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스크럽'에 해당되는 글 1195건

  1. 2015.05.05 왜사느냐고 묻거든...
  2. 2015.05.05 소렌스탐의 학창시절
  3. 2015.05.05 기적을 만들어낸 세 여인
  4. 2015.05.05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독일 친구 요기와 레게 여친

 

 

왜 사느냐고 묻거든... 독일 친구 이야기

 

 

사람이 살면서 가장 큰 상실감을 갖게되는 것이 배우자의 사별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이라고 한다.

그 다음이 이혼 그런 거라고 하던가.

카페에 아직 젊은 학생들이 다수 있어 오늘 글의 수위를 어디까지 하느냐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적절히 조절하며 쓰는 데까지 써 보자.

 

글쓴이도 아이 엄마와 두 번의 이혼을 겪고 내외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첫번째 이혼을 했을 땐 상실감과 내가 왜 그런 일을 겪어야하나 하는 참담한 생각에 불면의 밤을 지새다가 이러다가 미치는 줄 알고 생명의 전화라는 곳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음성 꽃동네였다.

거기서 봉사자라는 이름으로 지내면서 내 고통이 많이 상쇄되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없는 장애우들이 즐비한 그곳에서 이혼의 아픔이라는 것은 사실 사치에 불과했다.

하루 하루 지날수록 내가 봉사하는 것이 아니고 봉사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하야 이 세상 무서운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곳을 나와 우여곡절 끝에 아이 엄마와 다시 결합을 했다.

 

서로 아이를 많이 생각해서 재결합했지만 한 번 금간 사랑이 또 다시 금가는 것은 아주 쉬운 모양이었다.

자기 내키는 대로 살고 싶다 하여 잠시 생각할 시간을 더 갖자고 했으나 이미 또 돌아선 마음을 돌이키기에는 역부족이라 판단되어 두 말 안 하고 도장을 찍어주었다.

 

그리곤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카메라와 노트북 달랑 메고 남미로 떠났다.

그래가지고 오늘까지 오게 되었는데 지금은 참 신간이 편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좋고, 남 눈치 보며 대낮에 부끄러운 사랑을 하지 않아도 되는 당당한 솔떼로라 더 그렇다. 

그리고 전에는 처자식과 잘 먹고 잘 살 생각만 하다가 지금은 내 자식이 애비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멋진 일들을 계획하고 있다.

 

막연히 부러워했던 자유인이라는 단어...

나는 지금 내가 감히 자유인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맥주를 마시며 혼자 생각에 잠겨있는 요기 

 

 

그런데 여기 또 독일 자유인이 있다.

요기라는 이름의 47살 먹은 이 친구는 독일 남부, 인구 삼백여 명이 사는 작은 마을에서 건축업을 하면서 아내와 아이와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단다.

그런데 어느날 세 식구가 동네에서 외식하고 집에 걸어가다가 큰 차가 뒤에서 덮쳐 부인은 즉사하고 아들은 병원에서 두어 시간 만에 죽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졸지에 땅에 묻고 홀로 참담한 시간을 보내다가 얼마 후에 푸켓에 여행왔단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사랑하던 가족을 생각하며 울분과 상실감에 부르르 치를 떨면서 이를 악물고 산으로 바다로 몇 달을 쏘다녔다고 한다.

차츰 상처난 가슴이 아물어들며 그렇게 푸켓의 자연을 사랑하게 됐단다.

살고 죽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다만 찰라일 뿐...

 

그래서 독일에서 몇 달 간 일해서 벌면 그 돈 떨어질 때까지 푸켓에서 살기를 벌써 열 번째.

이번에는 12월까지 있을 계획이란다.

요기가 푸켓에 오면 독일 자기 동네 인구가 딱 299명이라나, 한 명 줄었으니...

 

같은 게스트 하우스에 묵고 있는데 이 친구 얼굴 보기 힘들다.

새벽이면 일어나 오토바이 정비해서 타고 푸켓 산으로 들로 구석구석 쏘다닌다고 한다.

하루 종일 오토바이 타고 미얀마 넘어갔다 오기도 여러 번. 

 

그에게 왜 사느냐고 물으면 무슨 대답을 할까?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까...

 

 

 

앞집 아짐 Da와 함께...

 

 

21살짜리 옆집 아가씨 Nan도 함께...

이들은 그냥 다정한 이웃이다.

  

 

난 푸켓에만 오면 가슴이 뛰고 힘이 난다우~~~

 

 

니들이 인생을 알어...? 나는 모린다...

 

 

으헉~ 난 그런 골치 아픈 거 생각 안 해요...

