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몸살로 지친 몸, 드디어 카트만두에 도착

[네팔 히말라야 이야기 두 번째]

17.04.12 13:00l최종 업데이트 17.04.12 13:00l

    

# 1월 11일 저녁 11시 비행기 

네팔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 표는 출발 2주 전에 구입했습니다. 가격이 매력적이라 거부할 수 없었던 동방항공입니다. 표를 구입하기 전 중국 항공사의 배짱과 좋지 않던 후기를 읽었지만 가격 앞에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번 경유를 하는 인천-시안,  시안-쿤밍, 쿤밍-카트만두 노선이었습니다. 가격은 38만원 왕복 항공권입니다. 시안에선 공항 노숙이 불가피했고 쿤밍에선 4시간  대기 시간이 있었습니다. 비행기 지연은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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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공항에 도착해 수화물을 찾고 공항 노숙 후  체크인 시간에 맞춰  보딩패스를 다시 받았습니다. 물론 제 배낭도 다시 수화물로 받았습니다. 통하지 않는 영어는 쓸모없고 시키는 대로 눈치껏 행동해야 합니다. 사실 체크인 카운터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새벽부터 몰려드는 인파와 각 카운터마다 길게 늘어선 줄을 바라보고 있자면 한숨부터 먼저 나오니까요.

시안공항에선 아무 문제없던 제 배낭이 쿤밍에선 문제가 생겼나 봅니다. 체크인 카운터 옆 보안검색대로 갔습니다. 이상 없는지 다시 돌려보내더군요. 보딩패스를 받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무지였던 걸까요. 출국 심사에선 출국 카드를 제출하지 않자 되돌려 보냅니다. 카드 작성을 하고 또 줄을 서고 출국 심사를 합니다. 그제야 출국 게이트로 향합니다. 줄 서 있던  외국인들 대부분이 출국카드를 작성하지 않아 되돌아가기를 반복했습니다.

감기몸살로 지쳐있던 몸과 공항에서의 사투(?)로 카트만두행 비행기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12일 저녁 6시가 될 무렵  네팔 카트만두에 도착했습니다. 만 하루도 되지 않는 20시간이 정말 길더군요.

네팔은 한국에서 미리 비자를 받고 가지 않아도 도착 비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비자 신청은 기계로 할 수 있고 서면 양식도 있습니다. 금액은 15일 20, 30일 40, 90일 100달러입니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수화물을 찾고 출국장으로 나오자마자 사람들이 붙기 시작합니다.
숙소 예약은 했는지, 타멜로 가는지, 트레킹은 할 거냐 여행사 소개해줄까 등등 계속 물어봅니다.

시안공항에서 네팔 사람을 만나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공항에서 타멜 거리까지 얼마에 갈수 있냐고, 그분이 말하길 400루피라고 했습니다. 한국 돈으로 대략 4천 2, 300원쯤입니다. 공항버스도 있습니다. 20루피로 택시에 비해 아주 저렴하지만 지쳐 있던 상태라 버스는 포기했습니다.

역시나 기사들 대부분 700루피를 부릅니다. '알고 왔다, 400루피에 가자'고 몇 번의 실랑이 끝에 타멜 여행자의 거리로 이동합니다. 예약해 놓은 게스트하우스에 도착 후 지친 몸을 그제야 침대에 눕힐 수 있었습니다.

# 12일 밤 8시 카트만두 숙소 도착, 감기 몸살에 시달린 몸

카트만두 트리부반 공항 입국장 가는길
▲ 카트만두 트리부반 공항 입국장 가는길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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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 EBC
대부분의 트레커들은 경비행기를 타고 루클라(2880m)로 이동후 트레킹을 시작하지요. 트레커 2/3 정도는 루클라에서 시작합니다. 경비행기는 편도 기준 대략 150~180달러입니다. 해발고도 900m 카트만두에서 2880m 루클라로 도착하면 소수이긴 하지만 고산병 초기 증상인  숨이 가쁘거나 심장이 마구마구 띄는 경험을 하는 분들도 더러 있습니다.

남들이 자주 가지 않는 코스, 좀 더 솔직해지자면 경비를 아끼기 위해 살레리라는 곳으로 저는 갔습니다. 지프를 타고 13시간 천 길 낭떠러지 같은 절벽길을 다닙니다. 금액은 1500루피살레리부터입니다. 루클라까지는 3일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 모든 트레커들은 팀스, 퍼밋을 받아야 합니다. 카트만두는  네팔 투어리즘 보더에 가셔서 받을 수 있는데 EBC 외에 네팔에서 트레킹할 수 있는 모든 곳에 대해 발급이 가능합니다.

