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글>


                       네 종류의 새


   주님은 새에게서 구원의 길에 대한 교훈을 끌어내셨습니다.


   참새 :  하나님의 가치와 사람의 가치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 10:29-31).

   참새는 작고 갈색이며 사람에게 별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아닙니다. 아마 당신은 사람의 가치관에 동화되어 당신 자신도 별 가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이 매우 가치 있는 존재임을 분명하게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아들을 보내 당신 대신 죽게 할 만큼 당신은 가치가 있습니다. 당신의 영혼을 위해 그리스도의 피가 지불되었습니다. 당신의 영혼을 하나님이 보시듯이 귀중하게 보시겠습니까?


   까마귀 : 주님의 돌보심과 사람의 자기 충족성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눅 12:24).

   까마귀는 크고 못생겼으며 검정색으로 커다란 부리로 모든 것을 먹어치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먹이십니다. 까마귀는 하나님이  음식을 주시기에, 음식을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에게도 선을 베푸십니다. 예수님은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늘에서 온 살아있는 떡", 즉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먹이고자 하십니다.

   까마귀는 많은 사람들이 갖는 두 가지 문제에 빛을 던져줍니다. 첫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죄와 잘못이 있음을 시인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구원받기 위해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까마귀에게서 배우는 교훈은 비록 우리가 죄인일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구원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닭 : 그리스도의 사랑과 사람이 받아 들이고자 하지 않음.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눅 13:34).

   암탉은 병아리를 날개로 감쌉니다. 즉 병아리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그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위해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만일 고집스런 병아리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과 주님의 사랑을 무시하고 주님이 베푼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는 얼마나 비극이겠습니까! 슬프게도 주님의 이같은 말을 듣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너희가 원치 않았도다." 문제는 하나님의 공급이 아니라 사람의 원치 않음입니다.


   독수리 : 그리스도의 주권과 사람의 악함.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 (마 24;28).

   독수리는 거대한 날개, 날카로운 발톱, 잘 찟는 부리로 하나님의 심판이 끝난 후 남게 될 시체를 게걸스레 먹을 것입니다. 독수리는 우리에게 생각나게 해줍니다. 주 예수님이 어느 날 불신자들의 커다란 시체를 독수리처럼 덮칠 것입니다. 그 때 그 곳에 불신자로 있고자 하십니까? 회개하고 복음을 믿기를 바랍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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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와 종교로부터의 자유


       몽학선생 아래서 착각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이여!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갈라디아서 3:25).


   성경의 주제는 구원이다. 성경은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알리고자 기록되었다(디모데후서 3:15, 요한복음 20:31). 만약 성경을 읽고도 구원의 길을 깨닫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이는 성경의 주제를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니, 그는 마땅히 성경을 다시 읽되 구원의 길을 알고자 하는 목적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성경의 총체적 내용이 구원을 말하고 있으며, 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구원을 이루는 부분적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그중 갈라디아서 3장 25절의 몽학선생도 구원받기에 이르는 한 단계를 말하고 있다. 구원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에게 자신이 죄인임을 깨우쳐서 구원에 이르도록 인도하는 안내자 역할을 몽학선생이라고 하는데, 이는 곧 율법이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몽학선생은 구원자는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단의 간계로 말미암아 초대교회의 수많은 사람들이 몽학선생, 즉 율법에 의해서 구원받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기에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이러한 부분을 깨우치기 위하여 갈라디아서를 쓴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구원을 증거하는 성경의 단계를 4단계로 압축 정리함으로 중간 단계에서 마치 구원받은 것으로 착각 중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깨우치고자 한다. 물론 이것은 알기 쉽게 하기 위하여 필자가 구원의 단계를 편의상 4단계로 나눈 것임을 밝혀둔다.


