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빌 쿠레시

뉴스, 스크럽 2017. 3. 22. 13:17

나빌 쿠레시

8/1/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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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빌 쿠레쉬는 파키스탄인 2세로서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꾸레쉬의 할아버지는 이슬람을 전파하는 선교사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철저하게 꾸란 대로 사는 무슬림 입니다.  꾸레쉬는 부모님의 이슬람 신앙에 따라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신앙생활을 철저히 하였습니다.  하루에 5번 기도를 하는데 첫 기도는 해 뜨기 전 4시, 4시30에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매일 꾸란을 읽었습니다.  영어를 배우기 전에 먼저 꾸란을 외웠습니다.  쿠레쉬에게는 이슬람이 삶 자체였습니다. 
 
대학교 일학년 까지 쿠레쉬는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는 확신이 9/11의 참사로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대학교 일학년 때 학교 대표로 스피치 대회에 나갔는데 룸메이트 였던 친구인 데이빗이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나빌이 데이빗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데이빗, 성경이 많이 변질 된 것을 알고 있지?”  그 당시에 나빌은 몰랐지만 데이빗은 변증가가 되기 위하여 이미 성경에 대하여 많은 공부를 해오고 있었습니다.  데이빗은 성경이 변질되지 않았고 현재 수천 개의 사본이 있고 지난 2,000년간 전혀 교리가 바뀌지 않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 후 둘은 대학을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둘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3년 반 동안 하루가 멀다하고 끈질기게 데이빗과 나빌은 성경과 꾸란을 놓고 “피 튀는” 디베이트 DEBATE 를 하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성경의 증거는 더욱 강성하여지고 꾸란은 스스로의 방어력을 잃어 갔습니다.  나빌은 꾸란과 무함마드의 삶을 읽으면서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가 아니라 폭력적인 종교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알라를 사랑하였고 부모님을 사랑하였지만, 꾸란과 알라가 진리 TRUTH 가 아님이 점점 강하게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진심으로 겸손히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꿈이든 비전이든 어떤 방법을 통하여서 라도 무엇이 진리 인지 내게 가르쳐 주세요.”  기도하자 마자 깜깜한 밤에 수천 개가 되는 십자가가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무언가 잘못 보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기도하였습니다, “아까 본 것은 아닐 수도 있으니까 진짜 비전을 보여 주세요 그럼 크리스천이 되겠습니다.”  그 날 저녁에 하나님이 비전을 주셨습니다.  나빌이 혼자 간신히 들어 갈 만한 좁은 문이 보였습니다.  그 안을 보니까 친구 데이빗이 있었고 그 주위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잔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빌이 친구 데이빗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같이 먹어야지!”  데이빗이 나빌에게 말합니다, “아직 네가 [예수님께] 응답하지 않았어.”  꿈에서 깨어난 나빌은 그 꿈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았습니다.  “꿈에 본 그 방이 천국이었습니다.  나는 천국 바로 앞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천국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친구 데이빗이 그 꿈은 누가복음 13장의 예수님이 한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나빌은 그 꿈을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나빌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심적으로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지금 까지 아는 모든것을 버려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것은 사랑하는 부모의 심장을 송곳으로 찌르는것과 같았습니다.  부모님은 사랑하는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빌의 어머니는 그 아들을 생각하면서 날마다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쿠레쉬의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쿠레쉬는 하나님의 자신을 향한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쿠레쉬는 본래 의사 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의 길을 그만두고 전 세계에 다니면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쿠레쉬는 자신의 자서전인 “Seeking Allah, Finding Jesus” 책을 썼습니다.  유투브에 보면 쿠레쉬가 여러 이슬람의 최고의 학자들과 디베이트를 한것이 동영상에 올라와 있습니다.  수 많은 영혼들이 그의 메세지를 듣고 예수님께 돌아 오고 있습니다.   
 
이 모든 시작이 친구 데이빗의 3년 반 동안의 집요한 전도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데이빗과 같은 무슬림 전도자가 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도록 합시다.         
 
 
나빌 쿠레시의 한글 자막이 있는 간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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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를 찾다가 예수를 만나다

작가
나빌 쿠레쉬
출판
새물결플러스
발매
2016.12.24.