팀스, 퍼밋에 대해 잠시 설명을 하자면 포터, 가이드와 동행하지 않는 개인 트레킹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린카드가 발급되며 포터, 가이드를 구해 함께 하는 트레커는 블루카드를 받게 됩니다.

팀스는 여권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트레커의 인적 사항과 이동할 루트를 적은 카드이며 퍼밋은 등산 허가증입니다. 에베레스트 트레킹의 경우 팀스 금액은 2000루피 퍼밋은 3600루피입니다. 2017년 1월 기준. 팀스 퍼밋을 발급받고 살레리로 가는 지프를 예약했습니다.

14일 새벽 5시 이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향해 출발합니다.

새벽 3시 짙은 어둠이다. 동이 트기에는 아직 멀었다. 지프 매표소 직원은 새벽 4시 30분까지 오라고 했다. 애매한 시차 때문인지 3시면 눈이 떠진다. 지난밤 풀어놓은 짐들은 이미 배낭에 정리해 두었다. 씻고만 나가면 된다. 다행히도 게스트 직원이 택시를 잡아줬다. 비록 700루피를 줬지만 흥정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새벽 살레리 가는 지프를 기다리며 카트만두에서
▲ 새벽 살레리 가는 지프를 기다리며 카트만두에서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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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퍼 크기의 차량에 운전사 포함 10명이 탑승한다. 내 자리는 맨 뒤 창문 쪽. 자리 배열은  2 - 4 - 4. 13시간 동안 지치지 않을 수 있을까. 점심을 먹고 난 후 같이 탑승했던 미국인 트레커 에릭은 가이드에게 물어봤다. 얼마나 더 가야 하냐고, 30분 정도만 더 가면 되냐고. 가이드 대답에 에릭은 그저 쓴웃음 지었다.

"이제 반 왔어."

이제 절반이구나. 힘들면 힘든 대로 지치면 지친대로 마음을 비웠다.

지프 살레리 가는 지프
▲ 지프 살레리 가는 지프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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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 살레리 가는길
▲ 점심 후 살레리 가는길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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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은 살레리보다 더 위 마을인 파블루에서 멈췄다. 5km는 더 왔을 거다. 또 지쳤다. 아니 지칠 수밖에 없었다.

흥정할 새도 없이 보이는 롯지로 바로 들어갔다. 방을 배정받고 가장 빨리 먹을 수 있었던 볶음밥을 시켰다.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첫날 저녁은 그렇게 끝이 났다. 내일이면 걷는구나. 9시가 되기도 전에 잠들었다.

첫 날 롯지 출발하기 전
▲ 첫 날 롯지 출발하기 전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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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파블루 마을
▲ 아침 파블루 마을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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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짐꾼
▲ 말 짐꾼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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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이 지났다. 걷는구나. 드디어 설산을 볼 수 있겠지.

한국에선 가끔은 아니더라도 생각이 날 때면 산에 올랐다. 급히 올랐다. 이곳은 히말라야. 다르겠지. 가이드가 말해준 대로 천천히 그리고 일정한 호흡으로 걸어야 한다는 말을 기억해뒀다. 숨이 찰 때쯤 잠시 쉬며 차를 마셨고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성급한 마음인지 좀처럼 빠른 걸음을 늦추지 못할 땐 가이드가 알려줬다. 아직 멀었다고, 5일은 더 가야 설산이 눈앞에 보일 거라고. 나는 아직도 한국에서 가지고 있던 텐션을 벗어 버리질 못했다. 급하고 급하던 긴장을 내려놓으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휴식 점심 식사 전
▲ 휴식 점심 식사 전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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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달밧
▲ 점심 달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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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설산 멀리 보이는 설산
▲ 희미한 설산 멀리 보이는 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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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지  롯지 앞마당
▲ 롯지 롯지 앞마당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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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하루의 시작은 새벽 3~4시. 일찍 일어나는 이유는 일찍 잠들기 때문이다. 9시가 되기도 전에 잠드는 이유일 테다. 아침 7시 30분이면 아침을 먹고 8시에 출발 12시가 되면 점심을 먹고 1시쯤 다시 출발. 2시나 3시쯤 트레킹을 마무리한다. 그 이후엔 트레킹 일지를 쓰고 음악 듣고 책을 읽다 저녁 먹으며 트레커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8시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때론 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지만 9시가 넘어가는 경우는 드물다. 이 생활을 2주 또는 3주가량 하면서 오르고 내려간다. 그 사이에 만나는 트레커들은 셀 수 없을 정도다.

