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
9장
예배는?
"예배" 라는 말은 무엇을 생각나게 하는지요? 많은 사람들에게 예배는 착색유리창과 웅장한 성가대가 찬양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당신에게 예배는, 예배를 위해 따로 정해진 특별한 때와, 예배를 위해 모인 신자들의 집회를 연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떡을 떼는 시간을 "예배 집회"라고 부르는데, 이는 다른 집회들은 신자들을 가르치거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주 목적인데 반해 이 집회는 예배가 주 목적임을 암시해줍니다. 주의 만찬 외에 다른 "예배 집회"들도 종종 찬양과 기도와 묵상으로 구성됩니다.
그럼 성경은 예배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요?
예배라는 단어는 "엎드리다, 땅에 입맞추다"를 뜻합니다. 그런 행동은 경배를 받기에 합당한 위대한 분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단어가 처음 쓰인 곳은 창세기 18장 2절인데, 거기서 아브라함은 그의 장막으로 오는 세 사람 앞에 달려가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보다 위대하고 또 3절에서 주라고 칭한 그분의 존재를 인정한 것입니다.
창세기 22장 5절에서도 그 단어가 발견됩니다. 거기서도 말하는 자는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자기와 동행한 사환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이번에는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모리아 땅으로 여행을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배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포함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모리아산에서 하나님 존전에 나아갈 것을 알았습니다. 이번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바치는 것이 예배, 즉 명하신 분의 위대함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배는 섬김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5절에서 새긴 우상을 섬기는 것은 그것들에게 절하고 경배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경배하는 것을 섬기게 마련입니다. 주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단에게 "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는 신명기 6장 13절 말씀을 인용하심으로써 그 사실을 확증하셨습니다(마(4:10).
이제 우리는, 예배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섬김으로써 그분의 위대함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태도입니다. 그것은 필요할 때마다 준비하는 집회나 형식이 아니라 지속적인 마음의 상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는 사람들의 마음자세입니다.
율법 아래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성막과 성전에 국한되었습니다. 아론 계통의 제사장만 그런 특권이 있었습니다. 엘가나가 실로에 간 것은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삼상 1:3). 거기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보좌를 볼 수 있다고 말씀하신 곳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곳에 와서 예물을 드리고, 그들을 구원하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함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맡겨진 성경말씀에 순종함으로써만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성경말씀이 없었다면 그들은 하나님 존전에 나아가는 길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실행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순종할 마음이 없는 신자는 예배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요소들이 없을 때는 예배의 특권을 누릴 수 없습니다.
시편 29편 2절에서는, 예배가 거룩함으로 드려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성소의 거룩함을 가리켜 말한 것이지만, 그 말씀을 통해 그는 예배의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거룩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예배가 어떻게 표현될까요?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지속적인 태도이며 우리의 모든 행동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오늘날 우리는 일정한 장소나 일정한 시간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ㅡ 그들이 성령으로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말합니다(빌 3:3, 우리말 성경에는 '성령으로 봉사하며'로 되어 있음-역주). 여기서 "예배":라는 단어는 성전 봉사를 가리킵니다. 이와 같이 예배는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항상 어디서나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 항상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이것이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그분의 위대하심을 인정하는 것인가? " 당신이 마음과 시간과 정력을 쏟는 모든 일을 그런 질문으로 점검해 보십시오.
우리는 믿는 무리로 모여 주님을 기억하고 기도함으로써 예배를 드립니다. 그 때 우리는 그분의 임재를 의식하고 그분께 기뻐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진정 그분께 받아들여질 만한, 준비된 마음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요?
우리는 물질을 드림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에서 자신이 받은 선물을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향기로운 제물이란 아무 가치가 없는 잔여물이 아니라 큰 대가가 치러지는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함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로마서 15장에서 바울은 자신이 복음 전하는 것을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행하는 것이라고 묘사합니다. 그는 구원받은 이방인을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된 받으심직한 제물로 보았습니다.
우리의 삶의 어떤 영역도 제외되지 않습니다. 로마서 12장에서 우리는 우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는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것은 제사장의 행동이며, 창세기 22장의 아브라함처럼 예배를 내포합니다. 거룩함이 그 조건이며, 그러한 예배 행위는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것이요 그분을 기쁘시게 한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하십시오.
매 주일 주님을 기억하기 위해 모일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예배로 쏟아 부을 독특한 기회를 갖습니다. 우리는 지역교회로 연합적으로 주님을 기억하고, 또 주님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석한 모든 성도들의 마음에 예배를 불러일으키며, 이에 우리는 기도와 찬미와 감사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주 예수님을 세상에 구주로 보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높입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예배드릴 준비가 되어 있는지요? 그 모임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에 대한 감사로 예배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어린 형제들도 늘 조용히 지켜볼 것이 아니라 소리 내어 감사에 참여해야 합니다. 자매들은 조용히 예배드림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자매들의 조용한 참여는 하나님의 아신바 되며, 또한 무한히 값진 예배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다른 신을 경배하고 섬길 수도 있음을 보게 됩니다. 로마서 1장 25절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조물주 대신 피조물을 경배하는 것을 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 주변의 열방의 신을 숭배할 위험성을 늘 경고 받았습니다. 궁극적으로 사단은 우리가 그를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기를 바랍니다. 그는 우리 앞에 하나님을 대신할 대체물을 놓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 마음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에 더 사로잡히도록 여러 모양으로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받아야 할 도전은 매우 분명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마땅히 높일 만큼 높이고 있는지요? 우리는 예배의 전제조건인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요? 우리의 행동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만한 것임을 확신하는지요? 그것이 예배이며, 그것이 그분이 우리의 예물을 기뻐 받으신다는 것을 아는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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