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

                                          5장

                                     성경공부는? - 2


   다음 질문은, 어떻게 성경을 공부하느냐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여러 기자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수천 년 기간에 걸쳐 기록한 66권의 도서관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접근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입니다. 성경의 전체적인 계획과, 하나님이 다양한 시대에 다양하게 인간을 다루신 방법을 배우십시오. 당신은 그런 시대를 세대(dispensations)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예를 들어, 구약에는 교회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또 오늘날 찬송가 가사와 달리 주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 아니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그분은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만일 성경을 읽으면서 그런 사실들을 사소하게 다룬다면 성경을 공부하는데 있어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이따금씩 서너 구절을 읽는 것은 전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면 이 책이 아무 일관된 계획도 없는 무미건조한 책이라는 잘못된 생각과 느낌을 갖게 됩니다.

   성경공부는 반드시 체계적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어느 한권을 택해서 그 책의 구조에 친숙해질 때까지 반복해서 여러번 읽으십시오. 처음에는 분량이 적은 책을 택하십시오.

   흠정역 외에 개정역(RSV)과 다아비의 새 번역을 참조하십시오(이런 성경들을 생일 선물로 주고 받으면 좋습니다). 그 역본들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본문에 대한 이해를 높이십시오. 그리고 다음 질문들에 답해보십시오.

   (1) 누가 이 책을 기록했는가?

   (2) 왜 기록했는가?

   (3) 언제 기록했는가?

   (4) 어떤 구조를 갖추었는가?

   (5) 성경의 다른 책들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제 그 책을 좀더 상세히 살피십시오! 각 단락과 그 다음에 단락 안의 각 구절을 연구하십시오. 자세히 연구하는 정도는 당신이 공부하는 책의 성격과, 또 당신이 얼마만큼 파고드느냐에 달려 있겠지만, 당신이 분명히 기억할 것은 부지런히 자세히 상고하면 그만한 보상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구약성경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우리 주변에는 성경학도들에게 도움을 주는 자료들이 풍부합니다. 여기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최고의 생일 선물이 될 만 합니다).


   1. 스트롱의 성구사전

   2. W. E. 바인(Vine)의 신약성경 낱말 사전

  3.  헤리스, 아쳐, 웰트케의 구약성경 신학사전


   위의 자료들은 본문을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영어성경은 때로 같은 헬라어 단어를 두 가지 이상의 다른 단어로 옮겨놓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헬라어 단어들이 같은 영어 단어로 옮겨지기도 했습니다. 위의 자료들을  사용하면 독학으로 헬라어 "전문가"가 되지 않고서도 성경본문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잘 알고 있는 믿을 만한 성경교사들로부터 자료들을 얻으십시오. C.H. 멕킨토쉬의 모세오경이나 모울(Moule)의 바울서신서도 많은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점차 훌륭한 장서가가 될 것이며, 유익한 책과 믿을만하지 못한 책을 구별할 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많은 책들을 그저 표지만 넘기지 않고 자세히 살피고 참고자료로 적절하게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노트하는 습관을 기르십시오. 성경학도의 수만큼이나 노트하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여기에 몇 가지 도움이 될만한 지침을 소개합니다.

   노트북이나 파일을 성경 각권마다 하나씩 준비하십시오. 거기에 책의 개요와 본문에 대한 자세한 노트를 기록하십시오. 좀더 자세히 작업하기를 원하면, 예를 들어 서신서의 경우에는, 각 구절마다 한 장씩 할애하고, 맨 위에 당신이 사용하는 성경역본의 구절과 당신이 택한 그 구절에 대한 해설을 적어넣으십시오. 때때로 거기에 당신 자신의 설명을 추가하여 훌륭한 참고자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여백성경이나 낱장으로 뺐다 꼈다 할 수 있는 파일성경을 사용하는 것도 단어의 의미나 개요를 적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펜은 번지지 않는 것을 사용하도록 주의하십시오.

   성경공부를 혼자 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말씀이 전해지는 집회에 참석하거나 잘 가르치는 연로한 분들과 함께 성경을 토론해보면 아주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질문을 던지시고, 당신이 내린 결론이 올바른지 물어보십시오. 읽고, 묵상하고, 듣고, 질문하십시오!

   800여 년 전에 씌어진 한 편지는 여전히 훌륭한 조언을 주고 있습니다.


