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분단현장을 가다 제1부 - 전쟁 60년, 전후세대의 155마일 기행 ④ 임진강 [중앙일보]
2010.04.13 01:17 입력 / 2010.04.13 09:43 수정
[베를리너판 1년 기획] 하룻밤 새 19회 결전, 강 물줄기도 바꾼 ‘피의 능선’
빛과 바람, 강과 새 등 자연은 철책선을 넘어 자유롭게 남북을 오간다. 남쪽 사람이든 북쪽 사람이든 사람들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철책선을 넘나들지 못한다. 함경남도 원산의 두류산에서 발원한 임진강은 군사분계선을 지나 남방한계선으로 사용되고 있는 경기도 연천군 필승교에 도착해야 비로소 남녘땅을 적신다. | |
빛과 바람, 강과 새 등 자연은 철책선을 넘어 자유롭게 남북을 오간다. 남쪽 사람이든 북쪽 사람이든 사람들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철책선을 넘나들지 못한다. 함경남도 원산의 두류산에서 발원한 임진강은 군사분계선을 지나 남방한계선으로 사용되고 있는 경기도 연천군 필승교에 도착해야 비로소 남녘땅을 적신다.
태풍전망대에 오른다. 남쪽에서 볼 수 있는 임진강의 최상류 지점이다. 군사분계선은 임진강 허리를 툭 자른 다음 강의 중심을 따라 길게 이어지다 연천평야 쪽으로 향한다. 물론 말뚝 하나 없는 허상의 선이지만 긴장의 선이기도 하다. 태풍전망대와 군사분계선의 거리는 불과 800m. 북의 초소에서 사정거리 안쪽에 있어 방탄유리로 둘러쳐진 최긴장의 전망대다.
강 건너 연천평야를 감싼 나지막한 두 개의 산이 보인다. 피의 능선이라 불리는 베티고지와 노리고지다. 전쟁의 막바지, 이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는 산의 높이를 낮추고 강의 물줄기를 바꾸고 못의 모양을 바꾸었다. 13시간 동안 19차례의 결전, 국군 30명과 중공군 3000명의 전투. ㎡당 4700발의 탄약, 중공군 2700명과 국군 700명의 목숨. 베티고지와 노리고지를 설명하는 이 숫자들이 사뭇 의미심장하다.
임진강을 따라 내려오다 처음으로 만나는 다리는 필승교다. 민간인 통제구역의 군사적 목적을 위한 다리다. 전쟁 전에 사용되었던 목조다리에는 철조망이 휘감겨 있다. 다리를 밟아 강을 건널 수 있는 것은 무성한 잡초들뿐이다. 태풍전망대 앞 임진강 줄기가 군사분계선이라면 필승교는 남방한계선을 긋는다. 강은 다시 거친 물살로 구비를 돌아 돌아 도감포로 향한다. 합수머리에 이르러 한탄강과 만난다.
필승교 옆에 서 있는 목조현수교의 모습. 목조 현수교는 군 작전용 교량으로 이용됐으나 1986년 필승교를 건설한 뒤 사용을 중단했다. | |
고랑포구에서 잠시 배를 댄다. 고랑포구는 임진강 하류에서 배를 타지 않고도 건널 수 있는 여울목이다. 강변을 따라 이어진 붉은 암벽이 천혜의 방패 역할을 하니, 강을 건너려는 자는 반드시 이곳을 통하게 마련이다. 북한군 전차부대가 개성에서 문산으로 직진하지 않고 이곳으로 건너왔다. 고랑포구 옆에 있는 호로고루성은 백제가 쌓고 고구려가 개축한 성으로 후에 신라와 당나라군의 격전장이 되기도 했다. 호로고루성에 오르니 시야가 탁 트인다. 고랑포구를 차지한 것은 무성한 잡초와 백사장이다. 전쟁 전 이곳에 화신백화점 분점이 있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는다. 번성하던 한 도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위엔 적막한 긴장만이 감돌고 있다.
고랑포를 떠나 임진나루에 도착한다. 임진나루는 굴욕의 역사를 숨기고 있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선조는 수도와 백성을 버리고 피란길을 떠난다. 선조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폭우가 쏟아지는 칠흑 같은 밤이었다고 한다. 야반도주하는 왕의 길을 밝히기 위해 임진강 남쪽 언덕에 있는 승정을 헐어 불을 피웠다. 그것이 화석정이다. 왜구의 침공에 대비해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던 이이가 관직을 물러나 제자들과 여생을 보낸 장소라고 알려진 곳이다. 선조가 이이의 상소를 받아들였다면 수모와 굴욕의 피란길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화석정을 불태워 피란의 불을 밝힌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임진각 철교를 지나 하구 쪽으로 성큼 내달린다. 강의 왼편으로는 문산의 아파트 단지이고 강의 오른편으론 장단습지다. 철조망 사이로 고라니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민통선 안의 너르게 펼쳐진 갈대 숲에선 독수리들이 월동을 한다. 검은 도포를 둘러쓴 독수리들이 전봇대마다 앉은 모습은 괴기스럽지만 신비롭기도 하다.
지난달 25일 낙하나루 주변의 임진강은 바람이 세차게 불어 물결이 높았다. 낙하나루는 임진강에서 어로 활동을 할 수 있는 최하류다. 동력선을 사용할 수 없어 노 젓는 배를 이용해 고기를 잡아야 한다. 취재진의 요청을 받은 어부는 배를 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로통제선이 저 앞이라며 뱃머리를 돌렸다. | |
천운영·소설가
특별취재팀 취재 신준봉 기자, 사진 김태성 기자, 동영상 이병구 기자
취재 협조 국방부·육군본부, 국군 1·9·25·28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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