리뷰보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미친듯이 책을 읽어댔다. 560페이지의 짧지 않은 책이지만, 무슬림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회심 이야기의 결과를 - 물론 당연한 결과이지만 - 얼른 보고 싶었다. 철저한 무슬림에서, 기독교의 세가지 비진리라고 여겼던 것들, 예수님의 신성,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 철저한 탐구와 토론을 통해, 왜 기독교의 가르침이 참 진리인지를 철저하게 증명해 낸다. 마치 리 스트로벨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책의 초반은 내게는 조금 지루했다. 하지만, 무슬림으로서의 저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지나치자, 저자가 무슬림으로서 어떤 고민을 해왔고, 그의 친구와 어떤 토론을 해왔으며, 그의 진리의 탐구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 갔는지 알아가는 것은 무척 큰 기쁨이었다. 책의 마지막에 저자가 마침내 진리를 찾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읽었었때, 눈물이 날뻔 했다. ㅎㅎ
책을 읽으며 내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던 생각은,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진리를 탐구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저 부모가 가르쳐 준, 혹은 교회 생활과 교제에 만족하면서, 예전부터 들어왔던 성경 이야기 몇개를 진리인양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러웠다. 불신자나 다른 종교의 사람들이 우리의 믿음의 근거를 물을 때, 믿음의 근거를 분명한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공부 하지 않으면 안될 이유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책의 후반부, 꽤 많은 부분을 저자의 동료나 신학 교수들의 짧은 글로 채웠다는 것이다. 저자의 의도가 있겠지만, 저자의 이야기로 책을 마무리하고, 그들의 글이나 책들을 짧게 추천하는 방식으로 남겨 두었다면 더 좋았을걸 생각해본다. 그들의 서포트가 아니더라도, 이 책은 충분한 깊이와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마음을 담아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반드시 이 책을 읽고 고민하고 토론하고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믿음과 신앙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나빌 쿠레쉬의 <알라를 찾다가 예수를 만나다>를 읽고.

"정통과 이단이라는 사안은 다면적으고 무척 복잡하다는 점이다. 많은 무슬림이 아주 작은 일을 가지고 서로를 향해 비무슬림이라 부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소한 의견 차이에 대해 너무 쉽게 불신앙이라는 딱지를 갖다 붙인다. 이슬람교 내부의 10여개 교단 가운데 이단이라는 비난을 받아본 적이 없는 교단이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p. 92).

"복음은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데 낯선 사람에게 삶의 방식을 바꾸라고 요구할 때 거기에 귀 기울일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p. 188).

"사람들이 무슬림과 친구가 되기 전에 갖춰야 할 것은 이슬람에 대한 전문 지식이 아니라, 무슬림 친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기꺼이 알고자 하는 마음이며, 관계가 진전될수록 시간을 들여 이런 문제를 배우고 토론하려는 열정이다. 반면 기독교의 기본 지식에 대해서는 자신이 믿는 바와 그 이유를 분명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p. 467).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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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빌 쿠레쉬는 어떻게 무슬림에서 기독교인이 되었나

입력 : 2017.01.22 18:54
      

[정현욱 목사의 북토크 3] 깊은 영성으로 나아가는 교리교육

알라를 찾다가 예수를 만나다
알라를 찾다가 예수를 만나다


나빌 쿠레쉬 | 박명준 역 | 새물결플러스 | 564쪽 | 19,900원

교리교육의 역사
정두성 | 세움북스 | 295쪽 | 15,000원

들어가기

거듭남은 불가항력적 은혜로 주어지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바른 신앙과 깊이 있는 영성은 허락하신 은혜의 방편을 잘 활용함으로 이루어집니다.

20년 가까이 교회에서 신앙을 지도하면서 몇 가지 공통적 특성을 발견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성도는 종종 있는데, 의외로 기독교 교리에 무지했습니다. 심지어 구약과 신약을 구분하지 못하는 집사들도 종종 있었고, 아브라함과 모세의 시대를 이해 못해 모세를 아브라함보다 먼저 살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교회생활을 10년 넘게 해 온 분들이었습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는데, 10년이 넘도록 기독교 교리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자원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는 교회 구조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많이 아쉬웠습니다. 오늘은 두 권의 책을 통해 어떻게 바른 신앙에 이르고 깊은 영성의 살아갈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무슬림에서 기독교인이 된 나빌 쿠레쉬의 자전적 소설인 <알라를 찾다가 예수를 만나다>를 보면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는가를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혼돈의 시대 속에서 세례자와 교인들을 교육한 이야기를 다룬 정두성의 <교리교육의 역사>와 비교해 가며, 교회교육의 문제를 접근해 보겠습니다. 나빌 쿠레쉬의 <알라를 찾다가 예수를 만나다>를 기본 토대로 삼고, 교육 자료들을 정두성의 <교리교육의 역사>에서 첨부해 나가는 방식으로 읽겠습니다. 나빌 쿠레쉬를 불신자나 초신자로 생각하고, 교회가 그들을 어떻게 접근하고 신앙교육을 할 것인가 생각해 봅시다.