   " 정한 시간에 정한 본분을 읽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이따금씩 생각나는 대로 읽는 것은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을 불안하게 합니다. 가볍게 스치는 생각들은 가볍게 무시당하게 마련입니다. 마음을 집중시키십시오. 성경공부가 몸에 배이게 하십시오. 성경은 기록된 때와 같은 심령으로 읽을 때에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깊은 묵상을 통해 바울의 의도와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서는 바울의 글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실제적인 경험으로 다윗의 시에 나타난 감정을 당신의 것으로 삼기 전에는 다윗의 마음을 결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성경공부가 그냥 읽는 것과 다른 것은, 우정이 손님을 맞는 것과 다르고, 친분관계가 우연히 인사 나누는 것과 다른 것과 매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독자가 저자와 같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다면, 성경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감화해서 그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열망을 불일 듯 일으킬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반대로 독자가 전혀 그렇지 않은, 냉랭하고 무관심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다면, 성경은 그에게 아무 거룩한 감화도 끼치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이 고귀하고 복스런 일에 자신을 바치십시오. 주의 깊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연구하십시오. 자신의 유익을 위해 연구하고 배운 교훈들을 실천에 옮기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자신이 주님의 일에 넉넉히 사용될 수 있는 준비된 종임을 확신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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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

                                             5장

                                         성경공부는? -1


   지역교회의 교제 안에 들어온 후에,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는 어린 신자는 반드시 성경공부에 힘써야 합니다. 지금은 확실히 이전 세대보다 성경공부에 덜 시간을 투자합니다. 여러시간에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다양하며, 많은 사람들이 그 유혹에 못 이겨 유익하고, 요긴하고, 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체계적인 성경공부를 멀리합니다. 체계적인 성경공부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그 일이 결코 냉랭하고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일은 흥미진진하고 영적으로 큰 유익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문제는, 그와 같이 그 일에 몸과 마음과 시간을 드리고, 또 그것이 가져다주는 축복을 깨달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을 공부할 때 몇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거나 대중적인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공부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유일한 동기라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문제인,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는데 실패할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매우 방대하여 아무도 그 모든 진리를 다 이해 할 수는 없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이해력이 한계가 있는 까닭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잘 이해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과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해야 할까요? 성경은 이 질문에 대해 여러 가지 답변을 제시하지만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은 그 기원과 내용이 성령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건대, 누가 그것을 더욱 아는데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성경을 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무오성을 확신하는 가운데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알게 됩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이 우리에게 밝혀져 있으며, 그 목적은 성경학도로 하여금 세상을 움직이는 여느 세력의 정치가보다 더 지혜롭게 만듭니다.

   또한 성경은 유익하다는 점을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우리는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많은 책들이 부분적인 유익이 있으며 또 독자의 삶이 좋은 영향과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전혀 다릅니다. 이 책을 공부하면 유익만을 얻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교리(교훈)를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은 무지를 두둔하지 않으시며,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지식을 주십니다. 교리를 배우는데 힘쓰는 것은 잘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생활영역에서 무지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며 영적인 생활 역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경험이 이론(교리)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자들에게 속지 마십시오. 잘 배운자, 그래서 주인이 기대하시는 바를 잘 이해하고 있는자가 가장 유용한 종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해야 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성경이 우리를 책망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우리 양심이 감찰되고 우리의 삶에 잘못된 부분들이 찔림과 경고를 받는 것을 알게 됩니다. 책망을 들은뒤에 우리는 우리의 삶을 바로잡는 법을 배웁니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실제적인지요. 성경공부는 우리가 주님의 일에 보다 유용한 도구가 되기 위해 변화되어야 할 부분들을 가르쳐줍니다.

   이러한 유익들 외에 우리는 성경이 의로 교육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바른 상태로 유지 시키는 의 안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습니다. 그렇게 해서 책망과 바르게 함이 효과를 발하고 모든 문제가 바로 잡혀집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성경공부가 단순히 성경내용에 대한 지적인 이해만을 얻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참된 동기에서 실천된다면, 성경공부는 우리의 삶에 매우 실제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성경공부의 목적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것, 즉 선한 일을 행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성숙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기 위해 잘 구비되고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딤후 2:15).

