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광필터 넣고 찰칵, 눈 앞에 그림이 펼쳐졌다

[필름으로 담은 사이판 ②] 마나가하섬의 투명한 바다에 풍덩

17.03.25 20:37l최종 업데이트 17.03.25 20:56l

*3:2 비율의 모든 사진은 MZ-S(카메라)와 Velvia50(포지티브필름)으로 촬영하였으며, 1:2 비율의 사진은 HorsemanSW612(카메라)와 다양한 네거티브 필름으로 촬영하였습니다.

환상적인 물빛, 마나가하 섬

사이판에서 딱 하나의 여행지만 다녀올 수 있다면 나는 두 개의 선택지를 놓고 고민할 것 같다. 하나는 타포차우 산이요, 또 하나는 마나가하섬이다. 섬 전체를 조망할 수 있고 잠깐이나마 오프로드를 즐길 수 있었던 타포차우산, 물감이나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낸 듯하여 오히려 현실감이 들지 않았던 놀라운 색감의 마나가하섬. 이 둘 중에 그래도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마나가하섬을 택하겠다.
마나가하섬의 입구에서 과도하게 진한 하늘 색은 편광 필터의 역할 때문이다. 투명한 물빛과 매우 대조적이다.
마나가하섬의 입구에서 과도하게 진한 하늘 색은 편광 필터의 역할 때문이다. 투명한 물빛과 매우 대조적이다.ⓒ 안사을
마나가하섬으로 들어가기 위해 비현실적인 코발트 블루 색깔 위로 15분 남짓 달렸던 짧은 항로는 아직까지도 눈 앞에 선하다. 하얀 도자기로 만든 욕조에 스포츠 음료를 전혀 희석 없이 가득 담아 놓은 듯한 빛깔이었다.

그 당시는 오히려 진짜같지 않았고 2주 정도 지난 지금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와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반 나절이 다 되도록 바다 속에서 색색의 물고기들과 함께 했지만 그것에 더하여, 언젠가는 텐트와 각종 야영 장비를 갖고 들어가 일박을 하며 총총히 뜬 별들을 헤어보고, 그 곳에서 또 다른 아침을 맞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만족스러운 여행지였다.
마나가하섬 입구 15분 정도 배를 달리면 사이판 본섬에서 보이는 마나가하섬의 뒤편에 도착한다. 그곳에 작은 항구가 있다.
마나가하섬 입구 15분 정도 배를 달리면 사이판 본섬에서 보이는 마나가하섬의 뒤편에 도착한다. 그곳에 작은 항구가 있다.ⓒ 안사을
위 사진은 마나가하섬의 항구에서 섬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이다. 이렇게 아무도 없는 진입로를 찍으려면 오후에 들어가야 한다. 오전에는 중국 패키지 관광객으로 섬이 가득 차기 때문에 많이 붐빈다. 필자가 들어간 때는 마침 오전의 관광객과 오후의 관광객이 교차하는 시간대여서 한가하지는 않았는데, 이곳에 삼각대를 설치하고 20분 정도 기다린 결과 위와 같은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비취색 바다 사이판 본섬에서의 물빛과는 또 다른 빛깔을 보여주었던 마나가하섬.
비취색 바다 사이판 본섬에서의 물빛과는 또 다른 빛깔을 보여주었던 마나가하섬.ⓒ 안사을
 야자수가 우거진 섬 내부의 산책로.
야자수가 우거진 섬 내부의 산책로.ⓒ 안사을
섬을 다 돌아보는 데 30분이면 충분하다. 그만큼 아담한 섬이다. 하지만 이 곳에서 몇 시간을 보내도 지루하지 않다. 바로 스노쿨링 때문이다. 수중카메라가 있었다면 물 속을 담아오고 싶었을 정도로 원색의 예쁜 물고기들이 참 많았다. 섬은 작지만 연안은 꽤 넓어서 바다쪽으로 수백미터 정도는 얕은 수심이 계속되어 스노쿨링을 즐기기에 매우 적합했다.

배를 타고 깊은 곳으로 나가 다이빙을 즐긴다면 더욱 크고 아름다운 물고기를 볼 수 있겠지만 언제든지 드러누워 쉴 수 있는 해변을 뒤로 하고 마음 편히 즐기는 스노쿨링 또한 참 좋았다. 30분 가까이 유영을 하고 해변으로 올라와 차가운 물 한잔과 크래커 몇 조각을 먹은 후 다시 물로 들어가고, 이런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니 어느덧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아래의 사진은 마나가하섬에서 바라본 바다의 풍경이다. 1:2 비율의 사진은 네거티브 필름, 2:3 비율의 사진은 슬라이드 필름이다. 서로 특성이 달라서 느낌 또한 사뭇 다르다.
 마나가하섬의 해변. 죽은 나무도 하나의 풍경이 된다.
마나가하섬의 해변. 죽은 나무도 하나의 풍경이 된다.ⓒ 안사을
 위 사진과 같은 풍경이지만 채도가 높고 관용도가 낮은 슬라이드필름을 사용했고 편광필터를 끼워서 촬영했다.
위 사진과 같은 풍경이지만 채도가 높고 관용도가 낮은 슬라이드필름을 사용했고 편광필터를 끼워서 촬영했다.ⓒ 안사을
아래의 두 사진 역시 하나는 네거티브, 하나는 슬라이드로 찍었다. 각도가 약간 다르지만 비슷한 위치에서 찍은 사진이다.
 하늘색과 바다색이 조화를 이루며 펼쳐져있다.
하늘색과 바다색이 조화를 이루며 펼쳐져있다.ⓒ 안사을
햇빛이 엄청나게 따가웠지만 150+++ 선크림을 잔뜩 발랐고 섬의 곳곳에 나무그늘이 충분했기 때문에 그리 힘든 날씨는 아니었다. 여름나라이고 이 날도 기온이 32도 정도로 계속 유지되었지만 우리나라의 여름보다 훨씬 지내기가 수월했다. 이곳은 4월이 가장 덥다고 한다. 이제 곧 가장 더운 계절이 다가오는 셈이다.
 마나가하섬 내부의 모습.
마나가하섬 내부의 모습. ⓒ 안사을
 섬의 외부를 향하고 있는 녹슨 포의 모습. 아픈 과거의 모습이 고스란이 남아있는 모습.
섬의 외부를 향하고 있는 녹슨 포의 모습. 아픈 과거의 모습이 고스란이 남아있는 모습.ⓒ 안사을
 텅 빈 마나가하섬을 떠나는 가족의 모습.
텅 빈 마나가하섬을 떠나는 가족의 모습.ⓒ 안사을
아직도 아쉬운 것은 사이판 본섬에서 마나가하섬으로 들어오는 중간, 형광빛 바다의 색깔을 사진으로 담아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전예약이 필요한 유람선을 이용하지 않고 해변에서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제트보트를 이용했기 때문에 흔들리고 물이 튀어서 카메라를 꺼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나가하섬을 떠나기 직전 그나마 연안과 멀리 있어서 물빛이 조금 진했던 항구의 모습을 담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마나가하섬의 작은 항구. 올 때 타고온 보트를 다시 타고 나가야 한다.
마나가하섬의 작은 항구. 올 때 타고온 보트를 다시 타고 나가야 한다.ⓒ 안사을
사이판의 구석구석

