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제 11 과

                            권면의 원리(5:26-6:10)


   바울은 수신자들에게 성령으로 행하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그는 성령에 충만한 삶에 대한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할 것의 실제적인 몇가지 예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5:26 (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취하지 말아야 할 세가지 태도는 자만, 격동, 투기입니다. 율법 아래 사는 사람은 종종 그들의 하찮은 업적으로 교만해지며, 그들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조롱합니다. 이에 반하여 재능이 별로 없는 사람이나 약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는데 더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다른 사람들을 투기하기 쉽습니다. 그러한 모든 태도들은 은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참된 신자는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깁니다. 율법준수자는 잘못된 영광을 구합니다. 참으로 큰 자는 무시받는 사람들을 섬기는 자이고 보이지 않게 수고하는 사람입니다.


개선되어야 할 세가지 습관(6:1-10)


   1. 범죄한 자를 바로잡음


6: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여기에 범죄한 신자를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에 대한 훌륭한 말씀이 있습니다. 물론 범죄자를 심판함으로 꾸짖어야 하지만 이것은 율법과는 뚜렷이 대조됩니다.

   범죄한 일이 드러났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범죄에 놀랐다" 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사람이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다기 보다는 어떤 범죄 행위에 연루된 사람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신령한 사람들에 의해 다루어지게 됩니다. 세속적인 그리스도인은 무정하고, 냉정한 태도로, 이롭게 하기보다는 더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범죄한 사람도 주님과 접하고 있지 않은 사람의 훈계는 받기를 좋아하지 않게 됩니다.

   이 구절은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을 하게 합니다. 만일 참으로 신령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신령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까요? 신령한 사람들은 그들의 부족함을  가장 크게 느끼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만일 그러한 일을 한다면  신령한 사람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인데 그렇다면 누가 바로잡는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겸양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요? 그 답은 이렇습니다. 참으로 신령한 사람은 결코 자신의 상태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범죄한 사람을 바로잡기 원하는 돌아보는 목자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교만하거나 우월한 심령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유혹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온유한 심령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짐" 이라는 단어는 실패, 유혹, 시험, 시련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근심하고 고통 가운데 있는 형제에 대해, 거리를 두고 비판하면서 가까이 하지 않기 보다는 곁으로 다가가서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그를 돕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모세의 율법과는 너무도 다릅니다. 모세의 율법은 순종에 대해 생명을 약속했지만 순종할 아무 능력도 주지 않았으며, 형벌에 대한 두려움 만이 순종하도록 권할 뿐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법은 이미 생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교훈입니다. 신자들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그 교훈을 지킬 수 있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그들의 동기입니다

6:3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우리는 모두 동일하게 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가 어떤 형제의 죄를 보게 되면 우리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우수하다는 이상심리는 자기기만의 한 형태입니다.

6:4 (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이 구절은 만족을 위한 이유를 찾으려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습관에 대해 경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시험될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실패 보다는 자신의 일로 인해 자랑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해 주의해야 합니다.

6:5 (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처음 볼 때, 이 구절은 2절과 모순되게 보입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의 원어로는 2절에서 번역된 "짐" 이라는 단어와 5절의 단어는 완전히 다른 단어입니다. 2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이생에서 다른 사람의 슬픔과 고통과 문제들을 함께 하라고 가르칩니다. 5절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자기 자신의 책임의 짐을 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2.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에 대한 부양


6:6 (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신자들은 그리스도인 교사들을 부양할 책임이 있습니다. "모든 좋은 것으로 함께 하라" 는 것은 그들이 기도와 경건한 열심을 유지하도록 생활에 대한 물질적인 것을 그들과 나누라는 의미입니다.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비록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을 말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고 계시며 그에 따라 거두게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심은대로 거두며, 우리가 심은 것보다 여러 배로 거두게 됩니다. 농부가 밀을 심으면 밀을 거두는데 때로 삼십배, 육십배 또는 백배로 거둡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성령님은 여기에서 죄인들에게 그들의 죄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그들의 천한 행위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다" 라고 평했습니다.

