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도 죄인인가?


                   영원한 속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브리서 10:10).


   당신은 죄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여 죄 용서함을 받을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3).

   당신은 스스로 선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하나님의 율법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죄 용서함을 받지 못하면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여 죄 용서함을 받을 수 있을까요? 선한 행위나, 기도나, 교회봉사나, 율법을 지킴으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을까요?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9:22).

   선한 행위로, 기도로, 교회봉사로, 율법을 지킴으로 당신의 죄를 용서받지 못합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구약에는 수많은 양들이 인간의 죄 때문에 피를 흘리고 죽었습니다.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죗값으로 피가 뿌려져야 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29).

   구약의 양 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과 나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속죄의 양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피가 당신과 나의 죄를 사하여 주신 것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 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9:12).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고귀한 생명의 피를 다 흘리셨습니다. 그 피는 당신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흘리신 피입니다.

   "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당신의 과거 죄만 용서하였습니까? 현재와 미래의 죄는 일일이 기도해야 하고 죄를 범하지 않아야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영원한 속죄! 영원한 속죄입니다. 당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영원히 용서하셨습니다.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8).

   당신의 죄를 위하여 또 다른 무엇이 필요하지 않도록 "영원한 속죄" 를 하여 주셨고 " 다 이루었다" 고 십자가에서 구원을 완성시켜 주셨습니다.

   당신이 죄 용서받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선행입니까? 율법을 지켜야 합니까?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에베소서 2:8,9).

   당신이 구원을 받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십자가의 은혜를 마음으로 믿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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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어도 죄인인가?


                 사랑을 사려느냐?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한다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아가서 8:7).


   저는 주님을 묵상하는 가운데 중심에 심한 아픔과 근심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심판날에 하나님으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는 장면을 생각할 때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그들은 하나님을 극진히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을 다했던 사람들입니다. 모든 시간과 정열과 재물을 드려 하나님을 사랑하려 하였던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천국을 사모하여 기쁨도 있었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연민의 정으로 인하여 눈물과 찬양과 감사가 있었던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순교적 차원의 헌신과 죽음을 무릅쓴 봉사도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외면을 당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사랑에는 대상이 있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알고 주고받는 가운데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일방적이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슬픈 사실은,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입으로 또는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사랑을 하거나 자기 자신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을 일방적으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짝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짝사랑은 슬픈 것입니다. 어리석은 것입니다. 상대방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혼자서 사랑을 퍼붓고 있는 것이니, 그의 사랑이 헛된 것을 깨달을 때의 절망감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열심히 순종하고 지키고 따름으로 혹은 교회의 직분과 봉사에 충성을 다함으로 하나님께 사랑을 인정받아 천국에 가보겠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니 늘 평강이 없고 부족하고 부끄러울 뿐인 것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천국에 갈 수 있느냐"고 질문하면 "믿음이 부족해서", "더 노력해야지요" 혹은 "내가 이만큼 주님을 섬겼는데 갈 수 있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하니, 전자는 낙심과 연약에 싸여 망하는 것이고 후자는 자기 교만에 파묻혀 지옥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의 근본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첫째로, 자신의 그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 할 때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자가 과연 있겠습니까? 있다고 한다면 착각에 빠져 있음이 분명합니다. 우리의 그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사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물질주의자로, 인간의 차원으로 끌어내리려는 처사입니다. 우리 중에 어떤 자녀가 우리에게 죄를 지었는데 부모 된 나에게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돈 몇 푼이나 선물을 들고 와서 환심을 사서 해결하려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모습이겠습니까? 인간의 세계에서도 사랑을 돈이나 기타 물질로 계산하는 것이 비판의 대상이 될진대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임에야... .

   초대 교회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졌던 하나님과 천국을 향한 당당한 소망은 착각이나 자기 열심으로 인한 자만에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랑의 선물을 받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녹아내린 결과인 것입니다.

   그대여! 하나님을 사랑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사랑하셨는가를 먼저 깨달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입니다(요한일서 4:8).