   구도자가 구원받기 위하여 넘어야 할 제 1단계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깨닫는 것이다. 성경은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고 있다. 불신자가 구원을 받으려면 우선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분이 우주의 창조자요 주인이심을 발견하는 과정이 필수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세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를 증거하고 계신 것이다. 말씀으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여러 가지 초능력적인 기적이나 인간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기도응답으로 자신의 실존을 증거하신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제 1단계, 즉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경험하고 믿게 된 것만으로 구원받은 증거인 양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신비한 경험, 기도응답 등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으니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사단은 아주 지혜롭고 영리하여 수많은 거짓 그리스도인들을 이러한 방법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어찌나 강한지 도대체 구원의 진리를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자기의 경험만 꼭 붙잡고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과 예수님을 분명히 믿으나 지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제 2단계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발견한 사람은 곧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할 필요가 있다. 나의 근본은 무엇인가? 타락한 죄인 아닌가?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며 양심의 악을 깨닫지 못하는 죄인인 것이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전도서 7:20).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우리는 창세기에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인간이 어떻게 타락하게 되었으며, 아담을 통하여 인간 세계에 들어온 죄가 어떻게 번창하여 나갔는가 하는 내용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아담의 범죄로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래로 인간과 죄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어느 시대의 어느 인간이나 죄와 싸워서 완전히 승리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우선 믿음의 조상이요 우리 신앙의 표본이 된다고 할 수 있는 아브라함과 다윗을 통해서 대표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생각하여 보라. 조상 대대로 살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하루아침에 정리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새생활을 시작하는 일이 작은 일이겠는가? 이것은 생명을 건 모험이요 죽음을 무릅쓴 새로운 도전이다. 대단한 믿음의 사람이 아니고는 가히 흉내낼 수 없는 믿음의 간증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그러한 아브라함도 두 번이나 인간을 무서워하며 자기의 아내를 아내가 아니라고 속임으로 하나님과 아내에게 죄를 지었다. 참으로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지 않는다면 그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가 없는 죄인이었던 것이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함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로마서 4:2).

   다윗을 보라. 다윗은 이스라엘의 성군이었다. 그같이 선정을 베푼 왕이 역사 이래로 없었다. 참으로 다윗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실 표상 중 한 인물로서 성경은 다윗의 훌륭한 인격과 신앙심을 여러 곳에서 증거하고 있다.

   그러한 다윗도 몇 번의 실수가 있었음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우리아의 아내를 불법으로 취한 사건이 바로 그 실수 중 하나이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고 또한 그 죄를 회피하여 보려는 간사한 꾀에 빠져서 결국은 악한 방법으로 우리아를 죽이기까지 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생각할 때 믿음이 있고 선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도 갑자기 악한 죄의 유혹에 빠질 수 있음을 조심하여야 할 것이다.

   아무튼 성경은 다윗도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야 할 죄인임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혹자는 "노아에 관해서는 성경에 기록하기를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할 것이다(창세기 6:9). 물론 성경에 기록된 이와 같은 말씀은 사실이다. 그러나 성경을 더욱 자세히 보라. 창세기 6장 9절에 이 말씀이 나오는데 이말씀 전에 8절에서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는 말씀이 먼저 기록되어 있지 아니한가? 은혜가 무엇인가? 불쌍한 처지, 좋지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동정이 아닌가? 또한 노아는 술취해서 벌거벗고 누우므로 실수를 나타내지 아니하였던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로마서 3:10). 하나님은 인생을 부패하고 썩은 정죄 받아야 마땅한 죄인이라고 단언하셨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예레미야 17:9).

   깨달아야 한다. 깨달아야만 한다. 그대가 죄인인 것을... .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심장으로 깨달았다면 그 단계를 넘은 것이다. 그러나 2단계만 깨닫고 구원받은 것은 결코 아니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2단계를 깨닫고 죄 때문에 고민하고 괴로워하여 예배당에 가서 울고불고 탄식하는 것을 마치 대단히 믿음이 좋은 사람이요 구원받은 사람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죄인인 것을 깨달은 것은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물에 빠진 것을 깨달은 것과 같다. 그가 '물'에서 구원받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죄'에서 구원받아야 한다(마태복음 1:21).