아래 사진에 나와있는 곳들은 렌트카를 이용하지 않으면 도착할 수 없는 곳들이다. 요철이 상당히 심한 비포장을 한참 뚫고 가야 나오는 곳들이기도 하다. 몇몇 장소들은 힘든 운전이 무색할만큼 그저 그런 경치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대부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우거진 수풀 때문에 100미터가량의 비포장 도로를 후진하기도 했고 본의아니게 민가를 침범해 머나먼 타국의 낯선 이웃에게 송구스러움을 표현해야 하기도 했다.
 Santa Lourdes Shrine 사이판에서 가장 성스러운 공간. 카톨릭이 들어오기 전부터 원주민들에게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Santa Lourdes Shrine 사이판에서 가장 성스러운 공간. 카톨릭이 들어오기 전부터 원주민들에게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안사을
 Santa Lourdes Shrine 우거진 나무덩쿨 사이 놓여진 성모마리아상. 중국인은 떠들다가 가고 한국인들은 기도를 하다가 간다.
Santa Lourdes Shrine 우거진 나무덩쿨 사이 놓여진 성모마리아상. 중국인은 떠들다가 가고 한국인들은 기도를 하다가 간다.ⓒ 안사을
Santa Soledad Parish 보라색이 참 인상적이었던 교회. 송아지만한 개가 있어서 차 안에서만 잽싸게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햇빛이 너무 강렬하여 건물의 색깔이 제대로 담기지 못했다. 실제로는 좀 더 선명한 보라색이다.
Santa Soledad Parish 보라색이 참 인상적이었던 교회. 송아지만한 개가 있어서 차 안에서만 잽싸게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햇빛이 너무 강렬하여 건물의 색깔이 제대로 담기지 못했다. 실제로는 좀 더 선명한 보라색이다.ⓒ 안사을
레더비치 사이판 섬의 남부에 위치한 해변. 날씨가 좋지 않았고 햇빛이 전면에서부터 비춰와 하늘이 하얗게 담겼다. 나름의 아늑한 분위기가 있는 해변이다.
레더비치 사이판 섬의 남부에 위치한 해변. 날씨가 좋지 않았고 햇빛이 전면에서부터 비춰와 하늘이 하얗게 담겼다. 나름의 아늑한 분위기가 있는 해변이다.ⓒ 안사을
레더비치의 소녀 미지의 바다를 바라보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같았던 소녀의 뒷모습.
레더비치의 소녀 미지의 바다를 바라보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같았던 소녀의 뒷모습.ⓒ 안사을
Laulau Beach 유일하게 바다 비린내가 났던 곳. 이곳도 꽤나 긴 비포장을 지나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은 그로토 못지 않은 다이빙 명소라고 한다. 수중생물들이 많이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유일하게 비린내가 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Laulau Beach 유일하게 바다 비린내가 났던 곳. 이곳도 꽤나 긴 비포장을 지나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은 그로토 못지 않은 다이빙 명소라고 한다. 수중생물들이 많이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유일하게 비린내가 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안사을
Laulau Beach 라우라우비치의 모습. 여느 해변처럼 깔끔한 백사장이 펼쳐져있지는 않지만 마다의 짙은 색깔이 인상적인 곳.
Laulau Beach 라우라우비치의 모습. 여느 해변처럼 깔끔한 백사장이 펼쳐져있지는 않지만 마다의 짙은 색깔이 인상적인 곳.ⓒ 안사을
Laulau Beach 물 속에 들어가서 찍은 유일한 사진. 편광필터를 끼웠다면 물 속이 더 투명하게 담겼을 것이다.
Laulau Beach 물 속에 들어가서 찍은 유일한 사진. 편광필터를 끼웠다면 물 속이 더 투명하게 담겼을 것이다.ⓒ 안사을
Forbidden Island 이곳 역시 험난한 비포장길을 뚫고 와야한다. 곳곳에 깊은 물웅덩이가 있어서 운전이 쉽지 않은 곳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이 참 아름다웠는데, 이름처럼 금지된 곳은 아니었다. 어디인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내려가는 길이 있고 다이버들이 종종 찾는 곳이라고 한다.
Forbidden Island 이곳 역시 험난한 비포장길을 뚫고 와야한다. 곳곳에 깊은 물웅덩이가 있어서 운전이 쉽지 않은 곳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이 참 아름다웠는데, 이름처럼 금지된 곳은 아니었다. 어디인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내려가는 길이 있고 다이버들이 종종 찾는 곳이라고 한다. ⓒ 안사을
Lake Susupe 타포차우산에서 보였던 꽤나 큰 호수. 위성 지도를 보고 찾아가 보았으나 이곳은 민가가 위치한 곳이었다. 관광지는 아니었으나 매우 아름다웠던 곳. 주민 분께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어왔다.
Lake Susupe 타포차우산에서 보였던 꽤나 큰 호수. 위성 지도를 보고 찾아가 보았으나 이곳은 민가가 위치한 곳이었다. 관광지는 아니었으나 매우 아름다웠던 곳. 주민 분께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어왔다.ⓒ 안사을
사이판의 마지막 밤, 드디어 만난 새빨간 석양

사이판 여행에서 꽤나 큰 기대를 가졌던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석양이었다. 강렬한 남국의 태양이 선사하는 석양은 한국의 서해에서 보는 석양과 또 다른 느낌을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날씨가 참 좋았기 때문에 그 기대는 저녁이 되면서 더욱 부풀었다. 하지만 사이판의 하늘은 야속하게도 이틀동안 빨간 하늘을 감추고 보여주지 않았다. 애매한 위치에 두터운 구름이 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저녁이 되어갈 때쯤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곳에 구름이 없었다. 가장 드라마틱한 석양은, 바다의 끝이 허공으로 비어있고 그 외의 하늘에 구름이 얇게 깔려있을 때 나타난다. 이 날은 새털구름이 돕지는 않았지만 수평선 또한 가리지 않았기에 나름대로 만족할만한 석양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야 '나름대로 만족할만한'이라고 표현하지만, 당시에는 벅찬 마음을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이틀 동안 깍쟁이처럼 굴던 하늘이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비치의 석양. 야자수의 실루엣과 함께.
마이크로비치의 석양. 야자수의 실루엣과 함께.ⓒ 안사을
 야자수와 석양. 마이크로비치.
야자수와 석양. 마이크로비치.ⓒ 안사을
 마이크로비치의 석양
마이크로비치의 석양ⓒ 안사을
 노출을 길게 주어 수면의 잔상을 모두 기록했다.
노출을 길게 주어 수면의 잔상을 모두 기록했다.ⓒ 안사을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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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천국 사이판...찍을 곳 많고, 차 세우기 좋고