파블루에서 시작된 트레킹은 눈탈라, 붑사를 지나 루클라로 향했고 3일이 지나 있었다.

루클라 3일차 루클라 도착
▲ 루클라 3일차 루클라 도착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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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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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히말라야

네팔 히말라야 이야기

17.04.11 13:57l최종 업데이트 17.04.11 13:5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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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슴 시려

어떻게 해야 할까.
가슴팍에 들어온 이 감정이 무슨 감정인지 표현할 방법이 없다.
울컥해졌다. 목젖 위까지 차오른 시린 마음에 짧은 몇 초의 순간이 길게만 느껴진다.
가이드가 볼세라 눈물을 훔쳤지만 목에선 딸꾹질처럼 '흡', '흡', '흡' 울컥한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이곳에 발을 디딘 사람이 수백 명, 수천 명일 수도 있는데 왜 이곳이었을까.
광활한 설산이 바로 눈앞에 있던 것도 아니요, 아름다움에 몸서리치게 만든 설산이 있던 것도 아니요.
그냥, 이 자리가 좋았던 것일까.
갖은 이유를 대며 설명하라면 할 수 있을까.
시린 가슴 들킬까 휴대폰을 꺼냈다.
촬영에 집중하다 어느새 감정은 사라져 버렸다. 불과 몇 초전이었는데
잃어버린 감정에 잠시 주춤했다.
아 그리워라, 시려라.

낭가르 타샹 낭가르 타샹 5600m
▲ 낭가르 타샹 낭가르 타샹 5600m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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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감기몸살

감기 몸살에 몸져 누워 있었어요.
이틀 후면 떠나야 하는데 배낭 한 꾸러미 매고 저 높은 히말라야로 트레킹도 가야 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몸에선 식은땀이 멈추질 않고 입맛도 떨어졌어요.
약은 또 왜 그렇게 센 약을 줬는지 다시 잠들기 일쑤였지요.
네팔에 도착했어요.
아직도 몸살에 게스트하우스에 밖을 나가가기 힘들어요.
밥 먹고 기운차게 돌아다녀야 하는데 침대 이불안에서 꽁꽁 숨어 움직이질 못하고 있어요.
이틀을 그랬어요.
밖으로 나갔습니다.
쾌쾌한 먼지 뒤집어쓰고 너 나 할 것 없이 클락숀을 빵빵 거리는 비좁은 골목을 걷다
로컬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따뜻한 차가 필요했어요. 소량의 음식도 필요했지요.
밀크티를 시켰어요. 마살라의 향이 가득 담긴 밀크티였어요.
몸이 데워지더군요.
볶음면이 나왔습니다. 초우멘이라고 불리는.

초우멘 로컬식당 초우멘
▲ 초우멘 로컬식당 초우멘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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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너무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었답니다.
그제야 식당 안이 눈에 들어옵니다.
정겨워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그냥 정겨워요.
사람이 정겹고 음식이 정겹고 지나가는 자전거 오토바이마저 정겨웠으니까요.
네팔에 도착했나 봅니다.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타멜의 거리가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하루만 더 있으면 감기도 떨쳐낼 수 있을까요.?
히말라야는 어디에 있나요?
네팔에 오면 하얀 설산을 항상 볼 줄 알았는데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된 탓이겠죠.

타멜 거리 타멜 거리
▲ 타멜 거리 타멜 거리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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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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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즐거웠어요.
별들이 보였거든요.
우리는 취했어요.
여행에 취했고, 모닥불에 취했고, 여행 얘기로 물들어갈 때쯤 우리는
만취 상태였어요.
그래요. 여행지에선 나이도 성별도 중요치 않아요.
우리는 여행자니까요.

신혼부부가 있었어요.
네팔로 신혼여행을 왔어요.
내일이면 카트만두로 돌아간다 했어요.
아쉬워 하더군요.
우리는 말했어요.
그대들의 앞날이 신혼여행처럼 달콤한 삶으로 풍성해지기를
그날 밤 참 많이도 즐거웠네요.