6:8 (자기의 육체를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비록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이 일반적인 진리이지만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베풀도록 권하는 것임에 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견해에 의해 우리가 자기의 돈을 자기를 위해, 자기의 쾌락과 안락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육체를 심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심는 것은 사람이 자기의 돈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촉진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은 사람들은 그들이 더 늙어지면 쾌락을 위해 살았던 그 육체가 쇠퇴하여 죽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바로 이 땅위에서 실망과 패배를 거두는 것입니다. 이제 그때가 되면 그들은 영원한 상급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은 사람은 성령으로 영생을 거두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영생을 두가지로 사용하였습니다 (1) 모든 신자에게 주어진 신분으로(요 3:36) (2) 이 땅위에서의 신자의 삶이 끝났을 때 그가 받을 것으로(롬 6:22) 사용되었습니다. 성령으로 심은 사람들은 지금 여기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누리지 못하는 영생을 어느정도 누립니다. 그리고 그에 동반된 신실함에 대한 상급을 그들이 하늘 본향에 이르게 될 때 거두게 될 것입니다.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어떠한 사람도 낙심하지 않기 위해 바울은 수신자들에게 즉시는 아닐 지라도 어떤 상급이 있을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씨를 뿌린 다음날 밭에서 추수하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영역에서도 신실하게 뿌린 것에 따라서 적당한 시기에 확실히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3.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되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함


6: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믿음의 가정은 교파나 교단에 관계없이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을 포함합니다. 우리가 신자들에게만 제한하여 친절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특별하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바틀렛은 " 이 권고의 명확한 강조에 주의하라. 그것은 얼마나 조금 해를 끼쳤는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우리 앞에 놓여있는 선한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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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05 두 사람의 회심(9-10장)


요절 : 사도행전 9장 16절, 10장 35절

요점 :

1. 그리스도는 그분의 모든 백성들과 하나입니다.

2. 그리스도인들은 박해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3. 기적에 관한 성경의 이야기는 완벽한 사실입니다.

4.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5. 하나님을 제외하고 산 자든 죽은 자든 사람에 대해 경배하는 것은 죄입니다.

6. 우리는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울이 그리스도를 믿음


1. 사울이 빛을 봄(9:1-9)


하나님을 위한 맹목적인 열정과 유대인 가운데에 위대한 사람이 되고자 했던 욕망을 가진 사울은 지금 그리스도인들이 어디에 있든지 핍박하려고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남녀를 불구하고 체포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 올 수 있는 허가를 요청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단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 아주 강렬한 빛이 정오의 찬란한 태양보다 더 밝게 그들 주변을 비추었습니다. 그때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물으시는 주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사울은 "저는 단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의 사람들을 공격함으로써 주님을 공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이 오랜 후에 기록했던 것처럼 몸된 교회의 머리셨습니다(엡1:22-23). 사울은 예수님께서 진실로 주님이시고 하늘의 영광 안에 앉아계신 것에 너무도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그 성으로 들어 가라고 하시고 그 후에 그가 무엇을 해야할지를 듣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은 강한 빛에 의해 눈이 어두워져서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2. 사울이 침례를 받음(9:10-19)


그후에 주님은 아나니아라 이름하는 주님의 신실한 종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떤 집으로 들어가서 사울이 다시 시력을 회복하도록 그의 머리에 안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나니아는 처음에 사울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려고 왔다는 것으로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에게 사울은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많은 나라에 복음을 전파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가서 안수하며 "형제여"라고 불렀습니다. 즉시 사울이 시력을 되찾았고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우리는 이 아나니아에 관해서는 이곳에서 보여진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어려운 명령에 순종할 만큼 주님과 매우 친밀하게 동행하고 있었음에 틀림 없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주님께서 교회의 머리이실 뿐아니라 종들에게 말씀하실 수 있고 그들은 기꺼이 순종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최근까지 자신이 박해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이제는 "형제" 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교훈들입니다. 즉 교회는 하나이고 각 지체는 머리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사울이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파함(9:20-25)