[필름으로 담은 사이판 ①] 환상적인 바다 속에 숨겨진 전쟁의 흉터

17.03.18 15:39l최종 업데이트 17.03.22 10:22l


예전 직장 동료 중 '갈색교사'라는 별명을 가진 교사가 있었다. 자동차도 갈색이었고 눈동자도 갈색이었고 평소 즐겨 입는 코트도 갈색이었으며 무엇보다 머리색과 피부색이 갈색이었다. 선생님들의 특색을 잡아서 별명을 짓는 센스가 남달랐던 여고생들이었기에 그녀의 별명 또한 입에 착 달라붙어 아이들 입에 오르내렸다. 그들이 선생님들에게 지어준 별명들을 설명과 함께 나열하자면 또 하나의 글이 될 만큼 대단하다.

그녀가 '갈색교사'가 된 여러가지 이유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피부가 다시 하얗게 될 틈이 없었다는 것이다. 언젠가 그녀의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내용은, 여름에도 여름 나라에서 휴가를 보내고, 겨울에도 여름나라에서 휴가를 보내니 회복되는 시간이 없이 계속해서 까매지기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주변의 몇 명과 함께 폭소를 터트렸다.

부모님과 처음으로 국제선 비행기를 탔다. 한겨울 매서운 바람을 새벽부터 뚫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의 좁은 좌석에 4시간 반 남짓 앉았다가 일어섰다. 두터운 철문을 나서자 마자 더운 바람이 후끈 몸을 적셨다. 누군가 따뜻하게 덥힌 물수건을 목덜미에 철퍼덕 얹은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엄청나게 강렬한 햇빛을 만났다.

풍경의 채도가 달랐다. 태양빛의 입사각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온 몸으로 여름 나라를 만난 순간 한 동안 머릿 속 깊은 곳에 장기기억으로 숨어있던 그녀가 떠올랐다. '갈색교사'.

사이판의 흔한 길가 네거티브필름. 사이판의 주 도로 옆으로 펼쳐져있는 흔한 풍경. 강렬한 태양빛과 깨끗한 공기 덕에 매우 선명한 시야가 확보된다.
사이판의 흔한 길가 네거티브필름. 사이판의 주 도로 옆으로 펼쳐져있는 흔한 풍경. 강렬한 태양빛과 깨끗한 공기 덕에 매우 선명한 시야가 확보된다.ⓒ 안사을
3박4일 내내 한낮 기온이 30도를 웃돌았다. 그래도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았던 것은 첫째로 우리나라의 여름보다 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둘째로 공항에서부터 공항까지의 모든 시간 동안 렌트카를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사이판이 매우 작은 섬(제주도의 9분의 1)이기 때문에 보통 젊은 여행자들은 렌트카를 하루만 이용하곤 한다. 하지만 가족단위 여행객이라면 렌트카를 풀타임으로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버스는 거의 다니지 않고 택시는 비싸며 무엇보다도 피부건강을 위해서 개인 차량이 필요하다.

렌트카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업체를 택했다. 공항으로 픽업을 나왔다. 계약서를 쓴 직원은 한국인이 아니었지만 피차 간단한 영어를 구사하는 덕에 어렵지 않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렌트카는 크게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머스탱과 RV로 나뉜다. 승용 세단도 있지만 여행객들은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사이판의 비포장길 디지털(핸드폰). 매우 유명한 곳을 제외하고 나머지 포인트들에 접근하려면 사진과 같은 비포장 길을 지나야 한다. 경사와 요철이 꽤 심한 곳들이 있어서 RV차량이 더 적합하다.
사이판의 비포장길 디지털(핸드폰). 매우 유명한 곳을 제외하고 나머지 포인트들에 접근하려면 사진과 같은 비포장 길을 지나야 한다. 경사와 요철이 꽤 심한 곳들이 있어서 RV차량이 더 적합하다.ⓒ 안사을
사이판 여행을 한다면 머스탱보다는 RV를 추천하고 싶다. 꼭 들러야하는 '타포차우산'을 비롯하여 비포장도를 통과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포인트가 몇 곳 있기 때문이다. 고난도의 운전기술이 필요한 곳은 없지만 생각보다 거칠고 깊게 파여있는 부분들이 산재해있어서 차고가 높지 않으면 상당히 지나가기 힘들다. 해외에서 렌터카를 이용하다 차량의 수리비까지 물어주어야 하는 상황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한국 출발 오전 10시 반, 사이판 출발 오후 4시 반이라는 비행기 시각과 렌터카 덕분에 3박4일의 시간을 매우 알차게 빈틈 없이 즐기고 왔다. 오히려 하루 정도는 카페와 바다 속에서 여유를 즐겼다. 여정 사이에 즐기는 시간적 사치 또한 여행의 묘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의 처절함이 묻어있는 곳, 자살절벽 

사이판 섬 면적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타포차우산을 비롯해 야자수 나무가 우거진 정글 숲과 함께 꽤나 고도감이 느껴지는 언덕들이 있다. 때문에 작은 섬이지만 매우 다양한 경치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 날은 타포차우산을 먼저 올라 석양 포인트로서의 가능성을 미리 탐색해 보았고 본격적인 여행은 둘째날 아침부터 진행되었다.

사이판은 양면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섬이다. 평화로운 바다와 험준한 바위산이 그렇고, 스노쿨링 및 물놀이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얕은 연안과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의 존재가 그렇다. 가장 대조적인 것은, 아름다운 풍경 너머에 있는 아픈 역사이다. 태평양에 위치한 작은 섬. 지리적인 요건 때문에 많은 나라의 지배를 받았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처럼 말이다.

숙소가 있는 섬의 서편에서 출발하여 북쪽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굽이져서 오르막이 형성되어 있다. 마피산의 코 앞을 돌아가는 정도가 되겠다. 운전을 하다보니 사이드미러로 보이는 절벽이 범상치 않다.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를 꺼냈다.

마피산과 자살절벽 네거티브필름. 사진으로 보이는 높은 절벽이 바로 자살절벽이다. 마피산에 위치해있다.
마피산과 자살절벽 네거티브필름. 사진으로 보이는 높은 절벽이 바로 자살절벽이다. 마피산에 위치해있다.ⓒ 안사을
사이판은 괌과 여러 모로 비슷한 섬이다. 괌은 하와이의 축소 버전, 사이판은 괌의 시골 버전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전해진다. 개인적으로 사이판이 괌보다 더 좋았던 것은 자유로운 주차 문화였다. 괌은 도로변이 좁고 차량이 많아 경치가 좋은 곳을 보아도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적이 많았다.

