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스크럽'에 해당되는 글 1195건

  1. 2019.09.22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으려면 2
  2. 2019.09.21 하나님의 음성 잘 들으려면 1
  3. 2019.09.20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
  4. 2019.09.19 하나님의 뜻 1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으려면 2


❤ 영국 출신의 저명한 성경 해설가이자 명설교자인 알란 레드패스(Alan Redpath 1907~1989)는 한때 공인 회계사였습니다.

영국의 4대 종합화학회사 중의 하나인 큰 회사에서 6년 동안 일했으며 럭비 선수로도 활약했습니다.

그 당시 알란은 교회에 다녔지만, 그의 기독교 신앙은 인생에서 단지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고백했지만, 다른 신들도 여전히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와 알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구원 받은 영혼이 인생을 낭비하고 있군.”

알란은 그 친구의 말을 머리 속에서 떨쳐 버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알란이 어디를 가든 무슨 일을 하든 그 친구의 말은 알란을 따라다니며 그의 양심을 괴롭혔습니다.

주말에 운동을 할 때도 그 말은 녹음기처럼 여전히 그의 귀에 쟁쟁거렸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악단은 단 한 가지 곡조 “구원 받은 영혼, 인생을 낭비하다”만을 연주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중에도 기차 바퀴가 덜커덩거리며 “구원 받은 영혼, 인생을 낭비하다”를 외쳐 대는 듯했습니다.

마침내 알란은 하나님께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주님, 제 안에 들어오셔서 제 생명을 취하시고 제 마음의 왕이 되어주옵소서. 제 삶의 일부가 아니라, 저의 전부를 다 바치겠나이다!”

[욥기 33: 13~17] 하나님은 모든 행하시는 것을 스스로 진술치 아니하시나니 ~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 중에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치듯 교훈하시나니 이는 사람으로 그 꾀를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신실한 믿음의 동역자들의 조언을 통해서도 그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그러므로 같이 기도하고, 같이 신앙적으로 의논하고, 서로 믿음으로 붙들어줄 믿음의 동지가 필요합니다.

신앙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다면 신앙생활과 영적인 면에 있어서 매우 유익합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안들리니 음성을 들려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하나님과의 주파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라디오 채널을 돌리면 소리가 지직거리다가도 주파수가 맞추면 방송이 정확히 잘 들리듯, 사랑의 주파수와 구원의 비밀번호가 맞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비밀번호도 맞고 주파수도 맞는데 들리지 않는 이유는 접속이 불량하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정상적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숨은 죄가 있거나 죄 가운데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자기 이기심, 욕망, 야망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충고가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말씀을 해도 듣지 못합니다.

세 번째, 동기가 불순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이기적인 동기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누구를 미워하거나, 어떤 이익을 취득하려 하거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 교회에 나오고 사람을 이용하면 음성은 들리지 않습니다.

네 번째, 성경에 대해 지식이 부족하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성경에 해답이 다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지금 몇 시입니까?’하고 물으면 하나님은 “지금 7시 40분이다”하고 대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시계를 봐라”라고 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물음의 해답 대부분은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에는 십계명부터 직업선택의 원칙, 사람 사귀는 원칙, 돈을 관리하는 원칙, 상처 받았을 때 해결하는 방법 등이 다 있는데 우리는 하나님께 음성을 들려달라고만 합니다.

다섯 번째, 교만하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교만은 자기를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면서 나의 음성, 나의 고집, 나의 뜻과 의만 고집합니다.

여섯 번째, 믿음으로 순종하지 않을 때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다 정해놓고 하나님을 이용합니다. 자기 이기심은 다 숨기고 겉으로 신실하고 거룩한 척 행동합니다. 이기심도 만족시키고 신앙적 칭찬도 받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일곱 번째,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이유는 자기 포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적은 사탄이 아니라 내 자신입니다.

자기를 쳐서 복종하게 해야 합니다. 내가 조용해야 상대방 말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내 소리가 크면 상대방 이야기가 들리지 않습니다.

내 생각을 죽여야 하고, 내 자존심과 의지를 꺾고 ‘주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하고 주님께 의뢰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가장 기본적인 단계가 있습니다.