   성경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을 때, 우리는 위로나 가르침이나 책망이나 복음전도나 교제나 그 어떤 일이든 어떤 상황이든 적절히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공부는 우리를 주의 일을 위해 훈련시키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있으며, 어떻게 지역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제 기능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됩니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여러 가지 이론들에 휩쓸리는 영적인 돛단배가 될 것이며,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도 몰라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 성경을 공부해야 하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읽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잊혀지지 않도록 갈수록 자주 반복해야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성경공부는 날마다 해야 합니다. 만일 이따금씩 불규칙적으로 한다면 아무 일관성도 없고 효과도 감소될 것입니다.

   하루 중 어떤 시간이 당신에게 가장 좋은지 결정하십시오. 어떤 이들은 직장에 출근하기 전에 아침에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조용하고 집중이 잘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식구들이 잠자리에 든 후 시간이 적절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신이 정한 계획을 지속적으로 지키도록 스스로를 훈련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공부를 편의에 따라 제쳐둘 수도 있는 부차적인 일로 여기지 말고 높은 우선 순위를 매기십시오.

   결혼한 분들은 배우자가 그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훌륭한 남편은 성경공부를 핑계 삼아 집안일을 아내에게 다 맡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또 훌륭한 아내는 자기 남편이 성경과 홀로 씨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아내들 역시 성경을 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은 성경을 충분히 연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하루에 몇 구절만 서둘러 읽고 지나가지는 않습니까? 지금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성경공부가 얼마나 도전이 되고 흥미진진한지 발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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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

                                      4장

                                   나의 은사는?


   지역교회에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할 때 당신은, "나는 무슨 일에 적합한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하고 어떻게 당신이 지닌 은사를 개발해야 할까요?

   먼저 우리가 사는 시대는 영적인 메시지의 시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은 영적인 복음이며, 신자들은 영적인 제사를 드리고 영적인 집을 세웁니다. 이러한 영적인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서 교회에 영적인 은사들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사역은 오직 영적인 수단들에 의해 수행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은사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통해서 자신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 주신 능력입니다.


   지역교회에 어떻게 기여하느냐를 생각할 때 당신은 자연적인 재능과 영적인 은사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당신이 대중적으로 말을 잘 한다고 해서 그것이 당신이 전도자나 교사의 은사가 있음을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일을 잘 감독하고 또 사람들과 잘 사귄다고 해서 그것이 당신이 양떼의 목자임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로마서 12장, 에베소서 4장,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영적인 은사의 목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은사 중 일부는 오늘날도 존재하며, 일부는 오늘날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그런 문제를 논의하는데 있지 않으며, 다만 사도와 선지자와 방언 등 표적의 은사들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목록을 살펴볼 때 당신에게는 어떤 은사가 주어졌다고 생각되는지요?

   어떤 은사들은 다른 것보다 덜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전도자나 교사가 되는 것이 돕는 자가 되는 것보다 훨씬 좋아 보이지 않나요? 혹은 권면하는 것이 섬기는 것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나요? 오늘날 "사역(ministry)이라는 말은 가르치는 일에만 제한하고 있지만 사실은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당신에게 주어진 은사가 무엇인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기도제목으로 삼는 것은 잘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당신은, "내게 적합한 일은 무었인가? " 하는 문제를 정직히 직면할 수 있습니다. 기도 가운데 곰곰이 생각해볼 때 당신은 어떤 특정 분야에 마음이 끌리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는 전혀 예기치 않은 환경에 끌려 그 일을 하다보면 자기에게 주어진 은사가 그 쪽임을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은사를 준 다음 당신의 은사가 무엇인지 찾아보도록 미로를 당신 앞에 두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다른 모든 영적인 생활이 그렇듯이 이 문제에 있어서도 구하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신자는 영적인 은사를 소유하고 있으며, 당신이 봉사할 영역을 찾는 것은 당신의 책임입니다.


   두 번째로, 당신이 항상 당신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최선의 결정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은 소유하지 않은 은사를 사용하려고 애쓸 수도 있습니다. 형제들의 견해가 당신이 올바른 영역에 몸담고 있는지 말해줄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스스로 복음 전도자로 생각하는데 아무도 복음을 전해달라고 부탁하지 않는다면, 그 점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형제들이 안목이 짧다든지 당신을 시기한다든지 등등 불평하지 마십시오. 만일 당신이 스스로 섬기는 은사라고 생각하는데 교회가 어려움 중에 있는 성도들 을 당신에게 부탁하지 않는다면 그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십시오. 당신이 소유하지 않은 은사를 추구하는 것은 실망과 좌절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당신에게 적합한 일마저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낳습니다.