1. 불신자들 속으로 들어가기

의도하든 하지 않든, 교회를 10여 년쯤 다니고 나면 불신자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둔감해집니다. 특히 신앙에 열심인 교인들은 3년만 지나도 '세상 친구'는 거의 사라지고 맙니다. 그래서 더욱 교회 생활에 얽매이게 되고, 불신자들의 삶과 괴리감은 커져갑니다. 아이를 낳고 수 년만 지나도 어린아이 키우는 방법을 잊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불신자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 구조, 삶의 방식들을 먼저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나빌 쿠레쉬는 책의 서두에서 자신이 생활하는 이슬람 세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필자가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슬림들의 일상 용어였습니다.

이슬람의 일상용어는 매우 종교적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이름을 알기 전부터 '사즈다'라고 하는 기도문을 아랍어로 하루도 빠짐없이 123번씩 외웁니다. 일상 인사도 아랍어를 사용합니다. "수브하나 랍비 알-알라(높으신 나의 주여, 영광을 받으소서)"를 기도 마무리에 외칩니다. 테러할 때 IS 요원들이 자주 사용하는 "알라-후-아크바르(하나님은 위대하시다)"도 중요한 신앙고백의 토대입니다. 이러한 일상 용어들은 무슬림들의 사고와 생활 방식을 지배합니다.

하루에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생활방식과, 다른 종교를 갖게 되면 고립과 죽음까지도 불사해야 하는 이슬람 공동체의 특성도 있습니다. 내부자 고발 형식으로 소개되는 이슬람의 생활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사뭇 다릅니다. 비록 왜곡된 신앙 방식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들도 역시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사회인이며, 삶의 질곡과 아픔을 가지고 있고, 서로 사랑하며 위로하는 공동체입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들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입니다. 나빌 쿠레쉬는 마지막에 이렇게 당부합니다.

"사람들이 무슬림과 친구가 되기 전에 갖춰야 할 것은 이슬람에 대한 전문 지식이 아니라 무슬림 친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기꺼이 알고자 하는 마음이며, 관계가 진전될수록 시간을 들여 이런 문제를 배우고 토론하려는 열정이다(467쪽)."

가장 먼저 할 일은 불신자들의 삶을 열린 마음으로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 그들이 마음을 열도록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마음이 열려야 복음도 들어가고, 쉽게 말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관심은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며, 알고 나면 사랑하는 마음도 더불어 커져갑니다.

2. 삶을 나누며 동행하기

나빌 쿠레쉬는 섬뜩한 말을 합니다. "내가 거리 전도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이 내게 관심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 그들이 나를 자기 목적의 대상인 양 대했기 때문이다(187쪽)." 타인의 삶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귀찮은 듯 떠안기는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전해오는 복음의 메시지는 그들을 변화 시킬 수 없습니다.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은 이유는 자신에게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그리스도인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188쪽)'입니다. 나빌이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선회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데이비드라는 기독교인 친구 때문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솔직한 고민을 하고, 논쟁하고, 묻고 따지는 가운데 결국 기독교가 옳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교리교육의 역사
정두성은 초대교회의 교리교육 역사를 살피면서 '세례 후보자 학교' 과정을 언급합니다. 이곳은 '세례를 준비하는 자들에게 기독교의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59쪽)' 설립된 곳입니다. 기본적인 구약 지식이 없는 이방인들이 교회로 몰려오면서, 그들을 가르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그 과정이 일대일 양육이었으며,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의 주입식과 상당히 다른 양상입니다. 더욱이 교육의 목적은 '교리적 지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변화된 삶(61쪽)'이었습니다. 교사는 예비 세례자들의 지식뿐 아니라 삶을 살폈습니다. 지식과 삶이 함께 동반된 가르침이었습니다.

나빌은 기독교인이 되도록 도왔던 데이비스에 대해 이렇게 평가합니다. "데이비드는 이전 5년 동안 성경을 연구하며 예수를 따르고자 애쓴, 강한 확신을 가진 그리스도인이었던 것이다. 그의 열정은 복음에 있었지만 그는 폭탄을 퍼붓듯이 자신의 신앙을 내게 퍼붓지는 않았다. 복음에 대한 논의는 우리가 친구가 된 후 함께하는 생활의 맥락 속에서 훨씬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193쪽)."

