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퇴·가출·신체장애'… 公교육이 버린 학생들 '위대한 졸업'
"선생님 덕에 어둠 잊어"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중1 때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오토바이 폭주족 생활도 했고, 공부와는 담을 쌓아 결국 고1 때 자퇴를 했다. 2005년 1월의 일이다.
그랬던 추형주(20)군이 5일 성지고 졸업식에서 국회의원상을 받았다. 경희대 스포츠지도학과의 합격통지서도 받아놓은 상태다. 작년 10월 전국체전에서 보디빌딩 금메달을 따낸 추군은 한국 최고의 보디빌더와 트레이너가 될 꿈을 갖고 있다.
이날 서울 강서구민회관에서 열린 대안학교 성지중·고의 졸업식은 자퇴·가출·신체 장애 등의 역경을 딛고 졸업장을 따낸 이들의 패자 부활 스토리로 가득차 있었다. 명문대 입학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큰 성취를 해낸 자부심에 뿌듯해 했다. 기존의 공교육에서 탈락한 이들이 어떻게 이곳에서 부활에 성공했을까.
- ▲ 5일 식장에서 삼삼오오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성지고 21회 졸업생과 교사들. 제자들의 얼굴이 굳어있자 이종진 교사(신민철군의 담임)가 춤을 추어 표정을 환 하게 해주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란₩김선진양, 추형주군, 고진희 교사, 신 민철군, 박진철 교사, 이승헌군. 휠체어에 앉은 화사한 한복 차림의 박영옥씨는 하 반신 장애에도 4년간 개근하며 졸업했다.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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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메시지 보내는 선생님160cm 조금 넘는 앳된 체구의 신민철(18)군이 살아온 역정은 참으로 기구했다. 열세살 때 아버지는 부도를 낸 뒤 10억원의 빚을 남긴 채 중국으로 도피했고 어머니는 가출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월세 15만원짜리 단칸방과 거동도 힘든 할머니(75)뿐이었다.
신군은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너무 억울해 한달 간 가출도 했다"고 말했다. 이날 졸업식에서 신군은 남부지검소년장학재단 이사장상을 받았다. 그는 호서전문학교의 e비즈니스학과에 진학할 예정이다.
"3년 동안 거의 매일 선생님이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줬어요. '밥은 먹었니' '잘 지내니' 이렇게 관심을 가져 주셨죠."
그는 한 달에 6일밖에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 빚쟁이들 독촉으로 월 50만원의 이자를 갚아야 했기 때문에 매일 일을 해야 했다.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쇼핑 고객의 짐을 주차장까지 옮겨주는 '짐꾼' 아르바이트를 한 그는 한 달에 주어지는 휴무일 6일을 모두 평일로 돌려 학교에 갔다.
"일반 고교였다면 불가능했겠죠. 선생님들이 과목별로 노트 정리를 해서 저에게 주셨어요."
19년째 재직하는 함익주 교사는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누군가 사랑해주고 관심을 가져준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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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과거, 오늘은 오늘이날 졸업한 김선진(여·22)씨는 가정 불화로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출을 했다. 그는 오는 3월 간호조무사 자격증 획득을 눈앞에 두고 있다. 대학 진학을 노릴 실력이지만 학비가 없어 우선 자격증을 딴 뒤 돈을 벌어 내년에 도전할 계획이다.
김씨는 "중2 때 학교를 떠난 뒤 험한 경험도 많아 쉽게 마음을 열기 힘들었다"면서 "하지만 성지고 선생님들과는 친구보다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준비할 형편도 안 됐지만 담임선생님이 국비로 보조받는 프로그램을 찾아내 알려줬다"고 말했다.
김씨의 담임 김채경 교사는 "예전에 그랬으니 지금도 이럴 거야 라고 보는 단정은 절대 금물"이라며 "늘 '과거는 과거, 오늘은 오늘'이라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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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 맞춰주는 선생님들경북 영주 출신의 김란(여·20)양은 아버지의 주벽(酒癖)에다 어머니의 사채 빚으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자 고모집과 삼촌집을 전전했다. 사채업자들이 학교로 찾아와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학교도 그만두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는 3년 동안 성지고에서 내리 반장을 맡으며 신구전문대 치위생학과에 합격했다. 김양은 "나처럼 중학교 과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학생에게 선생님들이 중학 교재를 가져와 가르쳐줬다"면서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눈높이를 맞춰주던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고교를 3곳이나 전전했고 우울증 치료까지 받았던 이승헌(19)군은 성지고로 옮겨 한양대 체육학과에 합격했다. 그는 "입시 준비하기에 기초가 너무 부족하고 학원 다닐 형편도 안돼 방과 후 영어·수학 선생님들을 교무실로 찾아가 배웠다"면서 "중학교 과정부터 가르쳐 준 선생님들이 무척 고맙다"고 말했다.
성지중·고등학교
다른 학교에서 자퇴했거나 방황하는 아이들, 뒤늦게 학업을 시작한 중·장년층이 다니는 대안학교. 학력이 인정되는 서울의 3개 대안학교 중 하나다. 1972년 빈민층을 위한 야학시설로 출발해 모두 1만20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