그래서 정해진 포인트가 아니면 사진을 남기기가 힘들었는데 이곳 사이판은 도심을 벗어나면 차량이 매우 적고 도로변의 부지가 넓어서 중간에 멈추고 시간을 보내기가 안전하고 쉬웠다. 물론 '통로 아님' 팻말과 '주차공간 아님' 팻말이 군데 군데 있지만 전체 부지의 10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 싱그러운 녹색 풀들이 상하지 않게 조심스레 주차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당연한 예의일 것이다.

다시 출발하여 동쪽과 남쪽으로 조금 돌아가면 절벽 상단으로 올라갈 수 있는 갈림길을 만난다. 5분 남짓 차를 달려 기념탑과 관망 포인트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은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미군의 압박에 끝까지 항복을 하지 않고 일부는 뛰어내림으로, 일부는 수류탄을 터트림으로 자결을 했던 곳이다. 일본인들은 이곳, 혹은 만세절벽에 와서 눈물로 참배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자살절벽 위에서 디지털(핸드폰). 태양이 오른쪽 정면에 있어서 관용도가 부족한 포지티브 필름으로 담지 않고 핸드폰의 파노라마 기능을 이용해 돌려서 찍었다. 실제로 느끼는 고도감은 사진보다 훨씬 강하다.
자살절벽 위에서 디지털(핸드폰). 태양이 오른쪽 정면에 있어서 관용도가 부족한 포지티브 필름으로 담지 않고 핸드폰의 파노라마 기능을 이용해 돌려서 찍었다. 실제로 느끼는 고도감은 사진보다 훨씬 강하다.ⓒ 안사을
공감은 가지 않는다. 오히려 이곳에 징용와서 살고 있던 한국인들도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일본인들에 의해 강제로 떠밀림을 당했다는 사실에 분노의 마음이 들 뿐이었다. 생명의 존엄성에 관해서만 생각하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전쟁을 일으킨 원흉에 대한 측은지심을 갖기에는 아직 마음이 넉넉지 않다.

새들의 보금자리 '새섬'

오던 길을 돌아 아까의 갈림길에서 다른 방향을 택하면 이곳에 오는 모든 관광객이 반드시 들르는 '새섬'에 도착한다. 새섬이라는 이름은 파도의 모습이 새의 날갯짓 같다고 하여 붙여지기도 했고, 실제로 가운데 존재하는 무인도가 새들의 보금자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둥지를 틀만한 빈 공간이 많이 형성되어 있는 석회질 암석의 특성이 한 몫 했을 것이다.

관망 포인트에서 담은 새섬 네거티브필름. 해안의 물빛과 조금 떨어진 곳의 물빛의 대조가 극명하다. 수심이 차가 매우 크기 때문.
관망 포인트에서 담은 새섬 네거티브필름. 해안의 물빛과 조금 떨어진 곳의 물빛의 대조가 극명하다. 수심이 차가 매우 크기 때문.ⓒ 안사을
걸어서 계단을 20여개만 내려가면 관망 포인트가 나온다. 더 이상 내려갈 수는 없다. 철제나 나무 데크로 계단을 만들어서 오르내릴 수 있게 개발을 했다면 오히려 저 곳을 바라보는 마음의 즐거움이 반감했을 것이다. 가장 좋은 각도를 찾아서 아버지의 D-slr로 가족사진을 담은 후 다른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칼라베라 동굴

애초 계획에는 없었지만 새섬 주차장의 팻말에 써있던 '칼라베라 동굴'이라는 글자가 나를 유혹했다. 팻말이 가리키는 곳은 포장이 되지 않은 흙길이었다. 이미 전 날 훨씬 험한 타포차우산을 한 번 올라갔다 온 뒤여서 마음에 큰 부담을 갖지 않고 동굴로 향했다. 얼추 타이어의 절반 정도는 잠길 듯한 웅덩이의 흙탕물을 100개 정도는 갈라놓으며 동굴에 도착했다.

칼라베라 동굴 주차장에서 네거티브필름. 오히려 동굴보다 동굴을 포함하고 있는 절벽의 위용이 더욱 볼만했던 곳.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개방.
칼라베라 동굴 주차장에서 네거티브필름. 오히려 동굴보다 동굴을 포함하고 있는 절벽의 위용이 더욱 볼만했던 곳.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개방.ⓒ 안사을
우리 외에 아무도 없었다. 울타리가 쳐 있어서 풍경을 담기에 조금 아쉬웠지만 이국적인 모습을 눈으로 즐기기에는 충분했다. 이 동굴에도 역시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전쟁시 점령되어 원주민들이 몰살당했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현재는 동굴 입구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

입구에서부터 낭떠러지인데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별도의 설치물이 없고 나무 울타리로 막혀 있다. 그곳에서는 그저 뻥 뚫린 입구만 보이지만 밑으로 내려가면 보이는 것보다 훨씬 길고 깊은 공간이 있다고 한다. 칼라베라라는 명칭은 동굴 입구에서 보이는 동굴 벽의 모습이 해골 같다고 하여 붙여졌다.

굉음을 내며 부서지는 파도, 만세절벽

비포장 도로를 왔던 대로 다시 돌아 나가서 새섬 주차장을 지나 자살절벽의 벽면을 지나쳐 가면 만세절벽으로 가는 작은 길로 우회전할 수 있다. 포장 도로이기 때문에 편하게 갈 수 있다.

이곳 역시 일본군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던진 곳인데 뛰어내리면서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고 하여 만세절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영어로는 'Banzai Cliff'라고 한다. 이 Banzai라는 단어는 만세를 뜻하는 일본어와 발음이 매우 비슷한데, 일본어에서 유래된 외래어인 셈이다. 고유명사도 아닌 단어가 영어로 굳어지기까지 한 것을 보면 일본인의 결사적인 충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만세절벽 네거티브필름. 만세절벽의 모습. 파노라마 포맷의 카메라를 세로로 들고 찍었다.
만세절벽 네거티브필름. 만세절벽의 모습. 파노라마 포맷의 카메라를 세로로 들고 찍었다.ⓒ 안사을
만세절벽 포지티브필름. 네거티브 필름에 비해 관용도가 낮고 발색이 화려하다.
만세절벽 포지티브필름. 네거티브 필름에 비해 관용도가 낮고 발색이 화려하다. ⓒ 안사을
두 사진은 모두 같은 공간을 찍었지만 카메라와 필름이 다르다. 카메라의 차이보다 필름의 차이가 훨씬 더 사진의 질적 차이에 영향을 미치는데, 네거티브 필름은 포지티브 필름에 비해 선예도와 발색력이 조금 떨어지고, 포지티브 필름은 네거티브 필름에 비해 노출 관용도가 매우 낮다.