✔ 매일 기도하십시오.

하루에 3분씩이라도 매일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과 교제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맑은 영혼과 깨끗한 양심과 거룩한 믿음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한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십시오.

✔일곱 가지 장애를 기억하며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점검하십시오.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대로 나와 하나님의 사이를 막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점검하십시오


✔성경을 많이 읽으십시오.

꾸준히 성경을 읽으면 성경적인 세계관과 가치관, 안목이 생깁니다. 그리고 영적 민감성이 키워집니다.

예를 들면, 지금 환난 중에 계시나요? 시편과 요한복음을 읽으세요.

[시편 50: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요한복음 16: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어려움 속에서 낙심되시나요? 시편 42편을 읽으세요.

[시편 42: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이사야 41: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혹시 근심과 염려 중에 계시나요?

[베드로전서 5: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빌립보서 4: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세상에서 악한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보고 마음에 불평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의심하고 계시나요? 시편 37편을 읽으세요.

[시편 37:1~ ]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

혹시 죄로 말미암아 마음에 고민과 고통을 갖고 계십니까?

[요한1서 1: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울하고 외로우신가요?

[히브리서 13: 5]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마태복음 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신음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끊임없이 우리를 격려하시고 회복시키시고 치료하시고 도전하시고 우리를 강하게 만드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과 더욱 더 친밀한 관계로 들어가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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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음성 잘 들으려면 1


[마태복음 11: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우리 얼굴에 달린 신체 기관들은 매우 신비롭습니다.

눈은 보기만 할 뿐 아니라 슬프거나 넘 기쁠 때 눈물을 흘립니다.

코는 주로 숨 쉬는 기관이지만 냄새 맡는 일도 합니다.

입은 먹고 마시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도 하고 코와 함께 숨을 쉬는데도 활용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능에서 비교적 동떨어진 기관이 있습니다. 바로 '귀'입니다.

귀는 한 가지 일.. 즉 듣는 것만 합니다.

귀는 얼굴 앞이 아니라 옆에 있어 사람들도 그리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성형 술이 발달했지만 귀를 성형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귀를 예쁘게 하기위해 귀걸이를 하는 정도입니다.


귀는 이목구비 중 가장 수동적입니다. 눈은 감아버릴 수 있고, 입은 닫아버릴 수도 있지만 귀는 전혀 움직일 수 없습니다.

코를 막으면 숨을 쉴 수 없듯이 들리는 모든 소리는 호흡하듯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잘 듣지 않습니다.

본래 만들어진 대로 겸손하게 듣고 배우려 하지 않고, 자기만의 생각과 고집으로 귀를 틀어 막아버립니다.

신체는 그 주어진 목적대로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공자는 예순이 되니 귀가 순해졌다하여 ‘耳順(이순)’이라고 했습니다.

손봉호 교수는 ‘이순’에 대해 60세가 되어서야 귀가 순해져서 천지만물의 이치에 통달하게 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하게 되고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고 한 데서 나온 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순리대로 듣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면 예순이 되어서야 듣는 것이 쉬운 일이 될까요?

[잠언 12:15]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우리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ᆢ 배운 것이 많으면 많아질수록ᆢ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ᆢ  남의 말을 한 쪽 귀로 듣고는 한 쪽 귀로 흘려버려 고집불통이 됩니다.

우리는 진리는 듣지 않고 헛된 이야기나 거짓 선각자, 이단,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거짓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진실은 듣지 않고 속임수로 지어낸 이야기, 다른 사람의 신상털기나 인격 모독적 과거사나 허물 등 남 얘기 하는것과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또한 우리는 선택적 청취를 합니다. 똑같이 들어도 나중에 보면 이해한 것이 다 다를때가 있습니다.

듣는다고 다 듣는 것이 아니고 들려진다고 다 깨닫는 게 아닌 것입니다.

많은 소리 중에도 내가 듣고 싶고 좋아하는 이야기, 눈앞에 필요한 이야기, 나에게 당장의 유익을 주는 이야기에만 선택적으로 듣습니다.

내 입맛에 달고 맛있는 것만 듣고, 쓰거나 정말 건강에 좋은 것은 안 듣습니다.