 

 

난... 왜 사는지 그런 거 몰라요... 난 아직 젊거든요...

 

 

인생은 신나는 것...

  

 

근심 걱정은 날려버리고...

  

 

웃으면서 즐겁게 살아요...

 

 

알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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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골프계의 전설 애니카 소렌스탐

 

 

 

소렌스탐의 학창시절

 

 

 

세계 골프계의 지존 애니카 소렌스탐은 1994년에 프로 골프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미 대학까지 졸업한 26살의 늦깎이 선수였다.

하지만 그녀는 해마다 신기록 행진을 계속하며 세계 최고의 여성 골퍼가 되었다.

 

스웨덴 출신인 그녀는 애리조나 주립대학을 다니며 아마추어 골프 선수로 활동했다.

한 번은 중요한 골프 시합과 학교 시험이 같은 날에 있었다.

낮에는 골프 연습을 하고 밤에 기숙사로 돌아오자마자 책을 펼쳐들었다.

하지만 공부해야 할 분량은 많았고 몸은 너무 지쳐있었다.

그녀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룸메이트가 다가와 '나와 다른 친구들이 너를 도와줄 수 있을 거야.'라며 친구들을 불러들였다.

그렇게 소렌스탐은 여러 명의 친구들과 함께 밤을 새워서 공부했다.

결국 그녀는 다음 날 골프 시합과 시험을 모두 무사히 치렀다.

그 뒤로도 소렌스탐은 기숙사 친구들과 밤을 새워가며 과제물에 매달리는 일이 흔했고, 시합 때는 그녀를 응원하러 친구들이 몰려오기도 했다.

소렌스탐은 4년 동안 여러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멋진 대학 생활을 보냈다.

 

훗날 소렌스탐이 프로 골프 선수로 성공하자 모두가 그 성공 요인으로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꼽았다.

특히 그녀의 강한 정신력은 친구들과 부대끼며 함께 한 학창시절의 정서적 안정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지 못한 어린 나이에 데뷔한 선수들이 1,2점 차로 우승을 다투는 긴장된 순간 실수가 잦은 반면, 소렌스탐은 흔들림 없는 침착함을 유지한다.

그것은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갔던 소중한 경험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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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만들어낸 세 여인

 

 

 

보스턴의 한 어린이 보호소에 앤(Ann)이란 소녀가 있었다.

앤의 엄마는 죽었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아빠로 인한 마음의 상처에다 보호소에 함께 온 동생마저 죽자 앤은 충격으로 눈이 멀었고 미쳤다.

앤은 수시로 괴성을 지르고 자살을 시도했다.

결국 앤은 회복 불능 판정을 받고 정신병동 지하 독방에 수용되었다.
모두 치료를 포기했을 때 노(老)간호사인 로라(Laura)가 앤을 돌보겠다고 자청했다.

로라는 정신과 치료보다는 그냥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날마다 과자를 들고 가서 책을 읽어주고 기도해 주었다.

그렇게 한결같이 사랑을 쏟았지만 앤은 아무 말도 없었고, 앤을 위해 특별히 가져온 음식도 먹지 않았다.
어느 날, 로라는 앤 앞에 놓아둔 접시에서 초콜릿이 하나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용기를 얻고 로라는 계속 책을 읽어주고 기도해주었다.

앤은 조금씩 반응을 보이며 가끔 정신이 돌아온 사람처럼 얘기했고, 빈도수도 많아졌다.
마침내 2년 만에 앤은 정신병동에서 나와 파킨스 시각 장애아 학교에 입학했고, 밝은 웃음을 찾았다.
그 후 로라가 죽는 시련도 겪었지만 앤은 로라에게 배운 희망볼 수 있는 마음의 눈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했고, 한 신문사의 도움으로 개안 수술에도 성공했다.

수술 후 어느 날, 앤은 신문기사를 봤다.

 
"보지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를 돌볼 사람 구함!"
 
앤은 그 아이에게 자신이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로 결심했다.
사람들은 절대 못 가르친다고 했지만 앤은 말했다.
"저는 하느님의 사랑을 확신해요."
결국 사랑으로 그 아이를 20세기 최대 기적의 주인공으로 키워냈다.
그 아이가 '헬렌 켈러'이고, 그 선생님이 앤 설리번(Ann Sullivan)이다.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 선생님


로라는 앤과 함께 있어주고 그녀의 고통을 공감하면서 정상인으로 만들어냈고, 앤도 헬렌과 48년 동안 함께 있어주었다.
헬렌이 하버드 대학에 다닐 때는 헬렌과 모든 수업을 같이 들으면서 그녀의 손에 강의 내용을 적어주었다고 한다.
 