   당신의 은사를 알 수 있는 세 번째 방법은 당신의 은사활용을 겪어본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자 한다면, 그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당신의 수고를 통해 도움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만일 당신이 가르치고 있다면, 성도들이 유익을 얻고 있나요? 만일 당신의 수고의 결과가 유익이 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스스로의 행동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서 칭찬을 구하라거나, 모든 사람이 항상 당신의 은사활용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름지기, 위에서 말한 원칙을 따르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지 않은 일을 하려고 애씀으로써 겪는 많은 어려움으로부터 당신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은사를 소유하고서 그것을 소홀히 할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네 속에 있는 은사를 조심 없이 말라(소홀히 하지 말라)" (딤전 4:14)고 디모데에게 권면합니다. 은사를 소홀히 하는 것은 은사의 가치를 알지 못한 소치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일에 대한 관심의 결핍이요, 그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한 소치입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이 주신 것을 소중히 생각한다면, 당신은 주인의 일에 사용될 수 있도록 그것을 잘 개발해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 (딤후 2:15)으로 자신을 다듬어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은사를 개발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개발해야 할 것은 당신의 삶에 나타날 그리스도인의 성품입니다. "자신을 삼가라" (딤전 4:16). 당신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삶이 현대의 우상으로 가득차 있으면서 사람들에게 "우상에게서 하나님께로 돌이키라" 고 외쳐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당신이 세상에 푹 빠져 살면서 믿는 자들에게 세상과 성별된 삶을 가르친다면 아무 반응을 얻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태도가 은혜롭지 못하다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세상은 "능력만 있으면 어떤 삶을 사느냐는 중요치 않다"고 말하지만 영적인 일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당신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려면 기도에 힘쓰고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성장을 하려면 반드시 은사가 활용되어야 합니다.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불일 듯 하게 하라" (딤후 1:6). 은사를 그냉 방치해두지 마십시오. 은사를 방치해두면 하나님이 의도하신대로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전도자의 은사가 있는데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들이 제기하는 의문에 답하거나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도울 수가 없습니다. 은사를 꾸준히 사용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유용한 도구로 성장하는 것을 볼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주의 깊게 읽어보고 은사를 사용하는 동기가 항상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다른 사람보다 은사가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일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일해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특질들을 나타내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봉사가 놀랄 만큼 가치를 발할 것입니다.


   끝으로,  당신이 어떤 은사를 소유하든 그것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또 원하는 은사를 소유하지 못했다고 해서 영적인 열등의식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일에 자신을 전적으로 드리십시오. 당신은 할 일이 있으며, 또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세속성이나 게으름이나 관심 부족으로 인해 그러한 특권을 스스로 저버리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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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

                                          3장

                                      교회생활은?


   구원과 침례에 이어서 어린 신자가 직면하는 문제는 지역교회의 교제에 참여하느냐는 것입니다. 창조세계에서 '고독한 자를 가속 중에 처하게 하시는" 하나님은(시 68:6) 자신의 영적인 자녀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소원을 품고 계십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서신서의 기르침과 함께, 신자들이 함께 모이고 함께 일했음을 보여줍니다(행 2:46, 4:32, 5:12). 그들은 각각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고 일하는 고독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지역교회로서 함께 모이는 것은 이 초기 신자들의 관례였습니다. 그러한 모임이 그리스도인들이 교제를 나누고 하나님을 섬기는 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지역교회에 참여해야 할까요? 지역 교회는 구원받고, 침례 받고, 그리고 주의 첫날에 떡을 떼고, 기도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함께 모이는 이들로 구성됩니다. 지역교회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이 짧은 지면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성도와의 교제를 원하면 인근의 지역교회에 합류해야 합니다. 작은 마을에서는 지역교회가 하나나 둘뿐이므로 지역교회를 택하기가 용이한 편입니다.