[요한복음 5:24~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인간으로 하여금 진리를 듣게 하고, 진리를 깨닫게 하고, 영생을 알게 하여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밭으로 비유해 말씀하셨습니다.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은 길바닥 같은 것이며, 듣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은 돌밭이라고 비유했습니다.

들으면서도 진리가 아닌 생활에 얽매여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은 가시덩굴이 무성한 밭이라고 하였고, 듣고 깨달아 그대로 실천하며 사는 사람의 마음은 옥토로 비유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과 들어도 알지 못하는 사람을 꾸짖으며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은 바로 보라는 뜻이며, 깨달을 줄 아는 머리를 가진 사람은 바로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

말씀의 능력은 들음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인격 속에 역사하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갑니다.

마음을 비우고 믿음으로 들을 뿐만 아니라 경청하고 집중하고 청종하고 순종할 때 말씀의 위대한 역사가 바로 그 심령 속에서 그 인격 안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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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


[고린도후서 5: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골로새서 3:22~24]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 하워드 헨드릭스 박사는 수많은 크리스천 지도자들의 친구이자 영적 멘토이며, 복음주의 교육계에서 “기독교 교육” 그 자체로 불리는 탁월한
기독교 교육학자입니다.

어느 날 하워드 헨드릭스 박사가 비행기를 탔습니다. 

기내는 굉장히 붐볐고 그래서인지 승객들 모두 신경이 곤두 서 있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기체는 계속 흔들렸고 사람들의 불안과 불평불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손님들을 돌보며 움직이는 한 승무원이 있었습니다. 

무례한 승객에게도 변함없이 미소를 잃지 않고 상냥하게 안내를 했고, 신경질을 부리며 칭얼대는 아기들을 웃기려고 새로운 장난감을 들고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헨드릭스 박사는 그 승무원을 계속 주시해서 보았습니다. 그녀는 탑승 내내 환하고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비행기가 목적지에 다다를 즈음, 헨드릭스는 그 승무원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 항공사는 무척 운이 좋은 것 같군요. 당신처럼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이 있으니 말이지요.”

그러자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항공사를 위해서 일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 하시는 거지요?” 

“저는 예수님을 위해 일한답니다. 이 항공사는 단지 제게 월급을 줄 뿐이지요.”

흔들리고 어수선한 비행기 안에서도 그녀는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고 주님을 위해 일하듯 승객들을 섬기고 마음을 다하여 성실하게 일한 것입니다. 그녀의 삶의 목적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여러분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대부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사업이나 직장은 생계 수단입니다. 사업의 성패나 직장의 좋고 나쁨의 척도는 돈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직업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직업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신성한 것으로 사업과 직장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목회자나 선교사님만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업, 어떤 직장이냐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어떤 태도로 일하느냐를
보십니다.

우리는 직장과 사업을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 사랑과 나눔과 섬김의 구체적인 실천 현장으로 여겨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서 예배당을 짓고 있었습니다. 벽돌을 한참 쌓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교회의 목사님이 공사 현장을 돌아보기 위해서 나갔다가 벽돌을 쌓고 있는 기술자에게 인사말을 했습니다.

"더운 날씨에 수고가 많으십니다" 

그랬더니 벽돌 쌓는 기사는 "배운 기술이 이것밖에 없으니까 할 수 있어요?"라고 퉁명스럽게 볼멘 대답을 했습니다. 

한참 가다가 저 모퉁이에서 똑같이 벽돌 쌓는 일을 하는 기사에게 "더운 날씨에 수고가 많으십니다"라고 인사했더니 그는 조용한 말로 대답했습니다.

"벽돌 쌓는 기술 배웠다가 이렇게 제 손으로 예배당 짓는 일을 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똑같이 벽돌 쌓는 일을 하지만, 한 사람은 사명감에서 일하고 다른 사람은 사명감 없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벽돌 쌓는 기사뿐만이 아닙니다. 가정주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사는 가정주부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소중한 가족을 허락하시고 가정을 관리하도록 내게 맡겨주셨는데, 가족의 건강을 내가
책임지는데, 어떻게 해야 영양에 좋은 음식을 맛있게 해서 잘 먹게 하지?' 하고 늘 생각하고, 빨래를 해도 '우리 식구가 어디 가도 빠지지 않게 깨끗하게 입혀야지' 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하고, 다림질도 성의를 다합니다.