노출 관용도가 낮다는 말은 적정 노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필름에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위 사진은 절벽의 그림자와 하얀 포말 사이의 노출 차가 너무 커서 포지티브 필름으로는 암부 디테일과 명부 디테일을 제대로 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하늘의 색깔이 진하게 나오고 전체적으로 색이 화려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원래 필름의 차이만 보면 포지티브 필름이 훨씬 선예도가 좋은데 위 사진은 선예도에서도 네거티브가 뒤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네거티브 필름을 물린 카메라는 중형 파노라마 카메라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사진을 담은 카메라에 비해 한 컷에 소요되는 필름 면이 약 6배 정도의 사이즈가 되고 렌즈의 가격 또한 5배가 넘는다. 아래의 사진 두 장도 마찬가지의 대조점을 갖는다.

만세절벽 네거티브 필름. 중형 파노라마 포맷
만세절벽 네거티브 필름. 중형 파노라마 포맷ⓒ 안사을
만세절벽 포지티브필름. 35mm 포맷.
만세절벽 포지티브필름. 35mm 포맷.ⓒ 안사을
이렇게 대조와 채도가 매우 높은 포지티브 필름이기 때문에 노출차가 극명한 풍경이나, 인물사진 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강한 발색과 훌륭한 선예도 때문에 적절한 상황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점심 식사를 위해 가라판 시내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도 순간 순간 아름다운 풍경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조금 걷더라도, 안전한 곳에 차를 대고 재빨리 사진을 찍었다. 가족끼리 자유여행을 왔다는 것이 이로운 점으로 작용하는 순간들이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이런 부자의 모습을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시는 어머니와 함께였으니 말이다.

사이판의 흔한 풍경 슬라이드필름. 드라이브 도중에 만날 수 있는 풍경.
사이판의 흔한 풍경 슬라이드필름. 드라이브 도중에 만날 수 있는 풍경.ⓒ 안사을
하늘과 바다와 길 포지티브필름. 여행 기간 중 3번 정도 지나쳤던 길. 강렬한 햇빛과 맑은 날씨,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 덕에 녹슨 가드레일조차 매력적인 하나의 포인트가 된다.
하늘과 바다와 길 포지티브필름. 여행 기간 중 3번 정도 지나쳤던 길. 강렬한 햇빛과 맑은 날씨,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 덕에 녹슨 가드레일조차 매력적인 하나의 포인트가 된다.ⓒ 안사을
위성 위치기반 서비스를 통한 전자지도로 길을 찾아다녔는데, 길의 명칭이 포장인지 비포장인지에 대한 구분과 전혀 상관이 없어서 당황스러운 상황이 많았다. 지도만 보고 길이 있다고 판단하여 한참을 가다보면 막상 비포장 도로를 수백미터 정도 통과해야 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도에서는 방사형으로 잘 정비된 작은 도심처럼 보이는 곳이었는데 실제로 들어가보면 길이랄 것도 없는, 여러 채의 집들이 연결된 통로에 불과한 곳도 있었다.

점심식사 후 오른 '타포차우 산'

부모님께서 연세에 비해 나름 신세대 입맛을 가지고 계신 덕분에, 머나 먼 타국 땅에 와서 한국 식당을 가야하는 안타까운 일 없이 모든 끼니를 서양식으로 해결했다. 이날 점심은 수제버거. 식당에서 관광객은 우리 뿐이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낯선 곳을 여행하는 느낌을 곱절로 느낄 수 있었다.

타포차우 산은 해발 474미터로 세계의 명산에 견주면 매우 낮은 동산에 불과하겠지만 작은 섬 중간에 솟아있기 때문에 해안가에서 바라보면 그 위용이 꽤나 위풍당당하다. 4일 중 하루를 제외하고 산 꼭대기 부근에는 구름과 안개가 걸려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면 대기의 흐름에 꽤 많은 영향을 주는 듯하다.

바퀴가 몇 번 헛돌고, 어머니의 "아이고, 아이고" 소리를 몇 번 들으면서 RV차량을 25분 가량 몰다 보면 타포차우 산 정상 주차장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계단을 20여개만 오르면 시야가 탁 트인다. 앞, 뒤, 좌, 우 모든 곳으로 해안과 바다를 볼 수 있다. 해변과 먼 바다의 길고도 뚜렷한 경계를 볼 수 있고 수평선 위로 줄줄이 떠있는 예쁜 구름들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도 역시 중형 파노라마 카메라에는 네거티브 필름을, 35mm 카메라에는 포지티브 필름을 물려 촬영하였다.

타포차우 산에서 네거티브필름.
타포차우 산에서 네거티브필름.ⓒ 안사을
타포차우 산에서(2) 네거티브필름. 멀리 보이는 해변이 바로 가장 번화가인 가라펜을 포함한 서쪽 해안이다.
타포차우 산에서(2) 네거티브필름. 멀리 보이는 해변이 바로 가장 번화가인 가라펜을 포함한 서쪽 해안이다.ⓒ 안사을
타포차우 산에서(3) 포지티브필름. 위 사진들과 동일한 위치, 카메라와 필름을 달리해서 찍은 사진.
타포차우 산에서(3) 포지티브필름. 위 사진들과 동일한 위치, 카메라와 필름을 달리해서 찍은 사진.ⓒ 안사을
타포차우 산에서(4) 포지티브필름. 저 배들은 몇 일 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타포차우 산에서(4) 포지티브필름. 저 배들은 몇 일 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안사을
모두 자동차를 이용했기 때문에 힘들진 않았지만 다리보다도 팔의 힘을 더 사용했을 정도로 요철이 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산을 3번이나 올랐다. 순전히 사진 때문이었다. 해변의 날씨는 참 좋았지만 산에는 항상 안개와 구름이 있어서 시야를 방해했다. 이곳에서 석양을 촬영하고 싶은 마음이 매우 간절했지만 타포차우 산의 정상은 한낮의 푸르름만을 허락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여행 기간 내내 날씨가 참 청명했다는 것이다. 해외여행의 특성상 날씨에 맞추어 여행 기간을 수정할 수 없기에 하늘이 찌뿌둥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여행이다. 물론 우리 가족은 비가 왔어도 그에 맞는 긍정적인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저녁 무렵 서쪽 하늘의 구름이 애매한 곳에 떠 있어서 마음속으로 계속 그려왔던 새빨갛고 강렬한 석양을 담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래 사진처럼 독특한 분위기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것 또한,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한 우리 가족의 가정 교육 덕이 아니었을까.

