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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8.21 예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
  2. 2019.08.20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
  3. 2019.08.19 예수님 닮아가기 - 화평(2)
  4. 2019.08.18 <세 가지 의문>

예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

[마태복음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 기독교인들이 모인 어느 모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저녁 식사 후 자신이 좋아하는 성구를 하나씩 낭송하기로 했습니다.

한 유명한 배우가 웅변술과 연극적인 기교로 시편 23편을 낭송하였고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 뒤를 이어 다른 사람이 똑같은 시편 23편을 낭송했습니다.

여기저기서 비웃음과 실망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한 절 한 절 더 해감에 따라 사람들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고, 그 어떤 갈채에도 비길 수 없는 은혜와 감동적인 고요함, 뜨거운 사랑과 열정이 방안을 가득 덮었습니다.

그의 낭송이 끝나자 먼저 시편을 낭송한 배우가 일어나 그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시편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 목자를 알고 계시는군요.”

[베드로후서 1:20~21]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여러분은 성경 구절에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신 적이 있으신가요?

우리는 감동받기를 원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이나 음악, 좋은 글, 책, 영화, 선물 등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처럼 감동을 주는 존재는 없습니다.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은 한 사람의 일생을 감동으로 붙잡기에 넉넉한 극상의 예술입니다.

만물 중에 가장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인간의 심성에서 흘러나오는 마음씨는 비길 데 없이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저널리스트는 오늘 우리가 사는 요즘 시대를 가리켜 '3무의 시대'라고 불렀습니다. 무관심의 시대, 무책임의 시대, 무감동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제외하곤 관심을 가질 일도 없고, 책임을 질 일도 없고, 감동을 받을 일도 없다는 말입니다.

한 사회학자는 이런 극도의 이기적이고 냉소적인 시대를 미제너레이션 (Me Generation, 자기중심주의) 시대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전달하는 영어 표현으로 “I don’t care(나 몰라, 상관하지마)”를 들었습니다.

남이 나에게 관심을 갖는 것도 부담스럽고, 아무도 관심가져 주지 않는 것이 더 편하고, 내 인생을 누군가에게 책임져 달라고 요청할 생각도 없습니다.

치열한 생존경쟁과 극도의 이기주의,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무감각, 무감동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먹고 산다는 것이 너무 고단해서 그런지.. 기뻐도 기뻐할 줄 모르고, 슬퍼도 슬퍼할 줄 모르는 메마른 시대가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1:16~17]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우리는 매일 아침을 별 생각 없이 맞이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매일 맞이하는 이 아침은 전혀 새로운 오늘만의 아침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오늘 내게 주어진 이 하루를 감사로 시작할 수 없고, 감동의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오늘 이 하루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어제와 다를 것이 없겠지만, 어제 죽어간 사람들에겐 그토록 그리워했던 내일입니다.

그러기에 하루의 아침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알려주는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계속 감동받을 일을 준비해 주시고 이것이 우리 인생을 사는 유일한 에너지 원천이 됩니다.

감동이 없는 사회나 개인은 소망이 없습니다. 감동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없거나 충만하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게 되면 하루하루를 감동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성령은 감동의 영입니다.

성경도 성령의 감동을 통해 기록되었으며, 성경의 위대한 인물도 다 성령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용하십니다.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에는 예수님을 감동시킨 한 인물이 나옵니다. 


바로 한 백부장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기쁨으로 만나 주신 분입니다.

[누가복음 7: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마태복음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예수님을 감동 시킨 이 백부장의 믿음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자신을 초월한 믿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이유는 한마디로 자신을 초월하지 못하기 떄문입니다. 자기 자신에만 완전히 빠져 살기에 이웃이 눈에 안 보이고 하나님이 눈에 안보입니다.

백부장은 당시 군인 100명의 부하를 거느린 로마 군대 장교였고, 그 당시 하인은 소유물에 불과하였던 노예였지만 예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신분도 잊은 채 간절히 노예를 낫게 해달라고 도움을 간구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또 예수님을 감동시킨 백부장의 믿음은 공간을 초월한 믿음이었습니다.

백부장의 행동에 감동을 받은 예수님은 “내가 고쳐주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환자가 있는 집으로 모셔 가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8: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자기 집과 예수님을 만난 곳 사이에 공간적인 거리가 있을지라도 예수님이 역사하시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공간 혹은 지역을 초월한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말씀만으로도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다는 백부장의 고백은 진정한 믿음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표적이나 이적을 보고 믿는 믿음보다 말씀에 의지하는 백부장의 믿음을 더 크게 여겼습니다.

우리도 백부장의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공간과 지역을 초월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장에서 역사하시도록 선포하십시요.


시공간을 초월하여 일하시는 주님의 기적을 보게 될것입니다.