   이제 제 3단계로 넘어가 보기로 하자. 죄인인 것을 깨달은 사람은 죄값이 멸망의 지옥인 것을 알아야 한다. 금일의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죄를 지은 것에 대한 수치심과 잘못됨을 깨닫고 두려워하고 있지만 지옥의 형벌과 연결시켜 깨닫고 있는 면은 매우 빈약하다. 죄에 대한 두려움과 하나님의 심판과 책망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죄인이 저주의 지옥에 들어가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외로 덤덤한 반응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아 필자를 놀라게 한다.

   왜 그런가? 금일의 수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기복신앙의 흐름에 잡혀 죄와 회개와 하나님의 복을 가르치지만 지옥의 끔찍한 상황은 가르치고 있지 아니한 결과라고 필자는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필자는 많은 기독교인들을 만나 지옥에 대해서 약간 들은 것, 상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듣고 깨달아 본 적이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을 때 10명중 8,9명이 "없다"고 답변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슬프고 탄식할 일이다. 예수님의 첫 번째 설교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태복음 4:17)는 말씀이 아닌가? 이 말씀을 반대로 생각하여 보라. "회개하지 아니하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내용이 아닌가?

   예수님은 왜 이 땅에 오셨는가? 멸망의 지옥을 증거하려 함이 아닌가? 그리고 멸망의 지옥으로 들어가고 있는 죄인을 그곳에서 건지려함이 아닌가? 그런데, 집사, 장로 직분을 받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지옥에 대하여 전혀 관심조차 없으니 얼마나 충격적인 사실인가?

   양떼들은 지옥과 천국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있는지도 모르고 "우리 교회 교인은 다 천국 가겠거니..." 착각하고 안일한 생활을 즐기는 목사님들이 우리 시대에 얼마나 많은가?

   오늘의 기독교의 상황은 사랑 많으신 주님이 아니더라도 양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안타까워 눈물을 흘릴만하다.

   멸망의 지옥을 우리는 마가복음 9장 43절 이하에서 볼 수 있는데 이 지옥의 끔찍한 상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지옥은 영원히 불타는 곳이다. 세상의 어떤 불도 지옥 불보다 뜨겁고 무서운 불은 없다.

   (2) 지옥은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곳이다. 어떤 사람이 말한 대로 모든 소망이 사라진 곳이다. 성경은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당하리라"고 기록하고 있다(요한계시록 20:10). 거기에는 후회와 탄식과 눈물과 원망과 저주만 가득할 뿐이다(마태복음 13:42).

   (3)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인격을 완전히 무시당한 채로 영원히 고통당하는 역사상 가장 극한 고난을 당하게 되는 곳이다. 성경은 이에 대해 지옥에 "던지운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던지운다'는 뜻은 속된 말로 "쳐 넣는다"는 뜻이다(마가복음 9:45). 얼마나 절망적인 말인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또한 '던지운다'는 뜻은 강제로 쳐 넣는다는 뜻 아닌가? 이토록 끔찍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지옥에 대해 두려움이 없는 거짓 선지자들을 보고 탄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영혼의 문제를 지금 당장 검토하여 보기를 강력하게 촉구한다. 그리고 다음 단계를 깨닫고 구원을 받으므로 영원한 지옥을 면하게 되기를 바란다. 멸망의 지옥과 거기에 가게 되는 원인인 죄 문제를 깨달았다면 비로소 구원받을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제 마지막 단계인 제 4단계, 즉 구원받는 문제를 살펴 보고자 한다.

   죄 문제에 대해 논할 때 인류 역사상 어떤 사람도 죄를 정복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 예외가 있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첫째, 신분상 죄를 정복한 분이시다. 아담의 피를 받지 아니한 최초이자 최후의 인간이 되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처녀 마리아의 몸을 의탁하사 이 땅에 오심을 말한다.

   둘째로, 도덕적으로 죄를 정복하신 분이시다. 복음서를 보라.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언행 중에서 허물을 발견하지 못했다. 예수님은 모든 죄의 유혹을 완전하게 정복하셨다.