우리 밤 모닥불
▲ 우리 밤 모닥불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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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름다워라

산에서 아침은 일상의 아침보다 좀 더 분주합니다.
배낭 하나에 나의 온갖 것들을 마구 집어넣고 새롭게 떠날 채비를 하니까요.
하루가 새로움의 연속이죠.
이곳은 그렇게 장관이 펼쳐진다던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입니다.
새벽 5시 반에 일출을 보러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언제 다시 올지 몰라 모두들 지금을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인증샷을 남기고 눈에 담고 마음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도 몇 장 남겼습니다.
지독히도 외롭더군요. 곁에 사람이 있는데도 말이에요.
찬란한 해가 떠오르기 바로 직전인데 마음은 차갑도록 시리고 외로운 기분
저 해는 알까요? 내가 이토록 외로운걸.
그런데 왜 이리도 아름답지요.
구름이 아름답고 해 가 아름답고 사람마저 아름다워 보입니다.
마음은 외로운데 외로운 마음을 녹여줍니다. 이곳이.

이곳을 떠나기 전 롯지 주인이 해준 말이 있습니다.
손에 꼽히는 날씨 중에 하루 였다고.
날씨 복은 타고 났나 봅니다.

오스트레일리안 캠프 일출
▲ 오스트레일리안 캠프 일출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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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안 캠프 일출
▲ 오스트레일리안 캠프 일출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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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비 오는 날

비가 오는구나.
그래, 오늘은 쉬자. 까짓 거 내일도 쉬지 뭐.
무섭게 내리는 비를 보고 있자니 내려가고 싶었다.
'번다' 네팔 운전기사들 파업이란다.
내려갈 수도 없었다. 올라갈 수도 없었다.
나는 분명 오늘도 내일도 쉬려고 했는데
마음은 또 갈팡질팡  쉬지 못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데 정말 편히 쉬고 있는데
마음은 쉬지 못한다.
이것도 병이다. 쉬라고 비까지 내려 주는데
왜 마음이 불편할 것일까.
그렇게 걸을땐 생각이 많아져 힘들었는데
이제는 누워만 있다고 생각이 많아졌다.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냐.
감정이 휘몰아친다.
셀 수 없는 많은 감정이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시키지도 않은 감정과 싸우고 있다.
고립되었다가 해방됐다가 다시 지독한 외로움에 몸서리치다가
행복한 마음에 실소를 했다.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았다. 지금 이 감정을 놓치기 싫어 펜을 들었지만
이내 던져 버렸다. 무언가 떠올랐다고 무엇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날아가 버렸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행해야 하는데 인위적이었던 게다.
비정상적일 때만이 정상이 보이고 부자연스러울 때 자연스러움이 보이는거다.
나는 지나치게 감성적이었다.

비 오는날 롯지에서 
란드룩
▲ 비 오는날 롯지에서 란드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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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언제나 옳다

- 자바의 스위스, 가룻 - 찌위데이(Garut Ciwidey) 

글 : 이 인상 (전자동차학과교수, 은퇴비자로 6년째 거주 중)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아직 머물 곳을 찾지 못해 헤매는 사람들일까.-보아야 할 것, 맞이해야 할 곳 생각에 근심을 빼기하고 마음에 행복을 더할 자연의 소리와 마주침을 위해 떠난다. 사람살이 비슷한 모양과 엇비슷한 모습의 날개짓과 출발 점에서 종착점의 쳇바퀴가 맞물림으로 내가 만들어낸 설레임, 조급함, 느긋함을 돌아봄 없이 떠난다. 지금 “우리는 어디서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무엇을 찾아보러 가는 가. 무엇을 보고 느낄 것인가. 여행 중 무슨 사연을 담고 담을 것인가”를 과제를 가지고 말이다.

 

 25명의 회원들이 이른 아침에 서둘러 버스를 타고 자카르타에서 170Km에 위치한“자바의 스위스”라고 하는 가룻과 찌위데이(Garut, Ciwidey)로 탐방 여행길에 올랐다. 회원들이 본인 소개를 하기를 멋쩍어하자 조은숙 수석팀장께서‘자기소개는 이렇게 합니다.’하면서 본보기를 보여주었다.“저는 잘 모르겠는데 남들이 그러는데 저는 못하는 게 없데요.”한바탕 웃고 나서 모두 그런 식으로 소개하자 어색한 분위기가 금방 화기애애해졌다.

 첫째 날 고속도로에 문제가 생겨 돌아가야 했고, 교통체증까지 더했으나 누구하나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지 않았다. 연구원 문화탐방답게 인니의 역

사와 문화에 대한 설명과 시낭송으로 지루함을 비움과 채움으로 승화시켰다. 

