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노는 아이를 공부시키지 말아야 할 이유
입력 2016.12.21 03:01 수정 2017.01.03 16:33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
아이와 놀아주면서도 틈만 나면 공부를 시키려는 부모들이 있다. 사물의 이름을 영어로 물어보고, 수를 세게 하고, 한글을 읽어 보게 한다. 그러면서 조금 일찍 가르치는 것이지만, 강압적으로 붙잡고 가르친 것이 아니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심 놀아 주면서 공부까지 시켰다며 뿌듯해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에 손이라도 들어주듯 아이는 부모의 물음에 신나서 넙죽넙죽 대답을 한다. 아이가 잘 따르면 부모는 거기에 성취감을 느껴 더 하게 된다. 아이가 공부를 재밌어 한다고 착각도 한다. 아이가 신나서 대답을 하는 이유는 부모의 폭풍 칭찬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노는 시간까지 공부로만 상호작용을 하면,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 할 때 공부를 못 하거나 싫어하게 될 수 있다. 공부뿐 아니라 부모와의 상호작용 자체를 싫어하게 될 수도 있다.
아이가 놀면서 하는 공부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공부가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부모와 하는 상호작용이 좋아서다. 이때 공부는 도구일 뿐이다. 아이가 계속 넙죽넙죽 대답을 잘하는 것은, 계속해서 따뜻하고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고 싶어서이다. 그런데 아이가 부모와 ‘공부’로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초기 유아기’ 잠깐이다. 공부라는 것은 놀이와 달라서 배우면 배울수록 칭찬만 들을 수는 없다. 갈수록 난도가 높아지고, 난도가 높아지면 틀렸다는 말도 해야 되고, 다시 풀라고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가 어릴 때부터 공부로만 상호작용을 한 부모는 공부 외에 다른 도구로는 상호작용을 할 줄을 모른다. 계속 공부로만 상호작용을 하려고 들게 된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아예 부모와 상호작용을 하는 시간을 싫어하게 된다.
부모와의 상호작용이 싫어지면, 아이는 공부할 이유를 잃는다. 공부가 싫어지고 안 하려고 든다. 이런 시기가 바로 초등 고학년이다. 유아기나 아이에 따라 초등 저학년까지는 부모의 뜻대로 아이가 공부를 한다. 이것을 아이가 좋아서 한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내공이 약하거나 순종적인 아이들은 그냥 “네”라고 할 뿐, 공부에 대한 흥미를 점점 잃어버린다. 하지만 초등 고학년이 되면 공부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공부로는 부모와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거의 할 수 없게 된다. 그때는 책상 앞에 앉히기도 어려워진다.
초등 입학 준비를 시킨다고 해도 유아기 공부는 최대한 30분을 넘어서는 안 된다. 나머지 시간에는 아이와 다른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일상생활의 다양한 상황에서 긍정적이고 따뜻한 교감이 오가야 한다. 특히 놀이에서는 더욱 그렇다. 유아기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놀아 주세요”다. 이 시기의 두뇌 발달에는 ‘노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정말 실컷 놀도록 해야 한다. 즐겁고 신나고 행복해야 감각이나 운동신경이 발달하고 두뇌도 발달한다. 아이들이 감각적인 것, 몸을 움직이는 것에 더 호기심을 느끼는 것은 아이의 DNA에 새겨진 두뇌 발달에 그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부모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원하는 것은 ‘즐거움’이다. 아이는 부모와 같이 있는 시간이 따뜻하고 뭘 해도 ‘야, 신난다!’라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이 부모에게 수용되고, 수시로 부모 품에 포근히 안기기를 원한다. 하지만 공부로 상호작용을 하면 이런 것을 주기가 어렵다. 공부는 아무리 쉬워도 놀이가 아니다. 놀이는 아이가 규칙을 바꿔도 “그래 좋아. 그렇게 해보자”라고 할 수 있지만, 공부는 규칙을 바꿀 수 없다. 더하기를 아이 마음대로 빼기로 바꿀 수는 없지 않는가. 부모 입장에서 공부는 수용을 많이 해주기 어려운 아이템이다. 필요한 만큼 가르치기는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와의 모든 상호작용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부모와 아이 관계도, 아이 공부도 모두 망가질 수 있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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