사이판의 저녁 네거티브필름. 아직 시커멓지 않은 하늘, 천천히 움직이는 그림, 밝은 보름달과 잔잔한 수면. 1분 30초의 노출을 주어 촬영했다. 왼쪽의 선은 항구로 들어오는 배의 조명.
사이판의 저녁 네거티브필름. 아직 시커멓지 않은 하늘, 천천히 움직이는 그림, 밝은 보름달과 잔잔한 수면. 1분 30초의 노출을 주어 촬영했다. 왼쪽의 선은 항구로 들어오는 배의 조명.ⓒ 안사을
사이판의 저녁(2) 네거티브필름. 진한 구름이 수평선을 가리는 바람에 강렬한 노을을 볼 수 없었지만 장노출을 통해 독특한 분위기의 사진을 만들어 보았다. 중간 상단의 선은 금성의 궤적.
사이판의 저녁(2) 네거티브필름. 진한 구름이 수평선을 가리는 바람에 강렬한 노을을 볼 수 없었지만 장노출을 통해 독특한 분위기의 사진을 만들어 보았다. 중간 상단의 선은 금성의 궤적.ⓒ 안사을
* 사이판 여행의 필수 코스, '마나가하섬' 여행기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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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먼지를 뒤집어 쓴 지옥이었다

[히말아야 설산과 그곳 사람들을 찾아서①]

17.01.30 13:46l최종 업데이트 17.01.30 13:46l

가게를 여는 여인 사원내에 있는 상점에서 가게 주인이 물건을 팔기 위애 진열하고 있다.
▲ 가게를 여는 여인 사원내에 있는 상점에서 가게 주인이 물건을 팔기 위애 진열하고 있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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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2일, 밤 10시가 넘어 카드만두 트리부반 공항에 내렸다. 공항은 작았고 시설도 낙후되어 보였다. 공항에서 대기하던 승합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 숙소로 향했다. 20여분 달리자 곧 시내로 들어섰다. 도시의 불빛은 좀 어둡고 음산했다. 거리에는 많은 차가 다니고 있었으나 도로 포장상태가 썩 좋지 않아 보였다.

차는 숙소가 위치한 카트만두 도심, 일명 여행자 거리라는 곳에서 멈춰 섰다. 도심 골목이 무척이나 어두워 보였다. 상점은 이미 문을 닫은 지 오래고, 골목엔 희미한 가로등만이 조는 듯 힘없이 서 있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의 첫 인상은 어둡고 칙칙했다.

네팔은 지금 계절상 한겨울이다. 그러나 한국만큼 춥지는 않다. 더구나 카트만두는 해발 1300m가 넘는 고지대임에도 영상의 기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곳은 1월의 평균 기온이 3도에서 17도 사이로 한국의 늦가을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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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새벽 5시 카트만두 시내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스와암부나트사원이라는 곳으로 이동을 했다. 시내 거리는 여전히 어두웠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몇몇 사람이 지나갈 뿐 거리는 어제 밤처럼 한산했다. 차에서 내려 곧장 사원으로 올라서자 처음으로 맞이해주는 것은 놀랍게도 다름 아닌 원숭이였다. 원숭이가 많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막상 사원에서 원숭이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니 당황스럽고 낯설기만 하다.

이른 새벽임에도 사원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있었다. 일출을 보기 위해 온 사람도 있고, 기도를 위해 온 사람도 있다. 오전 7시가 되자 여명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원에 올라온 사람들이 갑자기 분주해 지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해를 사진에 담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 사람도 있고, 아침 해를 바라보며 환호와 기도를 하는 사람 그리고 사원을 빙빙 돌며 간절하게 소망을 기원 사람들로 사원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해가 여명을 앞세우고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그곳을 응시했다.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어떤 분장도 하지 않고 평범하게 나타났다. 가만히 살펴보니 공중에 떠 있는 수많은 먼지와 수증기로 인해 기대한 일출은 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다려 보았지만 점점 수증기가 위로 올라 와 시계를 흐릴 뿐 바라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사원에서 만난 원숭이 새벽에 사원에 오른자 원숭이가 낯선 이방인을 지붕에서 가만히 내려다 보고 있다.
▲ 사원에서 만난 원숭이 새벽에 사원에 오른자 원숭이가 낯선 이방인을 지붕에서 가만히 내려다 보고 있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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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로 해가 쑥 떠오르자 사원 어디에서 숨어 있었는지 수많은 비둘기와 원숭이들이 떼를 지어 나타났다. 어림잡아 수 백 마리는 돼 보였다. 비둘기들은 마당에서 무언가 주워 먹기에 바쁘고, 원숭이들은 가족들과 어울려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포즈를 취해 주는 등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원숭이들은 혼자보다는 가족과 함께 어울려 있었는데, 모습들이 참 인상적이다. 어미 원숭이가 어린원숭이를 안거나 어깨에 태우고 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가족의 참 모습을 보는 같아 마음이 절로 행복해진다.

스와암부나트사원은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2000년 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네팔불교인 라마교의 성지로 원숭이들이 많이 살고 있어 원숭이 사원이라고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카투만두는 원래 호수였다고 한다. 문수보살이 물을 말려 없애자 맨 먼저 이 사원이 떠올랐다고 한다. 흰 돔의 사원 꼭대기에는 금빛 탑이 있으며 이탑에는 카트만두를 수호하는 거대한 눈이 그려져 있다.

새벽부터 멋진 일출을 기대하고 올라왔지만 카트만두 모습은 뿌옇기만 했다. 아주 오래된 도시처럼 건물은 매우 낡았고, 새로 지은 고층 빌딩하나 없는 퇴색된 도시였다. 우리나라 70년대 이전의 모습이라 할까? 매우 무기력하고 낡아 보였다.

오전 9시 넘어 아침을 먹고 시내에 있는 아산 바자르 광장으로 갔다. 도심은 포장이 잘 되지 않아 곳곳에서 먼지가 풀풀 날리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도저히 걸어 다닐 수가 없었다. 도시의 모든 건물과 상가에 진열해 놓은 물건들은 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먼지가 뿌옇게 쌓여 있다. 게다가 도심 골목은 차와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불필요한 차의 경적소리는 엄청난 소음으로 다가왔다.

아이들 시장한켠에서 아이들이 모여 딱지치기를 하고 있다.
▲ 아이들 시장한켠에서 아이들이 모여 딱지치기를 하고 있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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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길을 따라 더르바르 광장으로 갔다. 이동하는 길에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여러 가지 물건을 팔고 있었다. 특히 과일장수가 많았는데 거리의 먼지로 인해 씻지 않고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을 듯했다. 이 많은 먼지 속에서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걱정이 앞선다. 더구나 마스크를 미리 준비하지 않아 손수건으로 얼굴을 둘렀는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하루 속히 도시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우리나라도 70년대 전에는 도로가 거의 비포장이었지만 차가 이렇게 많지는 않았다. 도시 전체가 많은 차들로 인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으니 불결하기가 이루 말 할 수 없다. 사람들의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도로 포장을 확대 하든지 아니면 도심내 차 운행 제한하든지 정부의 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점심을 먹기 위해 도심 한 식당으로 들어섰다. 반갑게도 태극기가 걸려 있는 이 식당은 한식을 팔고 있었다. 주인은 뜻밖에 네팔인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10여년 일하면서 한국음식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 결과 지금은 한국인 못지않게 한식을 잘 만들어 이름 있는 맛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특히 갓김치 맛은 일품이었다. 식당 주인은 한국말이 유창했으며 오히려 한국사람보다 더 친밀감 있게 우리말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는 한국음식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어려 있었다.