 8세기에 세워진“짱꾸앙 사원”(Candi Cangkuang)으로 라낏(Rakit)이라 불리는 대나무 뗏목을 타고 갔다. 지난 번 탐방처럼 라낏 위에서 들려주던 거리의 악사(Pengamen)들이 온 몸으로 구슬프게 부르는 가락이 생각나 자꾸만 돌아보았다. 손수 만든 악기로 뗏목 물결에 따라 흐르는 노래를 듣지 못해 아쉬웠다. 뱃사공이 젓는 대로 물결 따라 흘러 우리는 짱꾸앙 힌두사원에 도착했다.

 자바지역 이슬람 첫 순교자“아리프 무함마드 (Arif Muhammad)의 묘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두 종교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 모습에서 낯설지만, 항상 이방인에게 미소로서 대하는 포용성의 의미를 알게 하는 것 같다. 어느 듯 해님은 작별인사를 재촉할 때, 연꽃이 내려다보이는 방갈로 숙소에 도착하였다.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온천욕을 하면서 피로를 풀었다. 오늘 본 짠디 짱꾸앙(Candi Cangkuang) 깜뿡 이슬람 촌(Kampung Adat Pulo) 풍경을 연못 위에 지워진 방에 한 아름 풀어놓고, 첫 밤을 잠의 여신과 함께 꿈속을 헤매며,‘여행은 항상 옳다.’라고 말한 어느 회원의 말을 생각했다.

 둘째 날 땐졸라야 영웅묘지(Makam Pahlawan Tenjolaya)에서,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영웅 양칠성님(1919~1948. 08.10.)이 잠들어 있는 곳을 참배하였다. 그는 종전 후에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네덜란드의 재식민지화 정책에 맞서 조선인으로서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에 참가하여 네덜란드 군에게 큰 타격을 주는“빵에란 빠빡 (Pangeran Papak) 부대의 대원으로 가장 용감한 투쟁 용사였단다.

 양칠성님을 짝사랑했던 여인의 밀고로 1948년 가룻 갈룽궁(Galunggung) 산 속에서 네덜란드군에 체포돼 이듬해 1949년 8월10일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총살되어 일반인 공동묘지인 ‘빠시르뽀고르’에 안장하게 된다. 

 비운의 전사(戰士) 양칠성은 수하르토 대통령당시 외국인 독립영웅으로 추서되어 1975년 11월19일 이곳에 잠들게 된다. 한국인의 얼, 혼, 넋을 새긴 묘비에 양칠성이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새겨져 잘 보이지 않아 안타까움을 더했다.

 자연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토속 풍습과 문화를 간직한‘깜뿡 나가(Kampung Naga) 용의 마을’로 향하였다. 원시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며 현대문명을 거부하는 그들은 전기도 사용하지 않으며, 이방인과 결혼을 하면 마을을 떠나야한다. 

 마을 방문을 마치고, 가파른 경사를 하고 있는계단 300여 계단을 오르는 중턱에서 손가락으로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자기마을 풍경을 그리는 청년을 만날 수 있었다. 주민들이 즐겨먹는 Palm sugar 채취하는 기관지 질환에 좋다는 음료를 오름 중턱에서 사서 마실 수 있어 갈증이 해소되었다.

장미화원에는 첫사랑의 달콤한 봄 향기도 있었고, 여름 열정에 취했던 젊은 시절도 있었고. 디딤돌 발걸음으로 가을 낭만 쫓는 유랑자도 만났으며, 채워지지 않는 배고픈 탐욕도 승화되는 그런곳이었다.“까모장 발전소”는 지열(地熱)을 이용하는 발전소이다. 활화산 까와 까모장(Kawah Kamojang) 분지에 올라서면 굵은 증기 배관들을 목격할 수 있으며, 여기저기에서 하얀 수증기 같은 연기를 볼 수 있었다.