 

 

헬렌 켈러 박사

 
 
헬렌은 말한다.

"항상 사랑과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앤 설리번 선생님이
없었으면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볼 수 있다면 제일 먼저 설리번 선생님을 보고 싶어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상처에 대한 적절한 분석과 충고가 아니라 그냥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헬렌 켈러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으나 그녀의 스승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를 안고 있는 헬렌 켈러를 전세계가 놀라게한 인물로 만든 사람이 바로 앤 설리반 (ANN SULLIVAN)이다.

앤 설리반은 늘 되풀이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시작하고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
실패할 때마다 무엇인가 성취할 것이다.
네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지 못할지라도 무엇인가 가치있는 것을 얻게되리라.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다."

 

 

 

체스를 두고 있는 헬렌과 설리번 선생님

 

 

 

 

Trouble is a friend, Lenka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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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rryPotter_Gobletcover.jpg image by Saltlick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우리에게 '미키마우스'로 잘 알려진 미국의 월트 디즈니.

디즈니가 지난 해 '미키마우스' 캐릭터로 올린 매출은 우리 돈으로 6조 원에 달한다.
디즈니는 '미키마우스'라는 세계적인 콘텐츠를 토대로 방송, 테마 파크, 스튜디오, 캐릭터 사업 등으로 꾸준히 영역을 넓혀왔다.

이를 통해 디즈니의 지난 해 매출은 약 47조 원, 순익은 약 5조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학생들도 참 좋아하는 판타지 소설 '해리 포터'는 어떨까?

총 7권으로 이뤄진 '해리 포터' 시리즈는 전 세계 65개 언어, 200여 개 나라에서 출간되었고 총 4억 권 이상이 팔려 역사상 성경책 다음으로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또한 소설을 영화로 제작하여 007 시리즈, 스타워즈 시리즈를 제치고 흥행수입만 약 4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를 통해 '해리 포터'가 마법처럼 거둬들인 매출은 총 300조 원.

우리나라가 지난 10년 간 판매한 반도체 수출 총액 230조 원보다 많은 숫자다.

잘 만든 문화 상품의 진가를 이런 걸 통해 알 수가 있다.

 

이렇듯 전 세계를 열광시킨 조앤 롤링!

그러나 성공하기 전까지 그녀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영국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지방 대학 불문과를 졸업하고 런던의 한 회사에 비서로 취직하지만 일보다는 상상에 빠져있는 시간이 더 많아 얼마 못 가 해고 당하고 말았다.

어린 시절부터 몽상가 기질이 다분했던 그녀는 공상에 잠겨 짬만 나면 뭔가를 끄적거렸다고 한다.

먹고사니즘을 위해 다시 회사에 취직해 날마다 기차로 런던과 맨체스터를 오가던 그녀는 어느 날 창밖을 내다보다가 영감처럼 '해리'라는 이름이 떠올랐고 한 마법사 소년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집에서 남편의 폭력으로 매맞는 아내였다.

견디다 못한 그녀는 돈 한푼없이 무작정 포르투갈로 도망쳐 영어 교사를 하는 동안 틈틈이 '해리'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이미 이혼을 한 그녀는 딸을 데리고 영국으로 돌아와 생활고에 시달리며 마침내 '해리' 이야기를 다 썼지만 복사할 돈이 없어 낡은 타자기로 원고를 두 번이나 쳤다.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다녔지만 이름 없는 작가의 글에 관심을 갖는 출판사는 아무데도 없어 12군데에서 거절 끝에 결국 일거리가 많지 않은 한 작은 출판사에서 출판에 동의했고, 책이 나오자 놀라운 속도로 팔렸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 이야기는 곧 여러 나라에서 관심을 갖고 번역 출간되어 지금도 신기록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성공한 작가가 된 조앤 롤링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뭔가를 해냈다는 사실이 기쁘고, 딸에게도 자랑스럽습니다.

사실 나는 다른 일에는 별 쓸모가 없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비서 일할 때도 그랬고, 남편과 같이 살 때와 교사로 재직할 때도 주위 사람들이 나처럼 일을 못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나는 매사 서툴렀습니다.

잘하려고 할수록 더 헤맸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깨달았고, 그일을 할 때 나는 참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하버드대에서 이렇게 연설하였다고 한다.

 

"세상을 바꾸는데 마법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내면에 이미 그 힘은 존재합니다.
우리에겐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만 날 조터지고 쫄쫄 굶다가 인생 역전에 성공한 작가 Joanne Rowling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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