여기서 중요한 구절은 '생활의 맥락'입니다. 일상 속에서 묻고 답하며, 끊임없이 진리를 향해서 조금씩 전진했던 탓에 결국 진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3. 스스로 읽기와 생각하기

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공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일반인들이 직접 성경을 읽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슬람은 암송과 권위적 지식에 의존합니다. 즉 스스로 살피거나 공부하지 않고, 권위 있는 스승들이 알려준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기만 합니다. 나빌은 데이비드와 다른 학자들 간의 대화와 논쟁을 통해 꾸란을 직접 읽고, 모순된 점을 발견해 나갑니다. 또한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알았던 지식들과 배치(背馳)되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꾸란을 이해하기 위해 스승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맥도웰의 책과 함께 성경을 읽어 나가면서, 나는 복음서의 서술이 각각의 문맥 속에서 의미가 통하는 일관되며 논리정연한 이야기임을 깨달았다. 복음서를 이해하기 위해 여타의 주석을 볼 필요가 없었다. 누구든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279쪽)."

교리교육서는 성경의 교리를 요약해 놓은 것입니다. 성경에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교리들을 정리해 모아 놓은 것이지요. 하지만 교리교육은 성경을 직접 읽음으로 명확해집니다. 정두성의 책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조선 후기 기독교 전래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은 스스로 공부했던 학자들이었습니다. 특히 초대 복음전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우리는 '권서인'이라고 부릅니다. 권서인들에 대해 정두성은 이렇게 평가합니다.

"한국교회 초기에 한국과 만주 지역의 한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리를 가르친 특별한 평신도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권서인들이다. ... 첫째, 한국 선교사들이 들어와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이들이 한국에 성경과 교리교육서를 보급했고, 심지어 가르치기까지 했다. 둘째, 선교사의 사역이 한국에서 허용된 후에도 선교사들이 방문하지 못하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신앙서적을 퍼뜨렸다.

셋째, 한국어가 약한 선교사들을 대신해 복음을 쉽게 전달했다. 넷째, 이들의 사역은 한국에서 선교사가 사역을 하기 전에 이미 많은 곳에서 회심자들이 나오고,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며, 선교사의 파송을 요청하는 수준에 이르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후 몇몇 선교사들은 한국에 대해 복음의 씨는 권서들을 통해 뿌려졌고,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한 일은 익은 열매를 다는 추수꾼의 역할뿐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236쪽)."

초기 한국교회가 교리적으로 탄탄했고, 선교사들의 활동이 탄력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권서인들의 영향이 지대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권서인들이 책을 팔며 책을 읽게 했고, 이로 인해 일반인들이 스스로 믿음을 갖게 됐다는 점입니다. 존 로스가 권서인으로 임명했던 김청송의 경우, 만주 28개 지역 한인촌에서 복음서와 신앙 소책자를 수천 권 팔면서 교리를 설명해 주었다고 합니다. 기독교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던 시절, 권서인들의 책 읽기 권유를 통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앙을 갖게 된 것입니다. 스스로 책을 읽고 사유하는 훈련이 한국교회 부흥의 초석이 되었다면 무리일까요? 제가 보기엔 영향력이 적지 않다고 봅니다.

Nabeel Qureshi
▲<알라를 찾다가 예수를 만나다> 저자 나빌 쿠레쉬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4. 가르치기


나빌 쿠레쉬가 예수를 영접하고 나서 처음 했던 일은, 놀랍게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조셉 쥬베르는 "가르친다는 것은 두 번 배우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열을 준비해야 합니다. 가르칠 때 자신이 정말 알고 있는 가를 가늠하게 됩니다. 배우기만 하면 수동적 존재가 되어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가르침은 다시 배우게 하고, 더 많이 배우게 합니다. 자신의 신앙과 깊은 영성을 위해서는 가르치는 사역이 필수입니다.

정두성은 초기 한국교회 부흥의 초석을 권서인들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정당하고 믿습니다. 해외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 과정, 그리고 후에도 그들은 기독교 서적을 팔고 가르쳤습니다. 가르쳐야 오래 갑니다. 가르쳐야 확신에 이릅니다.

나가면서

나빌 쿠레쉬의 <알라를 찾다가 예수를 만나다>를 읽으면서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인격적으로 불신자를 대해야하는 것과 교리교육에 철저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권면하기는 한국교회가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피동적으로 듣기만 하고 잊어버리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실천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삶으로 증명해 내야 합니다.