   둘째로, 사랑은 상대적이며 계약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상대적인 계약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성경)의 뜻을 명백히 알고 그 약속에 합한 실제적인 사실로 인한 평안과 기쁨이 선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의 생각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23절을 보면 육체를 따라난 이스마엘과 약속을 따라 난 이삭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아브라함의 두 아들인데, 두 언약으로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두 종류, 두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약속을 따라 난 이삭은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으며 이스마엘은 아랍 족속의 조상이 되어 오늘날까지 전쟁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의 출생 내력은 이러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다만 아브라함의 본 부인인 사라를 통해서 후계자를 세우고 대를 잇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라의 몸이 점점 늙어가도 약속에 대한 성취의 징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아이를 낳을 소망을 가질 수 없는 늙은 몸이 되었습니다. 이때 조급해진 사라가 믿음으로 행하지 못하고 아브라함을 충동질하여 그의 젊은 몸종 하갈을 통하여 육신적인 계획과 방법으로 자녀를 생산하기로 합의합니다. 이 계획이 진행되어 하갈을 통하여 얻은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사실 이 사건은 이 가족의 불행과 다툼의 시작이었고 오늘날 아랍 전쟁의 출발이었으니, 인간이 육신적으로 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이며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일인가 생각하게 하는 사건입니다. 이 일로 사라와 하갈 사이에 다툼이 시작되었으며, 이스마엘과 후에 태어난 이삭과의 다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오늘날 짝사랑 속에 있는 거듭나지 못한 육적인 기독교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구원받기보다는 자기 생각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또는 자기 경험, 즉 병 고침, 방언, 신비체험, 꿈, 직분, 충성, 물질 헌신 등, 자기의 것을 가지고 천국에 가려고 노력하는 무지한 교인들이며, 성경보다는 자기가 소속한 교회 지도자들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맹신자들인 것입니다. 이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입니까? 이것은 마치 상대방과 약속한 사실도 없이 자기 혼자 공원에 가서 친구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습니다.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나님 앞에서 일방적인 맹신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자기 마음만 상달시키려는 억지 행동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독자여! 하나님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나에게 무엇을 주십니까? 알고 싶지 않습니까? 깨닫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당신의 모든 죄, 당신이 받아야 할 죄의 벌을 대신 당하게 하시기까지 당신을 사랑하셨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한 적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이미 당신을 사랑하셨습니다. 당신은 그분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으나 하나님은 당신을 알고 계셔서 당신의 죄를 이미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경건치 않은 자(죄인)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로마서 5:5,6).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한일서 4:9).

   그리스도께서 달리신 십자가는 당신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당신의 죗값을 아들을 통해 대신 치르게 한 위대한 사랑의 증표입니다(로마서 5:6~8). 당신과 하나님 사이에 막힌 죄의 벽을 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로 헐어버리고 영생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히브리서 10:17).

   당신의 율법적 행위와 종교적 열심과 공로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사려는 망상을 속히 버리고 무릎을 꿇고 겸손히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실을 단순히 받아들이시고 영생을 얻으십시오. 이미 주신 사랑, 이루어 놓으신 속죄, 닦아놓으신 영생의 길을 믿음 하나로 당신의 것으로 만드십시오. 만약 당신이 모든 죄를(과거, 현재, 미래) 용서받은 사실을 믿고 의인이 된 사실을 깨달았다면 영생을 얻었다고 성경은 이미 약속하셨습니다.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요한복음 6:47).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요한복음 3:36).

                                                    

                                                                                                                                             - 전도자 허윤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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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천하를 얻고도


                              99%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는 아주 좋은 명구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중에서 마음에 맞는 것들을 골라 좌우명이나 가훈으로 삼곤 합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이니 "고진감래(苦盡甘來)" 니 하면서 좋은 글을 통하여 뜻을 기리곤 합니다.