우리의 삶 전체는 언제 어디서든지 감동의 근원지가 됩니다. 내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 나를 알고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과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감동의 샘터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처럼 나 자신을 초월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 공간을 초월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감동 시키고, 우리 안에 아름다운 일을 이루실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감동이 쌓여 나갈 때 은혜의 깊이가 더해진다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를 통한 감동의 사역, 감동의 봉사, 감동의 오늘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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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


그리스도의. 아름다운덕(성품)을 선전
내(그리스도)증인이 되리라
(벧전2:9 행1:8)

♥ 어느 성도님이 소도시를 찾아 노방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잠깐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외지인에 대해 예우를 해주는 것인지 주민들은 그렇게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에 귀를 기울여주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 이 성도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아니오’였고 덧붙이는 말들이 이 성도의 마음을 매우 아프게 했습니다.

“우리 형님이 장로요. 그런 형님이 믿는 예수가 난 싫소.”

“내 옆집 사람이 집사입니다. 말도 마십시오.”

하나 둘이 아니라 번번이 그랬습니다. 그데 어느 순간 이 성도의 입에서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예수 믿는 놈을 믿지 말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기독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내 삶의 신뢰 대상을 나 자신으로부터 예수님에게로 옮기고, 부활하여 살아 계신 예수님을 죄에서 건져주실 구원자로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못 믿고 있는 그 사람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코 앞에 있는 축복을 걷어차는것과 같습니다.

또 다른 성도가 있습니다.

이 성도는 서울 근교에 있는 물류회사의 모범사원입니다.

회사가 시외에 있어서 좀 힘들텐데도 지각하는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남들보다 더 일찍 나와서 업무 준비를 합니다.

누가 “집이 가까운 우리보다 먼저 나오셨습니다”고 말하면 “조금만 서둘러 출발하면 차가 막히지 않거든요”라고 대답합니다.

대개는 정시에 퇴근하지만 언제라도 상황이 발생하면 밤을 새우며 책임을 다합니다. 그럴 때면 미리 집에 연락하는 것 또한 잊지 않습니다. 그만큼 가정에도 충실합니다.

그의 성실함은 회사의 모든 사람이 알고 거래처 사람들도 한결 같이 그를 칭찬합니다.

입사 5년 차의 그가 주요부서의 팀장을 맡게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이 성도가 듣는 아쉬운 말 한 마디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 예수 믿는 것만 빼면 참 좋은 사람인데ᆢ”입니다.

동료들의 술자리에서, 일요일의 산행길에서 나오는 얘기입니다.

“그 사람, 예수 믿는 것만 빼면 좋겠는데….”

이 말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들어야 하는 ‘훈장’입니다.

[로마서 14:18~19]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베드로전서 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위의 두 경우 모두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얻어먹었지만 첫번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웠고, 두번째는 성실하고 선한 행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마태복음 5:16] ~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요한복음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써 보잘것없는 나를 죄에서 구원해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예수님의 계명을 따르려고, 노력하고 선하고 착한 행실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느 날 구원받고 교회에 다닌다고 갑자기 예수님 같은 성자가 되거나 갑자기 말과 행동과 인격이 달라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죄인이었던 본성이 주님 만날때까지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
힘써야합니다

우리는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고. 은혜의 왕노릇아래 삽니다. 그은혜의 역사로 그 아버지의 뜻을. 따르게 되있습니다

[요한복음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아버지의 뜻은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릭 워렌의 책 “더불어 삶”에는 사랑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본질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배려하고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행할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얼마나 주는가 하는 것이다.

사랑은 교회와 지체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자신의 필요를 포기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안락, 목표, 안전, 물질, 에너지, 또는 시간을 다른 누군가의 유익을 위해 양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이 우리를 바라보시는 시각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아야 한다.

성경은 기회 있을 때마다 사랑하고 모든 기회를 사랑하는데 사용하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런 기회가 생길 때마다 사랑을 나타내라고 계속해서 사람을 보내 주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눈을 크게 뜨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부여하신 기회를 찾기 시작한다면 바로 오늘이 우리 삶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다.


[에베소서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갈라디아서 6:9~10]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날마다 주님을 닮아가며 세상의 빛된 사람을 살기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저를 부르신 목적이 세상 속에서 보냄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임을 믿습니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나게 하시고, 이웃을 더욱 섬기고 사랑하고 이웃들의 필요를 돌아볼줄 아는 목자의 마음을 주셔서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오늘 주님이 허락하신 사랑을 실천할 기회를 깨닫고 매 순간 매 기회마다 선을 행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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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닮아가기 - 화평(2)


[마태복음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한 귀부인이 붐비는 기차역에서 급하게 기차를 타러 가다가 한 흑인과 부딪쳤습니다.

쇼핑백을 놓치는 바람에 가방 속 물건들이 다 쏟아졌고 그 물건들을 주워 담느라 기차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허탈함으로 귀부인은 역내 음식점에 갔고 샐러드 한 접시를 주문하고는 자리를 잡았습니다. 막 먹으려다가 포크를 안가져 온 것을 알고 포크를 가지러 일어났습니다.