시장풍경 카트만두 도심의 한 시장에서 아주머니들이 과일을 팔고 있다.
▲ 시장풍경 카트만두 도심의 한 시장에서 아주머니들이 과일을 팔고 있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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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내내 먼지를 뒤집어쓰고 다니면서 걱정이 많았는데 뜻밖의 갓김치 맛에 여행의 기분이 확 살아났다. 역시 여행은 먹는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히말라야 설산을 보기 위해 나갈콧으로 이동했다. 나갈콧은  히말라야 설산의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카트만두에서  동쪽으로 약 70km 떨어져 있는 해발 2000m가 넘는 곳이다. 네팔에는 6000m가 넘는 산이 워낙 많기 때문에 2000m 정도의 산은 산이라 생각하지 않고 작은 언덕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나갈콧도 나갈 언덕이라는 얘기다. 나갈콧으로 올라가는 길가에는 산 전체가 다랑논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들에게는 산이 아니라 농토인 셈이다. 다랑논에 기대어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 마을버스에 사람들이 콩나물처럼 실려 가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산을 삶의 터전으로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다.

한계령을 올라가듯 1600m 쯤 올랐을 때 면 소재지쯤으로 돼 보이는 마을이 나타난다. 먼지를 풀풀 날리는 산길만 달려오다 상점이 줄지어 들어선 거리를 보니 기분이 사뭇 다르다. 타향에서 고향사람을 만난 격이다. 이곳 사람들도 낯선 이방인이 반가운 모양인지 얼굴에 반가움이 넘쳐난다.  "나마스떼"라고 인사를 건네자 손을 힘껏 흔들며 활짝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 높은 곳에 살자면 많은 불편이 예상되지만 이들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이미 삶의 지혜를 터득한 모양이다. 전기도 들어오고 물도 나오는 것을 보니 나름 사는 방법을 찾은 모양이다.

드디어 히말라야 설산이 보이는 나갈콧으로 올라섰다. 눈앞은 아니지만 멀리 설산이 길게 누워있다. 역시 뿌연 먼지로 인해 깔끔한 설산의 모습은 볼 수가 없다. 다만 석양빛으로 설산이 금빛으로 물들며 그림 같은 선경을 맛보기로 살 짝 보여준다.

히말라야는 에베레스트봉을 비롯에 8000m가 넘는 고봉이 14개나 존재한다. 그들 중 대부분이 네팔에 있다. 히말라야는 원래 섬이었던 인도가 아시아 대륙 쪽으로 이동하면서 대륙과 부딪치며 만들어진 거대한 산맥이다. 인도북부에서부터 부탄에 이르기 까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지금도 조산운동으로 융기가 계곡 되고 있다고 한다.

네팔의 날씨는 5월부터 9월까지는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에 해당하고, 10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는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건기에 해당한다. 지금은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먼지가 공중에 많이 떠 있다. 그렇다 보니 산 아래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투명하지 않고 안개 낀 것처럼 뿌옇다.

히말라야 설산 풍경은 2000미터 이상 높이 올라가야 먼지를 피해 투명한 산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오늘은 구름까지 많아 시원한 설산의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내일 아침을 기대 할 수밖에... 밤에 비라도 한바탕 내렸으면 좋으련만 하늘을 보니 전혀 그럴 것 같지가 않다. 차라리 아침 기온이라도 뚝 떨어져 수중기라도 꾹 눌러 주면 깨끗한 설경을 만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석양 나갈콧에서 석양에 히말말야 설산이 금빛으로 물들고 있다.
▲ 석양 나갈콧에서 석양에 히말말야 설산이 금빛으로 물들고 있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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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을 마시고 나니 어느새 나갈콧에도 석양이 지고 있다. 음악을 틀어 놓고 신나게 몸을 흔들던 학생들도 소리 없이 사라졌다. 산길에서 먹이를 찾던 닭들도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단지 독수리 몇 마리만 무슨 할 일이 남았는지 하늘을 빙빙 돌며 텅 빈 하늘을 지키고 있다.   
     
오늘 묵을 숙소는 방에서도 설산을 볼 수 있을 만큼 전망이 좋은 곳이다. 시야를 막은 언덕도 나무도 없다. 창문을 열면 설산이 그대로 들어올 거 같다. 내일 아침이 무척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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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

히말라야 벼랑길, 두려움 없이 걷는 방법

[에베레스트 이야기 세 번째] EBC 시작점 루클라(2880m)오마이뉴스 |

      정웅원 | 입력 2017.04.13 15:35




[오마이뉴스정웅원 기자]

# EBC 시작점 루클라(2880m)

아침부터 소란스럽다. 카트만두에서 첫 비행기가 온 직후다. 사람들은 들떠 보였다. 일을 구하지 못한 가이드, 포터들은 트레커들과 흥정 중이다.

다른 루트로 올라가면 루클라를 거치지 않고 "슈르케"라는 마을로 올라갈 수 있다. 그럼에도 이곳에 온 이유는 3일간 연락드리지 못해 걱정하고 계실 부모님께 안부 인사를 드리기 위함이다. 무료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는 카페가 있다는 정보도 들었다. 루클라는 EBC 루트에서 가장 큰 마을이기도 하며 원하는 모든 걸 구할 수도 있다.

지난 밤 롯지에 짐을 풀고 곧장 카페로 가서 커피 한 잔 시키고 밀린 안부 인사를 했다. 부모님, 친구, 나를 알고 있는 분들에게.

▲ 루클라 루클라 시가지
ⓒ 정웅원
▲ 루클라 루클라 시가지에서도 설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 정웅원
2880M. 국내에서는 접하기 힘든 높이다. 백두산보다 100m 가량 더 높다. 낮에는 봄처럼 따뜻하지만 해가 지자 기온이 바로 내려간다. 높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히말라야 안으로 들어온 걸 느끼기 시작했다.

일과가 돼버린 걷기. 매일 걷는다. 배낭 들쳐매고 걷는다. 평지를 걸을 때도 있고 비탈진 경사를 걷을 때도 있다. 벼랑길을 주먹 불끈 쥐고 두려움 감추고 걷는다. 음악 크게 틀고 걷는다. 동행이 생기면 동행자의 발걸음 소리 듣고 걷는다.