   그 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것중의 하나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이라 하는 것입니다. 뜻은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는 것처럼 "할 수 있는 일은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 입니다. 세상에 많은 글과 명언이 있지만 이처럼 좋은 글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람이 자기 일은 하지 않고 요행을 바라거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 하셨고 "심은대로 거둔다."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동의 귀중함을 말씀하셨고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 12:11) 고 하셨습니다. 농사를 짓는다거나 봉사를 한다거나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고 주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은 지극히 합당하고 우리가 추구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원받는 것에 대해서는 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이란 말처럼 무책임한 말도 또 없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한다." 하는 것은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생명을 다루는 문제에 있어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아 의롭다 하심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겠다." 하는 말은 어떻게 들으면 좋은 말 같지만 그렇게 안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내포하는 두려운 말이기도 합니다. 병원의 의사가 수술전에 항상 하는 말이 "최선을 다하겠다." 하는 말이지만 밖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은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합니까? 의사가 밖에 나와서 고개를 떨구곤 "최선을 다 했습니다만." 하는 것을 여러번 보아 왔습니다.

   최근 우리 교회에 새로이 나오시는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은 6년전에 혈액암을 진단받고 투병중에 있을 때, 병원 의사로부터 골수이식수술을 받으면 99%  완치된다고 해서 막대한 돈을 들여 수술을 받았습니다. 얼마동안 낫는 것 같다가 도로 재발하여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99% 낫는다 했지만 99%는 100%가 아닙니다. 99%나 100%는 1%차이지만 99%는 뭔가 부족한데 비하여 100%는 부족함이 없는 그야말로 완전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100%가 어디 있습니까? 100% 낫는 약이나 100%고치는 수술이 어디 있습니까? 그저 "최선을 다한다" 뿐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구원에 있어서 언제나 100%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100%가 아닌 것은 하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천국과 지옥의 중간은 없기 때문입니다.

   100% 순수함

   100% 의로움

   100% 온전함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조건입니다.

   사람도 그렇지 않습니까? 만일 어떤 사람이 방금 태어난 당신의 아들을 보고 "이 애는 99%가 사람이구만" 했다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것은 참으로 용서할 수 없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자기의 자녀들이 100% 하나님의 자녀이기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 5:4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히브리인의 욕설)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0-22)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그러나 누가 그렇게 완전할 수 있습니까? "미련한 놈" 이라 했다해서 지옥 불에 들어간다면 우리 중에 지옥에 안 갈자 누구입니까?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으로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 5:27, 28)

   음욕을 품어도 죄가 된다면 우리 중에 깨끗한 자 누구입니까?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마 5:26)

   이러한 것이 우리의 형편일진대 "최선을 다한다."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고 하셨는데 죄인이 최선을 다했다해도 이미 죄가 있으니 아무리 잘해도 99%밖에 더 하겠습니까? 그러면 99%신자는 어디에 가겠습니까?

   한번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기 큰 계곡이 있는데 절벽 이쪽에서 절벽 저쪽까지 거리가 100m입니다. 자동차로 달려서 그 계곡을 건너가는 시합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50m,또 어떤 사람은 60m에 떨어졌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은 99m를 갔습니다. 그 99m를 간 사람이 그보다 못한 사람과 다를 것이 있습니까? 다 똑같지 않습니까? 100m가 아닌 사람은 다 똑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100%가 아니면 "0" 입니다.

   물에서는 큰 바위뿐 아니라 작은 모래알도 가라앉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작은 모래알도 물보다는 무겁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작은 죄도 우리를 지옥에 앉히기에는 넉넉할 정도로 무거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의롭게 되기 위한 육체의 노력을 그만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0)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롬 4:2)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은혜를 힘입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받는데 있어서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대신 하나님 편에서는 막대한 희생을 치루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주님의 죽으심이 우리를 구원하는데 있어서 온전한 제물이요 충분한 대가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10:10) 우리를 거룩하다 하십니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히 10;14) 영원히 온전케 되었다고 하십니다.

   "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 10;17,18) 죄를 인하여 다시 제사 드릴 것이 없다 하시는 것은 죄값을 이제 다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주님의 희생과 피를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누구이든간에 100%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3,24)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 3:27,28)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6)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2:8,9)

   그러므로 주님은 오늘도 그 못자국 난 손을 들어 우리를 부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김우종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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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경 의  기 본 진 리


                     제9과 은 혜


1. 서론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기초로 하여 사람들을 대하십니

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은혜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이 사람들

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은혜란 말은 성경 가운데 160번 이상이나 나옵니다. 그 중에

128번은 신약 성경에 나옵니다. 하나님은 " 모든 은혜의 하나

님" (벧전 5 : 10) 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리스도는 "은혜가 충만하

다" (요 1 : 14) 고 묘사 되었는가 하면, 성령님은 "은혜의 성령"

(히 10 : 29) 이라고 불렸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삼위께서는

은혜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습니다.


