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 걸까?


우리는 실패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왜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 걸까?’ 실패의 허탈과 피로로 우리는 지쳐 있습니다
반복되는 실패는 삶을 무기력하게 합니다

‘그래, 나는 할 수 없어.’
‘내 인생에는 실패뿐이야.’ 실패는 원치 않아도 반복적으로 학습되고 후에는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실패를 떨치고 일어설 수 없게 됩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또 다른 실패를 낳습니다
밤새 그물질을 했지만 두 손에 잡은 것이 없는 어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빈 그물을 건지며 피곤과 허탈에 주저앉고 싶었을 것입니다

소득 없이 지친 우리의 어느 날처럼 말입니다
그 바닷가의 어부들은 자신이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수없이 반복했던 경험과 기술이 있었습니다
팔이 빠지도록 열심히 그물질도 했습니다
날마다 서류 가방을 들고 출근하고 밥 먹듯 야근을 하는 우리처럼 말입니다

실패한 어부들이 좌절한 그 자리에 예기치 못한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실패한 사람들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실패로 좌절하고 있을 때, 모두가 우리에게서 등을 돌린 그때, 그분은 잠잠히 실패한 어부들 곁에 그리고 실패한 우리 곁에 계셨습니다



시몬은 그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주인 시몬에게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평생 그물질을 해온 노련한 어부인 시몬이 대답했지요
“우리가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지만 잡은 것이 없습니다”
스스로 어부로서는 부족함이 없다고 자부했기에 실패가 쓰디쓰기만 했던 그 어부는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는 말씀을 따라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물을 내리는 순간, 의심이 놀라 굴러 떨어졌습니다
텅 비었던 빈 그물에 넘치도록 활기차게 펄떡이는 고기들. 그는 흥분하여 다른 배의 친구들을 불렀습니다
엄청난 고기 떼로 두 배가 물에 잠길 정도가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바라는 기적이 이런 것 아닐까요?

우리라면 이 상황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시몬은 예수님의 무릎 아래 납작 엎드려 고백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삶에 익숙한 사람이었지만 실패가 은혜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는 못했습니다
실패가 더 좋은 인생의 계획을 가지고 접근했다는 것을 몰랐던 거지요

우리가 실패의 자리에 있다면 실패에 대한 생각을 먼저 바꿀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실패는 실패를 인정하는 사람에게만 힘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패는 하나의 일에 대한 평가이지 우리 자신이 실패자라는 의미는 아니지요

‘나는 실패자다
나는 끝났다’라는 생각이 듭니까?

▪️실패는 아직 시작해보지 않은 것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지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패는 내가 패배한 자로 물러서야 한다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선택의 길을 재촉 받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실패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걸까요?

시몬은 물고기를 낚는 삶에서 사람을 낚는 삶을 살도록 선택받았습니다


이 세상에는 완벽한 성공을 이룬 사람도 없고 완전히 실패한 사람도 없지 않을까요? 

방향성을 잃고 흔들리는 갈대 같은 실패의 삶을 살던 시몬이 든든한 반석 같은 존재의 베드로로 선택받은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완벽한 기술과 경험을 가졌기 때문도, 그가 성공했기 때문도 아니잖습니까? 
↪오히려 실패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실패해보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할 줄 모르니까요
자신의 나약함을 모르는 사람은 그 삶의 배에 창조주와 동승하지 않습니다

실패한 우리는 삶이 내 뜻대로, 내 노력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이제는 알게 되지 않았습니까?

좌절과 뼈 속까지 외로운 실패의 자리에 찾아오신 사랑의 예수님 앞에 자신의 힘으로 삶의 배를 움직이려 했던 베드로의 고백은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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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게이츠'가 말한 뜨끔한 명언


태어나서 가난한 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죽을때도 가난한 건 당신의 잘못이다.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난건, 죄가 아니지만
당신의 가정이 화목하지 않은건
당신의 잘못이다.

실수는 누구나 한번쯤
아니 여러번 수백 수천번 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그건 못난 사람이다.

인생은 등산과도 같다
정상에 올라서야만
산아래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듯
노력 없이는 정상에 이를 수 없다.

때론 노력해도 안되는게 있다지만
노력조차 안 해보고 정상에 오를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폐인이다.



가는말을 곱게 했다고
오는 말도 곱기를 바라지 말라.

다른사람이 나를
이해 해주길 바라지도 말라.
항상 먼저 다가가고
먼저 배려 하고 먼저 이해하라.