공중에 떠도는 새들을 바라보며 걷고, 설산을 바라보며 걷는다. 나무를 보고 걷고 흙을 바라보고 걷는다.

나는 지금 걷고 있는데 걷고 싶다. 생각을 비워버리고 싶는데 걸을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걷는 것이 아니라 내 발이 걷는 것이 돼버렸다. 내려놓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생각을 떨쳐버리기 이렇게 힘들 줄이야. 오늘도 걷는데, 내일도 걸을 건데. 언제면 나는 제대로 걸을 수 있을까.

▲ 팍딩 팍딩을 지나 몬조로 가는 길
ⓒ 정웅원
▲ 하늘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새
ⓒ 정웅원
▲ 팍딩 몬조 가는 길
ⓒ 정웅원
▲ 몬조 팍딩을 지나 몬조로 가는 길
ⓒ 정웅원
# 고산병 예방하는 방법

천천히 걷기.
호흡 일정하게 하기.
하루에 최대 고도 500M 이상 오르지 않기.
자주 차 마시기.
자주 쉬기.
삼시 세끼 챙겨 먹기.
물 자주 마시기.
오후 4시 이전에 트레킹 마치기.
과욕하지 않기.

루클라에서 시작한 트레커들은 팍딩 또는 몬조에서 하루를 마친다. 남체까지 오르지 않는 이유는 고산병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살레리부터 시작한 나는 고도에 서서히 적응을 하고 있었고, 루클라에서 하루를 묵었기에 남체까지 하루에 올랐다. 살짝 과욕을 한 셈이다.

사람마다 고산병은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본인 몸 상태를 자주 확인해야 한다. 다행히도 남체까지 오르는 동안 고산병 증세는 없었다.

▲ 구름다리 몬조를 지나 남체로 향하는 길
ⓒ 정웅원
▲ 에베레스트 에베르스트 뷰 포인트 남체 1시간 앞둔 지점
ⓒ 정웅원
구름다리를 지난 후. 남체를 1시간 앞둔 지점 트레커들이 몰려 있다. 곧 체크포스트가 나오는데 잠시 쉬기로 했다.

"여기가 에베레스트 뷰 포인트야."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구름 뒤편이 에베레스트란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에베레스트(8848m). TV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곳을 이제는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곳까지 올라왔다. 찡한 마음 사진으로 달래본다.

무슨 사연이 그렇게 많은 걸까, 아니면 침묵이 힘든 걸까. 트레커들은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었다. 숨이나 좀 쉬면서 얘기를 하지. 20분 가까이 쉬면서 그들을 지켜봤지만, 좀처럼 이야기는 끝날 줄 몰랐다.

# 남체 도착 고소 적응, 남체(3440m)

▲ 남체 남체 마을 전경
ⓒ 정웅원
트레킹 5일차. 남체에서 하루 쉬기. 고소적응을 위해 남체에서 열이면 열 하루를 쉰다. 이곳 역시 큰 마을이다. 미쳐 준비 못한 등산용품이 있다면 이곳에서 구입할 수 있다. 카트만두에 비해 가격이 더 높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가격은 점점 올라간다. 아직도 이곳은 사람의 손이 필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필품은 사람이 직접 나르며, 포터가 매는 등짐을 보면 기가 찰 정도로 엄청난 양을 짊어지고 올라간다. 극한직업은 이곳에도 존재한다.사람뿐 아니라 야크도 짐을 운반한다.
(도로가 일정부분 정비된 안나푸르나의 경우 생필품을 차량으로 운반하기 때문에 비교적 저렴합니다.)

▲ 남체 마을 전경
ⓒ 정웅원
# 한국인을 만나다

"한국 분이세요?"

아시아계 사람이라면 대부분 어느 지역 사람인지 감으로 알게 되는데, 보자마자 한국인임을 알았다. 친구는 1년 6개월간 세계여행을 했고 마지막 여행지를 네팔로 정했다.(후에 일이지만 이 친구 덕에 포카라에서 장기간 머물게 된 게스트하우스를 소개받았다.)

우리는 끊임없는 수다를 떨었고 그것도 모자라 저녁을 먹은 뒤 펍에 들러 못다 한 이야기를 안주 삼아 맥주 마시며 남체를 기억했다. 고소적응에 술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는 친구는 이제 하산 길이라며 편하게 마실 수 있다고 환하게 웃던 모습이 기억난다.

# 떠나는 자 남는 자

아침이면 떠난다. 오후가 되면 온다. 하루에 이별과 만남이 계속된다. 정이 들만 하면 떠나는 사람들. 

익숙하면서 익숙해지지 않는 만남의 광장. 그렇게 맞이한 그리고 떠나보낸 인연 몇이나 될까. 이제 보내면 그들을 볼 수나 있을까. 주고받은 말들이 떠오를 때면 다시 사람이 그리워진다.

남체를 뒤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탱보체를 지나 팡보체 다시 딩보체로. 팡보체에선 산의 어머니인 아마다블람으로 향했다.

▲ 아마다블람 아마다블람 베이스캠프
ⓒ 정웅원
▲ 아마다블람 아마다블람 베이스캠프
ⓒ 정웅원
가이드가 없었다면 몰랐을 아마다블람 베이스캠프. 산을 오르며 만나는 트레커들에게 꼭 가보라 했던 아마다블람 베이스캠프. 이곳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광활한 대지에 펼쳐진 베이스캠프와 정면에 우뚝 서 있던 아마다블람은 경이로웠다.

EBC 루트 중 가보지 못한 고쿄리 추쿵리가 있다. 다녀온 분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고 다시 가고 싶다 했다. 아마다블람은 나에게 그런 곳이었다. 위로가 되었고 아픈 마음 달래 준 그런 곳.

# 낭가르타샹

낭가르 타샹 5600m. 딩보체에서 하루를 쉬기로 했다. 가이드와 함께 낭가르타샹에 오르기로 했기 때문이다. 딩보체 마을은 고도 4410m에 위치한 곳이다.

"이곳에 오르면 이제 어느 곳에 가던지 고산병은 없을 거야."

가이드는 말했지만 나는 고락?에서 고산병이 왔다.

▲ 낭가르 타샹 정상 부근
ⓒ 정웅원
▲ 낭가르 타샹 정상 부근
ⓒ 정웅원
▲ 낭가르 타샹 정상 부근
ⓒ 정웅원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파랗다 못해 검푸른 하늘은히말라야에 깊숙이 들어온 나를 반겨 주었다.천천히 걷고 있는데도 숨이 가빠 쉬기를 반복하며 오른 낭가르탸샹. 히말라야를 감상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56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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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1월 12일부터 3월 21일까지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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