그 사이 걸인처럼 보이는 흑인이 자신의 샐러드 앞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귀부인은 어이없고 화가 나서 포크를 집어 들고는 그녀도 자신의 샐러드를 먹었습니다. 귀부인 한번 흑인 한번 교대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다 먹은 후 그 흑인은 커피를 두 잔 가져와서는 하나는 귀부인에게 건넸고, 커피를 마신 귀부인은 기차를 타러 나갔습니다.

순간 쇼핑백을 놓고 온 것이 생각나 급히 음식점으로 뛰어갔지만 흑인도 쇼핑백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황한 귀부인은 음식점 여기저기를 훑어 보다가 한 테이블에 손도 대지 않은 샐러드 접시와 의자 위에 쇼핑백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흑인이 자신의 샐러드를 먹은 것이 아니라 자리를 잘못 잡은 귀부인이 흑인의 음식을 빼앗아 먹었던 것이었습니다.

흑인은 자신을 쨰려 보며 자신의 음식을 먹는 그 귀부인에게 화를 내지 않고 함께 나누어 먹었고 커피까지 대접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9분짜리 흑백단편 영화 "런치 데이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이 같은 상황에서 흑인처럼 자신의 음식을 뺏어 먹는 부인과 함께 먹고ᆢ 넉넉한 마음으로 여유를 즐길 수 있었을까요?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는 여유와 넉넉함을 잃어 버린ᆢ그래서 사람이 가장 무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회에 대한 불만을 묻지마 살인으로 표출하는 사회.. 너무나 조급하고, 나만 알고 배려가 없는,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자신의 잘못은 전혀 생각지 않고 누군가가 내 자리에서 내 음식을 먹는다고만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에 관대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정죄하고 판단하고 비난하고 심판합니다.

어떤 사람이 피아노를 치면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지만 어떤 사람은 소음을 냅니다. 우리 인생도 바르게 연주하면 아름다움을 누리지만, 잘못 연주하면 불협화음과 추함만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피아노 탓이 아니라 내 탓인 것입니다.

어떻게 나의 인생을 아름답고 멋지고 복되게 연주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삶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람답게 사는 삶일까요?

먼저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의 모든 생물을 다스릴 수 있는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길 원하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경외하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이 그의 뜻 안에서 화평 가운데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인간 관계는 유리그릇과 같아서 조금만 잘못해도 깨지고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원수가 되어 버립니다. 우정을 쌓는 데는 수 십 년이 걸리지만 그것을 무너뜨리는 데는 1분이면 족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정성을 다해서 관계가 깨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1~3] ~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골로새서 1:19~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처럼 화평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 정죄하거나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7:1~4]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로마서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요한복음 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이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죄를 덮어버립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으면 죄를 드러내게 됩니다.

사랑하면 허물이 있어도 덮어주고, 사랑 없는 사람은 자꾸 그것을 드러내서 결국 이간시키고 인격 살인을 하고, 매장시켜버립니다.

[누가복음 6:41~42]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둘째, 다른 것을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생각이 다른 것과 마음이 다른 것은 다릅니다.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사는 방식도 다르고 은사도 다릅니다.

획일과 하나됨은 다릅니다. 진짜 하나가 되려면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다려야 합니다. 내 것만 옳고 다른 것은 틀리다고 하면 전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십니다. 완벽하지 않은 자신처럼 다른 사람을 용납하고 이해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다양함 가운데 하나됨을 통해 참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세째, 진심으로 용서하고 용납해야 합니다.

용서는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용서했다고 말하면서 마음속에 계속 기억하고 계속 미워하고 마음이 불편한 것은 용서한 것이 아닙니다.

어설프게 용서하면 마음속에 찝찝함만 남습니다. 그러면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진정한 용서가 안되면 기도해야 합니다.

넷째,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다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살피시고 언젠가는 나의 모든 것을 갚아 주실 것을 믿으시나요?

믿으신다면 하나님께 다 맡기고 거룩한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평강이 이루어집니다.


다섯째, 마음을 넓혀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마음을 어떻게 하면 넓힐 수 있을까요?

수 많은 욕심과 잡다한 것으로 가득 차 한 치의 여유도 없이 살아간다면 우리는 화평을 누릴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허물을 품어주고 그 영혼을 위해 위로해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매일 지속되는 폭염으로 불쾌지수가 높은 요즘..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화평을 누리지 못합니다.

죄와 악이 가득한 세상이지만 우리 모두 화평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나 때문에 누군가가 행복하고 참된 화평를 누리도록 하는 평화의 도구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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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의문>


톨스토이의 ‘세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첫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둘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셋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톨스토이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현재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가 대하고 있는 사람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다. 인간은 그것을 위해서 세상에 온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날마다 그때그때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사랑과 선을 다하여야 한다.”
이것은 톨스토이의 실천적 신앙 원리였습니다.

날마다의 삶속에서 기억되고 지켜져야 함에도 잊고 사는 시간, 사람,일의 개념을 명쾌하게 정리해 놓은 톨스토이의 세 가지 의문에 대한 해답은 오늘 우리의 삶의 태도를 점검해보게 하는 좋은 지침이 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 (골로새서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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