   셋째, 능력으로 죄를 정복하셨다. 이것은 죄의 삯은 사망인데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죄 값으로 죽는 것처럼 십자가에서 죽음을 맛보셨으나 3일만에 당당히 살아나심으로 사망의 권세, 즉 죄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승리하셨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히 2;14).

   넷째, 예수님은 실제로 죄 문제를 해결하셨다. 예수님은 죄와 싸워 이기셨을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인생들의 죄 문제도 완벽하게 해결하셨다. 인간의 모든 죄악을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짊어지고 가셔서 무덤에 묻어버리셨다.

   당신의 모든 죄가 갈보리 십자가에서 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께서 무덤에 묻힐 때 다 묻어버리시고 주님은 부활하셨다. 그것은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신 몸으로 묻히신 주님께서 인간의 모든 죄를 묻어둔 채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심으로 입증되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나의) 죄를 담당하셨으니..."(베드로전서 2;24).

   오 그대여! 그대를 지옥으로 끌고 가는 그대의 모든 죄가 그대의 어깨에서 다 사라졌으니(주님이 대신 담당하셨으니) 그대를 지옥가게 하는 모든 죄가 사라지지 않았는가?

   그대가 제 3단계까지 다 깨달았다 할지라도 만약 이 속죄, 곧 영원한 속죄 사실을 깨닫지 못하여 죄에서 해방 받지 못하였다면 그대는 몽학 선생 아래 있는 것이요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옛날 몽학선생은 어린아이를 성년이 될 때까지 잘 보살펴주고 지켜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성년이 되는 과정까지만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3단계까지는 몽학선생의 관점이지 구원은 아닌 것이다.

   모든 죄의 완전 속죄를 믿음으로 그대가 죄에서 해방되어 의인이 되었다면 그대는 몽학선생에서 이미 벗어나 구원에 이른 것이다.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갈라디아서 3:25).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로마서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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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종착역

믿음,신앙 2015. 11. 5. 12:37

   인생의 종착역


   믿음의 길과 행위의 길 좁은 길과 넓은 길, 천국 길과 지옥의 길,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구원의 길과 심판의 길.


   인생은 두 길 중 한 길을 여행하고 있는 나그네입니다. 시간이라는 열차를 타고 과거라는 역에서 출발하여 현재를 거쳐 "영원" 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여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원" 이라는 종착역에 이르게 될 순간이 얼마나 가까왔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실상 모든 사람의 출발은 동일했습니다. 멸망의 길 위에서 마지막 종착역인 지옥을 향해 출발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행도중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만난 사람들은 새로운 종착역인 천국을 향해 여행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그 종착역인 지옥을 향해 여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두 길을 동시에 여행할 수 없습니다. 주일에는 구원의 길을 가고 월요일에는 멸망의 길을 갈 수는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지금까지 가고 있는 멸망의 길에서 돌이켜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마지막 종착역인 지옥은 지나온 시간만큼 더욱 가까와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의 길을 여행하고 있다면 천국은 지나온 시간만큼 더욱 가까와진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느 길에서 여행하고 계십니까? 멸망의 길입니까, 아니면 구원의 길입니까? 당신의 종착역은 어디입니까? 천국입니까, 아니면 지옥입니까?


   세상에서 가장 분명한 선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 (로마서 3:23)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하나님을 멀리 떠난 죄악의 길, 멸망의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53:6).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범한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 담당시키시고 생명의길,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멸망의 길 한복판에 십자가가 높이 세워졌고 거기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천국길이 열린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하나님)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만약 당신이 아직도 길과 진리와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스스로의 길, 넓은 멸망의 길에서 여행하고 계신다면 회개하고 돌이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그것만이 유일한 생명의 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3 :18).


                                                                                                                             - 전도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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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의 기본진리

 

                                제4과  죄

 

1. 죄란 무엇인가?