그러나 사명감이 없는 주부는 억지로 집안 일을 하고 점점 더 게을러지고 만사가 귀찮고.. 집안 일을 도와주지 않고 알아주지 않는 남편만 미워하고 원망하며 기쁨도, 만족도, 행복도 없습니다. 남편이 저녁을 안먹고 오면 눈치를 줍니다. 집에서 요리를 안하니 요리 실력은 점점 더 떨어지고 더 귀찮아져서 외식만 합니다. 이렇게 사명감이 없이 가정생활을 하니 가정에 행복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공통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 건설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배 드리고 교회 봉사를 하는 것만이 신앙생활의
전부는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 밖에서 신앙인답게 사는 삶, 하나님의 자녀답게 예수님의 제자답게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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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뜻 1


[에베소서 1:11~12]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 한 크리스찬 청년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급정거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의 무릎으로 한 여자가 쓰러졌습니다. 별로 예쁘지 않고 뚱뚱한 여자였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주여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버스가 급출발 하면서 또 다른 여자분이 쓰러졌습니다.
이번엔 얼굴도 예쁘고 날씬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우스개 이야기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실수를 꼬집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곤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야 하지만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오해하여 나에게 유리한대로 내 마음대로 해석할 때가 많습니다. 


또 다른 예입니다.

정말 열심히 일하고 바쁘게 지내던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성경도 못 읽고 기도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졸음 운전을 하여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을 했습니다.

그는 이것은 성경 읽고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원하기에 매 순간 기도하고 여러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고자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만큼 다채롭고 각자의 해석이 다르고 잘못 사용되는 용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말은 우리가 일상 대화속에서 간증에서도 자주 즐겨 사용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실제 일상생활가운데 하나님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에 내 뜻을 섞어나 포장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책임을 전가하는 용도로 사용하곤 합니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자기에게 유리하면 하나님을 이름을 빌어 확증 도장을 찍고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합리화시키는 수단과 정당성을 인정 받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 사업도 잘되고 자식도 잘되고 주식도 오르고 건강의 축복도 누리는 등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면 만약 우리에게 갑자기 병이 나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고난과 불행이 닥친다면 어떻게 해석할까요?

“하나님, 어찌 이러실 수 있습니까? 대체 제게 왜 이러십니까?” 라며 원망과 불평과 하나님께 억울한 항변을 늘어 놓을것입니다.

과연 아무런 고난도 없이 잘 먹고 잘살고 번영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환경이나 고난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실하게 섬길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좋은 환경만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또 우리는 자신에게 일어난 부정적인 일에 면죄부를 찾기 위해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졸음 운전으로 교통사고가 났다면 그 사고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성경 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고의로 교통사고가 나도록 조작하셨을까요?

사랑의 하나님이신 우리 하나님이 성경 안읽는다고 교통사고를 강제로 내게 하시고 병원 침상에서 성경을 읽게 하셨을까요?

우리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일상생활에서 매일 일어나 바쁜 와중에도 우선순위를 두고 성경을 읽기 원하시지 억지로 사고나 재난을 줘서 읽게 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나쁜 분으로 몰아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적으로 자신의 실수와 부주의한 운전습관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거나 자기의 실수는 감추고 자기가 당한 실수와 잘못을 하나님 책임으로 돌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편리대로 하나님의 뜻을 잘못 해석하는 오해 3가지를 소개합니다.

✔첫번째 오해는 나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 창세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므로 우리의 미래를 알고 계십니다. 미래를 아시므로 우리의 앞길을 예비하시고 도와주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미래를 알고 예비해 주신다는 것과 하나님이 미래를 결정해놓으셨다는 것은 의미가 다릅니다.

우리의 일생이 우리자신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하나님에 의해서 결정되어 있다는 생각은 결정론적 세계관, 운명론, 숙명론인데 성경은 이것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절대 주권자에 의해 다 결정되어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나뭇잎에 달려있다 떨어지는 나뭇잎의 비행 괘도와 땅에 떨어지는 착지 지점까지 하나님이 창세전에 다 결정했다고 믿습니다.