2. 은혜란 무엇인가?


   은혜란 말이 구약에서는 "아래 사람들에게 친절히 허리를 굽

힌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호의",

"선의", "자애", 란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말

은 은혜의 뜻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은혜란 보잘 것 없는 대상에게 베풀어진 사랑입니다. 하나

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범죄하고 부정하고 반역

한 죄인들에게 그 사랑을 베푸실 때, 그것은 은혜가 되는 것입

니다.


   2) 우러러 보는 사랑은 예배이고, 동등한 수준의 사랑은 애정

이며, 내려 주는 사랑은 은혜입니다.


   3) 은혜란 진노와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

께서 무한히 베푸시는 사랑과 긍휼 그것입니다. 곧 그것은 하나

님께서 무한하신 사랑으로 우리를 향하여 허리를 굽히신 그것입

니다.


   4) 은혜는 지상의 죄악에 대해 하늘의 최선을 주신 하나님 안

에서 나타났습니다.


3. 대조


   1) 은혜와 행위

   은혜는 행위와 혼동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람이 만일 선한 일

을 함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그 구원은 단순히 그의 행

위에 대한 삯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롬 4 : 4 ; 11 : 6).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에게 아무런 빚을 지지 않으셨습니다. 구원은 거

져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2) 은혜와 율법

   은혜는 율법과 혼동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율법을 지킴으

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은혜로 구원

을 받습니다. 다음의 사실은 이것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

이 될 것입니다.


   <1> 율법은 행할일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은혜는 다 이루어진

         일을 가르쳐 줍니다.

   <2> 율법은 말하기를 "이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살리라"

          말합니다. 그러나 은혜는 말하기를 " 생명을 얻으라 그리하

          면 네가 행하리라"고 말합니다.

   <3> 윱법은 말하기를 "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은혜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 

         으니" (요 3 :16), "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

         하셨음이니라" (요일 4 :19)고 말합니다.

   <4> 율법은 최선의 사람도 정죄합니다(롬 3 :19). 그러나 은혜는

          최악의 사람도 구원합니다 (롬 3: 24 ; 4:5).

   <5> 율법은  죄를 나타냅니다(롬 3: 20). 그러나 은혜는 구원을

          나타냅니다(딛 2:11-13).


4. 은혜의 필요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어긴 반역자입니다(롬 3 : 23 ;

골 1 : 21).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습

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어기고, 하나님의 법정 앞

에 죄인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롬 3 :19 ; 갈 3 :10 ; 약 2 :10).

그와 같은 존재로서 그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되어 있는 것입

니다.

   또한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을 배척하고 살해하였기 때문에 하

나님께 아무런 처분도 바랄 수 없게 되었습니다(요 3 :18 ; 12 :

31-33).


5. 은혜로 인한 구원


   만일 사람이 구원을 얻으려 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를

묵과하실 수 없으십니다. 죄는 기필코 처벌 되어야만 합니다 그

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능히 죄인들을 은혜로 구원

하실 수 있으시며, 또 그렇게 하시되 여전히 거룩하시다는 것을

말하여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으셨습니

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그 일을 근거로

해서 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으십

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일을 다 마치셨습니다. 은혜는 단지 구원을

얻고자 하는 죄인에게 믿음을 요구할 뿐입니다(엡 2 : 8,9).


6. 은혜로 말미암은 축복


   죄인들은 은혜로 말미암아 여러가지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됩니

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세 가지 축복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구원(딛 2 :11-13)

   이 말은 그리스도인이 영생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2) 칭의(롬 3 : 24-26)

    이 말은 그리스도를 믿는 죄인을 책망할 것이 없는 의인으로

    여기신다는 뜻입니다.


   3) 하나님 앞에 나아감(롬 5 : 2)

      이 말은 참 신자는 기도로써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는 이제 그의 죄 문제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더 이상 격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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