 

   누구나 성경을 읽으면 얼마 안가서 성경이 죄의 문제와 그 원

인과 그 구제책에 대해서 적지않은 관심을 표하고 있음을 깨닫

게 됩니다. 죄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부도덕한 나쁜 짓이나 살

인, 절도 등과 같은 범법 행위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

경에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도달하지 못하는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로마서 3:23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

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의 영광' 은 절대적 온전의 개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란 그 수준에서 모자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 죄를 지

었습니다.

 

   성경은 또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롬 5:13)

   2) 하나님에 대한 반역 혹은 불법(요일 3:4)

   3) 부도덕(시 32:5)

 

   악한 생각은 악한 행동과 다를 바 없는

똑 같은 죄입니다(마 5:28).

 

2. 죄의 기원

 

   범죄는 맨 처음 하늘에서 일어났으며, 이에 관하여는 3과에서

자세히 살펴 보았습니다(사 14;12-14 참조)

 

   지상에서 제일 처음 생긴 죄에 관해서는 창세기 3장에 기록되

어 있습니다. 이 죄는 에덴 동산에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는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거스려 그 금

단의 실과를 따 먹은 것입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죄인이 되었

습니다.

 

3. 죄의 결과

 

   1) 인류의 첫 조상은 죄를 범하자마자 자신이 벌거벗은 것을

즉각적으로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숨으려 하였습니다(창 3:10).

 

   2) 죄의 형벌은 죽음입니다. 아담은 죄를 범하는 순간 영적으

로 죽었습니다. 이 말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격리되어 하나님

앞에서 쫓겨났다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육체적으로도

죽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그가 즉시로 죽지는 않았지만,

그의 몸은 운명적으로 죽도록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3) 아담의 죄의 근성은 전 인류에게 유전되었습니다. 죄인인

부모에게서 출생하는 자녀는 다 날 때부터 죄인입니다. 그러므

로 아담의 장남 가인이 살인하기에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모

든 사람이 날 때부터 죄인인 까닭에 영적으로 다 죽어 있는 것

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언젠가는 육체적으로도 죽어야 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롬 5:12-18 참조).

 

   4) 사람의 범죄는 모든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저주를 초래하였

습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이에 대한 하나의 증거입니다. 다른

증거들은 창세기 3:14-19에 언급되었습니다. 형무소와 법원과

영구차가 있는 한 죄의 존재를 증명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눈물과 질병과 슬픔과 고통과 죽음은 다 죄의 결과입니다.

 

4. 죄의 형벌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롬 6:23)

 

   하나님은 죄에 대한 형벌을 사망이라고 선고하셨습니다. 우리

는 이미 이것이 영과 몸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형벌은 반드시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

해 반드시 벌을 내리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죄 가운데 생활하고 있는 한 그는 영적으로 죽어 있는

것이며, 또한 육체적인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가 죄를 지은 채 그대로 죽는다면, 그는 영원한 죽음을 당하

게 됩니다. 이 말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추방되어 불못 속에

들어 가서 그의 죄에 대한 벌로 영원히 고통을 받는다는 뜻입니

다. 이것이 이른바 계시록 20:14에 말한 둘째 사망입니다.

 

5. 사죄의 길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영원한 형벌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사죄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

께서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 바로 사람에게 열어 주신

구원의 길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

어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담의 죄의 근성을 유전받지 않

으셨습니다. 지금까지 무죄한 사람은 주님 뿐이셨습니다. 그는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죄의 형벌을 기꺼이 다 받으심으로 하나

님의 모든 거룩한 요구를 다 이루셨습니다. 죄의 값은 이제 다

지불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자기가 죄인인 것을

자백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가운데 영접하면, 하나님께

서는 그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중

생' 과 '구원' 즉, 제 6-8과에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는 죄의 형벌과 권능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이 말은 그가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게 된다

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은 그가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

든 죄에 대하여 용서를 받았다는 것과, 그가 다시는 그의 죄에

대한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며, 또 그가 죄를 즐기는 대신에 하

나님을 위하여 살 힘을 얻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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