사울은 즉시 주 예수님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몇 초신자들이 범하는 실수로서 그들은 처음에 자기 친구둘에게 그리스도에 관해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그후에는 시작하기가 훨씬 더 힘들게 됩니다. 그리고 매일 그것을 미루게 되어 점점 더 어럽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일이 사울에게는 위험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신앙을 바꾸는 누구에게나 심한 핍박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울 자신이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을 이미 핍박했었는데 이제 그가 회심했다면 유대인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여러 날이 지난 후에 유대인들은 사울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고 그가 도망치는 경우를 대비해 밤낮으로 성문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사울을 성벽 꼭대기에서 광주리에 달아내려서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는 모든 사람들은 고난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4.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함(9:26-31)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에도 사울의 어려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아나니아가 처음에 주님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주저했던 것처럼 그를 영접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4장 36절에서 읽은대로 바나바가 와서 사도들에게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그를 도왔습니다. 이제 그들은 사울을 영접하였고 그는 또 다시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에 우리는 헬라파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스데반이 그들과 논쟁을 하여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였을 때 그들은 스데반을 공회로 끌고 가서 그를 고소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들이 똑같이 사울을 죽이려고하는 것입니다. 사울이 도착한지 15일만에(갈 1:18) 제자들은 그가 다시 도망하도록 도왔고 이번에는 가이사랴를 향해서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향인 다소로 갔습니다. 이후에 주님은 사울에게 고요하고 평화로운 기간을 주셨습니다. 그 사이에 교회들은 성장하고, 그 수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사울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그 대가가 얼마나 컸는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주신 그리스도를 위해 살기도하고 죽기도 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5. 베드로가 애니아를 치유함(9:32-35)


우리는 사도행전 후반부인 13장 이후의 대부분이 후에 바울로 알려진 사울의 활동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울의 이야기로 되돌아 가겠지만, 지금은 주님께서 유대 지역에서 증거하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을 이루는 사도들로서 베드로의 사역 몇가지에 관해 듣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는 룻다에서 8년동안 앓던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치유하신다고 말하자 즉시 그 사람이 일어나 걸어갔습니다. 이 일이 룻다에 거하는 모든 사람과 그 옆의 사론 마을이 주님께 돌아오도록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옛 기적들 중 대다수가 그저 상상이며 그 사람이 전혀 아프지 않았던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곳의 모든 사람들이 그가 수년 동안 아팠던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이 베드로가 행한 기적을 보았을 때 그들이 함께 주님께 돌아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진리를 말하고 있으며, 말하는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6. 베드로가 도르가를 살림(9:36-43)


이제 베드로에게 도르가를 죽음에서 살리는 훨씬 더 큰 기적을 행하는 권능이 주어졌습니다. 도루가가 죽었을 때 베드로는 여전히 룻다에 있었지만 제자들을 베드로에게 보내어 욥바로 오게 했습니다. 그가 방에 혼자 들어가 기도한 후 그녀에게 일어나라고 말했습니다. 이 기적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하나님의 진리를 전파하고 있음을 확신시켰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는 것보다 베드로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영생을 얻은 사실이 더욱 중요합니다.


고넬료의 가정


1. 고넬료가 천사의 환상을 봄(10:1-8)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그 자손들에게 특별히 복을 주시겠다는 놀라운 약속을 하셨지만 유대인들이 죄에 빠졌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벌을 내리셔야 했습니다. 그 당시는 로마인들이 유대인들을 지배하고 있었고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하신 그러한 특별한 약속으로 인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결과 유대인들은 그들이 이방인이라 부르는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비우호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많은 구제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으며 매일 기도하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가 복음을 믿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아시고 그 방법을 알려주려고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천사는 그에게 욥바에 가서 베드로를 청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부탁하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여러 나라에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뜻을 행하려 하는 많은 사람들을 갖고 계신 것을 아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중심을 살피시며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마음에서 무엇을 보실까요?