주는만큼 받아야 된다고 생각지 말라.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라.

시작도 하기 전에 결과를 생각하지 말라.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생각말라.
다른사람을 평가하지도 말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갚을 땐 갚고 받을 땐 받아라.

모든 걸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려라.

나 없인 못산다는 생각 또한 버려라
내가 사라져도, 이세상은 잘 돌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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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2



[마태복음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가복음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빌립보서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 1970년대 말 어느 수요 기도회 때 각자에게 구체적인 기도 제목이 할당되었습니다.

나는 기도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살고 있는 나라 밖의 문제들까지 기도하는 것은 왠지 막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주어진 기도 제목은 특히 더 그랬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 사람들이 자유를 얻게 해주세요.”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전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도를 하면서도 왠지 공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주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다면 참으로 좋은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어요’ 하는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그 후 몇 년 동안, 매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1987년, 레이건 대통령이 연설을 통해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베를린 장벽을 제거하자!”고 제안하자 우리의 기도는 열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할수록 동독과 소련 사람들의 무거운 짐을 더 많이 나누어 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2년 뒤에 실제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나는 까무러칠 정도로 놀랐습니다.

그것도 대량 학살이나 전쟁 없이, 신기하게도 너무 쉽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성도들의 기도에 의해 철의 장막과 공산정권이 와해되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내 기도 생활이 달라졌습니다. 나는 기도가 세상의 일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기도의 응답을 방해하는 세 번째 장벽은 '불화'입니다.

[베드로전서 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에서 ‘막히다’라는 말의 어원은 길을 파헤쳐 군대가 대로를 통과할 수 없게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만일 서로 화목하지 않는다면 마치 길에 장애물과 장벽을 세운 것처럼 그들의 기도는 막히게 될 것입니다.

내 기도가 응답 받기 위해서는 배우자와 다른 지체들을 귀하게 여기고 서로 주께 대하듯 섬기고 존중하며 하나님 말씀을 따라 함께 연합하고 하나님 말씀을 함께 읽고 기도해야 합니다.

마지막 기도생활의 장애물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잠언 28:9]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무시하고 거역하는 것은 가증한 기도이자 거짓된 기도이며 기도응답의 큰 장벽이 됩니다.


[요한복음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성경은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과 뜻을 보여주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과 뜻을 알고 나서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기도로 구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수도 응답해 주실수도 없습니다.

주님과 나 사이에 있는 장애물, 내 삶 속에서 알고 있는 죄를 고백하지 않고, 이기적인 동기로 기도하며 부부가 서로 섬기고 사랑하지 않고 가정 불화를 일으키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은 분명 우리의 기도생활의 장벽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기도의 능력을 모르고 사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을까요?

이는 마치 거대한 창고에 보화가 가득 차 있는 것을 알면서도 꺼내지 않는 게으르고 미련한 자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영원한 축복을 받아먹지 못하고 길거리에 버리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삶을 돌아보고 장벽을 허무십시요. 내 힘으로 안되면 장벽을 허물어달라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십시요.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신앙 생활하는 것은 아직도 인간적 노력의 신앙생활이요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신앙생활입니다.

기도 없는 신앙생활은 잠자는 신앙이요 병들어 가는 신앙입니다.

기도하면 응답 받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 능력을 받고 기도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응답 받는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요?

첫째,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섭리를 기억하며 항상 보호하시고 함께 하시는 것을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둘째는 회개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간구만 하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거부하면서 지냈던 것, 말씀을 의심하고 순종하지 않았던 것 등 나의 부족과 잘못을 주 앞에 고백하고 회개하면서 다른 것을 구할 때 하나님은 응답해주십니다.

셋째는 중보기도입니다. 나와 내 가정을 위한 기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만약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고 내 가족만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이것은 영혼을 빼먹고 이기적으로 기도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리고 내가 속한 지역사회를 위해서, 북한과의 복음적 평화통일을 위해, 더 나아가 전 세계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18:19∼20]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네째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응답받는 기도의 제일 중요한 열쇠는 겸손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6]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내가 세상의 주인이 되어 나 중심으로 세상이 움직인다고 착각을 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이런 어설픈 영웅주의자들은 자신들만의 인생계획을 세워 놓고 그 계획대로 주변 사람들은 물론 하나님마저 움직여 주실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역사의 커다란 수레바퀴의 한 부분을 담당할 뿐 그 중심축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목사님을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누가 천국에 갈 사람이며 누가 지옥 갈 사람입니까?"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누가 기도하느냐? 그 사람이 천국에 갈 사람이오. 누가 기도를 하지 않더냐? 그 사람이 지옥에 갈 사람이다."