깊은 영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수동적 자세로 머물러서도 안 됩니다. 종교개혁자들이 피를 흘리며 쟁취했던 것은 바로 '성경'이었습니다. 사제들에게 빼앗긴 성경을 다시 일반 성도들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었습니다. 진정 종교개혁자들의 후손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다시 성경과 기독교 서적을 손에 들고 읽어야 합니다. 진리는 배우고자 하는 자들에게 열리게 돼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정현욱 목사(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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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속에서 본 이슬람

① 알라를 찾다가 예수를 만나다 ② 우리가 모르는 이슬람 사회

입력 : 2017-01-11 20:28

이슬람 속에서 본 이슬람 기사의 사진
이슬람 신도들이 모스크 안에서 무릎을 꿇고 도열한 모습이 어두운 커튼 사이로 보인다. 라마단 기간 중인 지난해 6월 촬영됐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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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Islam). 몇 년 사이 우리는 이 단어에 퍽 자주 노출됐다. 이질감과 공포감 속에.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무자비한 테러 사건과 이슬람 국가의 기독교 탄압 사례가 계속 전해졌기 때문이다. 신간 ‘알라를 찾다가 예수를 만나다’와 ‘우리가 모르는 이슬람 사회’는 우리를 이슬람 사회와 무슬림 속으로 안전하게 데려다 준다.

알라를 찾다가 예수를 만나다는 무슬림 가정에서 성장한 저자 나빌 쿠레쉬의 생애로 안내한다. “내가 태어날 때 아버지는 내 귀에 대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잔(adban)을 속삭여주었는데, 그것은 스물여덟 해 전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 아버지의 귀에 대고 속삭였던 바로 그 아잔이었다.”(46쪽) 아잔이란 무슬림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다. “알라-후-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로 시작된다. 

미국으로 이민 간 부모는 전통 있는 파키스탄 무슬림 가문의 후손이었다. 그의 가족은 손님을 축복으로 여기고 최선의 대접을 했다. 테러와 억압이라는 이미지의 이면에 있는 환대와 평화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나빌은 어릴 때부터 집안에서 코란을 머리보다 높이 치켜들고 다녔고 코란을 읽기 전에 손을 씻었다. 코란 구절을 암송했고 퀴즈를 풀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기독교 교리가 무책임하다고 교육받았고 이슬람교만이 선한 종교라고 믿었다.  

2001년 대학 입학 후 그의 종교관에 균열이 오기 시작한다. 신실한 크리스천 친구 데이비드를 만나면서다. 데이비드는 나빌 앞에서 성경을 읽는다. “자유시간에 성경을 읽는 사람을 본 것은 인생을 통틀어 그때가 처음이었다.”(196쪽) 그는 충격을 받는다. 

성경은 변질됐고 읽을 가치가 없다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나빌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대한 심층적 탐구를 시작한다. 두 종교의 교리와 경전을 심층적으로 해부한다. 기독교는 예수의 대속에 따른 인간의 구원을 보증하지만 이슬람교는 인간의 행위에 따른 심판만을 경고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이슬람교 창시자인 마호메트는 여섯 살 어린이를 신부로 맞는 속인(俗人)이었다.  

코란에는 포교를 위한 전쟁과 성폭력을 허락하는 표현도 있었다. 코란이 이슬람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숱한 범죄의 빌미를 제공했던 것이다. 나빌은 기나긴 심적 혼란 끝에 기독교의 완전성과 절대성을 인정하고 2005년 복음을 받아들인다. 그 뒤 나빌은 하나님에게 기도한다. 

“당신이 누구신지 내게 말씀하소서! 오직 당신만을 구합니다.”(398쪽) 하나님은 그에게 칠흑 같은 어둠 가운데서 빛을 발하는 십자가 환상을 보여준다. 기독교 구원의 장엄미가 느껴진다. 의학도인 그는 예리한 지성으로 기독교를 탐색한 뒤 하나님의 인도 속에 십자가 앞에 무릎 꿇는다. 500쪽이 넘는 분량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첫 장을 펼치면 책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긴박하고 치밀하게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문화와 공동체에 대한 충실한 안내서이자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변증서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매혹적인 자서전이다.

우리가 모르는 이슬람 사회는 중동을 기반으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저자의 객관적인 ‘중동 가이드’다. 이슬람 사회의 일상을 소개하고, 이슬람에 대한 오해를 풀어준다. 저자는 “공포와 혐오를 부추기는 이슬람 사회에 대한 고정적 시선이 안타깝다”며 “종교의 틀이 아닌 일상적 시선으로 이슬람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싶다”고 말한다. 

콜라를 둘러싼 아랍 국가들의 친미 논란, 손님의 커피 잔을 계속 채워주는 환영 관례, 매와 같은 맹금류를 애완동물로 선호하는 부자 등 1부 ‘이슬람을 알고 싶다’에 나오는 이야기는 이슬람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2부 ‘이슬람을 오해하다’에서는 국내 거주 무슬림을 잠재적 위험인물로 간주하는 한국 언론의 시각 등을 비판한다. 편견과 선입견에 의해 오도된 이슬람의 이미지를 바로잡아준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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