2. 베드로도 환상을 봄(10:9-16)


고넬료는 즉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세 사람을 보내 베드로에게 오도록 청하였습니다. 가이사랴에서 욥바까지 가는 유일한 방법은 걷는 것이었으며, 하루에 갈 수 없을 만큼 먼 곳이었습니다. 그들이 가고 있을 때, 베드로는 식사 준비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하늘르부터 환상을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그 환상 속에서 여러 종류의 동물이 들어있는 커다란 그릇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고기들이 먹도록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서 그 짐승 중 하나를 잡아먹으라고 했을 때 베드로는 그렇게 하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는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셨다면 깨끗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세 번 행해졌습니다.

   베드로가 음식에 대해 주린 것처럼 또한 그리스도를 위해 영혼 얻기를 갈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베드로가 깨끗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동일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주 예수님에 대해 신실하게 말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 베드로가 성령님께 순종함(10:17-22)


처음에 베드로는 이 환상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었지만 고넬료로부터 세사람이 도착했을 때 성령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의심치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전까지만 해도 베드로는 세 이방인들과 동행하는 자로 보여지는 것을 주저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환상을 통해서 어느 누구라도 평범하다거나 부정한 자로 여기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즉시 자신을 알리고 그들의 원하는 것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여섯명의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가이사랴로 긴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가 처음에 깨닫든 못깨닫든 간에 성경에서 배운 것처럼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 잘하는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은 아버지께서 행하라든지 말라든지 말씀하신 것들에 대해 항상 그 이유를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후에 그가 이해하게 되며 자기를 인도해 준 현명하고 사랑하는 아버지께 감사할 것입니다.


4.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도착함(10:23-33)


고넬료는 베드로가 올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많은 친구들을 불러 말씀을 듣게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하나님을 사랑했지만 성경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베드로가 어떤 위대한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느껴 그를 경배하려고 엎드려 절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즉시 자기가 하나님이 아니며 사람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경배를 받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다른 사람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심각한 죄입니다. 수 백 만의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조상들이나 살아있는 사람들을 경배하는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베드로가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고넬료도 배우게 되자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베드로에게 자신이 어떻게 천사를 보게 되었으며 왜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를 불렀는지를 다시금 말해 주었습니다.


5.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전파함(10:34-43)


이제 베드로는 자신이 본 환상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나라를 다른 나라 보다 더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든지 그 중심에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사람을 찾으시며 그 사람을 받으시고 그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와 죄인들을 위한 주님의 죽으심에 대해 알지 못할지라도 누구든지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인하여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써 우리의 책임은 만일 그들이 우리에게서 주님에 관해 듣게 된다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비록 그들이 듣기를 싫어하더라도 그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고넬료와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선한 일을 행하셨는지 그러나 사악한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고 하나님께서 삼일만에 부활시키신 놀라운 사랑 이야기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이러한 일에 증인이었고 구약성경에서도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그러한 일들이 임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6. 고넬료가 성령을 받고 침례받음(10:44-48)


그런데 베드로가 말하려고 했던 것을 끝내기도 전에 듣던 모든 사람들은 말씀을 믿었고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주로서 영접했으며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온 여섯사람들도 진실로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처음에 그들 위에 임하셨던 것처럼 이방인들에게 임하신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이 주님께 속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도 고넬료와 또한 그와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침례 주는 것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죄와 타락으로 가득찬 사람에게 성령님을 주신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참으로 믿었으며 그들의 죄가 씼겨졌기 때문에 즉시 침례를 받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비록 우리와 전혀 다른 민족일지라도 영접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서로 사랑하도록 말씀하셨고 이는 우리가 주님께 속하였음을 세상이 알게되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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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


                          2과    하나님의 진노

                                                      (1장 18절~3장 20절)


   복음이 사람들에게 왜 필요한가?