 증기 기관차 고동소리로 하늘 높이 하얀 증기가 치솟는 기차 분화구(Kawah Kereta Api) 주위에는 약 20개가 넘는 분화구가 있다. 그 중 4개의 큰 분화구는 반둥의“땅꾸반 쁘라후(Tangkuban Perahu) 화산과도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차게 분출하고 있었다. 우리들에게 온 힘을 다하여 기차분화구의 위력을 보여주며 이 분화구의 위대함을 자랑하던 중년 노인네가 인상에 남는다. 마지막 날, 드디어 찌위데이(Ciwidey)에 위치한 천사가 하강했다는 전설이 있는 옥빛 유황 분화구, 까와 뿌띠(Kawah Putih)에 도착하였다. 신이물감을 풀어 놓은 듯 옥빛의 신비를 보여 주는 까와 뿌띠는 아무리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곳이다. 해발 고도 2,500m 빠뚜하 산(Patuha)에 위치한 까와 뿌띠는 해발고도 2,434m이다. 분화구 주변의 하얀 모래는 마치옥구슬이 쌓여 있는 것으로 착각되며, 이 옥빛 분화구를“하얀 분화구”라고 부른다.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과 일제 강점기 때에는 이곳 유황으로 많은 약재를 만들었던 동굴도 보인다. 다음 장소인 지독한 사랑 이야기가 있는 연인들의 장소인 “시뚜 빠뗑안”(Situ Patengan:“그리움에 서로를 찾는 호수”라는 뜻)으로 향하였다. 가는 길에 안개 속에 끝없이 차밭이 펼쳐진다. 시뚜 빠땡안은자연호수로 하트 모양이다. 호수에는 작은 섬이 있고, 섬 가까이 있는 바위는“사랑의 바위”로 불린다. 못 다한 사랑을 영원으로 승화하여 지금도 많은 연인들이 찾고 있는 데이트 장소이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팀원들은 여행 탐방지에서 받은 정기로 인함인지 피곤함 기색도 없이 소감을 말하며,‘여행은 언제나 옳다.’는데 모두들 동의하였다.이번 여행을 같이 한 회원들은 인테리어 시장조사 나온 꽃미남 부부, 인니에서 18년 간 살다가 한국에 대학유학 중인 엄마와 같이 온 대학생, 인니교육과 연계하려고 온 교육 사업가이신 멋쟁이언니, 대기업송사를 맡아서 하였다는 로펌 몬로언니, 양칠성님의 대한‘적도에 묻히다.’를 읽고 그 감동으로 탐방 길에 나섰다는 여교수님. 그리고 춤 시위와 악기연주를 뽐낸 국어 선생님, 대학시절 시국시위 했다는 시민운동가, 인니에서 몇 십 년을 살고 있는 꾀꼬리 언니, 막내둥이를 떼어놓고 온 젊은 어머니, 결혼 후 남편 곁을 처음 떠나왔다는 어머니, 이번 탐방에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신 의사이자 작가 그리고 사업가이신 이동균 사장님, 모두들 소중하고 귀한 분들이었다. 그리고 사공원장님, 안미경 수석팀장님, 조은숙 선생님의 헌신적인 마음 감사합니다.

 사람 마음에도 햇볕을 쬐이고 바람을 쏘이며 마음의 빗장을 살포시 열어 옥빛 내음새로 가득 담는다. 몸치장 빈곳 찾아 머무는 허리띠 두른 고은 아름 열도(列島)에 부드러운 손길이 햇살로 비누 질하고 바람 구름 강 호수 화산 분화구로 때 묻은몸뚱이 씻고 들, 풀꽃 향수로 따스한 마음은 바람 방울 마중물 되었다.

 노란 파랑 빛이 녹색을 다 전할 수 없어 마음은 호수에 머문다. 하늘 구름과 호수에다 사랑 전설의 허상을 실질적 욕망으로 풀어본다. 참으로 내 몸 한 부분 들려 놓을 수 없기에 그대 산머리 산마루 등성이 아래 머무는 행복한 여행자가되나 보다. 그래서 아직 찾지 못한 머물 곳을 찾아 길을 떠나야 하리라.

자바의 스위스 가룻, 찌위데위에서.....

참고서적: 서부 자바의 오래된 정원 (사공 경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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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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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

환전을 못하고 체코행 비행기를 탔다, "어쩌지"

[버락킴의 동유럽 여행기 0] 동유럽 보고서, 다녀왔습니다

오마이뉴스 | 김종성 | 입력 2017.04.03 10:45




[오마이뉴스 글:김종성, 편집:김대홍]

 프라하 행 비행기 티켓
ⓒ 김종성
"아, 망했다"

난감했다. 시작은 그랬다. 설렘보다는 걱정이 가득했다. 문제는 '환전'이었다. Sunny Bank(써니뱅크)를 통해 미리 '환전'을 해놓고서, 정신머리를 어디 놓았는지 돈을 찾지 않고 비행기에 올랐던 것이다.

