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
20장
데이트는?
오늘날은 결혼이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결혼하지 않은 채 동거에 들어가는 것이 점점 만연되고 있습니다. 대중매체의 언어에는 "동거인" (partner)이 "남편" 이나 '아내" 대신 사용되고 있으며 관청에서 발부하는 문서나 서류에도 그런 표현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어린 신자들은, 우연히 만나 짧은 기간 동거생활을 즐기다 헤어지거나, 또 기혼자들 중에도 이혼이 급속도로 확산하는 그런 세태에 직면해 있습니다.
청혼과 결혼에 있어서 세상의 태도가 당신의 생각 속에 침투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당신이 내려야 할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이며, 당신 주변의 세상의 풍습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첫째로, 이성간의 사귑은 항상 결혼이 목적이란 점을 기억 하십시오. 미혼 남성들은 결혼하기로 마음을 정한 다음 적당한 사람이 발견될 때까지 이 여자, 저 여자에게 거듭해서 청혼을 하는 과정에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미혼 여성들은 선택과정이 마칠 때까지 이 남자의 친구가 되었다가 저 남자의 친구가 되었다가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행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치 않으며, 종종 어느 한 편이 신실치 못할 때는 불필요한 마음의 상처를 남깁니다. 쉽게 이성에게 접근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하고 있고, 또 마음에 드는 사람을 갈수록 만나기 힘들다는 생각에서 조급하게 일을 서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기도로 일을 시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예비해두신 배우자를 발견하도록 기도하고, 그 일에 실수가 없도록 성경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기 몇가지 도움이 될만한 지침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와 사귀는 것은 생각도 마십시오.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결혼으로 이끕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고후 6:14). 또한 그것은 고의적인 불순종입니다. 당신은 그런 사귐이 언제든 중단할 수 있는 건전한 관계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러나 그것은 강렬한 이성간의 접촉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당신은 그리스도인 친구들과의 사귐을 벗어난 적이 없다가 직장이나 대학에서 누군가를 만나 이성적인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는 20대 초반의 청년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이성관계에 실망을 느낀 나머지 결혼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는데 누군가를 알게 되어 옛 감정이 되살아나고 있는 좀 나이든 청년일 수 있습니다. 어쨌든 당신의 생활에 생기가 돕니다. 그리고 마음이 점점 끌리더니 무엇이 잘못인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감정이 온통 당신의 삶을 지배합니다. 그러나 감정은 항상 옳고 그름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게 합니다. 오직 성경이 유일한 건전한 지침입니다. 당신은 머지않아 그 사귐이 깊어지더니 그것이 영적인 일들보다 더 당신에게 중요한 지점까지 이르게 됩니다.
만일 당신이 그런 상황에 있다면 지금 즉시 중단하고 성경이 인정하지 않는 관계를 끊으십시오. 당신이 사귀는 대상이 아주 친절하고 사려 깊고, 그밖에 칭찬할 만한 점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당신과 달리 아주 유복한 생활을 즐기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그가 불신자라는 사실보다 중요할 수 없습니다. 그 사실은 무엇으로도 상쇄시킬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믿는 사람이면 아무하고나 사귀어도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믿는 자와 사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역교회(assembly)의 형제 자매와 사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 가운데 신중하게 생각해볼 다른 문제들이 있습니다.
결혼을 위한 성경적인 조건은 "주 안에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고전 7:39). 이것은, 사귐과 결혼에 이르는 모든 과정은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분명한 확신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만나고 서로 감정이 끌리고 있다는 것이 확인될 때는, 두 사람 모두 영적인 일에 관심이 있는지, 성경의 근본진리에 대해 의견이 일치되는지 고려해보십시오. 당신은 서로 일치된 가운데 앞날을 함께 꾸려나갈 소망과 계획이 있는지요?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려는 마음에 기초한 가정을 이루기를 원하는지요? 두 사람 모두 지역교회의 집회에 관심이 많은지요? 아니면 어느 한 편은 소극적인 태도인지요?
점차 기도 가운데 서로에 대해 알게 될 때, 두 사람은 서로의 관계가 결혼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사랑과 사귐의 문제를 몇 가지 질문에 '예' '아니요' 로 답해 결정하는 문제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만, 사귐을 결혼으로 발전시키는 문제에 직면한 모든 신자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들을 상기시키고자 함입니다. 아무 정해진 규정은 없지만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입니다.
청혼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설레는 일입니다. 서로를 알게 되고 점점 사랑이 깊어지고 마침내 결혼을 약속하게 됩니다. 그 약속이 여자에게는 단순히 멋진 반지를 선물로 받는 기회에 불과한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결혼을 약속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장래를 맡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 앞에서 확고한 결심이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약속입니다.
결혼을 약속한 두 사람은 매우 조심스럽게 처신해야 합니다. 세상은 혼전순결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결혼하기로 약속한 사이인데, 결혼하기 몇 주 전이나 몇 달 전에 관계를 갖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사람들은 주장합니다. "결혼식을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죠? 결혼식 전에 육체관계를 미리 치르면 안 되나요? " 라고 사람들은 다그칩니다.
당연히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육체관계는 결혼관계 안에서 허용된다고 분명히 못 박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는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릴 때까지는 순결을 지키고자 할 것입니다. 그 전에 육체관계를 맺는 것은 성경에서 "간음" 으로 일컫기 때문입니다. 좀 엄격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다면 그것을 하나님이 내리신 평결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혹 결혼할 계획이 있는 상대라 할지라도 혼전관계를 맺는 것은 당신의 장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합니다. 당신은 그 실수를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교회는 그 일로 인해 당신에게 징계를 내릴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그 일을 숨길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 일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당연히 자신을 절제하고, 결혼생활이 가져다줄 기쁨과 특권과 책임을 온전히 누릴 소망을 품고 혼인날을 고대해야 합니다.
당신이 계획하고 있는 결혼은 육체관계를 훨씬 뛰어넘습니다. 결혼서약이란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고, 그 사랑 안에서 주 예수님이 높임을 받는 가정을 이루고, 즐겁고 경건한 가정생활에 필요한 영적, 정서적, 육체적인 도움과 위로를 서로에게 제공하겠다는 뜻을 공적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전제한 사귐을 즐기되, 서로 순결을 지키고, 주님을 첫 자리에 모시고, 장래를 주님께 맡기고, 그렇게 함으로써 두 사람의 삶을 위해 좋은 터를 쌓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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