   간단히 말한다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18절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을 저버린 인류는 지옥의 선고를 받아 절박한 위험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1. 흔히 사람들은 자기가 버림 받은 죄인이라는 말을 들을 때, "그러면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19절~32절의 말씀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ㄱ)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19,20절).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해와 달과 별과 인체와 동물과 식물의 존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자기를 창조주로 깨닫고 자기를 경외하며, 또한 그가 우리를 위해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며, 여러 가지 형태의 축복을 주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ㄴ)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 하는 만물의 증거를 거부하였습니다(21,22절)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핑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경배하는 대신에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람은 이것들을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삼았습니다(23절).


   ㄷ) 물론 이런 죽은 우상들은 사람을 감화시켜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고자, 참 하나님을 버리고 사람의 손으로 새겨 만든 우상을 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저희를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셨습니다(24절). 이와 같이 사람들은 점점 불신앙의 흑암과 부도덕 속에 깊이 빠져서 마침내는 26절과 27절에 나타나 있는 성적 타락에 까지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활은 29절~31절에 나타나 있는 무서운 죄로 가득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 하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2. 이방인을 가리켜 버림받은 죄인이라고 한 사도바울은 유대인들의 경우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합니다(2:1~3). 물론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은 선민이라고 해서 정죄함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들도 죄로 인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ㄱ) 유대인들은 이웃 이방인들을 비방하면서 자신들도 같은 죄를 범하였습니다(1절).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즉시 벌하지 않는 까닭에, 그들은 하나님의 형벌을 피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3절). 사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나(4절), 그들은 계속 죄를 지으므로 심판 날에 임할 그들의 죄의 대가를 가중시키고 있었습니다(5절).


   ㄴ)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분명히 올 것입니다. 2절~6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기본 원칙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내함으로 계속 선하게 살면서 영광과 존귀와 영생을 구한다면, 그는 영생을 선물로 받습니다(7~10절). 그러나 이 말씀은 이와같은 방법으로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3장 19절과 20절의 말씀은 선한 행위로 구원을 받을 만한 육체가 하나도 없음을 결론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ㄷ) 하나님의 심판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간에 절대 공평할 것입니다(11절). 율법을 받은 자들은 율법에 의해서 심판을 받을 것이며(12절), 율법을 받지 않은 이방인들은 옳고 그름을 말해 주는 그들 자신의 양심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14,15절)


   ㄹ)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여러 특권들을 자랑하였습니다(17~20절).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전했던 것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21~23절).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였습니다(24절). 그들은 할례와 같은 종교의식은 거기에 따르는 실제 생활이 없는 한, 무가치하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했습니다(25~29절).


   ㅁ) 유대인도 버림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은 유대인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뜻(3:1)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많은 유익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민족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맡겨졌습니다(2절). 하나님은 그들을 불성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한결같이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묵과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3~8절).


   3. 그러면 결론은 무었일까요? 결국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3:9~23절)


   ㄱ) 구약 성경은 죄가 전 인류에게 감염된 사실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습니다(10~12절).


   ㄴ) 또한 구약 성경은 죄가 사람의 몸 즉,목, 혀, 입술, 입, 발 그리고 눈, 기타 모든 부분에 다 감염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13~18절).


   ㄷ) 율법은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을 정죄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다 정죄하고 있습니다. 19절의 말씀은 하나님 앞에 유대인이 전 인류의 좋은 본보기가 됨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본보기인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을 시험하셔서 그들이 죄인임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므로 그 본보기를 근거하여 전 인류를 죄인이라고 선고하셨습니다. 율법은 전 인류의 유죄성을 노출 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전혀 없음은 자명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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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생활의 원리

                                                                                                       윌리암 맥도날드 저

 

        2장 확실한 구원

 

   사람이 구원받은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다음 네 가지 내용을 확실히 이해될 때까지 읽어보십시오.

 

   1.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당신은 이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실 수없기 때문입니다.