   그러나 인구가 제법 많은 도시에서는 지역교회를 선택하기가 한결 어렵습니다. 비슷한 거리에 지역교회가 둘 이상 있을때는 지역교회의 규모를 중시하되, 작은 교회가 당신의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여러 지역 교회가 산재해 있는 지역에 살 때는 작은 교회를 피하고 큰 교회를 택하고픈 시험이 늘 있게 됩니다. 청년들과의 사귐이 필요하다든지, 작은 교회는 단조롭고 활동적이지 못하다든지 하는 변명을 하기가 쉽습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일 그런 교제를 꼭 원한다면  수양회나 특별집회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참석이 지역교회를 강화시키고 다른 사람들로 당신과 교제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할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만일 지역교회가 적극적이지 못하다면 당신이 그런 분위기를 바꾸게 할 수 있습니다. 작은 교회들은 전도 활동에 있어서 누군가의 도움을 기대합니다.

   작은 지역교회들이 존재하는 넓은 지역에서 숫자를 끌어들이는 대형 지역교회는 신약성경의 모델이 아닙니다.


   지역교회의 교제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할까요? 물론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고 성경이 경고하기 때문입니다(히 10:25). 모이기를 경홀히 하는 습성은, 교회 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지역교회와의 교제와는 거리가 먼 다른 관심사들 때문에 생겨날 수 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것은 우리의 마땅한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며, 우리는 그러한 잘못에 대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회계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만일 이러저러한 이유로 뒷전에 물러나 있다면,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시고, 이 땅의 어떤 끌리는 것과 안락한 생활도 영원한 상급보다 소중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역교회의 교제가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역교회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성도들을 가르치고 세워주는데 은사를 지닌 이들을 발견하며, 그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축복을 필요로 합니다. 개인적인 성경공부도 물론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하지만, 우리는 성경을 풀어 설명할 수 있는 자들에게 가르침을 받음으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역교회 안에서 우리는 가족구성원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역교회의 교제를 통해서 우리는 서로 화평하게 지내고, 오래참고,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을 닮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배움의 과정입니다.


   지역교회의 교제가 중요한 것은 지역교회 역시 우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신자는 주님을 섬기는데 사용하도록 신령한 은사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는 다른 이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지역교회의 교제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것을 그들이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실수를 하셨을까요? 우리의 은사가 불필요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역교회의 교제가 필요한 것은 지역교회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20). 신자들이 함께 모일 때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며, 그분이 계신 곳에 우리도 있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지역교회의 중요성을 깨달은 모든 사람들이 소홀히 여기지 않는 특권이요 존귀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주로 고백했으며, 그 고백을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그분이 존귀히 여기사 친히 함께 하시는 모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한가요? 물론, 아주 중요합니다! 지역교회의 교제에는 참여하지 않고 그냥 손님으로 출입하면 안 되느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질문은 교제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드러냅니다. 떡을 떼는데 참여하거나 주일에만 참석하는 것은 지역교회의 교제에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연로하거나 건강상의 이유로 본의 아니게 집회에 자주 참석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대해서는, 주님께서도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한 점을 헤아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관심과 열심이 부족해서 참석하지 않는 것은 모이기를 점차 폐하는 오늘날의 슬픈 습관이 나타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바울은 지역교회를 사람의 몸에 비유합니다. 몸의 각 지체는 온 몸의 효과적인 기능에 꼭 필요하다고 그는 말합니다. 귀와 손, 눈, 발 등 모든 지체가 각각 제 기능이 있습니다. 발이 몸의 가장 낮은 위치에 있다고 손에게 불평하지 않으며, 눈이 높은 위치에 있다고 손을 멸시하지 않습니다. 만일 손이 제 기능을 하지 않으면 온 몸이 기능을 잃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내 역할을 하지 않으면 온 교회가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나는 외관상 뛰어나 보이는 은사를 가진 자들을 시샘의 눈으로 바라보거나, 외관상 볼품없어 보이는 은사를 가진 자들을 멸시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내가 의도적으로 두 팔 중 하나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팔은 점차 기능을 잃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만일 내가 주어진 은사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은사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효과적으로 사용될 능력을 잃게 됩니다. 몸의 모든 지체는 필수적이며 또 상호 의존적입니다.


   지역교회의 교제가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나의 지역교회 봉사가 평가받을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면 상급을 받을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해를 당할 것입니다(고전 3:11~15).

   이것이 내 삶과 봉사를 드릴 가치가 있지 않은가요? 이것이 힘을 다해 추구할 가치가 있지 않은가요? 게으름이나 다른 관심사나 원만하지 않은 인간관계나 그밖에 다른 어떤 장애가 지역교회 안에서 성도들을 세워주고, 그리스도를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그 최선의 축복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전도출판사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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