길을 가다가 몇 번째 돌에 걸려 넘어질지도 다 결정되고 설계되었다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가 하나님의 예정과 결정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면 아담의 범죄의 책임자는 누구입니까?

죄는 아담이 저질렀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미래를 알고 계셨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경고를 주심으로 미리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이 결정해놓은 것이 아니라 아담에게 불순종이 아닌 순종의 길을 선택하라고 자유의지를 주고 자발적으로 순종하길 원하셨습니다.

살인사건, 흉악한 강도 강간 사건, 폐륜적 사건이 창세전부터 절대권자에 의해 다 정해진 것이라면 하나님을 모든 범죄와 재난과 불행의 배후 조정자로 몰아가는 것이 됩니다. 원인과 책임을 다 하나님께 넘기는 것입니다.

비행기 추락사고가 하나님의 계획과 설계에 의해서 아무리 기장이 정신차리고 운전하고 동체 점검을 해도 하나님이 정하셨으면 그런 사고가 일어나야 할까요?

만약 그렇다면 모든 사건과 사고의 범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절대주권자이지만 모든 일들을 결정해놓고 사람을 하나님의 지시와 조정에 의해 꼭두각시 인형이나 로보트로 만드신 것은 아닙니다.

아무렇게 막 살아도 미리 정하신 길을 가는 것이기에 죄를 짓는 것과 불순종도 하나님이 다 정하신 것이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선택을 요구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요구합니다.
순종이냐 불순종을 결정할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길을 선택할지에 따라 우리의 앞날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것을 예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베드로의 마음을 조작하셔서 몇월몇일 몇시에 예수님을 부인하는 말이 튀어나오도록 예정을 해두신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예수님을 부인한 것은 베드로의 책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책임이 됩니다.

하나님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경고를 하셨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시기에 경고를 주십니다.

순종하면 시험을 극복할수 있습니다

✔두번째 오해는 일상생활에서 사소한 것 하나까지 하나님의 뜻을 묻고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신앙심 깊은 자매가 있는데 그녀는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매우 겸손한 자매입니다.


그런데 단 한가지 병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 마음속에 ‘일어나라”는 하나님의 내적음성이 들려야만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사사건건 하나님의 지시를 받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리 일상 생활 가운데 선택의 문제는 항상 찾아 옵니다. 오늘 점심에 짜장면을 먹을 것인지 짬뽕을 먹을 것인지 선택합니다.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내가 짜장면을 선택하면 먹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짬뽕을 먹으면 내 일생과 인류의 미래와 하나님의 사역이 달라질까요?

그냥 먹고 싶은 대로 드십시요. 젓가락으로 먹을 까요, 숟가락으로 먹을까요? 불순종했다고 벌주시지 않습니다.

신발을 왼쪽부터 오른쪽부터 신을까요? 편하신대로 신으시면 됩니다.

오늘은 성경말씀은 어디를 읽을까요? 어느 부분을 읽으셔도 됩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읽고 그 말씀에서 은혜 받고 순종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상적인 일까지 하나님의 뜻을 묻고 내적 음성을 들어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 성경을 주셨습니다.


성경말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이성과 지혜와 분별력을 주셨습니다. 일반 상식과 선한 양심으로 결정하면 됩니다.

시시콜콜 음성을 듣고자 하면 신앙생활이 너무 힘들 것입니다.

✔세번째 오해는 자신의 잘못을 다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결정해 놓으셨기 때문에 자기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졌다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건강관리를 소홀히 해서 병이 나도, 늦잠을 자다가 지각을 해도, 운전 중 한눈 팔다가 사고가 나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의 실수를 감추고 하나님의 뜻을 내세워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려는 교만한 마음 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일상 생활의 편의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분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책임회피를 위해 변명거리로 사용되어서는 안됩니다.

[신명기 30:19]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택하고 생명과 복을 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시지만 사람에게 자기 의지를 주셔서 강제로 택하게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기에 인격적인 존재로 나의 선택과 판단을 존중해 주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을 오해하지않고 잘 분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길 바랍니다. *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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