리 건물의 ‘소문난 해장국’ 집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단돈 2000원만 있으면 따끈한 우거지 국밥에 밥을 말아 한끼를 해결할 수 있다.

오는 사람들은 물론 ‘서민’이다. 주머니가 가벼운 노인분들, 취업을 위해 뛰는 구직자들, 주머니가 얇은 직장인들이 수년째 단골로 찾는다. 가난한 사람만 오는 것은 아니다. 옛 추억을 찾아, 입소문 근원지를 찾아 오는 고객도 상당수다.
2000원 짜리 국밥과 이 국밥을 파는 소문난 해장국 집 풍경. 누구는 싼 가격 때문에, 누구는 추억을 찾아, 누구는 호기심으로 이곳을 찾는다. 이유는 다양해도 국밥 한그릇을 때우고 식당 밖을 나갈때면 정(情)을 뱃속에 채우고 가는 듯한 배부름을 느낄 수 있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이유야 각양각색이지만, 공통적인 것은 2000원짜리 국밥을 먹고 식당을 나올땐 뱃속에 정(情)을 한아름 담을 수 있어왠지 뿌듯한 배부름을 느낀다는 것이다.

식당은 정(情) 자체다. 계산대도 따로 없다. 알아서 테이블에 돈을 두고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모르는 사람들과 합석은 기본이다.

그렇다고 올드(Old)풍(風) 만을 연상한다면 오해다. 요즘엔 블로그 등에서 낙원동 식당 존재를 알곤 일부러 방문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이색 체험을 위한 신세대 커플들도 자주 눈에 띈다.

이곳에서 만난 직장인 이모(29) 씨는 “처음에는 블로그 등을 통해서 긴가민가 하면서 왔는데, 저렴한 금액으로 따뜻한 한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어 좋다”며 “양이 모자라면 더 달라고 하면 더 주기도 해서 맛도 맛이지만 정이 깊은 곳이라 가끔씩 이곳에 들른다”고 했다.

싼 가격으로 마음의 부자를 이룰 수 있는 곳은 이곳만은 아니다. 1만원만 있으면 반주를 곁들인 식사는 물론 이발도 할 수 있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실버 계층이 주로 머문다.

물론 이곳을 지탱해주는 이들은 대부분 몇십년 씩 오던 단골들이다. 낙원동 식당가 마니아들이다. ‘전국 노래자랑’의 상징 송해 씨도 소문난 해장국 집의 20년 단골이다. 송해 씨가 TV프로그램에서 90세 건강의 비결을 ‘2000원짜리 국밥’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 일대를 두고 한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손님들 자신도 경제학적 측면을 따져보곤 ‘2000원에 국밥 한그릇이 가능한가’라고 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주인은 말한다. “되니까 하지, 아니면 손해보고 누가 하는데?”

낙원동 일대를 둘러보다보면 장사가 되는지, 이문을 남기기는 남기는지, 단골손님으로선 궁금하지 않을 수 없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각박한 세상, 그렇잖아도 한푼이라도 더 갖기 위해 아둥바둥 싸우는 세상 속에서도 사람에 대한 정이 더 소중함을 잊지 않고, 식탁에 내놓아진 ‘따뜻한 마음’을 빼곡히 담은 2000원 짜리 국밥을 보면서 눈물을 글썽일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묘한 감정을 선물받는 것이다.

atto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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