 

   2. 성경은 당신이 만일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회개합니까? 죄와 당신 자신에 대한 당신의 마음을 바꿈으로서 당신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죄에서 돌이키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당신의 구주가 되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 완전한 변화를 당신의 삶 속에 만들기로 결심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성경을 읽으면서 죄를 미워하는 것에 대해 배우고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도 배우게 됩니다.

 

   3. 이제 다음 내용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그리스도께 나아와 당신이 죄인이고 그 죄 때문에 마땅히 형벌 받아야 할 자라는 것을 자백한 적 있습니까? 당신은 예수님께 당신을 구원해 달라고 요청했습니까? 당신은 예수님을 당신의 죄 때문에 대신 형벌 받으셔서 당신을 위해 죽으신 분으로 받아들인 적이 있습니까?

 

   4. 하나님은 만약 당신이 그렇게 했다면 이미 구원받았다고 성경을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꾸어 말하면, 당신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들로 인해 당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요한일서 5:13은 이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구절을 반드시 암송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안다" 는 단어를 다시 봅시다. 요한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그들이 이미 영생을 소유했고 또 영원히 소유하게 될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 이글을 썼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당신은 구원 받은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고 이 성경은 당신을 향해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구원을 느끼기 원합니다. 그들은 "나는 믿고 있지만, 어떤 다른 것을 느끼지 못해" 라고 합니다. 그들은 그들이 전에 느껴 보지 못했던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신비한 느낌을 기대합니다. 이러한 것이 일어나지 않을 때 그들은 혼란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이 느낌에 의존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당신이 그분의 말씀에 근거하여 구원을 확신하게 되길 원하십니다. 느낌은 너무나 자주 그리고 빨리 변하기 때문에 믿을 만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의뢰하고  당신의 느낌을 의존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당신은 "사람이 구원받을 때 기쁨이 느껴져야 하지 않나요? 라고 질문할지도 모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기쁨을 느끼기 전에 구원받았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학신하는 것이 먼저이고 느낌은 뒤따라오는 것입니다. 즉 성경이 그와 같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구원받은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구원받은 것을 알기 때문에 기쁨을 느끼게도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외에도 구원받은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음은 구원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세 가지 특징입니다.

 

   1. 구원받은 사람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합니다(요일 3:14).

 

   2. 구원받은 사람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기가 구원받았다고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것을 성령님의 증거라고 부릅니다(요일 5:10, 롬 8:16). 성령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시고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3. 구원받은 사람은 죄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합니다. 그리스도인도 때때로 죄에 빠질 때가 있지만, 더 이상 죄가 그의 삶을 지배하지는 못합니다(롬 6:14). 그는 더 이상 계속해서 죄악 된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성장해야 합니다. 이것은 당신의 구원에 대해 더욱 큰 확신을 줄 것입니다. 다음의 일들을 실천하면 당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해 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매일 성경을 읽고 마음을 다해 그것을 믿으십시오.

 

   2. 주님께, 당신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을 읽을 때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3. 당신을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님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전하십시오.

 

   만일, 아직까지도 당신이 그리스도인임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지금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구원의 확신이 없다는 것과, 하지만 지금 구원받기 원한다는 것을 주님께 말씀드리십시오. 그 분께 당신이 잃어버린 죄인인 것과 지금 이대로 죽으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음을 말씀드리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죄의 형벌을 받기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과 당신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과 구원하기 원하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주 예수님을 당신의 구주로 받아들이십시오.

 

   이제 사도행전 16:31을 찾아보십시오. 이 구절은 당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을 믿으십시오. 사단은 당신의 구원을 의심케 할 것입니다. 이런 의심이 생길 때 사도행전 16:31이나 요한복음 1:12, 3:36, 5:24 또는 로마서 10:9절을 찾아보십시오. "네가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너는 이미 구원받았다"고 말씀하시는 성경구절들을 사단에게 보여 주십시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단에게 보여주면, 사단은 더 이상 의심으로 당신을 괴롭힐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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