1시간 쯤 지났을까. 여행에 대한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천천히 그려보는데, '근데, 나 환전 했나?'라는 물음표가 불현듯 떠올랐다.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도 환전을 한 기억이 없다. 당연히 손가방을 아무리 뒤져봐도 돈봉투가 없다. 이쯤되면 인정해야만 했다. 

"아, 망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고, 이른바 멘붕 상태에 빠져들었다. 현실을 인정하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비자(VISA) 카드'였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ATM에서 돈을 인출하면 되지 않을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했는데, 실제로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챙겨갔던 여행 책자에는 '씨티 은행 현금 인출기'가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국제공항에 있다고 했다(현재는 없어진 상태였다). 그런데 뒷면에 Interlink/PLUS, Maestro/Cirrus 표시가 있으면 해당하는 해외 ATM에서 인출이 가능하단다.

카드를 확인해봤는데, 그런 표시가 없다. 게다가 '해당하는'이라는 표현도 거슬린다. 체코 항공(대한항공과 공동 운항)을 탄 터라 1명밖에 없는 한국 스튜어디스를 찾아 문의를 해봤다. 돌아온 대답은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난감함은 더욱 커졌다. 대부분의 결제는 카드로 하면 된다지만, 최소한의 현금은 필요했으니 말이다. 프라하 여행이 처음이라, 또 현지 사정을 정확히 알지 못했으니 더욱 그러했다. 어찌됐든 비행기 안에서 승부를 봐야 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은, 그리고 차분히 대화를 할 수 있는 지금이 최적의 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죄송한데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환전을 신청해놓고 찾지를 못해서요. 현금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에요. 약간 여유가 있으시면 현금을 주시고 제가 도착하자마자 계좌이체를 해드리면 안 될까요?" 

최대한 신뢰감 있고, 최대한 안쓰러워 보이게끔 말을 건넸다.(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여러 명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신원을 보증할 수 없는 누군가와, 그것도 오늘 처음 본 상태에서 돈 거래를 쉬이 해줄 리가 만무했다.

어쩌면 내가 반대 상황에 놓여 있었어도 그러했을 것이다. 초반에는 감정적 교감이 쉽게 이뤄질 것 같은 중년 여성을 공략했다. 하지만 패키지 여행을 준비하면서 넉넉한 현금을 챙겨올 리 만무했다. 내 처지에 대해 공감은 이뤄졌지만, 문제는 거기까지였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대상을 바꿔보기로 했다. 패키지 여행객들이 아니라 회사 일로 출장을 온 것 같은 사람들로 말이다. 아예 화장실 통로 쪽에 서서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그러다 다행스럽게 출장을 왔던 중년 남성을 만나게 됐고, 생각보다 대화가 원활히 이뤄졌다.

사정을 이야기하자 도움을 주겠다는 뜻을 밝혔고, 공항에 도착하면 50유로를 주겠다는 게 아닌가. '와, 살았다!'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허나 부족하다 싶었다. 숨구멍을 뚫었지만, 좀더 넉넉히 현금을 확보해야 했기에 계속해서 도움을 요청했다.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국제공항 내부
ⓒ 김종성
공항에 내려서 ATM으로 가서 돈을 찾기로 하다

확보된 50유로의 힘 때문일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안한 마음이었다. 이번에는 자신도 환전을 하지 않은 채 여행을 왔고, 공항에 비치된 ATM에서 인출을 할 생각이라는 또래 여성을 만나게 됐다. 그리고 비자 카드라면 별다른 문제 없이 ATM 사용이 가능할 거라는 이야기도 듣게 됐다.

공항에 내려서 함께 ATM으로 가서 돈을 찾아보기로 했다. 만약 내가 가진 카드로 인출이 되면 좋은 거고, 그렇지 않다면 그 친구가 넉넉하게 인출을 하고 곧바로 계좌이체를 해주는 걸로 이야기를 맞췄다. 

이젠, 됐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는 거구나. 깜깜했던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비행이 2시간 정도 남았을까.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눈을 좀 붙이기로 했다. 곤두섰던 신경이 조금씩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그때쯤 대한항공 소속 스튜어디스가 찾아와 체코 항공 직원에게 문의했더니 ATM 사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알려줬다. 물론 '내 카드'가 된다는 보장이 없는 터라 들으나마나 한 말이었지만, 모든 문제가 풀릴 예정이라 그 성의가 마냥 고맙기만 했다.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국제공항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 김종성
결론은 이렇다. 그러니까 비자 카드를 소지하고 있다면, 현지의 ATM을 이용하면 된다(해외 여행을 갈 때 굳이 환전을 하지 않고 가도 무방하다. 단지 수수료가 좀 많이 든다는 건 감수해야 한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 사실만 알고 있었다면 그 생고생을 하지 않았어도 됐을 것이다.