존 라이스는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는 시내관광을 하는 산뜻한 세단차가 아니다. 기도는 창고로 직행하여 금은보화를 싣고 오는 화물차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해 준다는 것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조지 물러는 기도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하세요.
하나님이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낙심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열매를 보여주십니다.

항상 기도하세요.
하나님은 열매를 열리게 해주십니다.

자주 하나님께 찾아가세요.
하나님은 자주 응답해 주십니다.

일평생 기도하세요.
하나님은 일평생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영원히 함께하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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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나의 기도는 응답받지 못할까요?  : 기도의 장벽 1



[예레미야 29:12~13]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기도’가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이야.” 한 연구원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도 “기도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힘든 시간일세." "나는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도 없다네”라며 참석자들은 기도에 대한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그때 연구원들에게 차를 나르던 봉사자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요 기도하기가 참 쉽던데요.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떴을 때는 하나님께 영혼의 눈도 뜨게 해달라고 기도하죠. 옷을 입을 때는 경건과 사랑의 옷도 입혀달라고 기도합니다.

세수할 때는 영혼도 정결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청소할 때는 마음 구석구석도 깨끗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요.


식사할 때는 영혼의 양식도 달라고 기도합니다. 지금처럼 차를 나를 때는 사랑도 나르게 해달라고 기도한답니다.

이렇게 종일 기도하면서 보냅니다. 제게 기도는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마태복음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누가복음 21: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다른 사람들은 기도응답을 많이 받는데.. 왜 나의 기도에는 응답이 없을까요?

성경은 간절히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하신다고 약속하셨는데, 왜 나는 응답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내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였다고 해서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지 못하시거나 하나님이 무능력한 것은 아닙니다.

이는 단지 우리의 마음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으로부터 오는 결과입니다. 즉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 하나님께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59:1~2]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가 당신의 뜻을 벗어나거나 당신의 성품과 모순된 것이라면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대화의 선을 단절시키는 장벽은 과연 무엇일까요?

성경은 기도를 방해하는 여러가지 요소를 기록하고 있는데, 우리의 기도생활속에 자리잡고 있는 심각한 문제 네 가지 장벽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출처 : 워런 위어스비의 “당신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기도가 응답받는 데 첫번째 장애는 우리가 삶 속에서 품고 있으면서 자백하지 않는 “알고 있는 죄”입니다.

[시편 66:18]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예수님을 제외한 모든 인간은 죄인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죄는 자신의 마음 속에 어떤 죄를 품고 있음을 인식하고 또 그 죄가 어떤 죄인지 알면서도 정직하게 인정하고 회개하지 않고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우리가 위선적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1: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우리의 말과 행동이 서로 다르며 죄를 감추는 것은 하나님을 크게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오늘 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와 하나님을 무시한 채 물질적인 부를 축적하는 데에만 급급하게 살아갑니다. 그들은 어려움을 당하여 거의 죽게 될 지경에 이르러서야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기 위해 부르짖습니다.

[마태복음 5: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주님은 이 말씀에서 문자 그대로 행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육체적인 수술로써 영적인 치유를 기대할 수 없으며 오히려 죄가 점점 더 커져서 존재를 파괴하기 전에 죄의 문제를 철처히 해결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한일서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래서 주일 예배 중 처음 부분에 이 말씀을 읊조리며 회개의 시간을 갖습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의 모든 잘못을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기도의 응답을 방해하는 두번째 장벽은 ‘이기심’입니다.


[야고보서 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이 말씀은 싸움과 다툼이 일어나는 원인은 바로 내 안에 있는 분쟁을 일으키는 이기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4:2~3]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깨닫기 전에 이기적으로 자신의 요구만을 먼저 늘어놓는 것은 잘못입니다.

주기도문에 보면 우리 자신의 것보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우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9~10]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먼저 하나님의 관심사에 대해 기도한 다음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6: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기를 기뻐하시지만, 이기적인 기도, 자신의 쾌락과 욕심만을 채우기 위한 기도에는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기도는 자신을 만족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잘 섬길 수 있도록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 구할 때 하나님은 그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기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통찰력을 주시도록 구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기도하는 법을 알기 위해 말씀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방해하는 세번째 네번째 장애는 무엇일까요? *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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