그러나 삶이란, 또한 여행이란 예측 불가능성이 지배하는 여정이 아니던가. 그렇게 알게 된 사람들을 당일 저녁 카를 교(Charles Bridge)에서 다시 마주치게 되고, 다음 날 아침에는 프라하 성(Prague Castle)에서 우연히 만나 하루동안 여행을 함께 하기도 했다.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감정과 깨달음이었다. 여행의 첫걸음에서부터 제법 많은 것을 얻은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시급했던 돈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그제야 프라하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 여기가 프라하구나!' 11시간 만에, 드디어 여행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물론 그 또한 여행의 일부였으나...) 이제 버락킴의 동유럽 여행, 프라하 - 드레스덴 - 빈(비엔나) - 부다페스트 - 프라하로 이어지는 7박 8일의 일정을 소개해보도록 하자. 

 구시가 광장의 천문시계
ⓒ 김종성
 성 비타 대성당
ⓒ 김종성
★ 1일 차
- 16:40 :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국제공항(Vaclav Havel Airport Prague) 도착
- 숙소 도착 
- 구시가 광장(천문시계, 틴 성당), 카를 교 

★ 2일 차
- 프라하 성
- 팔라디움(Palladium)

 프라우엔 교회
ⓒ 김종성
★ 3일 차
- 11:25 드레스덴 중앙역(Dresden Hauptbahnhof) 도착
- 대성당(Kathedrale), 프라우엔 교회(Frauenkirche), 크로이츠 교회(Kreuzkirche)
- 츠빙거 궁전(Dresdner Zwinger)
- 알베르티눔(Albertinum)
- 21:00 프라하 도착

★ 4일 차
- 14:50 빈 중앙역(Vienna Hauptbahnhof) 도착
- 벨베데레 궁전(Belvedere Palace)
- 성 슈테판 대성당(St. Stephansdom)
- 피그뮐러(Figlmueller)

 미술사 박물관, 브뢰헬의 <바벨탑>
ⓒ 김종성
★ 5일 차
- 미술사 박물관
- 링 도로 주변(국회의사당, 시청사, 빈 대학 등)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 김종성
★ 6일 차
- 11:20 부다페스트 켈레티 역 (Budapest Keleti) 도착
- 부다페스트 영웅 광장(Hosok Tere)
- 국회의사당, 세체니 다리(Szechenyi Lanchid)
- 부다 왕궁(Budavari Palota)
- 23:35 빈 도착
 성 슈테판 성당
ⓒ 김종성
★ 7일 차
- 쉰부른 궁전(외부)
- 성 슈테판 대성당 재방문(낮)
- 17:10경 프라하 도착
- 시네마 시티(CINEMA CITY)에서 영화 감상

★ 8일 차
- 화약탑, 바츨라프 광장, 시민회관 
- 유대인 묘지
- 18:30 귀국

7박 8일동안 4개국을 돌아다녔다. 뭔가 좀더 '여행 같았다'. 말이 좀 이상하지만, 그게 정확한 표현 같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봤다. 버스와 기차로 '국경'을 넘나들었던 게 첫 번째 이유였다. 한 도시에 머무는 게 아니라 여러 도시를, 다른 나라를 다니면서 여행 중에도 변화를 경험했다.

두 번째는 즉흥성이었다. 부다페스트는 원래 계획에 없었던 장소였다. 애초에는 빈과 근거리에 있는 슬로바키아의 브라디슬라바에 가려 했지만, 날씨 등의 이유로 무작정 부다페스로 가고 싶어져 기차 티켓을 끊기도 했다. 

또,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과 잠시나마 함께 시간을 보냈던 게 세 번째 이유였다. 혼자 다니는 게 익숙했던 나에겐 색다른 경험이었다. 분명 이전의 여행보다 훨씬 더 풍성한 느낌이었다. 이제야 겨우 여행 초짜를 벗어난 듯하다. 그 때문일까. 여행은 더욱 고파졌다. 또 다시 배가 고파진 어설픈 여행자, 버락킴의 본격적인 동유럽 여행기를 시작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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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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